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나는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AROUND》에서 5년간 연재해온 건축가, 푸하하하 프렌즈 한승재의 에세이가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한승재의 글들은 건축가의 문장은 딱딱할 거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린다. 그의 문장은 느슨하고, 그래서 편안하다. 문장들이 나란히 줄지어 견고한 한 편의 글이 되고 단단한 한 권의 책이 되는 과정은 어쩐지 건축하는 과정을 닮았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하게 되는 문장을 만나게 되는데, 그 순간이야 말로 온전히 ‘한승재스럽다’.
연재하던 글들이 책으로 엮이며 가장 크게 환호한 것은 어쩌면 ‘삽화’였을지도 모른다. 글을 뒷받침하는 요소로만 기능하던 그림들은 글과 떨어져 맨 앞에 새로이 배치된다. 여러 개의 그림이 중첩됨으로써 새로운 분위기와 이미지를 자아내며 새 숨을 얻는 과정 역시 건축과 닮아 있다. 책장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눈부신 색상의 향연. 열여섯 페이지에 쉼 없이 늘어선 이미지들 사이를 더듬거리며 독자들이 만들어 갈 상상은 어떤 모양일까.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데 긴말은 필요하지 않다. 오직 이 문장이 이 책을, 이 책의 디자인을, 그리고 저자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 무언가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를 읽으며 조금 더 열렬히 더듬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참,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실물에 있으니, 꼭 두 손으로 더듬거리며 하나 하나 펼쳐봐 주기를!
목차
경주의 커다란 우유갑
담 사이에 낀 고양이를 보고
그래비티
창 너머의 사람들
마음 과식
내 몸에 캔디
보시니 참 좋았다
그곳에서 이름을 짓는 법
대배우 다이조부 씨와의 인터뷰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기술
독립문 설화
녹색 광선
춤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트루먼 쇼
아주 작은 상자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칠이 벗겨진 자리에
원대한 포부
비틀거릴 뿐, 우리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도달하지 못한 채
한결같은 버릇
불발탄
군더더기 없는 삶
뻐드렁니
긍정의 자리
책 속에서
낭만의 시절에 지어진 시대착오적인 건물들. 그들은 무표정한 건물들 사이에서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비틀거릴 뿐, 우리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중에서
“이 제품이 원래 그러세요. 고객님.”
뭐지? 이 불발탄 같은 문장은? 제품에 대한 불만을 말투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 놓기 위해 소매점에선 이런 엉터리 존댓말을 쓰는 게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불발탄> 중에서
“넌 왜 자꾸 뭘 하는 거야?”
무슨 질문이 이렇담….
“세상에 뭘 안 하는 사람도 있나?”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반문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훌륭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중에서
실패가 곧 교훈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노력이 보상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노력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노력이 될 수도 있다. 곧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부족한 것들은 가치로운 것으로 변환되기를 거부한 채 부족함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도달하지 못한 채> 중에서
찬물에 빠진 소시지처럼 권태로운 삶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주변의 사물들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올라올 때 수면 위의 태양이 점점 또렷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고,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시절이 끝나갈 무렵의 나는 지루함과 권태로움을 구별할줄 아는 단계까지 성장해 있었다.
-<녹색 광선> 중에서
“혼자 사는 거야? 결혼은 안했어? 왜? 못한 거야? 안 한 거야? 아버지는 뭐 하시고?”
긍정적인 사람이 무섭다. 싸우기보다는 참고,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 절충하는 방식이 익숙한 사람은 언젠가부터 쓸데없이 버티는 사람, 투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긍정의 자리> 중에서
작가 소개
한승재
건축가. 푸하하하 프렌즈에서 동료들과 함께 건축하고 있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나는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AROUND》에서 5년간 연재해온 건축가, 푸하하하 프렌즈 한승재의 에세이가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한승재의 글들은 건축가의 문장은 딱딱할 거라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린다. 그의 문장은 느슨하고, 그래서 편안하다. 문장들이 나란히 줄지어 견고한 한 편의 글이 되고 단단한 한 권의 책이 되는 과정은 어쩐지 건축하는 과정을 닮았다.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하게 되는 문장을 만나게 되는데, 그 순간이야 말로 온전히 ‘한승재스럽다’.
