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자이, 다자이 : 다자이 오사무 자전적 산문들
“나는 내 작품과 함께 살아 있다. 나는 언제나, 말하고 싶은 것은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을 비롯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을 많이 남긴 대표적 사소설 작가 중 하나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작품을 엮은 선집이다. 다자이가 결혼과 함께 안정을 찾으며 많은 명작을 발표한 1938년에서 1942년 사이의 중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단편과 수필을 골라 엮었다. 초기작이나 후기작에 비해 비교적 밝고 유쾌한 다자이,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다자이를 만날 수 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열의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문학적 고민과 노력을 하던 다자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울, 절망, 염세의 다자이가 아닌, 명랑, 다정, 유머의 다자이를 만날 수 있는 색다른 다자이 오사무 선집이 될 것이다.
목차
1장
사적인 편지
번민 일기
답안 낙제
염천 한담
정직 노트
2장
《부악 백경》 머리말
도쿄 팔경
부악 백경
I Can Speak
봄 낮
당선된 날
황금 풍경
희미한 빛
찾는 사람
6월 19일
같은 운명
3장
멋쟁이 아이
옷에 대하여
용모
동네의 언쟁
실패한 뜰
금주의 마음
술이 싫다
작은 앨범
미남과 담배
4장
난처함의 변명
마음의 왕
부엉이 통신
《이부세 마스지 선집》 후기
나의 반생을 말하다
나의 작품을 말하다
책 속으로
의심하다 실패하는 삶만큼 보기 흉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한 치의 벌레에게도 닷 푼의 진심이 있습니다. 쓴웃음을 지으시면 안 됩니다. 순수하게 믿는 사람만이 여유롭습니다. 나는 문학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믿어서 성공할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사적인 편지」중에서
기나긴 일이다. 마라톤이다. 지금 당장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하지 마라. 천천히 준비해서 하루하루를, 적어도 후회 없이 보내라. 행복은 3년 늦게 찾아온다, 라고 했던가. -「답안낙제」중에서
수련이란 천재에 이르는 방법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타고난 재능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퇴보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굉장한 노력입니다. 어느 정도의 높이를,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는 예술가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염천한담」중에서
1909년 초여름, 혼슈의 북쪽 끝에서 태어난 여린 남자아이가, 그래도 남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잘난 척하다가, 좌절하고, 또 좌절하며, 그래도 살아 있는 한은, 한줄기 자부심을 가지려고 어리석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글로 써서 남겨놓으려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테마 전부입니다. -「부악 백경 머리말」중에서
인간이 변하는 계기를 설명한다는 건 아무래도 왠지 뻔하다. 최대한 정확을 기한 설명일지라도, 반드시 어딘가 거짓의 틈이 벌어져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신이 갈 길을 선택할 때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또는 저렇게 생각하면서 길을 택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벌판을 걷고 있는 것이다. -「도쿄 팔경」중에서
내게는 자랑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학문도 없다. 재능도 없다. 육체는 더러워지고, 마음은 가난하다. 하지만 고뇌만큼은, 이 청년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면, 그냥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여도 좋을 만큼의 고뇌는 겪어왔다. 단지 그것뿐이다. 지푸라기 한 올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자부심만큼은 확실히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부악 백경」중에서
괴로운 것이다. 일이, ── 순수하게 글을 쓰는 것의 괴로움보다, 아니, 글을 쓰는 건 오히려 내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나의 세계관, 예술이라는 것, 내일의 문학이라는 것, 말하자면 새로움이라는 것, 나는 그것들에 대해 아직도 우물쭈물 고민하고, 과장이 아니라, 몸부림치고 있었다. -「부악 백경」중에서
괴로움은 인종 (忍從) 의 밤, 체념의 아침. 이 세상은 체념의 노력인가, 쓸쓸함의 인내인가. 그리하여 젊음은 세월에 벌레 먹히고, 행복도 더러운 거리에서 찾는 것이다. -「I Can Speak」중에서
“알겠지? 쓸쓸함에 지면 안 돼. 난 그게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나는 조금 진지한 말투로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 자신이, 쓸쓸함에 질 것만 같아서 불안하기도 해서였다. -「당선된 날」중에서
나는 나 자신의 영락을 느끼고 패배를 의식할 때면, 어김없이 베를렌의 울먹이는 얼굴을 떠올리고, 늘 구원받고는 한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사람의 나약함이 오히려 나에게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을 준다. 나는 진정으로 숭엄한 광명은 오로지 나약한 반성의 궁극에서부터 비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쨌든 나는 좀 더 살아보고 싶다. 다시 말해, 최고의 자부심과 최저의 생활로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다. -「옷에 대하여」중에서
천사가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날개가 사라지고, 낙하산처럼 세상 여기저기에 내려앉습니다. 나는 북쪽 나라 눈밭 위에 내려앉고, 너는 남쪽 나라 귤밭 위에 내려앉고, 그리고 이 소년들은 우에노 공원에 내려앉은 것, 다른 건 오직 그것뿐. -「미남과 담배」중에서
작가 소개
다자이 오사무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다자이, 다자이 : 다자이 오사무 자전적 산문들
“나는 내 작품과 함께 살아 있다. 나는 언제나, 말하고 싶은 것은 작품 속에서 말하고 있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을 비롯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작품을 많이 남긴 대표적 사소설 작가 중 하나인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작품을 엮은 선집이다. 다자이가 결혼과 함께 안정을 찾으며 많은 명작을 발표한 1938년에서 1942년 사이의 중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단편과 수필을 골라 엮었다. 초기작이나 후기작에 비해 비교적 밝고 유쾌한 다자이,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다자이를 만날 수 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열의를 잃지 않고, 끊임없이 문학적 고민과 노력을 하던 다자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울, 절망, 염세의 다자이가 아닌, 명랑, 다정, 유머의 다자이를 만날 수 있는 색다른 다자이 오사무 선집이 될 것이다.
