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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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3-256-2123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212 (동문동)
3층
미술노동자(급진적 실천과 딜레마)
“미술은 어떤 일을 하는가? 미술은 재현의 시스템이나 의미화 형식에 어떤 압력을 가하는가? 미술은 어떤 방식으로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가? 미술은 경제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어떻게 관계를 구조화하며, 어떻게 관념을 회자되도록 하는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기 사이에 통용된 미술노동의 정의는 무척이나 역동적이었고, 글쓰기, 전시기획 그리고 심지어는 관람 행위를 모두 포함했다. (…) 이 책은 또한 이 시기의 미술노동은 단지 불안정한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로서의 미술관이 아틀리에 바깥의 작업장으로 전환되고, 관리자의 권위를 대리하며, 전쟁 반대를 위한 행동주의의 표적이 되는 관계 안에서 구축되었다고 제안한다.” ―「들어가며」 중에서
목차
한국의 독자들께
감사의 말
들어가며
급진적 실천을 향해
베트남전쟁기
1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연합의 정치
미술 대 노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의 노동
후기산업화 시대의 전문가화
2 칼 안드레의 작업 윤리
벽돌쌓기
미니멀리즘의 윤리적 토대
안드레와 미술노동자연합
물질의 문제를 문제 삼다
전쟁기의 미니멀리즘
3 로버트 모리스의 미술파업
노동으로서의 전시
규모의 가치
노동자와 미술인 / 노동자로서의 미술인
과정
디트로이트와 안전모
파업
근무 중과 근무 외 시간의 모리스
4 루시 리파드의 페미니스트 노동
여성의 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다
세 번의 반전 전시회
미술(을/로서) 쓰는 여성
시위의 기술
5 한스 하케의 서류작업
뉴스
미술노동자연합과 개념미술: 미술관을 비물질화하기
정보
저널리즘
선동
나가며
주(註)
도판 목록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감사의 말
들어가며
급진적 실천을 향해
베트남전쟁기
1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연합의 정치
미술 대 노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의 노동
후기산업화 시대의 전문가화
2 칼 안드레의 작업 윤리
벽돌쌓기
미니멀리즘의 윤리적 토대
안드레와 미술노동자연합
물질의 문제를 문제 삼다
전쟁기의 미니멀리즘
3 로버트 모리스의 미술파업
노동으로서의 전시
규모의 가치
노동자와 미술인 / 노동자로서의 미술인
과정
디트로이트와 안전모
파업
근무 중과 근무 외 시간의 모리스
4 루시 리파드의 페미니스트 노동
여성의 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다
세 번의 반전 전시회
미술(을/로서) 쓰는 여성
시위의 기술
5 한스 하케의 서류작업
뉴스
미술노동자연합과 개념미술: 미술관을 비물질화하기
정보
저널리즘
선동
나가며
주(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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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Julia Bryan-Wilson)
1973년 미국 텍사스 주 애머릴로 시에서 태어나, 1995년 스워스모어대학에서 수학하고 2004년 캘리포니아대학의 버클리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노동, 감시 사진, 독립 영상물, 페미니즘 무용, 퀴어 퍼포먼스, 아마추어 공예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와 저작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상파울루미술관의 겸임 큐레이터로 있으며,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근현대미술학과 교수 및 버클리예술연구센터의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술노동자: 급진적 실천과 딜레마』(2009), 『창작 안에서의 예술: 예술가와 예술가의 재료, 작업실에서 크라우드 펀딩까지』(2016, 공저), 『보푸라기: 예술과 텍스타일의 정치』(2017)가 있으며, 기획한 전시로는 「세실리아 비쿠냐: 곧 일어날」 등이 있다.
