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온보관의 마음
“차갑거나 뜨거운 마음을 상온에 두고 천천히 식힌 다음, 알맞은 온도가 되었을 때 겨우 이렇게 써냅니다.”
생애 첫 수필집 출간과 동시에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추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 선정 등의 바람을 일으킨 진서하 작가가 새로운 이야기 『상온보관의 마음』으로 돌아왔다.
집을 떠나 혼자만의 공간을 원하는 딸들의 마음, 배탈인 줄 알고 들어간 화장실에서 만난 첫 생리의 당혹감, 동거를 말하는 여성에게 쏟아지는 무례함 등 ‘오늘을 살아가는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로 채웠다. 너무 뜨겁지도, 반대로 너무 냉정하지도 않은 문장들을 건너다보면 마침내 ‘내가 나여도 괜찮을 마음’이 자연스레 피어오른다.
결국 『상온보관의 마음』은 하나의 공동체다. 오늘을 살아가는 딸들이 모인 가장 안전하고 견고한 장소. 그 장소가 특정 형태로 물화된다면 아마도 이 책일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 한 조각이 담긴 에세이는, 어쩌면 ‘남의 이야기’로만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서하 작가의 글들은 과거의 내가 겪었고, 현재의 내가 겪으며, 미래의 내가 겪을지도 모를 것들로 온통 이루어져 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의 상온은 어떠한가? 그곳이 어디든 가장 적당한 온도로 이 책이 스며들 수 있길 바란다.
목차
무덤 앞에서 마시는 커피
낯설고 새로운, 아침
먼 곳에 닿은 사랑
공평한 마음으로 사계절을 지나며
하숙집 이야기
마음, 쓰는, 일
함께 살고 있습니다만
삼삼삼, 얼음!
히피펌
돌아오는 새벽은 지금도
주기적 대환장, 생리의 역사
서울과 커피
여전히 도망은 가깝고
‘진짜’ 산타
제주에서 히말라야까지
평범하고 온전하게, 이해 않는 우리
거 봐, 맛있지?
반가운 불친절
결국 닿고 싶은 곳은,
책 속으로
내가 너무나 나이고 싶어하거나 지나치게 뭔가 되고 싶을 때, 나여야 할지 다른 무언가여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경주를 찾았습니다. 그곳에 던져놓고 온 끈적이고 검은 내 한숨을 떠올리면, 경주에겐 조금 미안한 일입니다. _18p <무덤 앞에서 마시는 커피>
손에 갓 쥐어진 행복은 너무 뜨겁고 달아서 어쩔 줄 모르고, 시간이 지나면 그 온기에 익숙해져서 원래 내 체온이었던 것처럼 건방지게 하대하는 내가 참… 뻔하고 안쓰럽다. 행복을 어여삐 여기고 즐기는 일이라든가 오래도록 곱씹으면서 삶을 넉넉히 바라보는 일 같은 것들은 언제쯤 해낼 수 있을까. _30p <낯설고 새로운, 아침>
무언가를 처음 배우던 순간은 사람의 시간과 기억 귀퉁이를 접어둔다. 그게 책이라면, 바람이 불다 멈췄을 때 자연스레 그 페이지에 머물게 되듯이. 가끔 나의 죽음을 상상할 때, 혹은 다른 이의 죽음을 마주할 때 나는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이상하게 그 시간을 떠올리면 조금 더 살아보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그 일을 겪는 게 아주 조금은 늦춰졌으면 해서. _41p <먼 곳에 닿은 사랑>
내가 아는 많은 딸들은 집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든 말든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시공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다만 그게 삶의 프레임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는 대부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떠나온 딸들은 돌아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자꾸만 가다듬었습니다. _65p <하숙집 이야기>
마음 쓰는 일은 돈 쓰는 것과 같다. 쟁여둔 게 없으면 고통이 빚처럼 따라온다. 마르지 않을 거라 믿으며 타인에게 마음 쓰다 보면 정작 나한테 줄 마음이 바닥이 나서 쉽게 나를 미워해 버리고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준 마음은 오롯이 내 몫이어서 누가 이자를 쳐주지도 않는다. _77p <마음, 쓰는, 일>
‘그냥’ 살고 싶습니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이유는 뭔지 이런 고민을 멈춘 채 그냥요. 흘러가듯. 이따금 살기보다 살아지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냥 무던하게 넘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이토록 소박한 장래 희망은 그러나 한순간도 내게는 가벼웠던 적이 없습니다. _124p <돌아오는 새벽은 지금도>
