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을 여는 마음
혼자 걷던 사유의 길이 타인을 향한 마음의 창으로 번져가는 산책 기록이다. 혼자의 침묵 속에서 시작된 걷기는 계절의 결을 따라 깊어지고, 어느 순간 세계를 타인과 함께 바라보는 응시로 이어진다. 『리타의 산책: 봄, 여름편』이 자연과의 교감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한 고요한 응시의 기록이었다면, 이번 책은 존재가 존재이기 위해선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아래, 함께의 의미를 향해 다가가는 연결의 여정이다. 저무는 오후의 햇살, 떨어지는 잎들, 나무 사이로 비치는 겨울의 빛, 깊은 풍경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고,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고독은 더 이상 고립이 아닌 연결을 향한 서곡이 되고, 산책은 단순한 걷기를 넘어 관계로 나아가는 내면의 문장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걸었다”로 시작되는 이 여정은 결국, 마음의 창이 조용히 열리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자연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결을 비추는 언어가 되고, 계절의 침묵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 이 책은 그렇게 삶과 삶이 스치는 찰나의 풍경 속에서, 닫혀 있던 마음이 다시 열리고, 잊고 있던 연결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들을 조용히 밝혀간다. 『창을 여는 마음』은 한 사람의 걸음이 누군가를 향하는 바람처럼 곁에 놓일 것이다.
목차
PART 1. 창을 여는 마음
청력을 다하다 / 소리를 찾아서 / 소리의 기원 / 펼쳐진 세계 위에서 / 새와 창 / 그녀의 창 / 다정의 운명 / 한 사람 / 영혼의 일 / 노을, 호수, 산책 / 달, 밤, 산책
PART 2.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 두 개의 눈 / 계수나무
PART 3. 쓸 수 없는 문장들
모든 것들의 사이 / 좋아하는 문장 / 거의 없는 문장 / 침묵하는 문장 / 깊어진 침묵 속에서 / 비우는 일 / 쓸 수 없는 문장들
PART 4. 시각을 넘어서
겨울, 돌 / 남아 있는 것들 / 시각을 넘어서 / 분리해서 바라보기 / 확장의 세계 / 존재에 대한 / 삶을 위한 예술 / 밤하늘의 유성우 / 시간의 물결 위에 겹쳐진 장들 / 인간의 시간 / 너무나도 인간의 겨울 / 눈, 사람 / 수국이라는 계절 / 이 겨울이 지나가면 / 기다리는 마음으로 /
책 속으로
- 내가 모르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그것을 빠짐없이 옮겨적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세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동원해 완성된다는 사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수한 종들이 어우러져 있는 바로 여기, 다 다른 개별적 시간이 서로를 모르는 채 함께 흐른다.
어쩌면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삶의 경이로움과 불가사의함을 상상하고, 감탄하며, 우리가 속한 세계와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게 된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러한 가능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질문하며, 순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이 생에서 발견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라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비록 미미하게라도 인간의 언어로 옮겨 적어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 아무도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고 깨우는 마음. 그것이 내 몫이라 여긴다.
- 언제부터인가 알게 되었다. 존재는 그 무엇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이름도 불러주어야 이름이 된다는 사실, 눈앞의 것이 살아 있는 풍경이 되려면, 마음을 열어 그것을 꼭 지그시 바라봐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바라봐야 한다. 세계는 결코 혼자만의 독백으로는 의미가 되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이제 나는 혼자 알고 있던 세계의 떨림을 타인과 공명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 글은 그렇게 창을 여는 마음이다.
- 테이블에 앉아 노트를 읽다가 다시금 덮고 열기를 반복한다. 종이라는 물성은 내밀한 이 공간과 저편의 내가 모르는 공간이 하나로 만나는 창이라는 점이 좋다. 상상은 늘 가능성을 허용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거기 닿아있는 기분이 든다. 모든 순간, 계속 스쳐 가는 숱한 세계의 창 중에서 잠시 손바닥을 맞댄 채 온기를 교환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 이들과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대화를 나눈다는 기쁨이 나를 쓰게 한다.
- 어스름과 서서히 섞이는 이 시간이 실은 가장 황홀하다. 슬픔과 환희가 뒤섞일 때 가장 깊어지는 것처럼,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것이 동원된다. 그 순간, 나는 ‘찬란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나는 이 장면을 눈이 멀도록 감상한다. 곧이어 핏빛 노을은 물 위에 남김없이 쏟아졌고, 마지막 빛 한 줄기가 물속으로 뛰어들 듯 작렬했다. 태양은 긴 꼬리와 함께 그렇게 퇴장했다.