역자 : 신현진(申鉉眞)
쌈지스페이스 제1큐레이터, 사무소(SAMUSO) 전시실장, 뉴욕 아시안아메리칸예술센터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했다. 권위를 뺀 미술비평에 관한 소설 「미술계 비련과 음모의 막장드라마」(2013)를 문화창작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발행한 신문에 연재했다. 「사회적 체계 이론의 맥락에서 본 대안공간과 예술의 사회화 연구」(2015)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3년 미국 텍사스 주 애머릴로 시에서 태어나, 1995년 스워스모어대학에서 수학하고 2004년 캘리포니아대학의 버클리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노동, 감시 사진, 독립 영상물, 페미니즘 무용, 퀴어 퍼포먼스, 아마추어 공예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와 저작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상파울루미술관의 겸임 큐레이터로 있으며,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근현대미술학과 교수 및 버클리예술연구센터의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술노동자: 급진적 실천과 딜레마』(2009), 『창작 안에서의 예술: 예술가와 예술가의 재료, 작업실에서 크라우드 펀딩까지』(2016, 공저), 『보푸라기: 예술과 텍스타일의 정치』(2017)가 있으며, 기획한 전시로는 「세실리아 비쿠냐: 곧 일어날」 등이 있다.
역자 : 신현진(申鉉眞)
쌈지스페이스 제1큐레이터, 사무소(SAMUSO) 전시실장, 뉴욕 아시안아메리칸예술센터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했다. 권위를 뺀 미술비평에 관한 소설 「미술계 비련과 음모의 막장드라마」(2013)를 문화창작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발행한 신문에 연재했다. 「사회적 체계 이론의 맥락에서 본 대안공간과 예술의 사회화 연구」(2015)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출판사서평
미술과 노동의 관계, 미술인들의 노동자적 위상에 대해서는 활발히 논의된 바가 별로 없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공간을 확장해도 비슷한데, 저자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은 논쟁의 기원을 베트남전쟁기 미국에서 찾는다. 스스로를 ‘미술노동자’라 부르며 창조적 노동의 정의를 확장시키고자 했던 움직임에 주목하는 『미술노동자(Art Workers)』는, 미술사와 노동이론을 연결하고, 이 시기 미국의 미술과 정치 모두에서 중요했던 미술노동을 묘사한다. 행동주의적 실천과 작품 생산을 통해 사회에 개입하려 했던 미술인들의 시도로, 구체적으로는 미니멀리즘, 과정 기반의 프로세스 아트, 페미니즘 미술비평, 개념주의 등이 그것이다.
책은 단순히 미술이 노동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설전에서 조금 비껴나, 미술과 노동을 접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다양한 층위의 논쟁으로 우리를 이끈다. 전체 역사를 아우르기보다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몇몇 미술인들의 노력을 들여다보는 사례연구 방식을 취해, 그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미술노동자 개념을 수용했는지, 또 각자의 실천이 미술노동에 대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를 살펴본다. 미술 기관에 대항해 미술인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미술노동자연합과 미술파업의 주동자이면서 동시에 전후 미국 미술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네 명의 미술인들을 각자 그리고 서로의 접점을 통해 분석한다.
베트남전쟁기 미술의 실천과 연합의 정치
베트남전쟁, 그리고 후기산업화를 둘러싼 이 시기 미술에서는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가 결정적으로 꽃피었다. 미술의 발전 양상을 역사적 사건과 겹쳐 바라보는 방식은, 예술의 생산적 가치를 두고 격렬히 논쟁할 때 미술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고 또 연대하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의 시대적 배경과 의도를 개괄하는 「들어가며」의 시작은 미술노동자와 그 연합의 탄생을 알리는데, 68혁명이 한창인 당시 ‘어느 미술노동자’라고 서명된 익명의 편지 한 통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변화의 초석을 닦아야 한다. 이 행동은 미술이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결별함을 뜻한다.”(p. 15)
1969년 뉴욕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 AWC)’과 그로부터 1년 뒤 조직된 ‘인종차별·전쟁·억압에 반대하는 뉴욕미술파업(New York Art Strike Against Racism, War, and Repression)’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폭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술인을 노동자로 재정의함으로써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미술파업과 더불어 뉴욕현대미술관, 폴라쿠퍼갤러리 같은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에서의 반전 시위는 미국의 제도비판 미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미술노동자연합이 초기에 배포했던 공청회 전단지(p. 37)에는 ‘건축가, 안무가, 작곡가, 비평가, 작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 미술관 직원, 화가, 사진가, 판화가, 조각가, 박제사 등’ 방대한 범주의 미술노동자를 포괄했는데, 미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모두 미술노동으로 바라봄으로써 미술관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모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의 행보는 미술관의 무료입장 정책을 확립했으며, 인종 및 젠더의 차별을 철폐하는 정책을 보장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나아가 미국 전역의 수많은 미술인 단체의 탄생에 기여했다.
