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D : Book of Sondergut』는 도시의 구조물과 인간의 신체 등에 기생하는 미지의 존재 ‘존더구트’를 기록한 책입니다. 정지돈(글), 최재훈(그림), 유영진(사진), 세 작가는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존더구트가 증식하는 시대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께 상상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쓰고, 그리고, 찍었습니다. 일종의 ‘공동집필’ 방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 작가는 이야기의 현실성과 허구성, 매체의 경계와 한계를 자유롭게 점핑하는 협업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즐겼습니다.
도시 속 미지의 생명체를 찾아서
소설과 만화 그리고 사진까지, 서로 다른 매체가 한 편의 이야기,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든 프로젝트는 사진가 유영진의 작업 <캄브리아기 대폭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에서 폴리우레탄 폼이나 PVC 파이프, 시멘트와 철근 등을 사용해 조악하게 만든 구조물을 흥미롭게 관찰했습니다. 작가의 눈에는 어떤 설계도 없이 그저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그것들이 도시나 건축에 기생하는 부속물 또는 미지의 생명체처럼 보였습니다. 유영진은 마치 고고학자 또는 생태학자가 되어 도시에 증식하는 기생물을 관찰하고 촬영하고 표본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작업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완성했습니다.
함께 쓰고 그리고 찍는 하나의 이야기
유영진의 작업을 흥미롭게 봤던 소설가 정지돈과 만화가 최재훈은 함께 모여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모티프로 삼아 더 확장된 세계와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상상해보기로 했습니다. 세 작가는 매달 한 번씩 모여 이야기의 배경, 등장 인물의 캐릭터, 미지의 생명체 '존더구트'의 모습, 스토리 라인 등에 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들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창작물에 영향과 영감을 받으며 이야기를 조금씩 진전시켜나갔습니다.
"종유석처럼 솟아오르고 마더보드 슬롯과 회로에 거미줄이 쳐진 것 같은 각 섹터와 연결부는 은색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고 어느 순간 그것이 구백팔십 일째 전기장으로 가득한 하늘에서 내린 빗방울이 맺혀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지금이 언제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딸이 커터칼로 같은 반 아이의 등을 갈랐다. 수학 수업 시간 중에 벌어진 일이다. 담임 선생은 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돌발적인 언행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자신이 벌인 일에 무척 당황하고 속상해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친구를 위한 일이었다. 그 애 몸속에 뭔가 있었고 저는 그걸 꺼내려고 했어요. 지금 꺼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그래서 성공했니?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피에 섞여 떨어지자 바닥으로 스며들었어요. 딸아이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전학 수속을 밟아야 한다. 올해만 세 번째다."
"존더구트가 인간의 몸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살아있는 인간을 해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도구로 활성화되지 않은 존더구트를 발견할 수 없다. 이미 존더구트가 활성화된 사람을 찾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
글, 그림, 사진이 모여 만든 세계
매달 연재를 하듯이 각자 쓰고, 그리고, 찍고, 또 모여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꽤 즐거웠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매체이기에 고민과 의문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과 그림, 사진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글과 그림, 사진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다른 매체와 달리 내가 사용하는 매체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서로 다른 매체가 공존하며 하나의 세계를 함께 요리하면서, 각각의 매체마다 고유한 맛이 살아나기를 바라고 또 고민했습니다.
편집자 박지수와 디자이너 물질과 비물질은 세 가지 매체가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세 권의 책이 하나의 몸을 이루는 형태를 구상했습니다. 그래서 책 <존D>는 왼쪽에는 사진(좌철 제본)이, 오른쪽에는 그림(우철 제본)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글(상철 제본)이 흐르는 형태로 디자인/제본되었습니다. 이런 형태 덕분에 사진, 그림, 글을 함께 한 페이지씩 넘겨봐도 좋고, 아니면 사진, 그림, 글 하나씩만 따로 넘겨봐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작가 소개
글 | 정지돈
201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낸 책으로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와 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평론 《문학의 기쁨》(공저)이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zdone
그림 | 최재훈
만화를 기반으로 미술, 일러스트, 전시, 애니메이션 등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NEO SEOUL》(팔레드서울, 2018), 《칸 퍼레이드 : 깨무는 칸들》(탈영역우정국, 2018), 《NEO SEOUL : TIMEOUT》(dp갤러리, 2019), 《D MUSEUM : i draw》(디뮤지엄, 서울, 2019), 《NeoTakKoo》(보안여관, 서울, 2020)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RM-forever rain MV〉, 〈Montblanc : StarWalker’ Global campaign〉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했습니다. 만화책 『꿈속의 신』, 『조형의 과정』, 『무엇으로』, 『친구의 부름』 등을 출간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lato_q
사진 | 유영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사진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살면서 보고 느끼는 다양한 경험들에 의문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개인전
『존D : Book of Sondergut』는 도시의 구조물과 인간의 신체 등에 기생하는 미지의 존재 ‘존더구트’를 기록한 책입니다. 정지돈(글), 최재훈(그림), 유영진(사진), 세 작가는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존더구트가 증식하는 시대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께 상상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쓰고, 그리고, 찍었습니다. 일종의 ‘공동집필’ 방식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 작가는 이야기의 현실성과 허구성, 매체의 경계와 한계를 자유롭게 점핑하는 협업의 가능성을 상상하고 즐겼습니다.
