차별 없는 디자인하기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을 만들어낸 이들에 관한 책이다.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퀴어’ ‘비인간’ ‘연대’ ‘도시’ ‘장애’를 다루며, 각각 길벗체, 핫핑크돌핀스, 스투키 스튜디오, 리슨투더시티 그리고 다이애나랩의 디자인적 실천을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액티비즘은 최근 몇 년 동안 창의적이고 급진적으로 발전해왔다. 이 책은 차별적 현장에서 시작된 활동을 다루며, 자신의 경험과 방식으로 사회적 변화를 위한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과 태도를 기록하고자 했다.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용기와 연대의 중요성을 제시하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힘에 관해 상기하고자 한다.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경험과 고민은 저마다의 자리에서도 빛날 테지만, 책을 통해 느슨히 이어질 때 새로운 좌표를 만들며 의미를 만들어 갈 것이다.
사회 그리고 디자인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는 디자인에 관한 책이다. 언뜻 디자인보다는 액티비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나, 분명 이 책은 디자인을 말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디자인 액티비즘의 현장은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이고 투쟁적이었다. 이 책은 인간과 비인간, 연대와 평등, 퀴어와 이인, 재난과 도시, 장애와 차별 영역의 중심에서 디자인 무브먼트를 만들어낸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디자인은 전적으로 사회적이다. 디자인은 소통의 언어를 생산하고, 시대와 역사를 투명하게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노먼 포터가 말했듯 디자이너는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공동체를 위해 행동할 자질을 부여받는다. 디자이너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처참한 차별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사회를 바꾸는 다섯 개의 좌표이자 푯대
산업의 터전이었던 청계천·을지로 지역 재개발을 반대하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시위 현장으로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이 모여 저마다 만든 포스터를 들고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행진했다. 코로나19도 막지 못한 온라인 퀴퍼에는 총 8만 6천 명이 모여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를 외치며 함께 걸었다. 수족관에 갇힌 제돌이와 비봉이를 구한 핫핑크돌핀스의 수많은 피켓은 돌고래 쇼를 보러 가던 발걸음들을 돌이켜 “언니 덕분에” 처음으로 비인간과 연대하는 마음을 이어나갔다. 한글 최초로 색을 입은 길벗체는 성소수자의 프라이드 행렬을 넘어 한국의 수많은 인권 현장에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 당당하고 명랑하게 동행한다. 모두를 환영하는 차별없는가게 앞 경사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는 마음의 다리가 되어 더욱 다양한 소수자들을 비추는 평등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에 대하여
분명한 것은, 평등은 용기를 딛고 온다. 일상 속 차별의 난반사 사이에서 선명히 무지개를 띄운 다섯 팀의 궤적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의 다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정한 연대 속에서 서로의 존재로 인해 나아갈 힘과 사랑을 배웠고, 평등한 사회를 디자인하기 위해 없던 길도 만들었던 이들의 이야기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이 읽힐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과거의 이들은 ‘차별금지법도 없던 세상에서 힘겹게도 살았구나’ 가볍게 한숨을 내뱉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모두를 위한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행진에 동행할 더 많은 길벗을 만나고 싶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더 유의미하게 디자인할 동료이자 친구를.
목차
시작의 글: 멀리에서 작게, 계속해서 빛나는 조각들. 08
숲과 제람: 퀴어와 이인. 12
핫핑크돌핀스: 인간과 비인간. 80
스투키 스튜디오: 연대와 평등. 150
리슨투더시티: 도시와 재난. 222
다이애나랩: 장애와 차별. 280
기획의 글: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에 대하여. 356
책 속으로
38쪽. 숲(배성우). 예쁘게 잘 만드는 게 기본이겠지만, 그걸 넘어서서 어떤 의미를 담아내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일도 디자이너의 역할이라 여기며 작업해요.
39쪽. 제람(강영훈).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안적인 움직임을 만들고 새로운 역할을 찾는 걸 반갑게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어요.
59쪽. 제람(강영훈). 가장 큰 배움은 문화라는 게, 누군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조성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궤적이면서 흔적이라는 생각이었어요.
107쪽. 돌고래(황현진). 도망을 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여기 남아서 싸울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제가 한 일은 무언가 그리고 만드는 작업들이었어요. 펜스에다 엄청나게 무언가 그려댔어요. 경찰들이 무장해가지고 방패 들고 있으면 저는 내 할 말을 적은 피켓을 들고서 ‘이게 내 방패다’ 생각했어요.
