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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의 철학
“금붕어는 어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포스트-구조주의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
우리가 아는 세계는 종언을 고했다. 생태학적 재앙에 가까운 기후위기, 파행을 거듭하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 모든 위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현실을 디스토피아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무엇이고, 이러한 위기의 조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이 책 『금붕어의 철학: 알튀세르, 푸코, 버틀러와 함께 어항에서 빠져나오기』(이하 『금붕어의 철학』)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책의 부제가 던지는 도발적인 화두, 즉 “금붕어는 어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주체와 권력, 이데올로기와 현실, 담론과 실재라는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포스트-구조주의의 틀 안에서 어떻게 뒤엉키고, 또 풀릴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철학이 정치적 실천과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과연 어항 바깥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어항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금붕어의 철학』은 현대 프랑스철학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이고 급진적인 흐름인 포스트-구조주의를 다룬다.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를 중심으로 설명을 전개하지만, 개별 사상가들의 생애랄지 핵심 개념들에 대한 정의랄지를 나열하며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사상 전체를, 조금 더 넓게는 현대 프랑스철학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하나의 핵심 관념으로서 주체와 권력이라는 개념쌍을 전제하고 이 세 사상가를 해제한다. 분명 논리적 순환성이 있는 방식이지만, 저자는 이 책이 연구서가 아니라 입문서임을 감안하여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할 수 있도록 이를 감수한다.
이 책은 강의록 형식으로, 모두 다섯 번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강의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기호와 텍스트, 그리고 규범에 관해 설명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강의에서는 순서대로 버틀러, 알튀세르, 푸코의 사유와 함께 주체와 권력이라는 개념쌍에 관해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에서는 현행성과 정치 또는 저항, 즉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의 결론을 설명한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우리는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에 인간, 사회, 세계, 즉 존재와 역사를 사유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 요체는 바로 반본질주의, 반실증주의, 반실체론, 반경험주의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금붕어의 철학』은 입문서도 전문서도 아니다(입문서라기엔 까다롭고 전문서라기엔 평이하다). 오히려 그 사이를 교란하며,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오늘날 지금 여기 우리가 놓여 있는 이 현실’로 환언할 수 있는 ‘현행성’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포스트-구조주의는 우리가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저항할 수 있으며, 다른 현실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여기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품은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유효할 것이다. 그것이 동시대의 언어로 말하는 철학의 정치성이고,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이 책 자체도 포스트-구조주의적이다. 『금붕어의 철학』은 단지 사상을 소개하지 않고 사유의 실천을 요청한다. “바깥은 없다. 다만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이 있을 뿐.” 이 책은 그 ‘지금 여기’를 새롭게 사유하게 만드는 독특한 철학적 입문서이자, 절실한 시대의 요청이다.
저자 배세진은 정치철학자이자 문화연구자다. 연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을 거쳐, 프랑스 파리-시테 대학교에서 푸코와 마르크스에 관한 연구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철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문화연구의 접면에서 동시대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번역해 온 실천가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마르크스의 철학』, 『자본을 읽자』(공역) 등 다수의 이론서를 번역했으며, 이 책 『금붕어의 철학』은 그의 첫 단독 저작이다. 충실한 본문에 더해 부록으로 인문사회과학에서 공부와 번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현대 프랑스철학 입문자가 더 읽어 보면 좋을 책들도 제시하고 있어 더욱 풍성한 책이 되었다.
목차
들어가며
첫 번째 강의
○ 기호와 텍스트, 그리고 규범에 관한 사유로서 포스트-구조주의
두 번째 강의
○ 담론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주디스 버틀러의 포스트-구조주의
세 번째 강의
○ 루이 알튀세르의 포스트-구조주의
네 번째 강의
○ 미셸 푸코의 포스트-구조주의
다섯 번째 강의
○ 오늘날 지금 여기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나가며
미주
부록 1: 인문사회과학에서 ‘공부’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록 2: 인문사회과학에서 ‘번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록 3: 현대 프랑스철학 입문자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책 속으로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에 관한 다섯 번의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합니다. 읽고 확인할 수 있겠지만, 우선 이 책은 현대 프랑스철학 전체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현대 프랑스철학의 가장 중심적인 조류인 포스트-구조주의만을 다룹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포스트-구조주의의 개별 사상가들에 대한 기초적인 입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입문서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이 사상가들의 생애랄지 핵심 개념들에 대한 정의랄지 이런 것들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부제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사상가인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 P.5
『개념의 정념들』 서문과 7장 “철학과 현행성: 사건을 넘어서?”에서 발리바르는 포스트-구조주의, 더 나아가 현대 프랑스철학을 두 가지 사유 경향으로 도식적으로 구분하죠. 첫 번째 경향은 알튀세르, 푸코, 버틀러, 그리고 암묵적이긴 하지만 발리바르 자신 또한 포함하는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을 행하는 포스트-구조주의이고, 두 번째 경향은 데리다, 들뢰즈, 그리고 바디우를 포함하는 ‘사건의 철학’을 행하는 포스트-구조주의죠.