예술 행동주의의 실천으로서 선택된 방식에는 1966년 설립된 작가예술가저항(Writers and Artists Protest)의 〈평화의 탑(Peace Tower)〉(pp. 22?24) 혹은 1970년 백 명이 넘는 미술인들이 참여한 반전 포스터 전시 「분노의 콜라주 Ⅱ(Collage of Indignation Ⅱ)」(p. 227)처럼 합작의 형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술에의 참여 거부, 철회를 의미하는 파업이 핵심적이었다. ‘미술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일반적인 사고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미술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급진적 실천’의 형태였다. 예술과 혁명을 연결 짓는 마르쿠제의 이 용어는 행동주의와 미술을 가로지르는 실험 속 이루었던 성과와 실패 모두를 함의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미술노동자들은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의 미학과 정치를 예행연습하고 있었다.
미술노동, 그리고 네 명의 미술노동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미술노동이란 무엇일까. 미술의 노동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work’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범주(pp. 62?63)부터 추적한다. 미술 작품, 작업을 비롯해 자본주의 안에서의 노동까지 아우르는 개념을 설명하고, 계급과 젠더라는 요소를 들여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상상해 보도록 한다. 궁극적으로는 칼 안드레(Carl Andre),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한스 하케(Hans Haacke)라는, 네 명 미술인의 미술실천으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먼저, 칼 안드레에게 미술노동은 미니멀 조각으로 제시되었다. 그중에서도 ‘등가’의 가치를 지닌 재료로 만든 조각작품이 대표적인데, 제목에서부터 그 의도를 드러내는 〈등가 Ⅷ〉(p. 76)은 같은 크기의 벽돌 백이십 개를 가로 열 줄, 세로 여섯 줄, 높이 두 줄로 쌓아 놓았을 뿐이었다. 한 종류의 공산품을 늘어놓은 ‘등가(Equivalent)’ 시리즈는 재료가 가진 물성에 집중해 그 자체로 노동의 위상을 전유했으며, 벽돌공의 노동과 비교되어 ‘실제’ 노동과 미적 노동 사이 차이에 기대는 가치 평가 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또한 안드레는 미술노동자연합에서 종종 지도자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평등주의, 반엘리트주의를 실천하며 미술노동자 안에 다양한 직업군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로버트 모리스에게 미술노동이란 공사에 근간을 둔 프로세스 아트였고, 이는 육체노동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일로 이어졌다. 전시장이 하중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자재들로 된 〈무제(콘크리트, 목재, 강철)〉(pp. 138?150)처럼, 그의 작업에서 육체노동은 무엇보다 큰 부분을 차지했다. 모리스는 이를 설치 노동자들과 직접 수행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얻으려 했다. 한편, 그의 미술실천은 파업을 끌어들였는데, 전쟁과 연루되어 권력을 행사하던 미술관에 저항해 회고전을 몇 주 일찍 끝냄으로써 미술의 중지를 요구했다. 이 미학적 거부를 보여주면서 그는 뉴욕 예술 행동주의 집단에서의 최전선을 차지하게 되었다.
