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시민권을 잃은 사람처럼 방치된 ‘우리’에 관한 이야기
학교 정문에서 ‘MB OUT’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선배는 제지당했다. 카드론으로 고시원비를 해결하고 서울에 취직했을 때, 아침마다 고시원엔 출근 준비로 바쁜 또래들로 가득했다. 청년들 10명 중 4명은 아파도 시간과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간다. 여성 혐오는 세대를 불문하고 남자들의 시대정신이 됐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정치가 서로의 밥그릇 크기를 놓고 다투는 동안 시민권을 잃은 사람처럼 방치된 ‘우리’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목차
[1996 ~ 2013]
꽃밭에서 자란 한국 남자들
조용한 폭력과 공공의 적
불온 도서 읽는 빨갱이
전직 군사 통치자의 딸
[2014 ~ 2018]
키메라, IS, 안티 페미니스트
그것은 여성 혐오 살인이었다
촛불 집회는 다 꿈이었을까
한국 남자의 밑바닥
[2019 ~ 2023]
단순하고 당당한 여성 혐오자들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돌아올 텐데
정의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
겁 많은 남자들이 망치는 사회
[2024 ~ ????]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
오래전부터 방치된 사람들
저출생, 국가가 연출하는 블랙코미디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책 속으로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대학생들이 정치의식을 되도록 갖지 않았으면 했던 공동의 바람이 마침내 이뤄진 것 아닌가. 투쟁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를 다음 세대가 잘 이어가도록 양보하고 이끌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지역구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바빴던 기성 정치인들의 욕망이 만든 결과 아니냐는 것이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형님과 아우가 이끄는 세계에서 차세대들은 조용히 입 다무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래야 그들이 만든 세계에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 「조용한 폭력과 공공의 적」 중에서
지금도, 아직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대체하려는 우리 한남 동지들이 있다면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은 추악한 자존심을 부리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당신이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공감하지 않겠다는, 시민 사회 동료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그것은 여성 혐오 살인이었다」 중에서
민주당에게 항상 묻고 싶다. 도대체 몇 석을 만들어줘야 어쩔 수 없고 최선이었다는 변명을 그만둘 것인지 말이다. 국회를 민주당 1당 체제로 만들어주면 만족하겠는가. 기득권과 싸워달라고 뽑아놨더니 왜 국민의힘처럼 자꾸만 기득권과 야합하는가. 이런 모습들이 촛불 집회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결말이라면, 우리는 언제쯤 ‘진짜로 바뀐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한국 헌정사 유례없는 역사를 시민이 만들어줘도, 그다음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았다.
--- 「촛불 집회는 다 꿈이었을까」 중에서
한국 남자의 안티 페미니즘 현상에는 다른 사회적 현상과 달리 교차되거나 복잡한 맥락이 없다. 중장년층보다 청년층 한국 남자의 여성 혐오가 심하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말 역시 맞는 말은 아니다. 지금 살아있는 한국 남자는 세대 불문하고 여성 혐오, 안티 페미니즘에 적극 가담하고 있(었)으며 연령대가 낮을수록 가시화가 더 잘되는 것뿐이다. 뭐랄까. ‘일베남’이나 ‘디씨남’ 때문에 ‘개저씨’는 한물간 것처럼 보이는 그런 착시 현상 같은 것 말이다.
--- 「단순하고 당당한 여성 혐오자들」 중에서
정의당을 진단하는 여러 의견 중에 ‘정의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라는 말이 있다. 맞다. 다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쪼그라들었다. 정의당의 현재 위치는 굉장히 모순적이다. 남성 유권자는 정의당을 ‘페미니즘 정당’이라 부르는데, 여성 유권자는 정의당을 페미니즘 정당이라고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 「정의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 중에서
대통령의 존재가 왜 국가 위협인지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검찰총장 출신이라는 점. 둘째, 자존심만 가득한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 셋째, 호탕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책임감은 없다는 점. 넷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바닥이라는 점. 마지막 다섯째, 일관적이지 않은 말로 혼선을 일으킨다는 점 등이다.