- P.47
포스트-구조주의는 나의 동일성의 유래라는 문제를 주체와 권력 간 순환성, 다르게 표현하면 주체와 상황 간 순환성이라는 역설로 치환합니다. 즉, 알튀세르식으로 표현하면 나의 동일성은 어디에서 오는지의 문제를 ‘누가 호명하는가?’의 문제로, ‘주체의 역설’로 치환하는 것입니다. 〈인셉션〉의 관점에서 질문해 보자면,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특정 관념을 외부에서 적절히 심을 수 있는가? 특히 이 ‘나’라는 관념을 말입니다.
- P.136
여기에서 ‘재생산’이라는 쟁점이 제기되는데요. 버틀러가 『윤리적 폭력 비판』에서 강조하듯 권력의 입장에서도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주체를 만드는 것은 권력이지만 마찬가지로 권력을 만드는 것 또한 주체이기에 권력이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주체가 재생산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권력은 자신을 생명으로서 재생산하기 위해 타자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타자가 바로 주체이고요. 권력은 주체를 경유해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 P.217
과천연구실이 알튀세르의 철학적 궤도에서 강조하는 바는 알튀세르의 지적 기획 전체의 목표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함으로써 이를 ‘갱신’ 또는 더욱 강하게 말해 ‘쇄신’하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과천연구실은 알튀세르를 포스트-구조주의자보다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재확립하고자 하는데요. 당연히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면적인 해석이라고는 할 수 있고, 특히 포스트-구조주의자인 저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죠.
- P.234
이데올로기는 인식과 역사에서, 과학과 구조에서, 다름 아닌 정치에서 ‘아르케(arche)’와 ‘텔로스(telos)’, 즉 ‘기원’과 ‘목적’을 파면시킵니다. 이데올로기가 신체를 가진 인간이 세계와 맺는 상상적 관계를 살아가는 것 그 자체, 그러한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원과 목적이 파면된 자리에는 ‘공백’이, ‘무’가 존재합니다. 알튀세르가 지적하듯 이데올로기는 공백을 싫어하기에, 이 공백을 메우고자 끊임없이 퍼져 나갑니다. 이데올로기와 공백은 서로가 서로를 채워 주는 것이죠. 바로 이 이데올로기와 공백의 존재로 인해 역사에는 우연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요.
- P.288
우리가 다룰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이란, 철학사에 대한 주석으로서의 철학과 달리 지극히 정치적인 철학, 정치를 사유하는 철학, 더 정확히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치를 사유하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포스트-구조주의는 독특한 의미에서 철두철미 ‘정치적’입니다. 그 안에 놓여 있는 알튀세르의 포스트-구조주의의 결론은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치를 사유하는 철학,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이고, 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호명과 주체 개념을 나름의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벼려 냈던 것이고요. 역시 이번에도 문제는 주체, 주체화, 예속화, 예속(적 주체)화였습니다.
- P.323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는 달리 과학보다는 윤리와 정치에 훨씬 더 강하게 정향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후기 푸코가 포스트-구조주의자로서 나아간 방향이에요. 예를 들면 한때 사도마조히즘에도 천착한 적 있었던 푸코가 후기에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어떻게 윤리적 주체의 형성을 사유하고 실천했는지 탐구했던 이유는 그 주체화 혹은 주체성의 한계를 사유하기 위해서, 결국에는 정치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그 한계를 비판하고 넘어서기 위해서예요.
- P.341
저는 오늘날 지금 여기의 우리, 그러니까 동시대 우리의 현행성이 ‘삼중의 위기’와 이로 인한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후위기와 생태학적 재앙의 심각성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강의 중간에 이에 대해 논하는데요. 삼중의 위기는 기후위기를 포함해 자본주의의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일컫는 것입니다. 저의 독창적인 생각은 당연히 아닙니다. 많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그리고 언론인들이 이러한 삼중의 위기의 도래를 깊이 절감하며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 P.400
눈에 보이는 실재라는 협의의 물질을 잡아 비틀어 이를 변형하는 것만이 정치이고 저항이고 혁명이라는 겁박, ‘눈에 보이는 것이라는 헛것’에 속아선 안 됩니다. 담론 바깥의 ‘실재’란 없습니다. 우리는 담론 안의 예속된 주체이고 그러한 주체로서 담론 ‘바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입니다. 이것과 다른 정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깥이란 없습니다. 그저 오늘날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이 있을 뿐입니다.