- 저물어 가는 하루의 끝자락에 앉아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모두가 어두움을 끌고 너머로 사라질 때, 그때 나는 알게 된 것이다. 하루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떠나감을.나는 나를 완전히 통과한 뒤 모든 것과 함께 무한히 저편으로 향한다. 슬픔도 기약도 없이, 어쩌면, 그것까지 산책인 것이다.
- 한 사람이 지나간 후에 남은 여운 같은 것을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쉽게 잊히지만, 어떤 사람의 잔상은 오랫동안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문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이 가고 난 후에 남아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까 향기와 분위기에 관심이 많다. 표정보다는 뒷모습에, 포옹보다는 체온에 관심이 많다. 말이 막 발화하기 전이거나 말이 끝나는 지점에 멈춰 서 있을 때처럼.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르는 것으로 남아있는 모든 것이 나는 늘 궁금하다. 꽃이 피는 것보다 꽃이 진 자리가 나를 떨게 한다.
-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비추고 있기에,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막 태어난 아이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서도 동시에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양면을 나란히 어깨에 짊어진 채, 어둠과 빛이 혼조된 어스름 사이로, 삶이라는 언덕을 오른다
- 그렇게 가을이 가는 동안, 찬 바람이 나무를 거세게 흔들었고, 가지 끝에 남아 있던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을이 잎으로 발자국을 찍으면 나는 서둘러 가는 발소리가 자꾸만 들린다. 어느덧 바람은 모든 나무를 흔들어 깊은 잠으로 밀어 넣고, 인간인 나는 쏟아지는 가을 향기를 모두 들이쉰다. 기억하는 그 힘으로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기다림은 나를 더 깊어지게 한다.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시 이 벤치에 앉아 노트를 펼쳐보려면, 못다 한 계수나무 향기를 받아 적으려면.
- 바라봄의 깊이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나는 ‘나’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이 분리는 단순한 거리두기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세상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준다. 내가 나를 내려놓고, 외부에서 나를 바라볼 때, 내가 그토록 의식하지 못했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를 분리해 바라보는 순간, 나는 이전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 너머의 세계까지 인식하게 된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시선은 내가 지금까지 스쳐온 것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된다.
- 실제로 이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순간만 존재한다. 매 순간 마주하는 모든 장면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단 한 번의 호흡이며, 시간과 물질의 얽힘 속에서 잠시 드러난 결괏값일 뿐이다. 실상 우리는 의미를 지닌 존재라기보다, 잠시 이곳에 현시된 하나의 현상이며 흘러가는 상태에 가깝다. 존재란, 실은 육신이 아닌 생명 그 자체의 근원적인 감각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나를 구성한 물질 속에서 작동되는 보이지 않는 역동성, 곧 영혼 그 자체이다. 그것은 확고한 실체가 아닌, 결합하고 이동하는 운동이고, 끊임없이 촉발되는 현상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현전(現前)의 상태에 머무른다. 존재감, 그것만 남기고 바라본다.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 속에서 본질을 주시한다.
그렇게 나와 거리를 둔 채, 모든 믿음을 모두 반문하며 답을 찾아 나설 때, 나는 마침내 눈을 뜨게 된다.
- 끝나지 않은, 삶은, 길 위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발자국 속에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이다.
사람은 단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속 울림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작가 소개
안리타
2017년부터 "모든 순간을 기록한다"는 신조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독자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해 왔습니다. 화려함이나 유행보다는 초심을 잊지 않고, 첫 책을 썼던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이, 별의 사각지대』, 『사라지는, 살아지는』, 『구겨진 편지는 고백하지 않는다』,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우리가 우리이기 이전에』, 『사랑이 사랑이기 이전에』, 『리타의 정원』, 『쓸 수 없는 문장들』, 『한때 내게 삶이었던』 『마음이 부는 곳』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삶의 다양한 순간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리타 작가는 글쓰기 수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hollossi)에서는 일상과 글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안리타 작가의 작품과 활동은 독립출판 서적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그녀의 글은 삶의 통찰력과 따뜻한 위로를 전해줍니다.