도시 속 미지의 생명체를 찾아서
소설과 만화 그리고 사진까지, 서로 다른 매체가 한 편의 이야기, 하나의 세계를 함께 만든 프로젝트는 사진가 유영진의 작업 <캄브리아기 대폭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다세대 주택 밀집지역에서 폴리우레탄 폼이나 PVC 파이프, 시멘트와 철근 등을 사용해 조악하게 만든 구조물을 흥미롭게 관찰했습니다. 작가의 눈에는 어떤 설계도 없이 그저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그것들이 도시나 건축에 기생하는 부속물 또는 미지의 생명체처럼 보였습니다. 유영진은 마치 고고학자 또는 생태학자가 되어 도시에 증식하는 기생물을 관찰하고 촬영하고 표본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작업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완성했습니다.
함께 쓰고 그리고 찍는 하나의 이야기
유영진의 작업을 흥미롭게 봤던 소설가 정지돈과 만화가 최재훈은 함께 모여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모티프로 삼아 더 확장된 세계와 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상상해보기로 했습니다. 세 작가는 매달 한 번씩 모여 이야기의 배경, 등장 인물의 캐릭터, 미지의 생명체 '존더구트'의 모습, 스토리 라인 등에 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눴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물들을 함께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창작물에 영향과 영감을 받으며 이야기를 조금씩 진전시켜나갔습니다.
"종유석처럼 솟아오르고 마더보드 슬롯과 회로에 거미줄이 쳐진 것 같은 각 섹터와 연결부는 은색으로 빛나고 있을 것이고 어느 순간 그것이 구백팔십 일째 전기장으로 가득한 하늘에서 내린 빗방울이 맺혀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지금이 언제라고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딸이 커터칼로 같은 반 아이의 등을 갈랐다. 수학 수업 시간 중에 벌어진 일이다. 담임 선생은 딸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돌발적인 언행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자신이 벌인 일에 무척 당황하고 속상해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친구를 위한 일이었다. 그 애 몸속에 뭔가 있었고 저는 그걸 꺼내려고 했어요. 지금 꺼내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그래서 성공했니? 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피에 섞여 떨어지자 바닥으로 스며들었어요. 딸아이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전학 수속을 밟아야 한다. 올해만 세 번째다."
"존더구트가 인간의 몸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살아있는 인간을 해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도구로 활성화되지 않은 존더구트를 발견할 수 없다. 이미 존더구트가 활성화된 사람을 찾는 것이 제일 빠른 길이다."
글, 그림, 사진이 모여 만든 세계
매달 연재를 하듯이 각자 쓰고, 그리고, 찍고, 또 모여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꽤 즐거웠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매체이기에 고민과 의문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과 그림, 사진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글과 그림, 사진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다른 매체와 달리 내가 사용하는 매체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서로 다른 매체가 공존하며 하나의 세계를 함께 요리하면서, 각각의 매체마다 고유한 맛이 살아나기를 바라고 또 고민했습니다.
편집자 박지수와 디자이너 물질과 비물질은 세 가지 매체가 '따로 또 같이' 공존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세 권의 책이 하나의 몸을 이루는 형태를 구상했습니다. 그래서 책 <존D>는 왼쪽에는 사진(좌철 제본)이, 오른쪽에는 그림(우철 제본)이, 그리고 가운데에는 글(상철 제본)이 흐르는 형태로 디자인/제본되었습니다. 이런 형태 덕분에 사진, 그림, 글을 함께 한 페이지씩 넘겨봐도 좋고, 아니면 사진, 그림, 글 하나씩만 따로 넘겨봐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작가 소개
글 | 정지돈
201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낸 책으로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와 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평론 《문학의 기쁨》(공저)이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zdone
그림 | 최재훈
만화를 기반으로 미술, 일러스트, 전시, 애니메이션 등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NEO SEOUL》(팔레드서울, 2018), 《칸 퍼레이드 : 깨무는 칸들》(탈영역우정국, 2018), 《NEO SEOUL : TIMEOUT》(dp갤러리, 2019), 《D MUSEUM : i draw》(디뮤지엄, 서울, 2019), 《NeoTakKoo》(보안여관, 서울, 2020)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RM-forever rain MV〉, 〈Montblanc : StarWalker’ Global campaign〉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했습니다. 만화책 『꿈속의 신』, 『조형의 과정』, 『무엇으로』, 『친구의 부름』 등을 출간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lato_q
사진 | 유영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사진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살면서 보고 느끼는 다양한 경험들에 의문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개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