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먼스 퍼포먼스
뉴욕대학교 퍼포먼스 연구학과 교수 다이애나 테일러의 퍼포먼스 이론서이다. 이 책은 퍼포먼스를 단지 하나의 예술 형식이나 장르로 여기지 않고, 인간 문명을 형성해 온 운동성이자 특정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는 총체적 행위로 다룬다. 저자는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퍼포먼스 작업을 중심으로, 전공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 또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은 “퍼포먼스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퍼포먼스는 무엇을 하는가?”이다.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그렇다면 나를 구성하고 나의 주변에서 작용하는 퍼포먼스는 무엇인지를 묻게 될 것이다.
목차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11
2장 퍼포먼스의 역사 85
3장 보는 행위자들 127
4장 퍼포먼스의 새로운 사용법 153
5장 퍼포머티브와 퍼포머티비티 201
6장 퍼포먼스를 통해 알아가기: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 227
7장 예술행동가: 무엇을 해야 할까? 249
8장 퍼포먼스의 미래(들) 301
9장 퍼포먼스 연구 329
책 속으로
길레르모 고메즈-페냐는 퍼포먼스라는 담론과 형식 안에 줄곧 머물렀다. “나에게 퍼포먼스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날씨와 국경선처럼 추상적인 ‘구역’을 의미한다. 모순, 애매모호함, 역설이 용인되며 심지어 권장되는 장소이다. 우리의 ‘퍼포먼스 나라’는 노마드와 이주자, 잡종과 추방자들에게 온갖 국경을 개방한다.” 그는 퍼포먼스를 단순히 연기나 행위로 여기지 않는다. 실존의 조건이다. 존재론. 그에 따르면 퍼포먼스 예술가와 광인(狂人)의 차이점은 하나뿐이다. 퍼포먼스 예술가에게는 관객이 있고 광인에게는 관객이 없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20쪽
하지만 우리는 더 흥미롭고도 강력한 방식으로 이 매체가 작동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 장면에서 발생한 특정 행위는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퍼포먼스를 반복적으로 재연되고 재작동하는, 현재 진행형의 몸짓과 행동의 레퍼토리라고 여길 수 있다. 그 몸짓과 행동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말이다. 수행되고 체현된 실천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행위 그 자체가 반복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움직임과 리듬이 바뀌어도 우리는 춤을 춤으로 인식한다. 퍼포먼스는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것이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31쪽
퍼포먼스는 하나의 실천이자 인식론이다. 창조적인 행위이자 방법론이다. 기억과 정체성을 전달하는 방식이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81쪽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의례에는 입회자가 필요하다. 정치에는 지지자가 필요하다. 재판에는 증인이 필요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부르주아 연극이 관객에게 각자의 비평적 능력을 (모자, 코트와 함께) 물품 보관소에 두고 오도록 요구한다고 보았다. 군사 독재는 잔혹한 행위와 공포를 통해 우리의 귀를 막고 눈을 멀게 하여 멍청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은 유약한 개인을 생산하는 것에 독재의 목표를 둔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퍼셉티사이드라 부른다. 보지 않는 것이 낫다. 침묵하는 것이 낫다. 아우구스토 보알과 같은 이론가들이 주장하였듯이, 서구의 연극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관람하게끔 단련시켰다.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는 베드로 주인의 인형극에서 돈키호테가 나무로 만들어진 악당을 공격하는, 삶과 예술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영국의 시인 사무엘 타일러 콜리지는 예술이 ‘불신을 유예하려는 의지’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연극에서 관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흉내임을 일시적으로 믿을 때에 비로소 즐거움을 얻게 된다. - 3장 보는 행위자들, 135쪽
우리는 성공에 대한 각종 본보기와 가르침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마치 퍼포먼스 입문서나 다름없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승리를 거두고, 유혹하고, 명령하는… 이상화된 우리의 몸을 위하여 세상 모든 것이 상징적으로 확장된 것만 같다. 몸(물론 이제는 너무 지루한 것이 된 여성과 남성의 벗은 몸)은 우리에게 온갖 것을 다 팔기 위해 활용된다. 동시에 이 몸은 우리의 몸과는 꽤 거리가 있는 몸과 환상을 사도록 권유한다. 아우디 광고가 보여주듯 기계의 몸 또한 흥분을 주기 위해 디자인된, 성애화된 새로운 인간의 몸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움과 인간 능력에 대한 이상은 사이보그를 만들어 내었다. 생체 공학은 오늘날 엄청난 유행을 타고 있다. - 4장 퍼포먼스의 새로운 사용법, 180쪽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퍼포머티비티는 “고유한 ‘행위’보다는 반복과 인용의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실천으로 담론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버틀러에게 성 정체성은 옷을 바꿔 입듯 다른 것을 시도해보는 그런 연극적 상연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다. 