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야일기
북위 71° 17' 26", 서경 156° 47' 19"에 위치한 미국 최북단 마을. 옛 이름은 배로우 Barrow. 현재 이름은 원주민들의 언어인 이뉴피악으로 “우리가 눈부엉이를 사냥하는 곳”이라는 뜻의 우트키야비크 Utqiaġvik. 인구 약 4,500명. 에스키모(이뉴피아트)들이 천 년이 넘게 살아온 곳. 해마다 5월 10일 경부터 8월 2일 경까지 80일 이상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되며, 11월 18일 경부터 1월 22일 경까지는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60일 이상 계속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 마을에서 극야 65일간의 밤을 보내며 애도하고 어둠 속의 빛을 바라보는 사진 일기.
고요한 어둠 속을 건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빛을 건네는 책, 『극야일기』는 미대륙 최북단인 알래스카 배로우(Barrow)에서 65일간의 극야(極夜) 기간 동안, 깊은 어둠속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애도를 응시한 포토 에세이다.
작가 김민향은 어떤 상실도, 어떤 슬픔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별빛과 오로라, 박명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기록했다. 파도 모양 그대로 얼어붙은 북극해와 하늘빛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눈덮인 극야의 벌판, 블리자드 등 다른 행성에 있는 듯한 150여 장의 사진들이 애도의 마음을 담아낸다.
특히 고양이 ‘찌부’와의 일상을 함께 담아낸 이 책은,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앞둔 이들에게도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건넬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극야
백야
에필로그: 애도의 깊이
책 속으로
pp. 14
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15분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또 상황이 허락한다면, 밤이 65일 동안 계속되는 이곳의 어둠 속에 들어와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했었다. 알래스카는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엄청난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다. 특히 이 북쪽 끝은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우주의 신비가 목격되는 곳이다. 나는 그런 엄청난 자연과 우주의 신비가 일상에서 느껴지는 곳에서, 그 어둠 속에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살아계심과 삶과 상실과 영원에 대해, 슬픔에 대해, 어둠 속의 빛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극야. 과연 계속되는 밤 속의 빛은 무엇일까. 그 어둠은 어떤 것일까. 태양의 직접적인 빛이 없는 짧은 낮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내게 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윌리엄 켄트리지 William Kentridge는 “시간의 거부 Refusal of Time”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는데, 태양이 거의 똑같은 시간에 아침에 떠서 중천에 떠올라 세상을 희고 평평하게 비추는 한낮은 내게는 어떤 질서에의 강요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시간을 측정된 시간으로만 생각한다. 1분, 10분, 1시간. 시간이 흘러가는 걸 바라볼 수가 없다. 지구상의 24개의 시간대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편의상? 사실 편의 그 이상의 의미이겠지만, 역사적인 얘기나 정치적인 얘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도시는 모든 동물을 가축화하고 모든 식물, 모든 나무들까지 가축화했다. 도시에서는 나무들이 건물 틈 사이에 세들어 살 듯 존재한다. 어쩌면 그렇게 시간도 가축화되었다. 그리고 가축화된 시간은 폭력적이다.
pp. 167
2023년 1월 23일 월요일
오늘이 해 뜨는 날인데 계속 흐리고 소낙눈이 내렸다. 일출은 오후 1시 3분이지만 오전 11시쯤 설레는 마음으로 동쪽 벌판에 미리 가봤다. 세상이 이미 환해졌다. 오후 1시 3분 일출. 오후 2시 15분 일몰. 1시간 11분의 짧은 낮. 구름이 가득하고 소낙눈이 내리는데 희미하고 맑은 분홍색 증기 같은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살짝 옮겨가며 사라졌다. 일출과 그 바로 옆에서의 일몰. 하늘의 빛깔이 여전히 눈 위에 비쳐 서로 감싸안는 것 같은 겨울의 공간. 작은 성냥불 같은 태양, 환영해. 오랜만이야.
pp. 187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오후 6시 47분
오로라가 내 마음을, 나를 알았다.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상냥하고 거대한 빛이 넌 누구지? 하고 고개를 쓱 숙여 기다랗게 나부끼는 속눈썹 너머로 사슴 같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처음 바라본 것 같다.그리고 한 마디 말도 더는 하지 않았지만 레이디 오로라는 온몸에 통점이 있는 해파리처럼 온몸이 감각하는 빛처럼, 말하는 빛처럼, 입을 움직이지 않아도, 선명한 발성기관처럼, 나를 슬쩍 알아보고 장난스레 웃어주었다.웃으며 온몸의 모양을 순식간에 바꾸며 이 지평선에서 저 지평선까지 휘리릭 넘나들며 새로운 언어를 보여주었다.아가야 슬퍼하지 마라
우리는 모두 빛이란다
너의 무게는 너의 것이 아니란다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하얀 너를 보렴
너도, 네 부모님의 영혼도 모두 빛이란다
저자 소개
김민향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과정을, 동국대학교에서 영화 전공 석사과정을, New York University Tisch School of the Arts 대학원에서 영화학 석사과정을 마쳤지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Yellow Door: ′90s Lo-fi Film Club>(2023, 이혁래 감독)에 나오는 노란문 영화연구소에서 영화를,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의 맨해튼 거리에서 사진을 배웠다.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림과 동판화, 사진과 작은 동영상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 뉴욕 시절의 기억과 작은 영화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뉴욕, 기억의 에스노그래피(1995~2019)>(2019, 아모르문디)가 있으며, 2024년 1월에 개인 사진전 <빛의 길 The Light Has Come>(인영갤러리)을 열었다.



