연재하던 글들이 책으로 엮이며 가장 크게 환호한 것은 어쩌면 ‘삽화’였을지도 모른다. 글을 뒷받침하는 요소로만 기능하던 그림들은 글과 떨어져 맨 앞에 새로이 배치된다. 여러 개의 그림이 중첩됨으로써 새로운 분위기와 이미지를 자아내며 새 숨을 얻는 과정 역시 건축과 닮아 있다. 책장을 열자마자 펼쳐지는 눈부신 색상의 향연. 열여섯 페이지에 쉼 없이 늘어선 이미지들 사이를 더듬거리며 독자들이 만들어 갈 상상은 어떤 모양일까.
책 속에 이런 문장이 있다. “나는 천재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을 소개하는 데 긴말은 필요하지 않다. 오직 이 문장이 이 책을, 이 책의 디자인을, 그리고 저자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 무언가 만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를 읽으며 조금 더 열렬히 더듬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참, 이 책의 진정한 재미는 실물에 있으니, 꼭 두 손으로 더듬거리며 하나 하나 펼쳐봐 주기를!
목차
경주의 커다란 우유갑
담 사이에 낀 고양이를 보고
그래비티
창 너머의 사람들
마음 과식
내 몸에 캔디
보시니 참 좋았다
그곳에서 이름을 짓는 법
대배우 다이조부 씨와의 인터뷰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기술
독립문 설화
녹색 광선
춤추는 법을 모르는 사람처럼
트루먼 쇼
아주 작은 상자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칠이 벗겨진 자리에
원대한 포부
비틀거릴 뿐, 우리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도달하지 못한 채
한결같은 버릇
불발탄
군더더기 없는 삶
뻐드렁니
긍정의 자리
책 속에서
낭만의 시절에 지어진 시대착오적인 건물들. 그들은 무표정한 건물들 사이에서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비틀거릴 뿐, 우리는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중에서
“이 제품이 원래 그러세요. 고객님.”
뭐지? 이 불발탄 같은 문장은? 제품에 대한 불만을 말투에 대한 불만으로 옮겨 놓기 위해 소매점에선 이런 엉터리 존댓말을 쓰는 게 아닌가 잠시 생각했다.
-<불발탄> 중에서
“넌 왜 자꾸 뭘 하는 거야?”
무슨 질문이 이렇담….
“세상에 뭘 안 하는 사람도 있나?”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반문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훌륭한 대답이었다.
-<우리는 더듬거리며 무엇을 만들어 가는가> 중에서
실패가 곧 교훈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노력이 보상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노력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노력이 될 수도 있다. 곧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부족한 것들은 가치로운 것으로 변환되기를 거부한 채 부족함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도달하지 못한 채> 중에서
찬물에 빠진 소시지처럼 권태로운 삶은 그 후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수개월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주변의 사물들이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깊은 물속에서 올라올 때 수면 위의 태양이 점점 또렷해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고,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최악의 시절이 끝나갈 무렵의 나는 지루함과 권태로움을 구별할줄 아는 단계까지 성장해 있었다.
-<녹색 광선> 중에서
“혼자 사는 거야? 결혼은 안했어? 왜? 못한 거야? 안 한 거야? 아버지는 뭐 하시고?”
긍정적인 사람이 무섭다. 싸우기보다는 참고,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 절충하는 방식이 익숙한 사람은 언젠가부터 쓸데없이 버티는 사람, 투쟁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가 놓여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있지 않다는 이유였다.
-<긍정의 자리> 중에서
작가 소개
한승재
건축가. 푸하하하 프렌즈에서 동료들과 함께 건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