instagram @hollossi
























창을 여는 마음
혼자 걷던 사유의 길이 타인을 향한 마음의 창으로 번져가는 산책 기록이다. 혼자의 침묵 속에서 시작된 걷기는 계절의 결을 따라 깊어지고, 어느 순간 세계를 타인과 함께 바라보는 응시로 이어진다. 『리타의 산책: 봄, 여름편』이 자연과의 교감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한 고요한 응시의 기록이었다면, 이번 책은 존재가 존재이기 위해선 누군가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깨달음 아래, 함께의 의미를 향해 다가가는 연결의 여정이다. 저무는 오후의 햇살, 떨어지는 잎들, 나무 사이로 비치는 겨울의 빛, 깊은 풍경 속에서 작가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바라보고,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고독은 더 이상 고립이 아닌 연결을 향한 서곡이 되고, 산책은 단순한 걷기를 넘어 관계로 나아가는 내면의 문장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 걸었다”로 시작되는 이 여정은 결국, 마음의 창이 조용히 열리는 자리로 우리를 이끈다. 자연은 그저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결을 비추는 언어가 되고, 계절의 침묵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지금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 이 책은 그렇게 삶과 삶이 스치는 찰나의 풍경 속에서, 닫혀 있던 마음이 다시 열리고, 잊고 있던 연결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들을 조용히 밝혀간다. 『창을 여는 마음』은 한 사람의 걸음이 누군가를 향하는 바람처럼 곁에 놓일 것이다.
목차
PART 1. 창을 여는 마음
청력을 다하다 / 소리를 찾아서 / 소리의 기원 / 펼쳐진 세계 위에서 / 새와 창 / 그녀의 창 / 다정의 운명 / 한 사람 / 영혼의 일 / 노을, 호수, 산책 / 달, 밤, 산책
PART 2.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 두 개의 눈 / 계수나무
PART 3. 쓸 수 없는 문장들
모든 것들의 사이 / 좋아하는 문장 / 거의 없는 문장 / 침묵하는 문장 / 깊어진 침묵 속에서 / 비우는 일 / 쓸 수 없는 문장들
PART 4. 시각을 넘어서
겨울, 돌 / 남아 있는 것들 / 시각을 넘어서 / 분리해서 바라보기 / 확장의 세계 / 존재에 대한 / 삶을 위한 예술 / 밤하늘의 유성우 / 시간의 물결 위에 겹쳐진 장들 / 인간의 시간 / 너무나도 인간의 겨울 / 눈, 사람 / 수국이라는 계절 / 이 겨울이 지나가면 / 기다리는 마음으로 /
책 속으로
- 내가 모르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상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는 그것을 빠짐없이 옮겨적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세계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동원해 완성된다는 사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무수한 종들이 어우러져 있는 바로 여기, 다 다른 개별적 시간이 서로를 모르는 채 함께 흐른다.
어쩌면 인간이기에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삶의 경이로움과 불가사의함을 상상하고, 감탄하며, 우리가 속한 세계와 존재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하게 된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러한 가능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만의 고유한 감각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질문하며, 순간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깊이 새길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이 생에서 발견해야 하는 중대한 과제라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비록 미미하게라도 인간의 언어로 옮겨 적어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 아무도 모르는 것들을 발견하고 깨우는 마음. 그것이 내 몫이라 여긴다.
- 언제부터인가 알게 되었다. 존재는 그 무엇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이름도 불러주어야 이름이 된다는 사실, 눈앞의 것이 살아 있는 풍경이 되려면, 마음을 열어 그것을 꼭 지그시 바라봐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바라봐야 한다. 세계는 결코 혼자만의 독백으로는 의미가 되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이제 나는 혼자 알고 있던 세계의 떨림을 타인과 공명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 글은 그렇게 창을 여는 마음이다.
- 테이블에 앉아 노트를 읽다가 다시금 덮고 열기를 반복한다. 종이라는 물성은 내밀한 이 공간과 저편의 내가 모르는 공간이 하나로 만나는 창이라는 점이 좋다. 상상은 늘 가능성을 허용한다. 그리고 나는 이미 거기 닿아있는 기분이 든다. 모든 순간, 계속 스쳐 가는 숱한 세계의 창 중에서 잠시 손바닥을 맞댄 채 온기를 교환하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 이들과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대화를 나눈다는 기쁨이 나를 쓰게 한다.
- 어스름과 서서히 섞이는 이 시간이 실은 가장 황홀하다. 슬픔과 환희가 뒤섞일 때 가장 깊어지는 것처럼,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것이 동원된다. 그 순간, 나는 ‘찬란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 나는 이 장면을 눈이 멀도록 감상한다. 곧이어 핏빛 노을은 물 위에 남김없이 쏟아졌고, 마지막 빛 한 줄기가 물속으로 뛰어들 듯 작렬했다. 태양은 긴 꼬리와 함께 그렇게 퇴장했다.
