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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프랑스 문학에서 독자적인 궤적을 그려온 크리스티앙 보뱅은 ‘말’에 가까운 문장으로 세계를 응시해 온 작가다. 『세상의 빛』은 이러한 보뱅의 문학적 태도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책으로, 시인 ‘리디 다타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작가의 말을 경청하고 수집해 하나의 흐름으로 엮었다. 에세이도 인터뷰도 아닌 이 텍스트에서 보뱅은 문학과 사랑, 언어와 삶, 세계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설명 없이 단정한 문장으로 말한다. 『지극히 낮으신』을 비롯해 『작은 파티 드레스』 『빈 자리』 『그리움의 정원에서』 등으로 이미 확립된 보뱅의 산문시적 글쓰기 이후에 출간된 이 책은, 그가 작품 속에서 암묵적으로 보여주던 문학적 태도를 ‘말’의 형식으로 직접 드러낸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목차
뒤집힌 태양 - 13
이유 없는 기쁨 - 35
거룩한 문화 - 59
쓰여진 빛 - 83
심장의 고막 - 105
자동인형 작가 - 131
죽음의 낙원 - 151
우리는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삶에서 벗어난다. 그때 우리는 시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어떤 지속을 느끼지만, 곧바로 한층 더 불투명해진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 28
나는 이 삶을 가볍게 만들고 싶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통해서. 타오르며 침묵하는 마음은 모든 형이상학을, 모든 계시의 책들을 삼켜버릴 수 있다. 사랑은 시간의 모든 계절을 끌어안아 하나로 모은다. 단 한 순간에, 상대방의 모든 황금을 모아 한 아름의 빛으로 묶는다. - 46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를 읽는 일이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문장을 읽어내고, 읽음으로써 그를 해방하는 일이다. 각자가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낯선 언어로 쓰인 책인 것처럼, 양피지를 펼치듯 그의 마음을 펼쳐 큰 소리로 읽은 일이다. - 55
내가 사랑하는 문학은 현실을 뒤쫓는 밀렵꾼들에 의해 쓰인 것이다. 그들은 독자의 앞까지 경이로운 사냥감을 몰아넣는데, 그때 독자의 발치에서 자고새 또는 그보다 더 희귀한 새 한 마리가 돌연 날아오른다. 반면 다른 문학은,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을 작가 자신에게로 몰아가는 이들에 의해 쓰인 것이다. 그런 방식이 통하면, 작가는 자기 자신의 동상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두 문학을 구분할 수단이 주어지지 않았다.
문화적 질병이란 것이 존재하며, 이런 미분화 상태가 그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병은 너무도 널리 퍼져 있어 오히려 건강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62
이토록 추함이 찬미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음악마저 이제는 심장의 고동을 흉내 내는 단조로운 반복이 되어, 오히려 심장을 파괴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책들이라고 해봐야, 약간의 성급함이 덧칠된 보잘것없는 재능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이들에게 한층 더 세심히 귀 기울여야 한다. - 101
진정한 위대함을 알아본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의 어둠을 건드리지 않는 가짜 영광들(싸구려 가짜 신들)을 만들어 내길 더 좋아한다. 앙드레 도텔의 책은 독자를 길 위로 이끌어 어떤 야생의 빛을 찾아 나서게 하지만, 『마담 보바리』는 독자를 문화적 낮잠의 깊은 안락의자 속으로 밀어 넣는다. 플로베르는 도텔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널리 알려져 있고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란, 우리를 더 큰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142
눈동자 속에 비친 하늘의 반영이 ‘시선’을 만들어 낸다. 떨리는 눈망울 위로 던져지는 작은 조약돌처럼. 하늘을 지워버리면, 시선 또한 사라진다. 태어날 때 눈 속에 깃들어 있던 그 빛을 우리는 조금씩 그리고 체계적으로 빼앗겨 왔다. - 163
크리스티앙 보뱅
크리스티앙 보뱅은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다. 동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맑은 문체로 프랑스의 문단, 언론,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사랑받는 작가다.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르 크뢰조에서 태어나 2022년 11월 24일, 7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해온 고독한 작가다.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마친 후 1977년 첫 작품인 『주홍글씨(Lettre pourpre)』를 출간했고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의 삶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지극히 낮으신(Le Très-Bas)』이라는 작품으로 세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유서 깊은 프랑스 문학상, 되마고상 및 가톨릭문학대상, 조제프 델타이상을 수상한 바 있다.
리디 다타스는 1949년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시인이다.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연극, 언어의 울림 속에서 성장했다. 스무 살 무렵, 시인 장 그르장의 눈에 띄어 첫 시집 『Noone』을 출간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의 시 세계는 영성, 여성성, 기억과 욕망을 주제로 한다. 『정신의 밤(La Nuit spirituelle)』에서는 장 주네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과 신비, 반항과 구원의 긴장을 탐구했으며, 『유혹하는 여자의 수첩(Carnet d’une allumeuse)』은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대한 여성적 응답으로 읽히기도 한다.