119쪽. 돌고래(황현진).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보다 열등하게 대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이용하고 착취하고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규정해놓는 것, 어떠한 동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위계를 나누어 다르게 대하는 차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68쪽. 정유미(스투키 스튜디오). ‘오프라인 퀴퍼가 열리는 시점에도 왜 온라인 퀴퍼가 열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은 작업자인 저희에게도, 시간과 예산을 들여 온라인 퀴퍼를 여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도 중요했어요.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에서는 사람들이 지인을 중심으로 모여서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즐겁게 걸으며 연대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온라인에서는 퀴어든 앨라이든 지지하고 연대하고 있음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193쪽. 김태경(스투키 스튜디오). 결국 차별없는가게를 이미지적으로 풀어감에 있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는 ‘완전무결함에 대한 지향’보다 ‘과정에 대한 약속’이 담겨야 한다고 느꼈어요. 완전히 차별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겠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같이 가능성을 꿈꾸면서 과정을 함께하자는 것이잖아요. 공간에 있는 가게 주인, 직원, 장애인 손님, 비장애인 손님 등 모두가 말이죠.
257쪽. 박은선(리슨투더시티).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 잘사는 게 그때 세대들의 노동 덕인데, 그들의 땀이나 삶 등이 회자되지 않으니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죠. 그리고 다른 한 축으로, 우리 자체의 역사, 우리가 투쟁하고 싸웠던 역사도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76쪽. 박은선(리슨투더시티).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고 소수자의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관점이에요. 그것이 페미니스트 인식론이라고 이해해요. 이 시각이야말로 주류 도시계획이 가진 관료주의적 문제를 해결할 때 중요한 철학이라 생각합니다.
304쪽. 유선(다이애나랩). 이 사회에서 비장애인으로서 엄청나게 권력을 가지고 여태까지 잘 살아온 존재라는 것에 대한 인정부터, 그러지 못한 존재와 어떻게 같이 만날 수 있을지 세세하게 이야기해나갔어요.
309쪽. 백구(다이애나랩).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 없고, 가까이서 본 적 없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역할이 아닐까 했어요. 만나게 해주려면 경사로가 필요하고, 환대의 태도들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눴죠.
330쪽. 원정(다이애나랩). 차별은 ‘누군가에 대해 알려 하거나 관계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런 게 차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331쪽. 원정(다이애나랩). ‘차별이 없는 상태’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기보다, 계속해서 발견되는 착오와 실천을 통해서 타인과, 차별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여러 사람들의 관계성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네요.
352쪽. 백구(다이애나랩). 접근성은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것이 디자인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작가 소개
길벗체
길벗체는 한글 최초로 전면 색상을 도입한 완성형 서체로, 1978년 무지개 깃발을 처음 디자인한 길버트 베이커를 기리는 영문 서체 길버트체의 한글 버전으로 시작되었지만, 무지개색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컬러의 자족을 더 만들어 원작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갖추었다. 2020년 비온뒤무지개재단과 474명의 공동제작자가 제작하고, 책임 개발자 숲(배성우)과 제람(강영훈), 그리고 공동 개발자 채지연, 김수현, 김민정, 임혜은, 강주연, 신예림이 만들었다.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비온뒤무지개재단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핫핑크돌핀스
2011년부터 돌고래 해방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해양 환경단체. 기존의 사회운동에서 볼 수 없던 밝은 핫핑크색 점프 수트를 입고 아나키즘과 반차별을 이야기하며, 예술과 시위 그리고 교육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에 균열을 내고 있다.
스투키 스튜디오
2016년, 정보를 모으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여 내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모여 시작한 스튜디오. 스튜디오 이름은 물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심지어 공기정화까지 해내는 다육식물 ‘스투키’에서 따왔다. 스튜디오 초기에는 자체 프로젝트로 월경과 월경컵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서 웹사이트, 책, 전시, 공간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했다. 이후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작업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하며 사용자 참여형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연대를 실천하면서도 스튜디오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리슨투더시티
한국의 과도한 개발과 환경적 사회적 무책임, 문화적 다양성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2009년 활동을 시작한 예술인 연구 활동가 콜렉티브. 도시문제를 중심으로 저항의 현장에 함께하면서 전시 및 출판, 다큐멘터리 제작 등 각종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다이애나랩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작업자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한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차별없는가게〉(2018~) 〈퍼레이드진진진〉(2019) 〈환대의 조각들〉(2020~2021) 〈배리어컨셔스를 위한 조각들〉(2022~)을 기획했다.
