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안]세 번의 사과와 한 번의 깊은 감사

3층까지, 엘리베이터도 없이 계단으로 올라와야만 했던 손님들의 떨리는 허벅지를 생각해 봅니다. 문을 열고 입장한 손님이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를 들으며 죄송함을 느꼈던 지난 5년의 시간이었습니다. 왜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그것도 3층에 자리를 잡았을까 의문을 가진 분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괜찮은 매물을 찾지 못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봤던 A4용지에 손으로 직접 쓴 ‘임대’라는 글씨에 홀린 듯 올라왔던 그때 그 순간을 변명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친 다리를 핑계로 가던 길 쭉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자석과 같은 끌림은 저희를 우뚝 멈춰 세웠습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보자며, 여기도 아니면 그냥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야기를 나눴던 저희가 그다음 날 바로 계약서에 사인했던 건 어쩌면 운명의 데스티니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공간이 우리를 선택하고 우리가 그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했던 순간. 마치 강백호와 서태웅의, 말은 없었지만 서로의 뜻을 온몸으로 느꼈던 하이파이브와도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저희와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212, 3층(41913)의 데스티니는 2017년 초 2월 어느 날 펼쳐지게 되었고 그게 여러분의 허벅지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모두에게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조심스레 전해 드립니다. 

갈증을 느끼는 분들을 위한 오아시스를 메워 버린 것 또한 죄송하다 말씀드립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북쪽을 바라보는 넓은 창 앞엔 8인용 테이블이 존재했습니다. 거기서 손님들은 커피나 차를 마시기도, 예쁜 병에 담긴 음료나 맥주를 마시기도 했지만 이젠 신기루처럼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2020년대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코로나 때문도 있지만, 늘어나는 도서를 주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결정이라는 것을 고려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보다 책이, 책보다 비어있던 공간이 더 많았던 시절. 우리 책방도 책이 훨씬 더 많아져 손님들이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저희의 다짐, 어쩌면 욕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젠 무언가를 새로 시도해볼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게 더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판매되는 책보다 들여놓는 책이 더 많은 상황으로 귀결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저희의 욕심, 어쩌면 다짐이 손님들의 발길보단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래도 5년 전, 가능성으로 넘쳐나던 공간이 이젠 더욱 폭넓고 세분화된 도서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저희가 제시하는 컬렉션을 손님들이 좀 더 자발적으로, 가끔은 우발적으로 선택하길 바라봅니다. 손님들께서 타오르는 갈증을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실 수 있게 저희도 꾸준히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방 이곳저곳에서 목숨을 다하고 사라져간 여러 식물에게도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넉넉한 물만 있으면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과거의 저희, 아니 저를 반성해봅니다. 굳이, 정말 필요한가 싶은, 대구 시내를 급격히 뒤덮고 있는 작금의 신축 주거 시설의 범람을 가중한 바로 옆 동쪽 신규 오피스텔이 없던 시기만 하더라도 넘치는 햇살이 책방의 모든 식물을 당연히 잘 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온도와 습도 조절은 둘째치고 물도 제대로 주지 못했던 저였습니다. 물을 줘야 하는 시기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날들이 이어져, 이날 꼭 줘야지 하며 달력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까지 쳤지만, 그 빨간 동그라미 자체를 아니, 달력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책방 시작을 함께했던 많은 식물이 하나둘씩 천천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이 광활한 지구 속 대기 어딘가에 섞이고, 어딘지 모르는 토양의 일부가 되었을 그들에게 지금에서야 죄송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장 굳건히, 처음 그날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자신의 존재를 이어 가고 있는 마지나타 한 그루를 바라보며 마음을 달래봅니다. 실은 화분을 가득 채웠던 뿌리가 더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더는 자랄 수 없었던 마지나타에게 얼마 전 새로운 집을 장만해 주었습니다. 다른 식물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도 곧 떠나야만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겠지만, 이젠 그 걱정을 고이 접어두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만은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길,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지난 5년을 생각했을 때, 죄송한 일만 떠오르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저희에게 소중하고 멋진 책들을 입고케 해주시는 여러 제작자분에게는 깊은,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저 심해만큼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책을 채우는 창작 과정과 그것을 매력적인 형태로 구현해내는 일. 하나의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무언가를 책이라는, 실체를 가진 사물로 탄생시키는 일련의 과정은 ‘제작’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숭고한 가치’로 제게 다가옵니다. 꾸준히 그 가치를 이어 나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것을 저희 책방을 통해 세상에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여러분이 있어야 저희도 있습니다. 부디, 이 어려운 시기 속에서 건강히, 오래오래 작업해주시기 바랍니다. 

길다면 짧고, 짧다면 길다 할 수 있는 5년의 시간을 돌아보며 지금을 생각해봅니다. 하루를 정리했을 때 나타나는 숫자로, 혹은 매장문이 여닫히는 횟수로 현재를 평가하기보단 저희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납득하며 끄덕여질 고개의 수로 저희를 평가하고 싶습니다. 얼마만큼의 고개가 현재 끄덕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더 많은 분들이 끄덕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찾아와 저희에게 여러분의 머릿속에 있는 그것을 이야기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글: 김인철

「 세 번의 사과와 한 번의 깊은 감사」 은 2022년 4월 7일 책방 5주년 기념으로 만든 작은 소책자에 실었던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