루시 리파드는 페미니즘 비평을 ‘집안일’로 규정하고 실천하는 것을 미술노동이라 보았다. 이는 창작보다는 비평가, 큐레이터 같은 부차적인 영역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에 주목해, 역설적으로 가사 노동의 존엄성을 비평에 선사하는 것이었다. 미술비평과 소설 쓰기, 전시기획까지 뻗어나가는 그의 활동은 여성의 노동력을 재평가하는 데 관심을 두었고, 페미니스트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그는 손뜨개질과 같은 공예를 미술의 형식으로 들여와 여성과 그의 노동을 폄하하는 미술 제도를 비판했다. 저자 역시 페미니즘에 관해, “젠더는 로버트 모리스와 같은 남성 미술노동자와 오브제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이 융성하는 동안 많은 여성 미술노동자가 미술노동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생산적으로 작동”(p. 18)했다고 말하며, 이를 다양한 종류의 작업에 대한 불균일한 평가와 성별, 인종 및 계층으로부터의 차이를 이론화하는 데 적용했다.
마지막으로 한스 하케에게 미술노동은 개념주의, 제도비판 미술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때 노동에 대한 그의 비전은 경제 발전의 양상에 발맞춰, 서비스 경제 안에서 떠오르던 정보 관리자 모델을 향했다. 그 예로, 뉴욕현대미술관 입구에서 미술관 이사회의 일원이자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의 베트남전쟁 지원에 대한 관람객 의견을 묻는 〈뉴욕현대미술관 여론조사〉(pp. 286?291)는 정보라는 매체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관객 참여를 유도한 작업이었다. 관객들은 입장료의 가격에 따라 색이 다른 투표용지를 나눠 받았고, 결과적으로 작업은 미술관 방문객의 구성과 그에 따른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하케의 이 작업은 제도비판 미술이라는 미술의 한 분과를 형성한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위에 제시된 미술노동자들의 성과만큼이나 저자는 또한 그들의 정체성과 요구에 깃든 모순, 불확실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일이란 절대 단순하지 않으며, 환상과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을 감당해야만 한다.”(p. 268) 안드레의 경우 ‘등가의’ 자재를 사용했더라도 그의 작업에서 대중성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과 그의 주장과는 달리 그가 어느 정도 근본적으로 엘리트의 입장을 가졌다는 점, 모리스의 경우 설치 노동자 사이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흔한 우두머리의 상징인 시가를 입에 물고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관리자 역할과 혼동되었던 점(p. 142)을 비판한다. 리파드에 대해서는 그가 기획했던 전시가 특정 미술의 형태와 미술인들만을 선택하는 배제의 논리로 비난받았던 사실을 짚어 보이고, 하케가 획득하고자 했던 정보 관리자의 역할 역시 미술노동자연합이 가졌던 노동자 계급에 대한 판타지만큼이나 허구적이었다고 덧붙인다. 저자의 이러한 다각도의 시각은 우리가 좀더 비판적인 독서를 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
오늘날 미술의 조직화와 남겨진 과제
치열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2006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는 〈평화의 탑〉이 재건되었다. 이후 2007년에는 1969년 미술노동자연합 설립 당시의 공청회가 재연되었다. 세월이 지나 그때만큼의 중요성을 가지진 못했지만, 두 번의 재연 행사는 1960?1970년대 예술 행동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음을 의미했고, 여전히 그 논쟁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세부 조건에서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양도와 재판매 시 미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971년에 작성된 협약 대신 오늘날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를 수용하거나 저작권을 폐기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심지어 이 책이 연구한 미술노동자들이 미술관이라는 특정한 공간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면서 일했던 것과는 대조되게, 미술 기관을 흑백의 논리로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미술이 대안 공간으로 이주해 가면서 ‘미술관’은 더 이상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의 형태 또한 세분화되어 창조적 노동, ‘예술적인’ 노동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운데 무엇이 미술노동인지 구분하는 일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술노동 개념에 대해 가졌던 그때의 불안을 되돌아보는 일은, 미술노동자들이 보여준 엄청난 양의 조직화 에너지를 전용하는 것과 같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쓴 글에서 저자는 2008년 미국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와광의경제(Working Artists and the Greater Economy, WAGE)가 예술가의 공정한 보수 확보를 위해 노력하며, 지금까지도 행동주의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12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언급하며 한국 예술가들의 현 상황에 관한 의견을 짧게 덧붙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 단체가 존재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모든 예술가가 살아가고 보험료를 지불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해결”(p. 6)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하며, 2020년 초 닥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예술가들의 상황이 더욱 위태로워졌음을 경고했다. 비록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이동해 가는 1960년대의 시도에는 어느 정도 잘못된 인식 또한 수반되었지만, 미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재조직하려던 그들의 노력은 여전히 다음, 그 다음의 진보를 위한 예술가들의 조직화를 향하고 있다. 3년이라는 미술노동자연합의 활동 기간은 짧지만 생산적이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그 공간 안에서 어떤 종류의 계급을 넘나드는 연대가 가능한지, 그때의 미술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어떤 딜레마를 갖게 되는지, 폭넓은 사유를 남겨 주었다.