유선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콜렉티브 다이애나랩의 일원. 노들장애인야학 낮수업 교사이지만 한 번도 교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가르칠 수도 없고 가르치기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비장애인 교사의 권위에 대해 생각한다. 인포숍카페별꼴의 매니저 7인 중 1명이며, 3인으로 구성된 다이애나랩에서 33.3%의 일을 맡고 있다.
이재영
6699프레스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6699프레스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로, 2012년부터 기업, 미술관, 출판사, 예술가, 시각 문화 전반의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1-14』(2022)로 ‘2023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으며, 『서울의 목욕탕』(2018),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2016) 『우리는 서울에 산다』(2012) 등을 기획 및 출판했다. 국제타이포그래피 효 비엔날레 〈타이포잔치〉의 큐레이터(2021), 작가(2019)로 참여했으며,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출판국장을 역임하며 『글짜씨』를 기획, 디자인했다. 현재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북 디자인을 가르친다.
출판사 소개
6699프레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6699프레스는 2012년부터 긴 호흡을 가진 글에 귀 기울이는 출판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 사회 변방의 대상화된 소수자에 대한 취재가 아닌, 그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독자가 직접 들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이 바라본 서울을 엮은 『우리는 서울에 산다』(2012)를 시작으로 인천 배다리 골목 헌책방 주인의 목소리를 통해 배워보는 헌책 수리 교본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수리법』(2014),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의 목소리로 기울어진 디자인계를 다시 생각하는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2016), 『WOOWHO: Women Talk Graphic Design』(2017), 사라져가는 서울의 오래된 목욕탕을 기록한 사진책 『서울의 목욕탕』(2018) 등을 만들었다. 최근 10주년 기념 아카이브북 『1-14』(2022)와 정상가족의 범주에 대해 질문하는 『New Normal』(2020)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됐다.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을 만들어낸 이들에 관한 책이다.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된 이 책은 ‘퀴어’ ‘비인간’ ‘연대’ ‘도시’ ‘장애’를 다루며, 각각 길벗체, 핫핑크돌핀스, 스투키 스튜디오, 리슨투더시티 그리고 다이애나랩의 디자인적 실천을 다룬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액티비즘은 최근 몇 년 동안 창의적이고 급진적으로 발전해왔다. 이 책은 차별적 현장에서 시작된 활동을 다루며, 자신의 경험과 방식으로 사회적 변화를 위한 고민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과 태도를 기록하고자 했다.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용기와 연대의 중요성을 제시하며, 다양성을 포용하는 힘에 관해 상기하고자 한다.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이들의 경험과 고민은 저마다의 자리에서도 빛날 테지만, 책을 통해 느슨히 이어질 때 새로운 좌표를 만들며 의미를 만들어 갈 것이다.
사회 그리고 디자인
『차별 없는 디자인하기』는 디자인에 관한 책이다. 언뜻 디자인보다는 액티비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듯하나, 분명 이 책은 디자인을 말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에서 벌어진 디자인 액티비즘의 현장은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이고 투쟁적이었다. 이 책은 인간과 비인간, 연대와 평등, 퀴어와 이인, 재난과 도시, 장애와 차별 영역의 중심에서 디자인 무브먼트를 만들어낸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디자인은 전적으로 사회적이다. 디자인은 소통의 언어를 생산하고, 시대와 역사를 투명하게 담는 그릇이어야 한다. 노먼 포터가 말했듯 디자이너는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디자이너는 공동체를 위해 행동할 자질을 부여받는다. 디자이너는 더 나은 삶을 지향하고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처참한 차별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사회를 바꾸는 다섯 개의 좌표이자 푯대
산업의 터전이었던 청계천·을지로 지역 재개발을 반대하는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시위 현장으로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이 모여 저마다 만든 포스터를 들고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행진했다. 코로나19도 막지 못한 온라인 퀴퍼에는 총 8만 6천 명이 모여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를 외치며 함께 걸었다. 수족관에 갇힌 제돌이와 비봉이를 구한 핫핑크돌핀스의 수많은 피켓은 돌고래 쇼를 보러 가던 발걸음들을 돌이켜 “언니 덕분에” 처음으로 비인간과 연대하는 마음을 이어나갔다. 한글 최초로 색을 입은 길벗체는 성소수자의 프라이드 행렬을 넘어 한국의 수많은 인권 현장에서 차별과 혐오에 맞서 당당하고 명랑하게 동행한다. 모두를 환영하는 차별없는가게 앞 경사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잇는 마음의 다리가 되어 더욱 다양한 소수자들을 비추는 평등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에 대하여
분명한 것은, 평등은 용기를 딛고 온다. 일상 속 차별의 난반사 사이에서 선명히 무지개를 띄운 다섯 팀의 궤적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용기의 다리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정한 연대 속에서 서로의 존재로 인해 나아갈 힘과 사랑을 배웠고, 평등한 사회를 디자인하기 위해 없던 길도 만들었던 이들의 이야기에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이 읽힐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과거의 이들은 ‘차별금지법도 없던 세상에서 힘겹게도 살았구나’ 가볍게 한숨을 내뱉는 순간이 오길 바란다.
