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것을 꿈의 수정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의 적막 속에서, 따스함의 발단을, 노래로, 이야기로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듀오 ‘혹시몰라’(이강국·전영국)의 첫 에세이. 10여 년간 발표한 곡들 중 12곡을 엄선해 곡명과 같은 제목의 글 12편을 쓰고 묶었으며, 책의 발행일과 같은 11월 16일에 공개되는 신곡과 동명의 글 한 편을 히든 트랙으로 숨겨 두었다. 인트로와 아웃트로, 그리고 SIDE A와 SIDE B를 비롯한 본문의 형식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하나의 앨범처럼 읽히기를 바라는 ‘에세이 앨범’이다. 한 편의 글이 끝날 때마다 배치되어 있는 노랫말과 QR 코드로 연결되는 해당 곡을 함께 감상하면, 그 글에 얽혀 있는 ‘혹시몰라’의 삶과 음악을 함께 읽고 들을 수 있다.
신탄진. 익숙한 표지판이 눈앞에 들어온다. 어릴 때 아버지 차를 타고 친척 집에 다녀올 때면 늘 “집에 다 왔다”라고 말씀하시던 곳. 대전의 북쪽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상행선을 탈 때면 항상 마주쳐야 하는 곳. 서울을 다녀오는 날이면 처음과 마지막에 반드시 한 번씩 지나치는 이곳에 도달하고 나서야 하루 종일 온몸에 붙어 있던 긴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내가 드디어 조금 편안해진다.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사르르 풀리고, 머릿속을 휘젓고 있던 잡념들 또한 일렬로 정리되었다. (23쪽)
13편의 글들의 성격은 모두 제각각이어서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으며,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이 책을 하나의 앨범으로서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동백꽃」이라는 글에서는 저자의 청소년 시절의 장면들과 함께 ‘혹시몰라’라는 음악의 시원을 엿볼 수 있으며,「신탄진」과 「보문산 메아리」 같은 글들에서는 저자들이 살고 있는 대전의 지역성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상행」이나 「마라탕」, 혹은 「꿈속에 잔뜩」처럼 따뜻한 시선이 담긴 일화와 함께, 곡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있으며, 「공항에서」와 「영종도」, 그리고 「온기가 남았네」처럼 사실인지 픽션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짧은 소설 같은 글들도 있다. 독자-청자들은 순서와 무관하게, 자신의 취향과 우연에 맡겨 이 앨범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출판공동체 편않이 새로 론칭한 에세이 앨범 시리즈 〈흐름들〉 중 한 권으로, 여성 뮤지션 애리(AIRY)의 『수많은 내가 다른 곳에 살고』와 함께 나왔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지다율 편집자는 “평소 좋아하고 응원하던 뮤지션의 음악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면서 “어쩌면 팬심으로 시작한 기획인데, 만들면서까지 이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다. 많은 분들이 이 책들을 들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차례
INTRO | 혹시 정말 몰랐던 건지
SIDE A: 우리는 이것을 꿈의 수정이라고 생각했다
신탄진
공항에서
내가 너에게
동백꽃
보문산 메아리
온기가 남았네
SIDE B: 이 글자들에 계이름을 붙인다면 제일 처음으로
상행
영종도
마라탕
주저없이
꿈속에 잔뜩
반짝이는 잔디에 누워
OUTRO | 있어 주는 것
펺집자 코멘터리 | (터)널을 만나 난 숨을 참았네
책 속으로
우리의 날들은 지고 있었다. 뉘엿뉘엿 서쪽을 향해 넘어가는 해처럼, 나는 우리의 짧았던 이 생활이 끝나 간다고 생각했다. 그 배경에는 내가 어릴 적부터 곧잘 가졌던 고갈의 익숙함이 깔려 있다. 매번 에너지가 다하지 않게 핫식스와 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출발과 멈춤을 반복하던 여정이 어느새 신탄진 즈음에 와 있었다. ―17쪽
우리의 대화는 별게 없었다. 애써 에둘러 표현하는 적이 없었던 처음 만난 때의 우리와 다르게, 둘의 대화는 하나의 구심점을 놓고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먼 곳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럼에도 더 멀리 떨어져 나가진 않을 정도의 원심력만 유지한 채, 적당한 애정과 아직 다 벗어젖히지 못한 적당한 어색함으로 서로를 대했다. 사실 이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정도의 거리감은 당연히 존재하리라 여겼고, 그것과 별개로 진심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도 불현듯 나타나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술을 따라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조금씩 꺾어 마시는 너의 모습을 보곤 나도 더 이상 권하지는 않기로 했다. ―29쪽
돌돌 말려 있는 페스츄리의 찬란한 증발이었다. 영국이가 말하던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쭈욱 떼서 먹다 보면 어느샌가 사라져 있는 빵’이 딱 맞는 말이었다. 우유를 곁들여 먹으면 좋다는 것도 정확했다. 아직 4분의 1가량밖에 먹지 못했을 때부터 배가 차기 시작하지만, 결국 한 개를 완전히 소화해 버린다. 나의 식욕이 이 정도였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겉에서 보기엔 속의 촉촉함과 순간순간 배어 나오는 달콤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먹기 시작해야 비로소 진가를 알게 되는 빵. ‘보문산 메아리’를 처음 먹었던 나의 소감이다. ―67쪽
A는 J를 잡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날 밤 둘은 둘의 방식대로 눈물을 쏟아 냈다. ‘애정의 정도에는 다름이 없으나, 서로 생각하는 사랑의 모양이 다르다’는 결론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을 만들고 거리를 넓히는 것은 현실이라는 수분이었다. 수분이 끼어 버린 둘의 사랑의 모양은, 그 수분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시작점이었으며,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과정이었다. 동갑내기였던 둘은 이 연애를 마지막으로 서른을 맞이했다. 서로는 이십 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남았다. ―86쪽
저자 소개
혹시몰라
싱어송라이터 듀오. 2012년에 결성하여 12년째 활동하고 있다. 2014년 공식 데뷔하였으며, 현재까지 1개의 정규 앨범과 1개의 EP, 9개의 싱글을 발매하였다. 대전에서 서울을 왕복하는 내내 자신들의 노래를 연속 재생해도 모자람이 없을 때까지 곡을 세상에 내놓으며 살아 있고자 한다.