서울에 녹아들려고 애썼습니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어떤 억양과 톤으로 말해야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을지, 지방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서 무시당하지는 않을지, 택시를 타면 일부러 돌아가지는 않을지, 똑같은 실수를 해도 ‘지방에서 와서 모르나 보다’ 같은 배려 같은데 배려 아닌 말을 듣지는 않을지, 사투리로 ‘오빠야’를 말해보라는 소리를 더는 안 들을 수 있을지 하루종일 곤두선 채로 살던 때였습니다. _148p <서울과 커피>
어쩌다 사람들과 술이라도 한잔하는 날엔 제법 길고 짙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요. 그러면 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얼굴을 하고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지나며 다시 평범하기 위해 재주껏 숨겨가며 사는 게 아닌가 하고요. 남들과 다르기를 권장하는 사회는 동시에 남들과 같기를 권하고 우리는 정답 없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래도 봤다가 저래도 봤다가 하며 사는 중이었습니다. _188p <평범하고 온전하게, 이해 않는 우리>
부재를 통해 소중함을 깨닫는 미련함은 언제쯤 사라질까. 얼마나 좋아했는지 절실히 깨닫는 시점이 사라지고 나서라니. 나는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계속해서 말도 없이 사라진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일도 미루고 또 미뤘을 것이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습관이고 미련이라는 걸 나는 알면서도 또 무언가를 미루고 있겠지. _214p <반가운 불친절>
올 한 해에도 네 개의 계절이 남았지. 여전히 나는 너와 매 여름을 같이 보내고 싶어. 곁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 나의 친구로 남아 주어서 더 고맙고. 적당하거나 가득 찬 사랑 속에 살자. _229p <세현에게>
작가 소개
진서하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를 썼다. 잘 쓴 편지 한 통 덕분에 글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다정과 사랑에 등 떠밀려 얼떨결에, 늘 꿈꿔왔던 ‘쓰는 삶’으로 진입했다. 평정심에 집착하는 것치고는 일희일비하는 편. 단어를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을 쏟는다. 시니컬한 농담을 무척 좋아하는 데 비해 다정한 사람들 앞에서 쉽게 약해진다. 주로 삐딱하지만 다정하고 올곧은 사람들을 동경한다.










상온보관의 마음
“차갑거나 뜨거운 마음을 상온에 두고 천천히 식힌 다음, 알맞은 온도가 되었을 때 겨우 이렇게 써냅니다.”
생애 첫 수필집 출간과 동시에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 추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도서 선정 등의 바람을 일으킨 진서하 작가가 새로운 이야기 『상온보관의 마음』으로 돌아왔다.
집을 떠나 혼자만의 공간을 원하는 딸들의 마음, 배탈인 줄 알고 들어간 화장실에서 만난 첫 생리의 당혹감, 동거를 말하는 여성에게 쏟아지는 무례함 등 ‘오늘을 살아가는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들로 채웠다. 너무 뜨겁지도, 반대로 너무 냉정하지도 않은 문장들을 건너다보면 마침내 ‘내가 나여도 괜찮을 마음’이 자연스레 피어오른다.
결국 『상온보관의 마음』은 하나의 공동체다. 오늘을 살아가는 딸들이 모인 가장 안전하고 견고한 장소. 그 장소가 특정 형태로 물화된다면 아마도 이 책일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 한 조각이 담긴 에세이는, 어쩌면 ‘남의 이야기’로만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서하 작가의 글들은 과거의 내가 겪었고, 현재의 내가 겪으며, 미래의 내가 겪을지도 모를 것들로 온통 이루어져 있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의 상온은 어떠한가? 그곳이 어디든 가장 적당한 온도로 이 책이 스며들 수 있길 바란다.
목차
무덤 앞에서 마시는 커피
낯설고 새로운, 아침
먼 곳에 닿은 사랑
공평한 마음으로 사계절을 지나며
하숙집 이야기
마음, 쓰는, 일
함께 살고 있습니다만
삼삼삼, 얼음!
히피펌
돌아오는 새벽은 지금도
주기적 대환장, 생리의 역사
서울과 커피
여전히 도망은 가깝고
‘진짜’ 산타
제주에서 히말라야까지
평범하고 온전하게, 이해 않는 우리
거 봐, 맛있지?