이 책 『미술노동자』는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미술노동자연합의 탄생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1장과 구체적으로 네 명의 미술인을 작품과 함께 분석하는 나머지 4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저자의 밀도 높은 자료조사로, 스미스소니언협회 미국미술아카이브 등에 보관되어 있는 당시 미술노동자연합의 공청회 녹취록뿐만 아니라, 연합의 전단지를 비롯한 미술인들의 작품 103점이 수록되어 연구 배경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책끝에는 ‘미술노동’ 용어의 번역 과정과 한국의 용례를 제시하는 「옮긴이의 말」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개념 등을 정리한 찾아보기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책은 단순히 미술이 노동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설전에서 조금 비껴나, 미술과 노동을 접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다양한 층위의 논쟁으로 우리를 이끈다. 전체 역사를 아우르기보다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몇몇 미술인들의 노력을 들여다보는 사례연구 방식을 취해, 그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미술노동자 개념을 수용했는지, 또 각자의 실천이 미술노동에 대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를 살펴본다. 미술 기관에 대항해 미술인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미술노동자연합과 미술파업의 주동자이면서 동시에 전후 미국 미술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네 명의 미술인들을 각자 그리고 서로의 접점을 통해 분석한다.
베트남전쟁기 미술의 실천과 연합의 정치
베트남전쟁, 그리고 후기산업화를 둘러싼 이 시기 미술에서는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가 결정적으로 꽃피었다. 미술의 발전 양상을 역사적 사건과 겹쳐 바라보는 방식은, 예술의 생산적 가치를 두고 격렬히 논쟁할 때 미술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고 또 연대하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의 시대적 배경과 의도를 개괄하는 「들어가며」의 시작은 미술노동자와 그 연합의 탄생을 알리는데, 68혁명이 한창인 당시 ‘어느 미술노동자’라고 서명된 익명의 편지 한 통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변화의 초석을 닦아야 한다. 이 행동은 미술이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결별함을 뜻한다.”(p. 15)
1969년 뉴욕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 AWC)’과 그로부터 1년 뒤 조직된 ‘인종차별·전쟁·억압에 반대하는 뉴욕미술파업(New York Art Strike Against Racism, War, and Repression)’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폭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술인을 노동자로 재정의함으로써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미술파업과 더불어 뉴욕현대미술관, 폴라쿠퍼갤러리 같은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에서의 반전 시위는 미국의 제도비판 미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미술노동자연합이 초기에 배포했던 공청회 전단지(p. 37)에는 ‘건축가, 안무가, 작곡가, 비평가, 작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 미술관 직원, 화가, 사진가, 판화가, 조각가, 박제사 등’ 방대한 범주의 미술노동자를 포괄했는데, 미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모두 미술노동으로 바라봄으로써 미술관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모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의 행보는 미술관의 무료입장 정책을 확립했으며, 인종 및 젠더의 차별을 철폐하는 정책을 보장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나아가 미국 전역의 수많은 미술인 단체의 탄생에 기여했다.
예술 행동주의의 실천으로서 선택된 방식에는 1966년 설립된 작가예술가저항(Writers and Artists Protest)의 〈평화의 탑(Peace Tower)〉(pp. 22?24) 혹은 1970년 백 명이 넘는 미술인들이 참여한 반전 포스터 전시 「분노의 콜라주 Ⅱ(Collage of Indignation Ⅱ)」(p. 227)처럼 합작의 형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술에의 참여 거부, 철회를 의미하는 파업이 핵심적이었다. ‘미술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일반적인 사고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미술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급진적 실천’의 형태였다. 예술과 혁명을 연결 짓는 마르쿠제의 이 용어는 행동주의와 미술을 가로지르는 실험 속 이루었던 성과와 실패 모두를 함의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미술노동자들은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의 미학과 정치를 예행연습하고 있었다.