오늘날 리디 다타스는 프랑스 현대 문학에서 독창적인 목소리로 평가받으며,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내면을 응시하게 하고, 인간 존재의 빛과 어둠을 성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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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뒤집힌 태양 - 13
이유 없는 기쁨 - 35
거룩한 문화 - 59
쓰여진 빛 - 83
심장의 고막 - 105
자동인형 작가 - 131
죽음의 낙원 - 151
우리는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을 통해서만 삶에서 벗어난다. 그때 우리는 시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어떤 지속을 느끼지만, 곧바로 한층 더 불투명해진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 28
나는 이 삶을 가볍게 만들고 싶다. 거짓이 아니라 진실을 통해서. 타오르며 침묵하는 마음은 모든 형이상학을, 모든 계시의 책들을 삼켜버릴 수 있다. 사랑은 시간의 모든 계절을 끌어안아 하나로 모은다. 단 한 순간에, 상대방의 모든 황금을 모아 한 아름의 빛으로 묶는다. - 46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를 읽는 일이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문장을 읽어내고, 읽음으로써 그를 해방하는 일이다. 각자가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낯선 언어로 쓰인 책인 것처럼, 양피지를 펼치듯 그의 마음을 펼쳐 큰 소리로 읽은 일이다. - 55
내가 사랑하는 문학은 현실을 뒤쫓는 밀렵꾼들에 의해 쓰인 것이다. 그들은 독자의 앞까지 경이로운 사냥감을 몰아넣는데, 그때 독자의 발치에서 자고새 또는 그보다 더 희귀한 새 한 마리가 돌연 날아오른다. 반면 다른 문학은, 다소 폭력적인 방식으로 독자들을 작가 자신에게로 몰아가는 이들에 의해 쓰인 것이다. 그런 방식이 통하면, 작가는 자기 자신의 동상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두 문학을 구분할 수단이 주어지지 않았다.
문화적 질병이란 것이 존재하며, 이런 미분화 상태가 그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 병은 너무도 널리 퍼져 있어 오히려 건강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62
이토록 추함이 찬미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음악마저 이제는 심장의 고동을 흉내 내는 단조로운 반복이 되어, 오히려 심장을 파괴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책들이라고 해봐야, 약간의 성급함이 덧칠된 보잘것없는 재능의 산물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이들에게 한층 더 세심히 귀 기울여야 한다. - 101
진정한 위대함을 알아본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의 비천함을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의 어둠을 건드리지 않는 가짜 영광들(싸구려 가짜 신들)을 만들어 내길 더 좋아한다. 앙드레 도텔의 책은 독자를 길 위로 이끌어 어떤 야생의 빛을 찾아 나서게 하지만, 『마담 보바리』는 독자를 문화적 낮잠의 깊은 안락의자 속으로 밀어 넣는다. 플로베르는 도텔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널리 알려져 있고 높이 평가받는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란, 우리를 더 큰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142
눈동자 속에 비친 하늘의 반영이 ‘시선’을 만들어 낸다. 떨리는 눈망울 위로 던져지는 작은 조약돌처럼. 하늘을 지워버리면, 시선 또한 사라진다. 태어날 때 눈 속에 깃들어 있던 그 빛을 우리는 조금씩 그리고 체계적으로 빼앗겨 왔다. - 163
크리스티앙 보뱅
크리스티앙 보뱅은 프랑스의 대표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다. 동시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하고 맑은 문체로 프랑스의 문단, 언론, 독자 모두에게 찬사를 받으며 사랑받는 작가다. 1951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르 크뢰조에서 태어나 2022년 11월 24일, 71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평생 그곳에서 글쓰기를 하며 문단이나 출판계 등 사교계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해온 고독한 작가다.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마친 후 1977년 첫 작품인 『주홍글씨(Lettre pourpre)』를 출간했고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의 삶을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낸 『지극히 낮으신(Le Très-Bas)』이라는 작품으로 세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유서 깊은 프랑스 문학상, 되마고상 및 가톨릭문학대상, 조제프 델타이상을 수상한 바 있다.
리디 다타스는 1949년 파리에서 태어난 프랑스 시인이다.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연극, 언어의 울림 속에서 성장했다. 스무 살 무렵, 시인 장 그르장의 눈에 띄어 첫 시집 『Noone』을 출간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그녀의 시 세계는 영성, 여성성, 기억과 욕망을 주제로 한다. 『정신의 밤(La Nuit spirituelle)』에서는 장 주네와의 교류를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과 신비, 반항과 구원의 긴장을 탐구했으며, 『유혹하는 여자의 수첩(Carnet d’une allumeuse)』은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대한 여성적 응답으로 읽히기도 한다.
오늘날 리디 다타스는 프랑스 현대 문학에서 독창적인 목소리로 평가받으며,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내면을 응시하게 하고, 인간 존재의 빛과 어둠을 성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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