반가운 불친절
결국 닿고 싶은 곳은,
책 속으로
내가 너무나 나이고 싶어하거나 지나치게 뭔가 되고 싶을 때, 나여야 할지 다른 무언가여야 할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경주를 찾았습니다. 그곳에 던져놓고 온 끈적이고 검은 내 한숨을 떠올리면, 경주에겐 조금 미안한 일입니다. _18p <무덤 앞에서 마시는 커피>
손에 갓 쥐어진 행복은 너무 뜨겁고 달아서 어쩔 줄 모르고, 시간이 지나면 그 온기에 익숙해져서 원래 내 체온이었던 것처럼 건방지게 하대하는 내가 참… 뻔하고 안쓰럽다. 행복을 어여삐 여기고 즐기는 일이라든가 오래도록 곱씹으면서 삶을 넉넉히 바라보는 일 같은 것들은 언제쯤 해낼 수 있을까. _30p <낯설고 새로운, 아침>
무언가를 처음 배우던 순간은 사람의 시간과 기억 귀퉁이를 접어둔다. 그게 책이라면, 바람이 불다 멈췄을 때 자연스레 그 페이지에 머물게 되듯이. 가끔 나의 죽음을 상상할 때, 혹은 다른 이의 죽음을 마주할 때 나는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 이상하게 그 시간을 떠올리면 조금 더 살아보고 싶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하여금 그 일을 겪는 게 아주 조금은 늦춰졌으면 해서. _41p <먼 곳에 닿은 사랑>
내가 아는 많은 딸들은 집을 떠나고 싶어 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든 말든 그런 건 상관없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시공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다만 그게 삶의 프레임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는 대부분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한 번 떠나온 딸들은 돌아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자꾸만 가다듬었습니다. _65p <하숙집 이야기>
마음 쓰는 일은 돈 쓰는 것과 같다. 쟁여둔 게 없으면 고통이 빚처럼 따라온다. 마르지 않을 거라 믿으며 타인에게 마음 쓰다 보면 정작 나한테 줄 마음이 바닥이 나서 쉽게 나를 미워해 버리고 화가 나는 것이다. 내가 준 마음은 오롯이 내 몫이어서 누가 이자를 쳐주지도 않는다. _77p <마음, 쓰는, 일>
‘그냥’ 살고 싶습니다.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의 이유는 뭔지 이런 고민을 멈춘 채 그냥요. 흘러가듯. 이따금 살기보다 살아지는 느낌이 들더라도 그냥 무던하게 넘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의 이토록 소박한 장래 희망은 그러나 한순간도 내게는 가벼웠던 적이 없습니다. _124p <돌아오는 새벽은 지금도>
서울에 녹아들려고 애썼습니다.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어떤 억양과 톤으로 말해야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을지, 지방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서 무시당하지는 않을지, 택시를 타면 일부러 돌아가지는 않을지, 똑같은 실수를 해도 ‘지방에서 와서 모르나 보다’ 같은 배려 같은데 배려 아닌 말을 듣지는 않을지, 사투리로 ‘오빠야’를 말해보라는 소리를 더는 안 들을 수 있을지 하루종일 곤두선 채로 살던 때였습니다. _148p <서울과 커피>
어쩌다 사람들과 술이라도 한잔하는 날엔 제법 길고 짙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요. 그러면 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얼굴을 하고 평범하지 않은 시간을 지나며 다시 평범하기 위해 재주껏 숨겨가며 사는 게 아닌가 하고요. 남들과 다르기를 권장하는 사회는 동시에 남들과 같기를 권하고 우리는 정답 없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이래도 봤다가 저래도 봤다가 하며 사는 중이었습니다. _188p <평범하고 온전하게, 이해 않는 우리>
부재를 통해 소중함을 깨닫는 미련함은 언제쯤 사라질까. 얼마나 좋아했는지 절실히 깨닫는 시점이 사라지고 나서라니. 나는 자꾸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좋아하는 것들은 계속해서 말도 없이 사라진다.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일도 미루고 또 미뤘을 것이다. 사라지고 나서야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오랜 습관이고 미련이라는 걸 나는 알면서도 또 무언가를 미루고 있겠지. _214p <반가운 불친절>
올 한 해에도 네 개의 계절이 남았지. 여전히 나는 너와 매 여름을 같이 보내고 싶어. 곁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 나의 친구로 남아 주어서 더 고맙고. 적당하거나 가득 찬 사랑 속에 살자. _229p <세현에게>
작가 소개
진서하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를 썼다. 잘 쓴 편지 한 통 덕분에 글 쓰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계획에 없던 다정과 사랑에 등 떠밀려 얼떨결에, 늘 꿈꿔왔던 ‘쓰는 삶’으로 진입했다. 평정심에 집착하는 것치고는 일희일비하는 편. 단어를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을 쏟는다. 시니컬한 농담을 무척 좋아하는 데 비해 다정한 사람들 앞에서 쉽게 약해진다. 주로 삐딱하지만 다정하고 올곧은 사람들을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