오스틴의 퍼포머티브, 즉 “주체가 이름을 통해 존재하게끔 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보다는 규범화된 일련의 행동을 통해 남녀로 구분된 주체를 생산하는 통제 시스템 전반과 이에 대한 응답의 가능성 모두를 의미한다. “퍼포머티비티는 어떤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과정, 행동하기 위한 조건과 가능성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 조건들 없이는 퍼포머티비티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딸이다!” 라고 외칠 때, 그 아기는 타인이 ‘그녀’를 어떻게 볼지,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질지, 어떠한 조건이나 구분으로 인해 ‘배제’될지 혹은 ‘비천한 것’으로 ‘부정’될지 등을 구성하는 담론적 관행에 놓인 상태로 태어난다. 이러한 시스템은 심지어 아기가 태어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녀’를 습격하며 ‘그녀’에게 압박을 가한다. - 5장 퍼포머티브와 퍼포머티비티, 214쪽
시나리오는 시나리오가 모델화하려는 ‘타자’보다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우리’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시나리오는 사회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시나리오는 유령, 이미지, (우리의 현재에 출몰하고 또 오래된 드라마를 되살려 재활성화하는) 고정관념 같은 이미 여기 있었던 무언가를 가시적이게끔 만든다. 시나리오는 ‘우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참여자, 관객, 증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시나리오라는 그림 안의 주요한 요소로 고려해야만 한다. 즉, 전달 행위의 일부로서 우리는 ‘거기에 존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특정 종류의 멀어지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구경꾼을 프레임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를 윤리, 정치와 얽히도록 한다. 나쁜 시나리오는 퍼셉티사이드이다. 즉 우리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든다. 좋은 시나리오는 우리의 인식을 고취하고 좋은 방향으로 플롯을 바꾸는 행동을 하게끔 독려한다. - 6장 퍼포먼스를 통해 알아가기: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 242쪽
퍼포먼스는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머무는 것일까? 이 의문은 학계와 예술계를 비롯한 많은 영역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2003년 유네스코의 가입국들은 문화적 관습의 중요성과 취약함을 인식하고 안전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형 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체결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미래 세대가 ‘세계’ 문화유산의 논리를 이해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당시 이 과정에 참여하였고 지침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명을 ‘구하는’ 것의 복잡성과 모순을 감지하였다. 즉, 어떠한 행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 채, 그 행위가 실제 인지되고 존재한 순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순간의 다른 관객을 위해 수행된다는 것의 모순 말이다. 이것이 대체 무엇을 구하는 과정일지 나는 의구심을 품었다. 형태? 내용? 의미?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유산을 구하고 있는 것일까? - 8장 퍼포먼스의 미래(들), 311쪽
퍼포먼스 연구는 연극학, 언어학, 커뮤니케이션학, 인류학, 사회학, 시각 예술 연구로부터 발전했다. 이 학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퍼포먼스 연구는 각각이 지닌 한계들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나는 퍼포먼스 연구가 정의 가능한 영역이 되기를 거부하고 또 학제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 있어서 탈학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퍼포먼스 연구는 (영원한) ‘신생’ 영역이다. 퍼포먼스의 규범이 규범을 부수는 것이라면, 퍼포먼스 연구의 규범은 학제적 경계를 부수는 것이다. - 9장 퍼포먼스 연구, 341쪽
작가 소개
다이애나 테일러
뉴욕대학교 퍼포먼스 연구학과 및 스페인어과의 교수이자 아메리카 지역의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헤미스퍼릭 인스티튜트의 창립자이다. 『사라지는 행위들』(Disappearing Acts, 1997), 『아카이브와 레퍼토리: 아메리카 지역에서의 문화적 기억의 수행』 (The Archive and the Repertoire: Performing Cultural Memory in the Americas, 2003), 『지금!』(¡Presente!, 2020) 등의 책을 썼다.
역자 소개
용선미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 및 퍼포먼스 독립 기획자이다. 뉴욕대학교 티시예술대학 퍼포먼스 연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학교 미디어 학부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퍼포먼스를 매개로 국내외 예술가 및 기획자들과 협업한다. ⟪링거링거링⟫ (인사미술공간, 2020), ⟪직사각형 둘레에서 글쓰기 혹은 움직이기⟫ (공동 기획, 플랫폼엘, 2018), ⟪비록 춤일지라도⟫ (공동 기획, 코스모40, 2021) 등을 기획하였다.
