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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행성의 기록
중국 작가 라오서가 1933년에 쓴 디스토피아 SF 소설 『묘성기(貓城記)』를 국내 최초로 번역한 책이다. 소설은 우주선이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료가 죽고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곧 행성 거주자들에게 붙잡힌다. 고양이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하고, 중독성 약물인 미혹나무 잎을 주식으로 먹는 ‘묘인’들이다. 주인공은 미혹나무 농장을 소유한 대지주와 함께 지내며 묘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 기묘한 생활과 붕괴되어가는 문명을 관찰한다. 저자는 묘인들의 세계를 통해 소설이 쓰였던 당대 중국 사회는 물론,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근대 인류의 풍경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목차
서문
01 불시착
02 체포
03 탈출
04 만남
05 마취
06 어떤 자유
07 훔쳐보는 자들
08 거래들
09 미혹나무 숲
10 약탈
11 도시
12 한밤중의 대화
13 비관주의자
14 천둥소리
15 여자들
16 얼렁뚱땅
17 졸업식
18 교육
19 학자들
20 야야푸스키
21 왁자지껄의 왕
22 오랜 친구
23 선택
24 마조신선
25 길 위에서
26 망국의 밤
27 작별
옮긴이 해제
책 속으로
P. 38
만약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게 이 묘인의 업무였다면, 그는 일을 대단히 잘 한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질질 끌었는지 모르겠다. 손짓하기, 고개 흔들기, 입 실쭉거리기, 코 훌쩍이기 등 거의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 우리는 서로를 해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어쩌면 한 시간, 아니 일주일이라도 더 그러고 있었을지 모른다.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P. 52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걸 먹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지만 손발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사일도 할 수 없게 되고, 일하는 것도 불가능해 모두가 한가롭다. 그래서 정부는 더는 미혹나무 잎을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따시에는 역사의 페이지를 옮겨 다니며 설명을 이어갔다. 명령 첫날 오후, 황후는 금단증상으로 괴로워하며 황제의 뺨을 세 대나 때렸고, 황제는 그저 울 뿐이었다. 이날 오후 다시 명령이 내려졌다. 미혹나무 잎을 ‘국식’으로 정하겠노라고.
P. 55
따시에는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자기 살을 깎아먹는 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서, 살인의 방법이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교묘해졌어요.” “살인이 일종의 예술이 됐군요.” 내가 말했다. 한데 묘어에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한참 동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예술’이라는 두 글자를 기억했다. “예. 술.”
P. 112
1만 개의 손가락들이 계속 나를 가리켰다. 묘인들은 참으로 솔직담백해서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이면 대놓고 면전에서 가리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지구에서 체득한 인류로서의 체면치레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 괴로웠다! 1만 개의 손가락들이 작은 권총처럼 느껴졌다. 코앞까지 뻗어 있는 소형 권총들의 뒤로는 동그란 두 눈동자들이 떠 있었는데, 하나같이 나를 향해 반짝거렸다. 작은 권총들이 위쪽을 향해 기울어지면서 죄다 내 얼굴을 가리켰고, 다시 아래쪽으로 기울어지더니 내 거시기를 가리켜댔다.
