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간주행
‘나는 잠들기 위해 끊임없이 어디론가 달려갔던 겁니다’
[야간주행]은 책과 음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겪은 불면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긴 글과 6곡의 음원으로 엮어냅니다
“한동안 떠나 있었고 한동안 준비했고 한동안 사느라 질질 끌었고 한동안 접었다 그동안 한 게 덕이라 그동안을 이리 냅니다
무엇이 주인지 부인지 따져 묻는 게 싫어서 그냥 두 개가 합쳐진 게 하나라 말하겠어요
무엇에 무엇을 끼워파는 모양새가 싫어 각기 다르게 발표하지만 둘은 한 사람입니다
추운 겨울날 들었으면 했는데 어느새 꽃이 피어 될 대로 되어버려도 괜찮겠어요
책을 다 읽고 음반을 들었으면 하지만 그것도 아무려면 어때요
무엇이든 얻을 게 있으면 가지시고 나눌 게 있으면 나눕시다
잘 밤에 어디론가 헤매지 마시고 단꿈 꾸세요”
이젠 생존에도 핑계가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36p)
찬찬히 나열하여 미세하게 빠져나가는 호흡 (39p)
잠형으로 시작한다
깊이 숨을 머금고 수면 아래로 미끄러지듯 전진한다
수면 위로 보이는 게 없도록
물과 나는 비밀을 공유한 채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기민하다
시선을 아래로 박고 수영장 바닥의 규칙적이고 단정한 타일의 행렬을 응시한다
머리 뒤쪽으로 쭉 뻗은 팔은 가볍게 아래위로 흔들리고 보드랍게 차올린 다리는 낌새도 없이 차분하다
수면 밖의 난잡한 소음은 일시에 차단되고 이명처럼 고막에 달라붙은 저주파 음들이 공명한다
진공
달리 체험할 수 없었던 진공의 세계는 지금이다
사지에 밀도 높은 기포가 알알이 돋아난다
찬찬히 나열하여 미세하게 빠져나가는 호흡
손끝으로 갈라져 몸 전체로 쓸려나가는 물길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물보라를 일으켜 그리도 단단해 보이던 물의 결정을 갈라 나가는 횟수를 찬찬히 센다
이럴 때면 현실의 통로를 지나 환상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것은 깊이 숨을 고르고 숨을 죽여 가장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수면의 통로와 닮았다 (39p)“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고 푸르고 푸른 물 위를 쉼 없이 저어 나가는 상상을 하곤 했지요
그러다 보면 곧잘 수면 속으로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수영장 풀 한가운데서 열렬히 유영해가던 나는 벽을 차기도, 허공에 팔을 저어대기도 했다고
그 사람이 말합디다
(중략)
물살을 가르는 단조로운 움직임과 파랗게 산란하는 수면은 나한테는 평온의 상징과도 같은 거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 상상으로도 도저히 수면 아래로 잠길 수 없습니다
계속 떠올라 도무지 잠기지가 않습디다 (44p)과연 적절하고, 적당한 인간은 어떻게 될수 있는 겁니까 (58p)
우리는 한날한시에 태어나고 각자의 삶대로 흘러 이렇게 불행의 고지에서 다시 한번 겹쳐진다 (74p)
“이놈의 입방정이 문제인 겁니다
너무 앞서 말해버렸고 생은 그 뒤를 따랐지요
내가 뱉은 말을 따라 돌진하는 경주마라도 된 것처럼 말이죠” (76p)백야처럼 휘황찬란한 나의 밤은 증발한 지난 십 년을 되짚어가기 딱 좋은 등불이 되어 주었죠
그러면 그 한밤의 질주가 시작됩니다
머릿속은 훤하게 불을 밝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그저 달려 나갑니다
흐릿하게 빛바랜 걸 쫒아가는 게 그리움이던가요 (98p)거울 하나가 조명 하나가 나이 하나가 부재 하나가 이리도 크게 나를 변신시킬 줄 생각도 못 했다
여기로 이사한 후 매일 나는 나의 실체와 마주해야 했다
이곳에서 오직 나만을 비춰내야 했을 녀석은 모든 것을 낱낱이 고발한다
과거의 내가 실체인지 지금의 이 모습이 실체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저 앞의 늙고 후진 사내는 멀쩡히도 나를 따라 한다
세면대 언저리로 추락한 수많은 머리칼은 이 삶을 증명하는 나의 비명이다
그때도 오늘도 같은 얼굴은 다르게 담긴다 (131p)내가 살려고
날마다 성토했습니다
빌었습니다
글로 공들여 비는 마음이 성스러운 곳에서 간곡히 기도하는 마음처럼 무거웠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의 치매 소식을 들었지요
기억의 편린들이 마구 헤집어진 채로 살아갈 아비가
아무것도 잊질 못하는 나와 너무 달라 못내 북받쳐 옵니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튕겨 오른 공은 저 높이 한참을 올랐다 다시 바닥으로 다시 위로 다시
아직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낙하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타락할까 봐 두렵다 했습니다
나는 타락하지 않고 추락한 겁니다
그저 밑도 끝도 없는 시절로 떨어진 겁니다
눈감지 못하는 세계로 일제히 쏟아져 내린 겁니다 (229p)
목차
시작하며
꿈
머리맡
수면
외출
관계
빈 집
울고 있는 자
선택
이별
공백
북아현동
제일 좋은 곳
절망의 남쪽
저수지
불면
팔베개
야간주행
채비
좋은 나라
슬픈 노래