퍼포먼스 퍼포먼스
뉴욕대학교 퍼포먼스 연구학과 교수 다이애나 테일러의 퍼포먼스 이론서이다. 이 책은 퍼포먼스를 단지 하나의 예술 형식이나 장르로 여기지 않고, 인간 문명을 형성해 온 운동성이자 특정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는 총체적 행위로 다룬다. 저자는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역사적 사건과 퍼포먼스 작업을 중심으로, 전공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 또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 책의 핵심적인 질문은 “퍼포먼스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퍼포먼스는 무엇을 하는가?”이다. 『퍼포먼스 퍼포먼스』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따라 가다 보면, 그렇다면 나를 구성하고 나의 주변에서 작용하는 퍼포먼스는 무엇인지를 묻게 될 것이다.
목차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11
2장 퍼포먼스의 역사 85
3장 보는 행위자들 127
4장 퍼포먼스의 새로운 사용법 153
5장 퍼포머티브와 퍼포머티비티 201
6장 퍼포먼스를 통해 알아가기: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 227
7장 예술행동가: 무엇을 해야 할까? 249
8장 퍼포먼스의 미래(들) 301
9장 퍼포먼스 연구 329
책 속으로
길레르모 고메즈-페냐는 퍼포먼스라는 담론과 형식 안에 줄곧 머물렀다. “나에게 퍼포먼스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날씨와 국경선처럼 추상적인 ‘구역’을 의미한다. 모순, 애매모호함, 역설이 용인되며 심지어 권장되는 장소이다. 우리의 ‘퍼포먼스 나라’는 노마드와 이주자, 잡종과 추방자들에게 온갖 국경을 개방한다.” 그는 퍼포먼스를 단순히 연기나 행위로 여기지 않는다. 실존의 조건이다. 존재론. 그에 따르면 퍼포먼스 예술가와 광인(狂人)의 차이점은 하나뿐이다. 퍼포먼스 예술가에게는 관객이 있고 광인에게는 관객이 없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20쪽
하지만 우리는 더 흥미롭고도 강력한 방식으로 이 매체가 작동하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한 장면에서 발생한 특정 행위는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퍼포먼스를 반복적으로 재연되고 재작동하는, 현재 진행형의 몸짓과 행동의 레퍼토리라고 여길 수 있다. 그 몸짓과 행동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지만 말이다. 수행되고 체현된 실천을 통해 우리가 배우고 대화할 수 있는 이유는 행위 그 자체가 반복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움직임과 리듬이 바뀌어도 우리는 춤을 춤으로 인식한다. 퍼포먼스는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것이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31쪽
퍼포먼스는 하나의 실천이자 인식론이다. 창조적인 행위이자 방법론이다. 기억과 정체성을 전달하는 방식이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 1장 퍼포먼스를 [프레이밍] 하기, 81쪽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다. 의례에는 입회자가 필요하다. 정치에는 지지자가 필요하다. 재판에는 증인이 필요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부르주아 연극이 관객에게 각자의 비평적 능력을 (모자, 코트와 함께) 물품 보관소에 두고 오도록 요구한다고 보았다. 군사 독재는 잔혹한 행위와 공포를 통해 우리의 귀를 막고 눈을 멀게 하여 멍청이로 만들어 버린다. 그들은 유약한 개인을 생산하는 것에 독재의 목표를 둔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퍼셉티사이드라 부른다. 보지 않는 것이 낫다. 침묵하는 것이 낫다. 아우구스토 보알과 같은 이론가들이 주장하였듯이, 서구의 연극은 우리가 수동적으로 관람하게끔 단련시켰다.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는 베드로 주인의 인형극에서 돈키호테가 나무로 만들어진 악당을 공격하는, 삶과 예술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낸다. 영국의 시인 사무엘 타일러 콜리지는 예술이 ‘불신을 유예하려는 의지’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연극에서 관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흉내임을 일시적으로 믿을 때에 비로소 즐거움을 얻게 된다. - 3장 보는 행위자들, 135쪽
우리는 성공에 대한 각종 본보기와 가르침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마치 퍼포먼스 입문서나 다름없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승리를 거두고, 유혹하고, 명령하는… 이상화된 우리의 몸을 위하여 세상 모든 것이 상징적으로 확장된 것만 같다. 몸(물론 이제는 너무 지루한 것이 된 여성과 남성의 벗은 몸)은 우리에게 온갖 것을 다 팔기 위해 활용된다. 동시에 이 몸은 우리의 몸과는 꽤 거리가 있는 몸과 환상을 사도록 권유한다. 아우디 광고가 보여주듯 기계의 몸 또한 흥분을 주기 위해 디자인된, 성애화된 새로운 인간의 몸이나 다름없다. 아름다움과 인간 능력에 대한 이상은 사이보그를 만들어 내었다. 생체 공학은 오늘날 엄청난 유행을 타고 있다. - 4장 퍼포먼스의 새로운 사용법, 180쪽