저자 소개
배세진
1988년 서울 출생. 정치철학자이자 문화연구자.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의 재구성: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시테 대학교(구舊 파리-디드로 7대학) 사회과학대학의 ‘사회학 및 정치철학’ 학과에서 푸코와 마르크스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같은 대학원 같은 학과 정치철학 전공에서 이를 발전시킨 논문 Monnaie et foucaldo-marxisme: Valeur-travail, fétichisme, relation de pouvoir et subjectivation(푸코-마르크스주의와 화폐: 노동-가치, 물신숭배, 권력관계 그리고 주체화)으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매체와예술 연구소 연구원이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 강사이다.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비데, 피에르 마슈레, 피에르 부르디외, 주디스 버틀러의 현대 프랑스 정치철학을 사회과학 내 문화연구의 틀에서 연구·번역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무엇을 할 것인가?』, 『검은 소』, 『역사에 관한 글들』(공역),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 『역사유물론 연구』, 『개념의 정념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등의 『『자본』을 읽자』(공역), 제라르 뒤메닐·엠마뉘엘 르노·미카엘 뢰비의 『마르크스주의 100단어』와 『마르크스를 읽자』(공역), 비데의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과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 푸코의 『바깥의 사유』(근간), 피에르 부르디외·로제 샤르티에의 『사회학자와 역사학자』(공역), 프레데릭 그로의 『미셸 푸코』, 폴린 그로장의 『가부장 자본주의』 등을 옮겼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평생 읽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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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붕어의 철학
“금붕어는 어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포스트-구조주의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
우리가 아는 세계는 종언을 고했다. 생태학적 재앙에 가까운 기후위기, 파행을 거듭하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이 모든 위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현실을 디스토피아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무엇이고, 이러한 위기의 조건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이 책 『금붕어의 철학: 알튀세르, 푸코, 버틀러와 함께 어항에서 빠져나오기』(이하 『금붕어의 철학』)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책의 부제가 던지는 도발적인 화두, 즉 “금붕어는 어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주체와 권력, 이데올로기와 현실, 담론과 실재라는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포스트-구조주의의 틀 안에서 어떻게 뒤엉키고, 또 풀릴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철학이 정치적 실천과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과연 어항 바깥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어항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금붕어의 철학』은 현대 프랑스철학 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이고 급진적인 흐름인 포스트-구조주의를 다룬다.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를 중심으로 설명을 전개하지만, 개별 사상가들의 생애랄지 핵심 개념들에 대한 정의랄지를 나열하며 제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포스트-구조주의라는 사상 전체를, 조금 더 넓게는 현대 프랑스철학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하나의 핵심 관념으로서 주체와 권력이라는 개념쌍을 전제하고 이 세 사상가를 해제한다. 분명 논리적 순환성이 있는 방식이지만, 저자는 이 책이 연구서가 아니라 입문서임을 감안하여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할 수 있도록 이를 감수한다.
이 책은 강의록 형식으로, 모두 다섯 번의 강의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강의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기호와 텍스트, 그리고 규범에 관해 설명하고,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강의에서는 순서대로 버틀러, 알튀세르, 푸코의 사유와 함께 주체와 권력이라는 개념쌍에 관해 설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에서는 현행성과 정치 또는 저항, 즉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의 결론을 설명한다. 이러한 여정을 통해 우리는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에 인간, 사회, 세계, 즉 존재와 역사를 사유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 요체는 바로 반본질주의, 반실증주의, 반실체론, 반경험주의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금붕어의 철학』은 입문서도 전문서도 아니다(입문서라기엔 까다롭고 전문서라기엔 평이하다). 오히려 그 사이를 교란하며,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오늘날 지금 여기 우리가 놓여 있는 이 현실’로 환언할 수 있는 ‘현행성’이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포스트-구조주의는 우리가 여전히 그리고 충분히 저항할 수 있으며, 다른 현실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여기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품은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유효할 것이다. 그것이 동시대의 언어로 말하는 철학의 정치성이고, 바로 그러한 점에서 이 책 자체도 포스트-구조주의적이다. 『금붕어의 철학』은 단지 사상을 소개하지 않고 사유의 실천을 요청한다. “바깥은 없다. 다만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이 있을 뿐.” 이 책은 그 ‘지금 여기’를 새롭게 사유하게 만드는 독특한 철학적 입문서이자, 절실한 시대의 요청이다.