그 사람
우리는
하도, 유랑의 별
맺으며
야간주행 노랫말








야간주행
‘나는 잠들기 위해 끊임없이 어디론가 달려갔던 겁니다’
[야간주행]은 책과 음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가 겪은 불면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를 긴 글과 6곡의 음원으로 엮어냅니다
“한동안 떠나 있었고 한동안 준비했고 한동안 사느라 질질 끌었고 한동안 접었다 그동안 한 게 덕이라 그동안을 이리 냅니다
무엇이 주인지 부인지 따져 묻는 게 싫어서 그냥 두 개가 합쳐진 게 하나라 말하겠어요
무엇에 무엇을 끼워파는 모양새가 싫어 각기 다르게 발표하지만 둘은 한 사람입니다
추운 겨울날 들었으면 했는데 어느새 꽃이 피어 될 대로 되어버려도 괜찮겠어요
책을 다 읽고 음반을 들었으면 하지만 그것도 아무려면 어때요
무엇이든 얻을 게 있으면 가지시고 나눌 게 있으면 나눕시다
잘 밤에 어디론가 헤매지 마시고 단꿈 꾸세요”
이젠 생존에도 핑계가 필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36p)
찬찬히 나열하여 미세하게 빠져나가는 호흡 (39p)
잠형으로 시작한다
깊이 숨을 머금고 수면 아래로 미끄러지듯 전진한다
수면 위로 보이는 게 없도록
물과 나는 비밀을 공유한 채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기민하다
시선을 아래로 박고 수영장 바닥의 규칙적이고 단정한 타일의 행렬을 응시한다
머리 뒤쪽으로 쭉 뻗은 팔은 가볍게 아래위로 흔들리고 보드랍게 차올린 다리는 낌새도 없이 차분하다
수면 밖의 난잡한 소음은 일시에 차단되고 이명처럼 고막에 달라붙은 저주파 음들이 공명한다
진공
달리 체험할 수 없었던 진공의 세계는 지금이다
사지에 밀도 높은 기포가 알알이 돋아난다
찬찬히 나열하여 미세하게 빠져나가는 호흡
손끝으로 갈라져 몸 전체로 쓸려나가는 물길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물보라를 일으켜 그리도 단단해 보이던 물의 결정을 갈라 나가는 횟수를 찬찬히 센다
이럴 때면 현실의 통로를 지나 환상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것은 깊이 숨을 고르고 숨을 죽여 가장 깊은 곳으로 빠져드는 수면의 통로와 닮았다 (39p)“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고 푸르고 푸른 물 위를 쉼 없이 저어 나가는 상상을 하곤 했지요
그러다 보면 곧잘 수면 속으로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수영장 풀 한가운데서 열렬히 유영해가던 나는 벽을 차기도, 허공에 팔을 저어대기도 했다고
그 사람이 말합디다
(중략)
물살을 가르는 단조로운 움직임과 파랗게 산란하는 수면은 나한테는 평온의 상징과도 같은 거지요
하지만 이제는 그 상상으로도 도저히 수면 아래로 잠길 수 없습니다
계속 떠올라 도무지 잠기지가 않습디다 (44p)과연 적절하고, 적당한 인간은 어떻게 될수 있는 겁니까 (58p)
우리는 한날한시에 태어나고 각자의 삶대로 흘러 이렇게 불행의 고지에서 다시 한번 겹쳐진다 (74p)
“이놈의 입방정이 문제인 겁니다
너무 앞서 말해버렸고 생은 그 뒤를 따랐지요
내가 뱉은 말을 따라 돌진하는 경주마라도 된 것처럼 말이죠” (76p)백야처럼 휘황찬란한 나의 밤은 증발한 지난 십 년을 되짚어가기 딱 좋은 등불이 되어 주었죠
그러면 그 한밤의 질주가 시작됩니다
머릿속은 훤하게 불을 밝혀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그저 달려 나갑니다
흐릿하게 빛바랜 걸 쫒아가는 게 그리움이던가요 (98p)거울 하나가 조명 하나가 나이 하나가 부재 하나가 이리도 크게 나를 변신시킬 줄 생각도 못 했다
여기로 이사한 후 매일 나는 나의 실체와 마주해야 했다
이곳에서 오직 나만을 비춰내야 했을 녀석은 모든 것을 낱낱이 고발한다
과거의 내가 실체인지 지금의 이 모습이 실체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저 앞의 늙고 후진 사내는 멀쩡히도 나를 따라 한다
세면대 언저리로 추락한 수많은 머리칼은 이 삶을 증명하는 나의 비명이다
그때도 오늘도 같은 얼굴은 다르게 담긴다 (131p)내가 살려고
날마다 성토했습니다
빌었습니다
글로 공들여 비는 마음이 성스러운 곳에서 간곡히 기도하는 마음처럼 무거웠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의 치매 소식을 들었지요
기억의 편린들이 마구 헤집어진 채로 살아갈 아비가
아무것도 잊질 못하는 나와 너무 달라 못내 북받쳐 옵니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튕겨 오른 공은 저 높이 한참을 올랐다 다시 바닥으로 다시 위로 다시
아직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디까지 낙하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타락할까 봐 두렵다 했습니다
나는 타락하지 않고 추락한 겁니다
그저 밑도 끝도 없는 시절로 떨어진 겁니다
눈감지 못하는 세계로 일제히 쏟아져 내린 겁니다 (229p)
목차
시작하며
꿈
머리맡
수면
외출
관계
빈 집
울고 있는 자
선택
이별
공백
북아현동
제일 좋은 곳
절망의 남쪽
저수지
불면
팔베개
야간주행
채비
좋은 나라
슬픈 노래
그 사람
우리는
하도, 유랑의 별
맺으며
야간주행 노랫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