---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 중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된 지 오래인 한국에서 강요하는 ‘결혼-임신-출산’ 과정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급여는 남자보다 적게 받고, 집에 돌아와서는 남자보다 가사 노동을 훨씬 더 해야 하며, 출산 후에는 업무 경력을 이어가기 어렵고, 육아도 가사 노동처럼 혼자 다 수행할 것을 각오하는 과정이다. 이걸 평생 해내는 대신 육아휴직 때 돈 좀 더 주고 공공임대 주택 주고 노동 시간 줄여준다고 하면 “아이 낳고 살기 좋은 우리나라”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 「저출생, 국가가 연출하는 블랙코미디」 중에서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음번에는 국민의힘이, 또 그다음 번에도 더불어민주당 아니면 국민의힘이 번갈아 권력과 의석수를 나눠 갖는 한국이 이대로 유지된다면 내 또래 세대의 결말은 두 가지다. 외국 아니면 천국. 한국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청년은 외국으로 떠날 것이고, 떠나지 못해 버티던 청년들은 천천히 스러져 천국으로 갈 것이다.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슬프게도 사실이다.
—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중에서
작가 소개
희석
주민등록상 이름은 ‘안희석’이지만, 태어나자마자 강제로 부여받은 부계의 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에 행정 서류가 아닌 곳에는 ‘희석’만 쓰고 있다. 1990년에 태어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청소년기를 채웠다. 이후 신문사와 시청과 기업과 정당 등에서 글을 쓰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제는 이 책의 발행처인 독립출판사 ‘발코니’를 운영하고 있다.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 『Good Afterbook』, 『몇 줄의 문장과 몇 푼의 돈』 등을 썼고, 매주 금요일 아침 8시 「희석된 일주일」을 연재한다.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시민권을 잃은 사람처럼 방치된 ‘우리’에 관한 이야기
학교 정문에서 ‘MB OUT’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선배는 제지당했다. 카드론으로 고시원비를 해결하고 서울에 취직했을 때, 아침마다 고시원엔 출근 준비로 바쁜 또래들로 가득했다. 청년들 10명 중 4명은 아파도 시간과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간다. 여성 혐오는 세대를 불문하고 남자들의 시대정신이 됐다.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정치가 서로의 밥그릇 크기를 놓고 다투는 동안 시민권을 잃은 사람처럼 방치된 ‘우리’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목차
[1996 ~ 2013]
꽃밭에서 자란 한국 남자들
조용한 폭력과 공공의 적
불온 도서 읽는 빨갱이
전직 군사 통치자의 딸
[2014 ~ 2018]
키메라, IS, 안티 페미니스트
그것은 여성 혐오 살인이었다
촛불 집회는 다 꿈이었을까
한국 남자의 밑바닥
[2019 ~ 2023]
단순하고 당당한 여성 혐오자들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돌아올 텐데
정의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
겁 많은 남자들이 망치는 사회
[2024 ~ ????]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
오래전부터 방치된 사람들
저출생, 국가가 연출하는 블랙코미디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책 속으로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대학생들이 정치의식을 되도록 갖지 않았으면 했던 공동의 바람이 마침내 이뤄진 것 아닌가. 투쟁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를 다음 세대가 잘 이어가도록 양보하고 이끌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지역구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만 바빴던 기성 정치인들의 욕망이 만든 결과 아니냐는 것이다. 그들이 만든 시스템 안에서, 형님과 아우가 이끄는 세계에서 차세대들은 조용히 입 다무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그래야 그들이 만든 세계에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 「조용한 폭력과 공공의 적」 중에서
지금도, 아직도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대체하려는 우리 한남 동지들이 있다면 꼭 말하고 싶다. 당신은 추악한 자존심을 부리고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당신이 피해 당사자의 입장에서 공감하지 않겠다는, 시민 사회 동료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그것은 여성 혐오 살인이었다」 중에서
민주당에게 항상 묻고 싶다. 도대체 몇 석을 만들어줘야 어쩔 수 없고 최선이었다는 변명을 그만둘 것인지 말이다. 국회를 민주당 1당 체제로 만들어주면 만족하겠는가. 기득권과 싸워달라고 뽑아놨더니 왜 국민의힘처럼 자꾸만 기득권과 야합하는가. 이런 모습들이 촛불 집회와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결말이라면, 우리는 언제쯤 ‘진짜로 바뀐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한국 헌정사 유례없는 역사를 시민이 만들어줘도, 그다음의 역사는 이어지지 않았다.