미술노동, 그리고 네 명의 미술노동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미술노동이란 무엇일까. 미술의 노동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work’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범주(pp. 62?63)부터 추적한다. 미술 작품, 작업을 비롯해 자본주의 안에서의 노동까지 아우르는 개념을 설명하고, 계급과 젠더라는 요소를 들여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상상해 보도록 한다. 궁극적으로는 칼 안드레(Carl Andre),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한스 하케(Hans Haacke)라는, 네 명 미술인의 미술실천으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먼저, 칼 안드레에게 미술노동은 미니멀 조각으로 제시되었다. 그중에서도 ‘등가’의 가치를 지닌 재료로 만든 조각작품이 대표적인데, 제목에서부터 그 의도를 드러내는 〈등가 Ⅷ〉(p. 76)은 같은 크기의 벽돌 백이십 개를 가로 열 줄, 세로 여섯 줄, 높이 두 줄로 쌓아 놓았을 뿐이었다. 한 종류의 공산품을 늘어놓은 ‘등가(Equivalent)’ 시리즈는 재료가 가진 물성에 집중해 그 자체로 노동의 위상을 전유했으며, 벽돌공의 노동과 비교되어 ‘실제’ 노동과 미적 노동 사이 차이에 기대는 가치 평가 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또한 안드레는 미술노동자연합에서 종종 지도자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평등주의, 반엘리트주의를 실천하며 미술노동자 안에 다양한 직업군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로버트 모리스에게 미술노동이란 공사에 근간을 둔 프로세스 아트였고, 이는 육체노동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일로 이어졌다. 전시장이 하중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자재들로 된 〈무제(콘크리트, 목재, 강철)〉(pp. 138?150)처럼, 그의 작업에서 육체노동은 무엇보다 큰 부분을 차지했다. 모리스는 이를 설치 노동자들과 직접 수행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얻으려 했다. 한편, 그의 미술실천은 파업을 끌어들였는데, 전쟁과 연루되어 권력을 행사하던 미술관에 저항해 회고전을 몇 주 일찍 끝냄으로써 미술의 중지를 요구했다. 이 미학적 거부를 보여주면서 그는 뉴욕 예술 행동주의 집단에서의 최전선을 차지하게 되었다.
루시 리파드는 페미니즘 비평을 ‘집안일’로 규정하고 실천하는 것을 미술노동이라 보았다. 이는 창작보다는 비평가, 큐레이터 같은 부차적인 영역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에 주목해, 역설적으로 가사 노동의 존엄성을 비평에 선사하는 것이었다. 미술비평과 소설 쓰기, 전시기획까지 뻗어나가는 그의 활동은 여성의 노동력을 재평가하는 데 관심을 두었고, 페미니스트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그는 손뜨개질과 같은 공예를 미술의 형식으로 들여와 여성과 그의 노동을 폄하하는 미술 제도를 비판했다. 저자 역시 페미니즘에 관해, “젠더는 로버트 모리스와 같은 남성 미술노동자와 오브제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이 융성하는 동안 많은 여성 미술노동자가 미술노동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생산적으로 작동”(p. 18)했다고 말하며, 이를 다양한 종류의 작업에 대한 불균일한 평가와 성별, 인종 및 계층으로부터의 차이를 이론화하는 데 적용했다.