목차
1장
사적인 편지
번민 일기
답안 낙제
염천 한담
정직 노트
2장
《부악 백경》 머리말
도쿄 팔경
부악 백경
I Can Speak
봄 낮
당선된 날
황금 풍경
희미한 빛
찾는 사람
6월 19일
같은 운명
3장
멋쟁이 아이
옷에 대하여
용모
동네의 언쟁
실패한 뜰
금주의 마음
술이 싫다
작은 앨범
미남과 담배
4장
난처함의 변명
마음의 왕
부엉이 통신
《이부세 마스지 선집》 후기
나의 반생을 말하다
나의 작품을 말하다
책 속으로
의심하다 실패하는 삶만큼 보기 흉한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한 치의 벌레에게도 닷 푼의 진심이 있습니다. 쓴웃음을 지으시면 안 됩니다. 순수하게 믿는 사람만이 여유롭습니다. 나는 문학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믿어서 성공할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사적인 편지」중에서
기나긴 일이다. 마라톤이다. 지금 당장 한꺼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생각하지 마라. 천천히 준비해서 하루하루를, 적어도 후회 없이 보내라. 행복은 3년 늦게 찾아온다, 라고 했던가. -「답안낙제」중에서
수련이란 천재에 이르는 방법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타고난 재능을 언제까지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퇴보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굉장한 노력입니다. 어느 정도의 높이를,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유지할 수 있는 예술가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염천한담」중에서
1909년 초여름, 혼슈의 북쪽 끝에서 태어난 여린 남자아이가, 그래도 남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잘난 척하다가, 좌절하고, 또 좌절하며, 그래도 살아 있는 한은, 한줄기 자부심을 가지려고 어리석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하나하나 글로 써서 남겨놓으려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의 테마 전부입니다. -「부악 백경 머리말」중에서
인간이 변하는 계기를 설명한다는 건 아무래도 왠지 뻔하다. 최대한 정확을 기한 설명일지라도, 반드시 어딘가 거짓의 틈이 벌어져 있기 마련이다. 사람은 자신이 갈 길을 선택할 때 언제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또는 저렇게 생각하면서 길을 택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낯선 벌판을 걷고 있는 것이다. -「도쿄 팔경」중에서
내게는 자랑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학문도 없다. 재능도 없다. 육체는 더러워지고, 마음은 가난하다. 하지만 고뇌만큼은, 이 청년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리면, 그냥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여도 좋을 만큼의 고뇌는 겪어왔다. 단지 그것뿐이다. 지푸라기 한 올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자부심만큼은 확실히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부악 백경」중에서
괴로운 것이다. 일이, ── 순수하게 글을 쓰는 것의 괴로움보다, 아니, 글을 쓰는 건 오히려 내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라, 나의 세계관, 예술이라는 것, 내일의 문학이라는 것, 말하자면 새로움이라는 것, 나는 그것들에 대해 아직도 우물쭈물 고민하고, 과장이 아니라, 몸부림치고 있었다. -「부악 백경」중에서
괴로움은 인종 (忍從) 의 밤, 체념의 아침. 이 세상은 체념의 노력인가, 쓸쓸함의 인내인가. 그리하여 젊음은 세월에 벌레 먹히고, 행복도 더러운 거리에서 찾는 것이다. -「I Can Speak」중에서
“알겠지? 쓸쓸함에 지면 안 돼. 난 그게 제일 중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 나는 조금 진지한 말투로 아내에게 그렇게 말했다. 나 자신이, 쓸쓸함에 질 것만 같아서 불안하기도 해서였다. -「당선된 날」중에서
나는 나 자신의 영락을 느끼고 패배를 의식할 때면, 어김없이 베를렌의 울먹이는 얼굴을 떠올리고, 늘 구원받고는 한다.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사람의 나약함이 오히려 나에게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을 준다. 나는 진정으로 숭엄한 광명은 오로지 나약한 반성의 궁극에서부터 비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쨌든 나는 좀 더 살아보고 싶다. 다시 말해, 최고의 자부심과 최저의 생활로 어떻게든 살아보고 싶다. -「옷에 대하여」중에서
천사가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날개가 사라지고, 낙하산처럼 세상 여기저기에 내려앉습니다. 나는 북쪽 나라 눈밭 위에 내려앉고, 너는 남쪽 나라 귤밭 위에 내려앉고, 그리고 이 소년들은 우에노 공원에 내려앉은 것, 다른 건 오직 그것뿐. -「미남과 담배」중에서
작가 소개
다자이 오사무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