모두를 위한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이 행진에 동행할 더 많은 길벗을 만나고 싶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더 유의미하게 디자인할 동료이자 친구를.
목차
시작의 글: 멀리에서 작게, 계속해서 빛나는 조각들. 08
숲과 제람: 퀴어와 이인. 12
핫핑크돌핀스: 인간과 비인간. 80
스투키 스튜디오: 연대와 평등. 150
리슨투더시티: 도시와 재난. 222
다이애나랩: 장애와 차별. 280
기획의 글: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에 대하여. 356
책 속으로
38쪽. 숲(배성우). 예쁘게 잘 만드는 게 기본이겠지만, 그걸 넘어서서 어떤 의미를 담아내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일도 디자이너의 역할이라 여기며 작업해요.
39쪽. 제람(강영훈).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안적인 움직임을 만들고 새로운 역할을 찾는 걸 반갑게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어요.
59쪽. 제람(강영훈). 가장 큰 배움은 문화라는 게, 누군가 계획하고 의도한 대로 조성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궤적이면서 흔적이라는 생각이었어요.
107쪽. 돌고래(황현진). 도망을 칠 것인가 아니면 계속 여기 남아서 싸울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때마다 제가 한 일은 무언가 그리고 만드는 작업들이었어요. 펜스에다 엄청나게 무언가 그려댔어요. 경찰들이 무장해가지고 방패 들고 있으면 저는 내 할 말을 적은 피켓을 들고서 ‘이게 내 방패다’ 생각했어요.
119쪽. 돌고래(황현진).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인간보다 열등하게 대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이용하고 착취하고 파괴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규정해놓는 것, 어떠한 동의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위계를 나누어 다르게 대하는 차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68쪽. 정유미(스투키 스튜디오). ‘오프라인 퀴퍼가 열리는 시점에도 왜 온라인 퀴퍼가 열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은 작업자인 저희에게도, 시간과 예산을 들여 온라인 퀴퍼를 여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에도 중요했어요. 오프라인 퀴어퍼레이드에서는 사람들이 지인을 중심으로 모여서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즐겁게 걸으며 연대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온라인에서는 퀴어든 앨라이든 지지하고 연대하고 있음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193쪽. 김태경(스투키 스튜디오). 결국 차별없는가게를 이미지적으로 풀어감에 있어서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는 ‘완전무결함에 대한 지향’보다 ‘과정에 대한 약속’이 담겨야 한다고 느꼈어요. 완전히 차별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겠지만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같이 가능성을 꿈꾸면서 과정을 함께하자는 것이잖아요. 공간에 있는 가게 주인, 직원, 장애인 손님, 비장애인 손님 등 모두가 말이죠.
257쪽. 박은선(리슨투더시티).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잘 먹고 잘사는 게 그때 세대들의 노동 덕인데, 그들의 땀이나 삶 등이 회자되지 않으니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죠. 그리고 다른 한 축으로, 우리 자체의 역사, 우리가 투쟁하고 싸웠던 역사도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76쪽. 박은선(리슨투더시티).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고 소수자의 시각으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관점이에요. 그것이 페미니스트 인식론이라고 이해해요. 이 시각이야말로 주류 도시계획이 가진 관료주의적 문제를 해결할 때 중요한 철학이라 생각합니다.
304쪽. 유선(다이애나랩). 이 사회에서 비장애인으로서 엄청나게 권력을 가지고 여태까지 잘 살아온 존재라는 것에 대한 인정부터, 그러지 못한 존재와 어떻게 같이 만날 수 있을지 세세하게 이야기해나갔어요.
309쪽. 백구(다이애나랩).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 없고, 가까이서 본 적 없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어주는 것이 우리 역할이 아닐까 했어요. 만나게 해주려면 경사로가 필요하고, 환대의 태도들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눴죠.