극야일기
북위 71° 17' 26", 서경 156° 47' 19"에 위치한 미국 최북단 마을. 옛 이름은 배로우 Barrow. 현재 이름은 원주민들의 언어인 이뉴피악으로 “우리가 눈부엉이를 사냥하는 곳”이라는 뜻의 우트키야비크 Utqiaġvik. 인구 약 4,500명. 에스키모(이뉴피아트)들이 천 년이 넘게 살아온 곳. 해마다 5월 10일 경부터 8월 2일 경까지 80일 이상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계속되며, 11월 18일 경부터 1월 22일 경까지는 해가 뜨지 않는 극야가 60일 이상 계속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 마을에서 극야 65일간의 밤을 보내며 애도하고 어둠 속의 빛을 바라보는 사진 일기.
고요한 어둠 속을 건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빛을 건네는 책, 『극야일기』는 미대륙 최북단인 알래스카 배로우(Barrow)에서 65일간의 극야(極夜) 기간 동안, 깊은 어둠속에서 삶과 죽음, 사랑과 애도를 응시한 포토 에세이다.
작가 김민향은 어떤 상실도, 어떤 슬픔도,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음을 이야기하며, 별빛과 오로라, 박명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속에서 이 세상을 떠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담담하고 서정적으로 기록했다. 파도 모양 그대로 얼어붙은 북극해와 하늘빛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눈덮인 극야의 벌판, 블리자드 등 다른 행성에 있는 듯한 150여 장의 사진들이 애도의 마음을 담아낸다.
특히 고양이 ‘찌부’와의 일상을 함께 담아낸 이 책은,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앞둔 이들에게도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건넬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극야
백야
에필로그: 애도의 깊이
책 속으로
pp. 14
2022년 11월 20일 일요일/ 오후 2시 15분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또 상황이 허락한다면, 밤이 65일 동안 계속되는 이곳의 어둠 속에 들어와 어머니를 생각해야지, 했었다. 알래스카는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엄청난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다. 특히 이 북쪽 끝은 사람이 어찌해 볼 수 없는 우주의 신비가 목격되는 곳이다. 나는 그런 엄청난 자연과 우주의 신비가 일상에서 느껴지는 곳에서, 그 어둠 속에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살아계심과 삶과 상실과 영원에 대해, 슬픔에 대해, 어둠 속의 빛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다.
극야. 과연 계속되는 밤 속의 빛은 무엇일까. 그 어둠은 어떤 것일까. 태양의 직접적인 빛이 없는 짧은 낮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내게 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윌리엄 켄트리지 William Kentridge는 “시간의 거부 Refusal of Time”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는데, 태양이 거의 똑같은 시간에 아침에 떠서 중천에 떠올라 세상을 희고 평평하게 비추는 한낮은 내게는 어떤 질서에의 강요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시간을 측정된 시간으로만 생각한다. 1분, 10분, 1시간. 시간이 흘러가는 걸 바라볼 수가 없다. 지구상의 24개의 시간대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편의상? 사실 편의 그 이상의 의미이겠지만, 역사적인 얘기나 정치적인 얘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도시는 모든 동물을 가축화하고 모든 식물, 모든 나무들까지 가축화했다. 도시에서는 나무들이 건물 틈 사이에 세들어 살 듯 존재한다. 어쩌면 그렇게 시간도 가축화되었다. 그리고 가축화된 시간은 폭력적이다.
pp. 167
2023년 1월 23일 월요일
오늘이 해 뜨는 날인데 계속 흐리고 소낙눈이 내렸다. 일출은 오후 1시 3분이지만 오전 11시쯤 설레는 마음으로 동쪽 벌판에 미리 가봤다. 세상이 이미 환해졌다. 오후 1시 3분 일출. 오후 2시 15분 일몰. 1시간 11분의 짧은 낮. 구름이 가득하고 소낙눈이 내리는데 희미하고 맑은 분홍색 증기 같은 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살짝 옮겨가며 사라졌다. 일출과 그 바로 옆에서의 일몰. 하늘의 빛깔이 여전히 눈 위에 비쳐 서로 감싸안는 것 같은 겨울의 공간. 작은 성냥불 같은 태양, 환영해. 오랜만이야.
pp. 187
2023년 2월 2일 목요일 /오후 6시 47분
오로라가 내 마음을, 나를 알았다. 알게 되었다. 엄청나게 상냥하고 거대한 빛이 넌 누구지? 하고 고개를 쓱 숙여 기다랗게 나부끼는 속눈썹 너머로 사슴 같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처음 바라본 것 같다.그리고 한 마디 말도 더는 하지 않았지만 레이디 오로라는 온몸에 통점이 있는 해파리처럼 온몸이 감각하는 빛처럼, 말하는 빛처럼, 입을 움직이지 않아도, 선명한 발성기관처럼, 나를 슬쩍 알아보고 장난스레 웃어주었다.웃으며 온몸의 모양을 순식간에 바꾸며 이 지평선에서 저 지평선까지 휘리릭 넘나들며 새로운 언어를 보여주었다.아가야 슬퍼하지 마라
우리는 모두 빛이란다
너의 무게는 너의 것이 아니란다
공중에 가볍게 떠 있는 하얀 너를 보렴
너도, 네 부모님의 영혼도 모두 빛이란다
저자 소개
김민향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 학사과정을, 동국대학교에서 영화 전공 석사과정을, New York University Tisch School of the Arts 대학원에서 영화학 석사과정을 마쳤지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 Yellow Door: ′90s Lo-fi Film Club>(2023, 이혁래 감독)에 나오는 노란문 영화연구소에서 영화를,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의 맨해튼 거리에서 사진을 배웠다.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림과 동판화, 사진과 작은 동영상으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 뉴욕 시절의 기억과 작은 영화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뉴욕, 기억의 에스노그래피(1995~2019)>(2019, 아모르문디)가 있으며, 2024년 1월에 개인 사진전 <빛의 길 The Light Has Come>(인영갤러리)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