--- 「촛불 집회는 다 꿈이었을까」 중에서
한국 남자의 안티 페미니즘 현상에는 다른 사회적 현상과 달리 교차되거나 복잡한 맥락이 없다. 중장년층보다 청년층 한국 남자의 여성 혐오가 심하다는 말도 있지만, 이 말 역시 맞는 말은 아니다. 지금 살아있는 한국 남자는 세대 불문하고 여성 혐오, 안티 페미니즘에 적극 가담하고 있(었)으며 연령대가 낮을수록 가시화가 더 잘되는 것뿐이다. 뭐랄까. ‘일베남’이나 ‘디씨남’ 때문에 ‘개저씨’는 한물간 것처럼 보이는 그런 착시 현상 같은 것 말이다.
--- 「단순하고 당당한 여성 혐오자들」 중에서
정의당을 진단하는 여러 의견 중에 ‘정의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라는 말이 있다. 맞다. 다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쪼그라들었다. 정의당의 현재 위치는 굉장히 모순적이다. 남성 유권자는 정의당을 ‘페미니즘 정당’이라 부르는데, 여성 유권자는 정의당을 페미니즘 정당이라고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 「정의당은 페미니즘 때문에 망했다?」 중에서
대통령의 존재가 왜 국가 위협인지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검찰총장 출신이라는 점. 둘째, 자존심만 가득한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 셋째, 호탕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책임감은 없다는 점. 넷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감수성이 바닥이라는 점. 마지막 다섯째, 일관적이지 않은 말로 혼선을 일으킨다는 점 등이다.
---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 중에서
성별 임금 격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된 지 오래인 한국에서 강요하는 ‘결혼-임신-출산’ 과정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 급여는 남자보다 적게 받고, 집에 돌아와서는 남자보다 가사 노동을 훨씬 더 해야 하며, 출산 후에는 업무 경력을 이어가기 어렵고, 육아도 가사 노동처럼 혼자 다 수행할 것을 각오하는 과정이다. 이걸 평생 해내는 대신 육아휴직 때 돈 좀 더 주고 공공임대 주택 주고 노동 시간 줄여준다고 하면 “아이 낳고 살기 좋은 우리나라”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 「저출생, 국가가 연출하는 블랙코미디」 중에서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다음번에는 국민의힘이, 또 그다음 번에도 더불어민주당 아니면 국민의힘이 번갈아 권력과 의석수를 나눠 갖는 한국이 이대로 유지된다면 내 또래 세대의 결말은 두 가지다. 외국 아니면 천국. 한국을 버리고 떠날 수 있는 청년은 외국으로 떠날 것이고, 떠나지 못해 버티던 청년들은 천천히 스러져 천국으로 갈 것이다.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슬프게도 사실이다.
— 「우리는 절망에 익숙해서」 중에서
작가 소개
희석
주민등록상 이름은 ‘안희석’이지만, 태어나자마자 강제로 부여받은 부계의 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에 행정 서류가 아닌 곳에는 ‘희석’만 쓰고 있다. 1990년에 태어나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로 청소년기를 채웠다. 이후 신문사와 시청과 기업과 정당 등에서 글을 쓰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제는 이 책의 발행처인 독립출판사 ‘발코니’를 운영하고 있다.
『우주 여행자를 위한 한국살이 가이드북』, 『Good Afterbook』, 『몇 줄의 문장과 몇 푼의 돈』 등을 썼고, 매주 금요일 아침 8시 「희석된 일주일」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