주디스 버틀러에 따르면, 퍼포머티비티는 “고유한 ‘행위’보다는 반복과 인용의 실천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실천으로 담론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버틀러에게 성 정체성은 옷을 바꿔 입듯 다른 것을 시도해보는 그런 연극적 상연이나 퍼포먼스가 아니다. 오스틴의 퍼포머티브, 즉 “주체가 이름을 통해 존재하게끔 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보다는 규범화된 일련의 행동을 통해 남녀로 구분된 주체를 생산하는 통제 시스템 전반과 이에 대한 응답의 가능성 모두를 의미한다. “퍼포머티비티는 어떤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과정, 행동하기 위한 조건과 가능성 모두를 포함한다. 우리는 이 조건들 없이는 퍼포머티비티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딸이다!” 라고 외칠 때, 그 아기는 타인이 ‘그녀’를 어떻게 볼지, 그녀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질지, 어떠한 조건이나 구분으로 인해 ‘배제’될지 혹은 ‘비천한 것’으로 ‘부정’될지 등을 구성하는 담론적 관행에 놓인 상태로 태어난다. 이러한 시스템은 심지어 아기가 태어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녀’를 습격하며 ‘그녀’에게 압박을 가한다. - 5장 퍼포머티브와 퍼포머티비티, 214쪽
시나리오는 시나리오가 모델화하려는 ‘타자’보다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우리’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시나리오는 사회 자체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시나리오는 유령, 이미지, (우리의 현재에 출몰하고 또 오래된 드라마를 되살려 재활성화하는) 고정관념 같은 이미 여기 있었던 무언가를 가시적이게끔 만든다. 시나리오는 ‘우리’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참여자, 관객, 증인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시나리오라는 그림 안의 주요한 요소로 고려해야만 한다. 즉, 전달 행위의 일부로서 우리는 ‘거기에 존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시나리오는 특정 종류의 멀어지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구경꾼을 프레임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우리’를 윤리, 정치와 얽히도록 한다. 나쁜 시나리오는 퍼셉티사이드이다. 즉 우리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든다. 좋은 시나리오는 우리의 인식을 고취하고 좋은 방향으로 플롯을 바꾸는 행동을 하게끔 독려한다. - 6장 퍼포먼스를 통해 알아가기: 시나리오와 시뮬레이션, 242쪽
퍼포먼스는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머무는 것일까? 이 의문은 학계와 예술계를 비롯한 많은 영역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2003년 유네스코의 가입국들은 문화적 관습의 중요성과 취약함을 인식하고 안전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형 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체결하였다. 일부 사람들은 미래 세대가 ‘세계’ 문화유산의 논리를 이해함으로써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당시 이 과정에 참여하였고 지침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생명을 ‘구하는’ 것의 복잡성과 모순을 감지하였다. 즉, 어떠한 행위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에만 관심을 둔 채, 그 행위가 실제 인지되고 존재한 순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순간의 다른 관객을 위해 수행된다는 것의 모순 말이다. 이것이 대체 무엇을 구하는 과정일지 나는 의구심을 품었다. 형태? 내용? 의미?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이 유산을 구하고 있는 것일까? - 8장 퍼포먼스의 미래(들), 311쪽
퍼포먼스 연구는 연극학, 언어학, 커뮤니케이션학, 인류학, 사회학, 시각 예술 연구로부터 발전했다. 이 학문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퍼포먼스 연구는 각각이 지닌 한계들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나는 퍼포먼스 연구가 정의 가능한 영역이 되기를 거부하고 또 학제가 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 있어서 탈학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퍼포먼스 연구는 (영원한) ‘신생’ 영역이다. 퍼포먼스의 규범이 규범을 부수는 것이라면, 퍼포먼스 연구의 규범은 학제적 경계를 부수는 것이다. - 9장 퍼포먼스 연구, 341쪽
작가 소개
다이애나 테일러
뉴욕대학교 퍼포먼스 연구학과 및 스페인어과의 교수이자 아메리카 지역의 퍼포먼스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헤미스퍼릭 인스티튜트의 창립자이다. 『사라지는 행위들』(Disappearing Acts, 1997), 『아카이브와 레퍼토리: 아메리카 지역에서의 문화적 기억의 수행』 (The Archive and the Repertoire: Performing Cultural Memory in the Americas, 2003), 『지금!』(¡Presente!, 2020) 등의 책을 썼다.
역자 소개
용선미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 및 퍼포먼스 독립 기획자이다. 뉴욕대학교 티시예술대학 퍼포먼스 연구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고려대학교 미디어 학부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퍼포먼스를 매개로 국내외 예술가 및 기획자들과 협업한다. ⟪링거링거링⟫ (인사미술공간, 2020), ⟪직사각형 둘레에서 글쓰기 혹은 움직이기⟫ (공동 기획, 플랫폼엘, 2018), ⟪비록 춤일지라도⟫ (공동 기획, 코스모40, 2021) 등을 기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