저자 배세진은 정치철학자이자 문화연구자다. 연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과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을 거쳐, 프랑스 파리-시테 대학교에서 푸코와 마르크스에 관한 연구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철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문화연구의 접면에서 동시대 담론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번역해 온 실천가다. 『무엇을 할 것인가?』, 『마르크스의 철학』, 『자본을 읽자』(공역) 등 다수의 이론서를 번역했으며, 이 책 『금붕어의 철학』은 그의 첫 단독 저작이다. 충실한 본문에 더해 부록으로 인문사회과학에서 공부와 번역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현대 프랑스철학 입문자가 더 읽어 보면 좋을 책들도 제시하고 있어 더욱 풍성한 책이 되었다.
목차
들어가며
첫 번째 강의
○ 기호와 텍스트, 그리고 규범에 관한 사유로서 포스트-구조주의
두 번째 강의
○ 담론주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주디스 버틀러의 포스트-구조주의
세 번째 강의
○ 루이 알튀세르의 포스트-구조주의
네 번째 강의
○ 미셸 푸코의 포스트-구조주의
다섯 번째 강의
○ 오늘날 지금 여기의 철학이란 무엇인가?
나가며
미주
부록 1: 인문사회과학에서 ‘공부’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록 2: 인문사회과학에서 ‘번역’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록 3: 현대 프랑스철학 입문자는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책 속으로
포스트-구조주의 사상에 관한 다섯 번의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합니다. 읽고 확인할 수 있겠지만, 우선 이 책은 현대 프랑스철학 전체가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현대 프랑스철학의 가장 중심적인 조류인 포스트-구조주의만을 다룹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포스트-구조주의의 개별 사상가들에 대한 기초적인 입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입문서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이 사상가들의 생애랄지 핵심 개념들에 대한 정의랄지 이런 것들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부제에 등장하는 세 명의 사상가인 루이 알튀세르, 미셸 푸코, 주디스 버틀러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 P.5
『개념의 정념들』 서문과 7장 “철학과 현행성: 사건을 넘어서?”에서 발리바르는 포스트-구조주의, 더 나아가 현대 프랑스철학을 두 가지 사유 경향으로 도식적으로 구분하죠. 첫 번째 경향은 알튀세르, 푸코, 버틀러, 그리고 암묵적이긴 하지만 발리바르 자신 또한 포함하는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을 행하는 포스트-구조주의이고, 두 번째 경향은 데리다, 들뢰즈, 그리고 바디우를 포함하는 ‘사건의 철학’을 행하는 포스트-구조주의죠.
- P.47
포스트-구조주의는 나의 동일성의 유래라는 문제를 주체와 권력 간 순환성, 다르게 표현하면 주체와 상황 간 순환성이라는 역설로 치환합니다. 즉, 알튀세르식으로 표현하면 나의 동일성은 어디에서 오는지의 문제를 ‘누가 호명하는가?’의 문제로, ‘주체의 역설’로 치환하는 것입니다. 〈인셉션〉의 관점에서 질문해 보자면,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야 특정 관념을 외부에서 적절히 심을 수 있는가? 특히 이 ‘나’라는 관념을 말입니다.
- P.136
여기에서 ‘재생산’이라는 쟁점이 제기되는데요. 버틀러가 『윤리적 폭력 비판』에서 강조하듯 권력의 입장에서도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주체를 만드는 것은 권력이지만 마찬가지로 권력을 만드는 것 또한 주체이기에 권력이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주체가 재생산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권력은 자신을 생명으로서 재생산하기 위해 타자를 경유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타자가 바로 주체이고요. 권력은 주체를 경유해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 P.217
과천연구실이 알튀세르의 철학적 궤도에서 강조하는 바는 알튀세르의 지적 기획 전체의 목표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함으로써 이를 ‘갱신’ 또는 더욱 강하게 말해 ‘쇄신’하는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과천연구실은 알튀세르를 포스트-구조주의자보다는 마르크스주의자로 재확립하고자 하는데요. 당연히 틀린 해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면적인 해석이라고는 할 수 있고, 특히 포스트-구조주의자인 저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죠.
