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 (리커버)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했던 말들
계절 속에 녹아 있는 사랑의 순간들
붙잡으려 애쓸수록 속절없이 흩어지던 말과 사랑
사랑하는 모두에게, 모든 사랑에게 쓰는 편지
Summer Letter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
상실의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왔지만 여전히 어깨를 움츠린 채 걷습니다.
겨울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찬바람 부는 날이었습니다.
오래도록 비가 내렸고, 오래도록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기운이 가실 때쯤, 부치지 못할 한 통의 편지를 씁니다.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했던 말들, 계절에 녹아 있는 사랑의 순간들,
붙잡으려 애쓸수록 속절없이 흩어지던 말과 사랑.
모두 흩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달아나고 싶던 날도 있었으나,
도리어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모든 계절의 사랑과 말을 모았습니다.
자주 헤맸고 불안했던 글과 사랑을 모아 이 계절에 부칩니다.
사랑하는 모두에게, 모든 사랑에게.
/
절망이 커다란 파도로 닥쳐올 땐,
도리 없이 눈을 감고 맙니다.
귀댁 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귀하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하고 있는 분 중 아래의 대상자가 주민등록상 사망으로 확인됨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되었음을 통보하오니...
‘귀댁 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편지가 온 것은 장례를 마친 지 엿새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치매였습니다.
내 세상 속 가장 크고 강했던, 굳건한 사랑의 시작이었던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과 끝내 그를 잃었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과 후회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아무리 고된 길에도 다만 한 송이의 풀꽃이 자라지 않겠느냐고, 확신에 차서 말하던 나는 없었습니다. 절망이 커다란 파도로 닥쳐올 땐 도리 없이 눈을 감고 맙니다. 많은 날에 파도가 높았고, 그 앞에서 눈 감는 날이 잦았습니다.
눈을 감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랑이 묻은 계절을 꺼내어 보는 일 밖엔 없었습니다. 시선 끝에 머물렀던 풍경으로, 어느 이의 입가에 맺혔던 미소로 남은 사랑…
그렇게 모은 계절을 지금에서야 부칩니다. 마른 펜과 종이를 찾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다 마르지 못한 종이를 쥐었으니 내내 슬플 것입니다. 밤마다 물가를 서성일 것입니다.
잔잔해서 고마운 파도가 찾아 들길 바라며.
summer letter,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 (리커버)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했던 말들
계절 속에 녹아 있는 사랑의 순간들
붙잡으려 애쓸수록 속절없이 흩어지던 말과 사랑
사랑하는 모두에게, 모든 사랑에게 쓰는 편지
Summer Letter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
상실의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왔지만 여전히 어깨를 움츠린 채 걷습니다.
겨울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찬바람 부는 날이었습니다.
오래도록 비가 내렸고, 오래도록 해가 지지 않았습니다.
뜨거운 기운이 가실 때쯤, 부치지 못할 한 통의 편지를 씁니다.
흩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했던 말들, 계절에 녹아 있는 사랑의 순간들,
붙잡으려 애쓸수록 속절없이 흩어지던 말과 사랑.
모두 흩어지도록 내버려 둔 채 달아나고 싶던 날도 있었으나,
도리어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모든 계절의 사랑과 말을 모았습니다.
자주 헤맸고 불안했던 글과 사랑을 모아 이 계절에 부칩니다.
사랑하는 모두에게, 모든 사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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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커다란 파도로 닥쳐올 땐,
도리 없이 눈을 감고 맙니다.
귀댁 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귀하의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하고 있는 분 중 아래의 대상자가 주민등록상 사망으로 확인됨에 따라 피부양자 자격이 상실되었음을 통보하오니...
‘귀댁 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라는 말로 시작되는 편지가 온 것은 장례를 마친 지 엿새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치매였습니다.
내 세상 속 가장 크고 강했던, 굳건한 사랑의 시작이었던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과 끝내 그를 잃었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과 후회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아무리 고된 길에도 다만 한 송이의 풀꽃이 자라지 않겠느냐고, 확신에 차서 말하던 나는 없었습니다. 절망이 커다란 파도로 닥쳐올 땐 도리 없이 눈을 감고 맙니다. 많은 날에 파도가 높았고, 그 앞에서 눈 감는 날이 잦았습니다.
눈을 감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사랑이 묻은 계절을 꺼내어 보는 일 밖엔 없었습니다. 시선 끝에 머물렀던 풍경으로, 어느 이의 입가에 맺혔던 미소로 남은 사랑…
그렇게 모은 계절을 지금에서야 부칩니다. 마른 펜과 종이를 찾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다 마르지 못한 종이를 쥐었으니 내내 슬플 것입니다. 밤마다 물가를 서성일 것입니다.
잔잔해서 고마운 파도가 찾아 들길 바라며.
summer letter,
오늘은 파도가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