마지막으로 한스 하케에게 미술노동은 개념주의, 제도비판 미술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때 노동에 대한 그의 비전은 경제 발전의 양상에 발맞춰, 서비스 경제 안에서 떠오르던 정보 관리자 모델을 향했다. 그 예로, 뉴욕현대미술관 입구에서 미술관 이사회의 일원이자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의 베트남전쟁 지원에 대한 관람객 의견을 묻는 〈뉴욕현대미술관 여론조사〉(pp. 286?291)는 정보라는 매체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관객 참여를 유도한 작업이었다. 관객들은 입장료의 가격에 따라 색이 다른 투표용지를 나눠 받았고, 결과적으로 작업은 미술관 방문객의 구성과 그에 따른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하케의 이 작업은 제도비판 미술이라는 미술의 한 분과를 형성한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위에 제시된 미술노동자들의 성과만큼이나 저자는 또한 그들의 정체성과 요구에 깃든 모순, 불확실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일이란 절대 단순하지 않으며, 환상과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을 감당해야만 한다.”(p. 268) 안드레의 경우 ‘등가의’ 자재를 사용했더라도 그의 작업에서 대중성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과 그의 주장과는 달리 그가 어느 정도 근본적으로 엘리트의 입장을 가졌다는 점, 모리스의 경우 설치 노동자 사이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흔한 우두머리의 상징인 시가를 입에 물고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관리자 역할과 혼동되었던 점(p. 142)을 비판한다. 리파드에 대해서는 그가 기획했던 전시가 특정 미술의 형태와 미술인들만을 선택하는 배제의 논리로 비난받았던 사실을 짚어 보이고, 하케가 획득하고자 했던 정보 관리자의 역할 역시 미술노동자연합이 가졌던 노동자 계급에 대한 판타지만큼이나 허구적이었다고 덧붙인다. 저자의 이러한 다각도의 시각은 우리가 좀더 비판적인 독서를 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
오늘날 미술의 조직화와 남겨진 과제
치열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2006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는 〈평화의 탑〉이 재건되었다. 이후 2007년에는 1969년 미술노동자연합 설립 당시의 공청회가 재연되었다. 세월이 지나 그때만큼의 중요성을 가지진 못했지만, 두 번의 재연 행사는 1960?1970년대 예술 행동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음을 의미했고, 여전히 그 논쟁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세부 조건에서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양도와 재판매 시 미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971년에 작성된 협약 대신 오늘날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를 수용하거나 저작권을 폐기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심지어 이 책이 연구한 미술노동자들이 미술관이라는 특정한 공간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면서 일했던 것과는 대조되게, 미술 기관을 흑백의 논리로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미술이 대안 공간으로 이주해 가면서 ‘미술관’은 더 이상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의 형태 또한 세분화되어 창조적 노동, ‘예술적인’ 노동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운데 무엇이 미술노동인지 구분하는 일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술노동 개념에 대해 가졌던 그때의 불안을 되돌아보는 일은, 미술노동자들이 보여준 엄청난 양의 조직화 에너지를 전용하는 것과 같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쓴 글에서 저자는 2008년 미국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와광의경제(Working Artists and the Greater Economy, WAGE)가 예술가의 공정한 보수 확보를 위해 노력하며, 지금까지도 행동주의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12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언급하며 한국 예술가들의 현 상황에 관한 의견을 짧게 덧붙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 단체가 존재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모든 예술가가 살아가고 보험료를 지불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해결”(p. 6)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하며, 2020년 초 닥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예술가들의 상황이 더욱 위태로워졌음을 경고했다. 비록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이동해 가는 1960년대의 시도에는 어느 정도 잘못된 인식 또한 수반되었지만, 미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재조직하려던 그들의 노력은 여전히 다음, 그 다음의 진보를 위한 예술가들의 조직화를 향하고 있다. 3년이라는 미술노동자연합의 활동 기간은 짧지만 생산적이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그 공간 안에서 어떤 종류의 계급을 넘나드는 연대가 가능한지, 그때의 미술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어떤 딜레마를 갖게 되는지, 폭넓은 사유를 남겨 주었다.