- P.234
이데올로기는 인식과 역사에서, 과학과 구조에서, 다름 아닌 정치에서 ‘아르케(arche)’와 ‘텔로스(telos)’, 즉 ‘기원’과 ‘목적’을 파면시킵니다. 이데올로기가 신체를 가진 인간이 세계와 맺는 상상적 관계를 살아가는 것 그 자체, 그러한 세계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원과 목적이 파면된 자리에는 ‘공백’이, ‘무’가 존재합니다. 알튀세르가 지적하듯 이데올로기는 공백을 싫어하기에, 이 공백을 메우고자 끊임없이 퍼져 나갑니다. 이데올로기와 공백은 서로가 서로를 채워 주는 것이죠. 바로 이 이데올로기와 공백의 존재로 인해 역사에는 우연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요.
- P.288
우리가 다룰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이란, 철학사에 대한 주석으로서의 철학과 달리 지극히 정치적인 철학, 정치를 사유하는 철학, 더 정확히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치를 사유하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포스트-구조주의는 독특한 의미에서 철두철미 ‘정치적’입니다. 그 안에 놓여 있는 알튀세르의 포스트-구조주의의 결론은 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치를 사유하는 철학, 구조로서 현행성의 철학이고, 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호명과 주체 개념을 나름의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벼려 냈던 것이고요. 역시 이번에도 문제는 주체, 주체화, 예속화, 예속(적 주체)화였습니다.
- P.323
포스트-구조주의는 구조주의와는 달리 과학보다는 윤리와 정치에 훨씬 더 강하게 정향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것이 바로 후기 푸코가 포스트-구조주의자로서 나아간 방향이에요. 예를 들면 한때 사도마조히즘에도 천착한 적 있었던 푸코가 후기에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어떻게 윤리적 주체의 형성을 사유하고 실천했는지 탐구했던 이유는 그 주체화 혹은 주체성의 한계를 사유하기 위해서, 결국에는 정치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그 한계를 비판하고 넘어서기 위해서예요.
- P.341
저는 오늘날 지금 여기의 우리, 그러니까 동시대 우리의 현행성이 ‘삼중의 위기’와 이로 인한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후위기와 생태학적 재앙의 심각성을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모든 강의 중간에 이에 대해 논하는데요. 삼중의 위기는 기후위기를 포함해 자본주의의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일컫는 것입니다. 저의 독창적인 생각은 당연히 아닙니다. 많은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그리고 언론인들이 이러한 삼중의 위기의 도래를 깊이 절감하며 연구하고 그 결과를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 P.400
눈에 보이는 실재라는 협의의 물질을 잡아 비틀어 이를 변형하는 것만이 정치이고 저항이고 혁명이라는 겁박, ‘눈에 보이는 것이라는 헛것’에 속아선 안 됩니다. 담론 바깥의 ‘실재’란 없습니다. 우리는 담론 안의 예속된 주체이고 그러한 주체로서 담론 ‘바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정치입니다. 이것과 다른 정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깥이란 없습니다. 그저 오늘날 지금 여기의 시간과 공간이 있을 뿐입니다.
저자 소개
배세진
1988년 서울 출생. 정치철학자이자 문화연구자.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론의 재구성: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논의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시테 대학교(구舊 파리-디드로 7대학) 사회과학대학의 ‘사회학 및 정치철학’ 학과에서 푸코와 마르크스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같은 대학원 같은 학과 정치철학 전공에서 이를 발전시킨 논문 Monnaie et foucaldo-marxisme: Valeur-travail, fétichisme, relation de pouvoir et subjectivation(푸코-마르크스주의와 화폐: 노동-가치, 물신숭배, 권력관계 그리고 주체화)으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매체와예술 연구소 연구원이자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미디어문화연구 전공 강사이다.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비데, 피에르 마슈레, 피에르 부르디외, 주디스 버틀러의 현대 프랑스 정치철학을 사회과학 내 문화연구의 틀에서 연구·번역하고 있다. 알튀세르의 『무엇을 할 것인가?』, 『검은 소』, 『역사에 관한 글들』(공역),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 『역사유물론 연구』, 『개념의 정념들』,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등의 『『자본』을 읽자』(공역), 제라르 뒤메닐·엠마뉘엘 르노·미카엘 뢰비의 『마르크스주의 100단어』와 『마르크스를 읽자』(공역), 비데의 『마르크스의 생명정치학』과 『마르크스와 함께 푸코를』, 푸코의 『바깥의 사유』(근간), 피에르 부르디외·로제 샤르티에의 『사회학자와 역사학자』(공역), 프레데릭 그로의 『미셸 푸코』, 폴린 그로장의 『가부장 자본주의』 등을 옮겼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평생 읽을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