이강국
곡을 쓰고 간단한 연주를 하며 노래하는 음악가. 무대 공포증이 있지만 공연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락스타를 꿈꿨으나 커 보니 통기타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일인자보다 ‘꽤 괜찮은 이인자’가 더 낫다고 여기며, 지독한 축구팬인지라 현재는 『좌익 축구 우익 축구』를 천천히 읽고 있다.
전영국
‘혹시몰라’라는 팀으로 활동 중이며, 살면서 어쩌다 만든 노래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오곤 한다. 〈영종도〉, 〈마라탕〉, 〈반짝이는 잔디에 누워〉 등 ‘혹시몰라’의 조금은 독특하고 재미난 노래들을 만들었다. 이따금씩 동네 서점에서 시집을 사곤 하지만, 항상 읽다 만 시집만 읽을 뿐이다.
우리는 이것을 꿈의 수정이라고 생각했다
진심의 적막 속에서, 따스함의 발단을, 노래로, 이야기로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듀오 ‘혹시몰라’(이강국·전영국)의 첫 에세이. 10여 년간 발표한 곡들 중 12곡을 엄선해 곡명과 같은 제목의 글 12편을 쓰고 묶었으며, 책의 발행일과 같은 11월 16일에 공개되는 신곡과 동명의 글 한 편을 히든 트랙으로 숨겨 두었다. 인트로와 아웃트로, 그리고 SIDE A와 SIDE B를 비롯한 본문의 형식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하나의 앨범처럼 읽히기를 바라는 ‘에세이 앨범’이다. 한 편의 글이 끝날 때마다 배치되어 있는 노랫말과 QR 코드로 연결되는 해당 곡을 함께 감상하면, 그 글에 얽혀 있는 ‘혹시몰라’의 삶과 음악을 함께 읽고 들을 수 있다.
신탄진. 익숙한 표지판이 눈앞에 들어온다. 어릴 때 아버지 차를 타고 친척 집에 다녀올 때면 늘 “집에 다 왔다”라고 말씀하시던 곳. 대전의 북쪽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어 상행선을 탈 때면 항상 마주쳐야 하는 곳. 서울을 다녀오는 날이면 처음과 마지막에 반드시 한 번씩 지나치는 이곳에 도달하고 나서야 하루 종일 온몸에 붙어 있던 긴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독 긴장을 많이 하는 내가 드디어 조금 편안해진다. 어깨에 잔뜩 들어가 있던 힘이 사르르 풀리고, 머릿속을 휘젓고 있던 잡념들 또한 일렬로 정리되었다. (23쪽)
13편의 글들의 성격은 모두 제각각이어서 이 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으며,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이 책을 하나의 앨범으로서 ‘들을’ 수 있게 만든다. 「동백꽃」이라는 글에서는 저자의 청소년 시절의 장면들과 함께 ‘혹시몰라’라는 음악의 시원을 엿볼 수 있으며,「신탄진」과 「보문산 메아리」 같은 글들에서는 저자들이 살고 있는 대전의 지역성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상행」이나 「마라탕」, 혹은 「꿈속에 잔뜩」처럼 따뜻한 시선이 담긴 일화와 함께, 곡의 비하인드스토리를 알 수 있는 이야기도 있으며, 「공항에서」와 「영종도」, 그리고 「온기가 남았네」처럼 사실인지 픽션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 짧은 소설 같은 글들도 있다. 독자-청자들은 순서와 무관하게, 자신의 취향과 우연에 맡겨 이 앨범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출판공동체 편않이 새로 론칭한 에세이 앨범 시리즈 〈흐름들〉 중 한 권으로, 여성 뮤지션 애리(AIRY)의 『수많은 내가 다른 곳에 살고』와 함께 나왔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지다율 편집자는 “평소 좋아하고 응원하던 뮤지션의 음악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면서 “어쩌면 팬심으로 시작한 기획인데, 만들면서까지 이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다. 많은 분들이 이 책들을 들어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차례
INTRO | 혹시 정말 몰랐던 건지
SIDE A: 우리는 이것을 꿈의 수정이라고 생각했다
신탄진
공항에서
내가 너에게
동백꽃
보문산 메아리
온기가 남았네
SIDE B: 이 글자들에 계이름을 붙인다면 제일 처음으로
상행
영종도
마라탕
주저없이
꿈속에 잔뜩
반짝이는 잔디에 누워
OUTRO | 있어 주는 것