330쪽. 원정(다이애나랩). 차별은 ‘누군가에 대해 알려 하거나 관계하려고 하지 않는 것.’ 그런 게 차별의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331쪽. 원정(다이애나랩). ‘차별이 없는 상태’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기보다, 계속해서 발견되는 착오와 실천을 통해서 타인과, 차별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서 여러 사람들의 관계성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네요.
352쪽. 백구(다이애나랩). 접근성은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것이 디자인과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작가 소개
길벗체
길벗체는 한글 최초로 전면 색상을 도입한 완성형 서체로, 1978년 무지개 깃발을 처음 디자인한 길버트 베이커를 기리는 영문 서체 길버트체의 한글 버전으로 시작되었지만, 무지개색뿐 아니라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컬러의 자족을 더 만들어 원작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갖추었다. 2020년 비온뒤무지개재단과 474명의 공동제작자가 제작하고, 책임 개발자 숲(배성우)과 제람(강영훈), 그리고 공동 개발자 채지연, 김수현, 김민정, 임혜은, 강주연, 신예림이 만들었다.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비온뒤무지개재단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핫핑크돌핀스
2011년부터 돌고래 해방 운동을 이어오고 있는 해양 환경단체. 기존의 사회운동에서 볼 수 없던 밝은 핫핑크색 점프 수트를 입고 아나키즘과 반차별을 이야기하며, 예술과 시위 그리고 교육을 통해 인간중심주의에 균열을 내고 있다.
스투키 스튜디오
2016년, 정보를 모으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여 내보이는 것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모여 시작한 스튜디오. 스튜디오 이름은 물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심지어 공기정화까지 해내는 다육식물 ‘스투키’에서 따왔다. 스튜디오 초기에는 자체 프로젝트로 월경과 월경컵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서 웹사이트, 책, 전시, 공간 운영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했다. 이후 ‘온라인 퀴어퍼레이드’ 작업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다양한 파트너와 협업하며 사용자 참여형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작업을 주로 한다. 연대를 실천하면서도 스튜디오 운영이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리슨투더시티
한국의 과도한 개발과 환경적 사회적 무책임, 문화적 다양성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2009년 활동을 시작한 예술인 연구 활동가 콜렉티브. 도시문제를 중심으로 저항의 현장에 함께하면서 전시 및 출판, 다큐멘터리 제작 등 각종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다이애나랩
미디어아트, 사운드아트, 텍스타일,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작업자들이 모여 만든 콜렉티브.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한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차별없는가게〉(2018~) 〈퍼레이드진진진〉(2019) 〈환대의 조각들〉(2020~2021) 〈배리어컨셔스를 위한 조각들〉(2022~)을 기획했다.
유선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표현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콜렉티브 다이애나랩의 일원. 노들장애인야학 낮수업 교사이지만 한 번도 교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가르칠 수도 없고 가르치기도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비장애인 교사의 권위에 대해 생각한다. 인포숍카페별꼴의 매니저 7인 중 1명이며, 3인으로 구성된 다이애나랩에서 33.3%의 일을 맡고 있다.
이재영
6699프레스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6699프레스는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로, 2012년부터 기업, 미술관, 출판사, 예술가, 시각 문화 전반의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협업을 지속하고 있다. 『1-14』(2022)로 ‘2023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되었으며, 『서울의 목욕탕』(2018),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2016) 『우리는 서울에 산다』(2012) 등을 기획 및 출판했다. 국제타이포그래피 효 비엔날레 〈타이포잔치〉의 큐레이터(2021), 작가(2019)로 참여했으며,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에서 출판국장을 역임하며 『글짜씨』를 기획, 디자인했다. 현재 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와 북 디자인을 가르친다.
출판사 소개
6699프레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6699프레스는 2012년부터 긴 호흡을 가진 글에 귀 기울이는 출판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 사회 변방의 대상화된 소수자에 대한 취재가 아닌, 그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독자가 직접 들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이 바라본 서울을 엮은 『우리는 서울에 산다』(2012)를 시작으로 인천 배다리 골목 헌책방 주인의 목소리를 통해 배워보는 헌책 수리 교본 『느릿느릿 배다리씨와 헌책수리법』(2014),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의 목소리로 기울어진 디자인계를 다시 생각하는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2016), 『WOOWHO: Women Talk Graphic Design』(2017), 사라져가는 서울의 오래된 목욕탕을 기록한 사진책 『서울의 목욕탕』(2018) 등을 만들었다. 최근 10주년 기념 아카이브북 『1-14』(2022)와 정상가족의 범주에 대해 질문하는 『New Normal』(2020)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