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셉티머스에게, 여기는 백련산이야
100년 전 시인에게 보내는, 2025년 5월 백련산을 담은 산책 조각.
『셉티머스에게, 여기는 백련산이야』는 저자가 하루아침 동안 집의 뒷산인 백련산을 산책한 이야기와 사진, 그래픽화된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셉티머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등장하는 시인으로, 자연과 섬세하게 교감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그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자 백련산의 산책 순간을 담은 기록이다.
저자는 산 안으로 들어가 연두 잎이 춤추는 공간을 찾아 걷고, 해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매번 새롭게 반응하는 몸의 변화를 관찰해 글로 옮긴다. 백련산을 촬영한 사진들은 현재의 산을 그대로 보여주고, 흐릿해진 산 이미지들은 그 산 안에서 일어났을 감각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책 속으로
“그러나 그들이 손짓했다. 잎사귀들은 살아 있었고, 나무들도 살아 있었다.
잎사귀들은 벤치에 앉아 있는 그의 몸과 수백만 가닥의 섬유로 이어져 위아래로 그를 부채질했다.
가지가 쭉 뻗을 때면 그도 그렇게 했다.”
-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중 p3
오늘 아침은 혼자 뒷산을 산책하기로 결심했어.
2025년 5월 초, 8시,
산의 서쪽 초입에는 아직 하늘에 태양이 보이지 않아.
올라야 할 작은 언덕 뒤에 있을 태양을 상상하면
이 언덕의 두께를 가늠하게 돼.
큰 갈색 낙엽 땅, 얼마 전 벚꽃에 눈이 내릴 때까지
이 큰 언덕들은 오랫동안 회갈색이었어. p11
연한 연두색 나뭇잎들의 파도가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통과해 지나가.
한 걸음씩 물속으로 들어갈 때
세포가 하나씩 잠에서 깨어나.
먹먹했던 후두골의 실이 풀려가지. p13
곧은 기둥들 안으로 들어서면 잊어버렸던 게 떠올라.
곧은 기둥들과 풀숲에 나란히 수직으로 서 있으면
그들과 함께 떠올라.
오래 기억하지 못할 기억들과 함께. p31
잎 달린 가지들이 둥근 공기에 부스스 떠올라,
발밑은 흔들리며 빛나는 그림자가 파도를 일으켜.
부드러운 바람을 입안에 같이 품으면
손끝 발끝에 노란 피가 흘러.
몸의 어딘가가 넓어져 있어. p39
아침 빛은 좀 이상한 느낌이야.
어딘가와 누군가를 담고 있어.
빛 바로 뒤편에 고요히 담고 있어.
한동안 나도 같이 멈춰 있게 해. p77
저자 소개
김보라
북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산책과 요가를 하며 자연과 신체의 교류에 관심을 두고 시각 언어와 책의 물성을 탐구하고 있다.












셉티머스에게, 여기는 백련산이야
100년 전 시인에게 보내는, 2025년 5월 백련산을 담은 산책 조각.
『셉티머스에게, 여기는 백련산이야』는 저자가 하루아침 동안 집의 뒷산인 백련산을 산책한 이야기와 사진, 그래픽화된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셉티머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등장하는 시인으로, 자연과 섬세하게 교감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그에게 보내는 일종의 편지이자 백련산의 산책 순간을 담은 기록이다.
저자는 산 안으로 들어가 연두 잎이 춤추는 공간을 찾아 걷고, 해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매번 새롭게 반응하는 몸의 변화를 관찰해 글로 옮긴다. 백련산을 촬영한 사진들은 현재의 산을 그대로 보여주고, 흐릿해진 산 이미지들은 그 산 안에서 일어났을 감각을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책 속으로
“그러나 그들이 손짓했다. 잎사귀들은 살아 있었고, 나무들도 살아 있었다.
잎사귀들은 벤치에 앉아 있는 그의 몸과 수백만 가닥의 섬유로 이어져 위아래로 그를 부채질했다.
가지가 쭉 뻗을 때면 그도 그렇게 했다.”
-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중 p3
오늘 아침은 혼자 뒷산을 산책하기로 결심했어.
2025년 5월 초, 8시,
산의 서쪽 초입에는 아직 하늘에 태양이 보이지 않아.
올라야 할 작은 언덕 뒤에 있을 태양을 상상하면
이 언덕의 두께를 가늠하게 돼.
큰 갈색 낙엽 땅, 얼마 전 벚꽃에 눈이 내릴 때까지
이 큰 언덕들은 오랫동안 회갈색이었어. p11
연한 연두색 나뭇잎들의 파도가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통과해 지나가.
한 걸음씩 물속으로 들어갈 때
세포가 하나씩 잠에서 깨어나.
먹먹했던 후두골의 실이 풀려가지. p13
곧은 기둥들 안으로 들어서면 잊어버렸던 게 떠올라.
곧은 기둥들과 풀숲에 나란히 수직으로 서 있으면
그들과 함께 떠올라.
오래 기억하지 못할 기억들과 함께. p31
잎 달린 가지들이 둥근 공기에 부스스 떠올라,
발밑은 흔들리며 빛나는 그림자가 파도를 일으켜.
부드러운 바람을 입안에 같이 품으면
손끝 발끝에 노란 피가 흘러.
몸의 어딘가가 넓어져 있어. p39
아침 빛은 좀 이상한 느낌이야.
어딘가와 누군가를 담고 있어.
빛 바로 뒤편에 고요히 담고 있어.
한동안 나도 같이 멈춰 있게 해. p77
저자 소개
김보라
북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산책과 요가를 하며 자연과 신체의 교류에 관심을 두고 시각 언어와 책의 물성을 탐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