펺집자 코멘터리 | (터)널을 만나 난 숨을 참았네
책 속으로
우리의 날들은 지고 있었다. 뉘엿뉘엿 서쪽을 향해 넘어가는 해처럼, 나는 우리의 짧았던 이 생활이 끝나 간다고 생각했다. 그 배경에는 내가 어릴 적부터 곧잘 가졌던 고갈의 익숙함이 깔려 있다. 매번 에너지가 다하지 않게 핫식스와 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출발과 멈춤을 반복하던 여정이 어느새 신탄진 즈음에 와 있었다. ―17쪽
우리의 대화는 별게 없었다. 애써 에둘러 표현하는 적이 없었던 처음 만난 때의 우리와 다르게, 둘의 대화는 하나의 구심점을 놓고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먼 곳에서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럼에도 더 멀리 떨어져 나가진 않을 정도의 원심력만 유지한 채, 적당한 애정과 아직 다 벗어젖히지 못한 적당한 어색함으로 서로를 대했다. 사실 이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 정도의 거리감은 당연히 존재하리라 여겼고, 그것과 별개로 진심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도 불현듯 나타나 전해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술을 따라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조금씩 꺾어 마시는 너의 모습을 보곤 나도 더 이상 권하지는 않기로 했다. ―29쪽
돌돌 말려 있는 페스츄리의 찬란한 증발이었다. 영국이가 말하던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쭈욱 떼서 먹다 보면 어느샌가 사라져 있는 빵’이 딱 맞는 말이었다. 우유를 곁들여 먹으면 좋다는 것도 정확했다. 아직 4분의 1가량밖에 먹지 못했을 때부터 배가 차기 시작하지만, 결국 한 개를 완전히 소화해 버린다. 나의 식욕이 이 정도였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건 분명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겉에서 보기엔 속의 촉촉함과 순간순간 배어 나오는 달콤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먹기 시작해야 비로소 진가를 알게 되는 빵. ‘보문산 메아리’를 처음 먹었던 나의 소감이다. ―67쪽
A는 J를 잡지 못한 채 무덤덤하게 이별을 받아들였다. 그날 밤 둘은 둘의 방식대로 눈물을 쏟아 냈다. ‘애정의 정도에는 다름이 없으나, 서로 생각하는 사랑의 모양이 다르다’는 결론이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다름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틈을 만들고 거리를 넓히는 것은 현실이라는 수분이었다. 수분이 끼어 버린 둘의 사랑의 모양은, 그 수분이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시작점이었으며,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과정이었다. 동갑내기였던 둘은 이 연애를 마지막으로 서른을 맞이했다. 서로는 이십 대의 마지막 사람으로 남았다. ―86쪽
저자 소개
혹시몰라
싱어송라이터 듀오. 2012년에 결성하여 12년째 활동하고 있다. 2014년 공식 데뷔하였으며, 현재까지 1개의 정규 앨범과 1개의 EP, 9개의 싱글을 발매하였다. 대전에서 서울을 왕복하는 내내 자신들의 노래를 연속 재생해도 모자람이 없을 때까지 곡을 세상에 내놓으며 살아 있고자 한다.
이강국
곡을 쓰고 간단한 연주를 하며 노래하는 음악가. 무대 공포증이 있지만 공연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락스타를 꿈꿨으나 커 보니 통기타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일인자보다 ‘꽤 괜찮은 이인자’가 더 낫다고 여기며, 지독한 축구팬인지라 현재는 『좌익 축구 우익 축구』를 천천히 읽고 있다.
전영국
‘혹시몰라’라는 팀으로 활동 중이며, 살면서 어쩌다 만든 노래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오곤 한다. 〈영종도〉, 〈마라탕〉, 〈반짝이는 잔디에 누워〉 등 ‘혹시몰라’의 조금은 독특하고 재미난 노래들을 만들었다. 이따금씩 동네 서점에서 시집을 사곤 하지만, 항상 읽다 만 시집만 읽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