P. 285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별들은 밝게 빛났다. 모든 것은 아직 고요했다. 오직 망국의 밤을 지키는 눈만큼은 감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깨어 있다는 걸 알았고, 그들 역시 내가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누구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혀는 파멸의 손가락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작가 소개
라오서
중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본명은 수칭춘(舒慶春). 베이징의 가난한 만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영국 런던에 가서 유학을 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31년 중국으로 돌아와 교사 생활과 작가 활동을 이어갔으며, 1936년 발표한 『낙타상자(駱舵祥子)』는 하층민의 삶을 그려낸 중국 리얼리즘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에게 심한 구타와 모욕을 당한 뒤 타이핑 호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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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행성의 기록
중국 작가 라오서가 1933년에 쓴 디스토피아 SF 소설 『묘성기(貓城記)』를 국내 최초로 번역한 책이다. 소설은 우주선이 낯선 행성에 불시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료가 죽고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곧 행성 거주자들에게 붙잡힌다. 고양이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하고, 중독성 약물인 미혹나무 잎을 주식으로 먹는 ‘묘인’들이다. 주인공은 미혹나무 농장을 소유한 대지주와 함께 지내며 묘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 기묘한 생활과 붕괴되어가는 문명을 관찰한다. 저자는 묘인들의 세계를 통해 소설이 쓰였던 당대 중국 사회는 물론, 인간다움을 잃어가는 근대 인류의 풍경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목차
서문
01 불시착
02 체포
03 탈출
04 만남
05 마취
06 어떤 자유
07 훔쳐보는 자들
08 거래들
09 미혹나무 숲
10 약탈
11 도시
12 한밤중의 대화
13 비관주의자
14 천둥소리
15 여자들
16 얼렁뚱땅
17 졸업식
18 교육
19 학자들
20 야야푸스키
21 왁자지껄의 왕
22 오랜 친구
23 선택
24 마조신선
25 길 위에서
26 망국의 밤
27 작별
옮긴이 해제
책 속으로
P. 38
만약 나를 성가시게 하는 게 이 묘인의 업무였다면, 그는 일을 대단히 잘 한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질질 끌었는지 모르겠다. 손짓하기, 고개 흔들기, 입 실쭉거리기, 코 훌쩍이기 등 거의 온몸의 근육을 움직여 우리는 서로를 해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표현하려 했다. 어쩌면 한 시간, 아니 일주일이라도 더 그러고 있었을지 모른다. 멀리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P. 52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그걸 먹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지만 손발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사일도 할 수 없게 되고, 일하는 것도 불가능해 모두가 한가롭다. 그래서 정부는 더는 미혹나무 잎을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따시에는 역사의 페이지를 옮겨 다니며 설명을 이어갔다. 명령 첫날 오후, 황후는 금단증상으로 괴로워하며 황제의 뺨을 세 대나 때렸고, 황제는 그저 울 뿐이었다. 이날 오후 다시 명령이 내려졌다. 미혹나무 잎을 ‘국식’으로 정하겠노라고.
P. 55
따시에는 의기양양하게 덧붙였다. “자기 살을 깎아먹는 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서, 살인의 방법이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교묘해졌어요.” “살인이 일종의 예술이 됐군요.” 내가 말했다. 한데 묘어에는 ‘예술’이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한참 동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예술’이라는 두 글자를 기억했다. “예. 술.”
P. 112
1만 개의 손가락들이 계속 나를 가리켰다. 묘인들은 참으로 솔직담백해서 뭔가 새로운 것이 보이면 대놓고 면전에서 가리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지구에서 체득한 인류로서의 체면치레를 무시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 괴로웠다! 1만 개의 손가락들이 작은 권총처럼 느껴졌다. 코앞까지 뻗어 있는 소형 권총들의 뒤로는 동그란 두 눈동자들이 떠 있었는데, 하나같이 나를 향해 반짝거렸다. 작은 권총들이 위쪽을 향해 기울어지면서 죄다 내 얼굴을 가리켰고, 다시 아래쪽으로 기울어지더니 내 거시기를 가리켜댔다.
P. 285
하늘은 여전히 어두컴컴했고, 별들은 밝게 빛났다. 모든 것은 아직 고요했다. 오직 망국의 밤을 지키는 눈만큼은 감을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깨어 있다는 걸 알았고, 그들 역시 내가 자고 있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누구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혀는 파멸의 손가락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작가 소개
라오서
중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본명은 수칭춘(舒慶春). 베이징의 가난한 만주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영국 런던에 가서 유학을 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1931년 중국으로 돌아와 교사 생활과 작가 활동을 이어갔으며, 1936년 발표한 『낙타상자(駱舵祥子)』는 하층민의 삶을 그려낸 중국 리얼리즘의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 홍위병들에게 심한 구타와 모욕을 당한 뒤 타이핑 호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