- 저물어 가는 하루의 끝자락에 앉아 떠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모두가 어두움을 끌고 너머로 사라질 때, 그때 나는 알게 된 것이다. 하루가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떠나감을.나는 나를 완전히 통과한 뒤 모든 것과 함께 무한히 저편으로 향한다. 슬픔도 기약도 없이, 어쩌면, 그것까지 산책인 것이다.
- 한 사람이 지나간 후에 남은 여운 같은 것을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쉽게 잊히지만, 어떤 사람의 잔상은 오랫동안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문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이 가고 난 후에 남아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그러니까 향기와 분위기에 관심이 많다. 표정보다는 뒷모습에, 포옹보다는 체온에 관심이 많다. 말이 막 발화하기 전이거나 말이 끝나는 지점에 멈춰 서 있을 때처럼.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르는 것으로 남아있는 모든 것이 나는 늘 궁금하다. 꽃이 피는 것보다 꽃이 진 자리가 나를 떨게 한다.
- 삶과 죽음은 서로 대립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비추고 있기에,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막 태어난 아이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면서도 동시에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양면을 나란히 어깨에 짊어진 채, 어둠과 빛이 혼조된 어스름 사이로, 삶이라는 언덕을 오른다
- 그렇게 가을이 가는 동안, 찬 바람이 나무를 거세게 흔들었고, 가지 끝에 남아 있던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가을이 잎으로 발자국을 찍으면 나는 서둘러 가는 발소리가 자꾸만 들린다. 어느덧 바람은 모든 나무를 흔들어 깊은 잠으로 밀어 넣고, 인간인 나는 쏟아지는 가을 향기를 모두 들이쉰다. 기억하는 그 힘으로 살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기다림은 나를 더 깊어지게 한다.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다시 이 벤치에 앉아 노트를 펼쳐보려면, 못다 한 계수나무 향기를 받아 적으려면.
- 바라봄의 깊이를 탐구하는 여정에서 나는 ‘나’를 분리하여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만, 그 길은 쉽지 않다. 이 분리는 단순한 거리두기가 아니다. 그것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세상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준다. 내가 나를 내려놓고, 외부에서 나를 바라볼 때, 내가 그토록 의식하지 못했던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를 분리해 바라보는 순간, 나는 이전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그 너머의 세계까지 인식하게 된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시선은 내가 지금까지 스쳐온 것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된다.
- 실제로 이 세계는 우리의 인식과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오로지 순간만 존재한다. 매 순간 마주하는 모든 장면은, 연결되어 있지 않은 단 한 번의 호흡이며, 시간과 물질의 얽힘 속에서 잠시 드러난 결괏값일 뿐이다. 실상 우리는 의미를 지닌 존재라기보다, 잠시 이곳에 현시된 하나의 현상이며 흘러가는 상태에 가깝다. 존재란, 실은 육신이 아닌 생명 그 자체의 근원적인 감각에 더 가까운 것이다.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나를 구성한 물질 속에서 작동되는 보이지 않는 역동성, 곧 영혼 그 자체이다. 그것은 확고한 실체가 아닌, 결합하고 이동하는 운동이고, 끊임없이 촉발되는 현상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직 현전(現前)의 상태에 머무른다. 존재감, 그것만 남기고 바라본다. 살아 있음이라는 감각 속에서 본질을 주시한다.
그렇게 나와 거리를 둔 채, 모든 믿음을 모두 반문하며 답을 찾아 나설 때, 나는 마침내 눈을 뜨게 된다.
- 끝나지 않은, 삶은, 길 위에 발자국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발자국 속에 이야기를 채우는 과정이다.
사람은 단지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음속 울림으로 나아가는 존재다.
작가 소개
안리타
2017년부터 "모든 순간을 기록한다"는 신조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며 독자들과 깊은 공감대를 형성해 왔습니다. 화려함이나 유행보다는 초심을 잊지 않고, 첫 책을 썼던 마음가짐으로 글을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이, 별의 사각지대』, 『사라지는, 살아지는』, 『구겨진 편지는 고백하지 않는다』,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우리가 우리이기 이전에』, 『사랑이 사랑이기 이전에』, 『리타의 정원』, 『쓸 수 없는 문장들』, 『한때 내게 삶이었던』 『마음이 부는 곳』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을 통해 삶의 다양한 순간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독자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안리타 작가는 글쓰기 수업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며, 글쓰기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hollossi)에서는 일상과 글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안리타 작가의 작품과 활동은 독립출판 서적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그녀의 글은 삶의 통찰력과 따뜻한 위로를 전해줍니다.
instagram @hollos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