이 책 『미술노동자』는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미술노동자연합의 탄생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1장과 구체적으로 네 명의 미술인을 작품과 함께 분석하는 나머지 4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저자의 밀도 높은 자료조사로, 스미스소니언협회 미국미술아카이브 등에 보관되어 있는 당시 미술노동자연합의 공청회 녹취록뿐만 아니라, 연합의 전단지를 비롯한 미술인들의 작품 103점이 수록되어 연구 배경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책끝에는 ‘미술노동’ 용어의 번역 과정과 한국의 용례를 제시하는 「옮긴이의 말」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개념 등을 정리한 찾아보기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미술노동자(급진적 실천과 딜레마)
“미술은 어떤 일을 하는가? 미술은 재현의 시스템이나 의미화 형식에 어떤 압력을 가하는가? 미술은 어떤 방식으로 공적 영역에 개입하는가? 미술은 경제에서 어떻게 기능하는가? 어떻게 관계를 구조화하며, 어떻게 관념을 회자되도록 하는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기 사이에 통용된 미술노동의 정의는 무척이나 역동적이었고, 글쓰기, 전시기획 그리고 심지어는 관람 행위를 모두 포함했다. (…) 이 책은 또한 이 시기의 미술노동은 단지 불안정한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로서의 미술관이 아틀리에 바깥의 작업장으로 전환되고, 관리자의 권위를 대리하며, 전쟁 반대를 위한 행동주의의 표적이 되는 관계 안에서 구축되었다고 제안한다.” ―「들어가며」 중에서
목차
한국의 독자들께
감사의 말
들어가며
급진적 실천을 향해
베트남전쟁기
1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연합의 정치
미술 대 노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의 노동
후기산업화 시대의 전문가화
2 칼 안드레의 작업 윤리
벽돌쌓기
미니멀리즘의 윤리적 토대
안드레와 미술노동자연합
물질의 문제를 문제 삼다
전쟁기의 미니멀리즘
3 로버트 모리스의 미술파업
노동으로서의 전시
규모의 가치
노동자와 미술인 / 노동자로서의 미술인
과정
디트로이트와 안전모
파업
근무 중과 근무 외 시간의 모리스
4 루시 리파드의 페미니스트 노동
여성의 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다
세 번의 반전 전시회
미술(을/로서) 쓰는 여성
시위의 기술
5 한스 하케의 서류작업
뉴스
미술노동자연합과 개념미술: 미술관을 비물질화하기
정보
저널리즘
선동
나가며
주(註)
도판 목록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감사의 말
들어가며
급진적 실천을 향해
베트남전쟁기
1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연합의 정치
미술 대 노동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미국의 노동
후기산업화 시대의 전문가화
2 칼 안드레의 작업 윤리
벽돌쌓기
미니멀리즘의 윤리적 토대
안드레와 미술노동자연합
물질의 문제를 문제 삼다
전쟁기의 미니멀리즘
3 로버트 모리스의 미술파업
노동으로서의 전시
규모의 가치
노동자와 미술인 / 노동자로서의 미술인
과정
디트로이트와 안전모
파업
근무 중과 근무 외 시간의 모리스
4 루시 리파드의 페미니스트 노동
여성의 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하다
세 번의 반전 전시회
미술(을/로서) 쓰는 여성
시위의 기술
5 한스 하케의 서류작업
뉴스
미술노동자연합과 개념미술: 미술관을 비물질화하기
정보
저널리즘
선동
나가며
주(註)
도판 목록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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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Julia Bryan-Wilson)
1973년 미국 텍사스 주 애머릴로 시에서 태어나, 1995년 스워스모어대학에서 수학하고 2004년 캘리포니아대학의 버클리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노동, 감시 사진, 독립 영상물, 페미니즘 무용, 퀴어 퍼포먼스, 아마추어 공예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와 저작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상파울루미술관의 겸임 큐레이터로 있으며,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근현대미술학과 교수 및 버클리예술연구센터의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술노동자: 급진적 실천과 딜레마』(2009), 『창작 안에서의 예술: 예술가와 예술가의 재료, 작업실에서 크라우드 펀딩까지』(2016, 공저), 『보푸라기: 예술과 텍스타일의 정치』(2017)가 있으며, 기획한 전시로는 「세실리아 비쿠냐: 곧 일어날」 등이 있다.
역자 : 신현진(申鉉眞)
쌈지스페이스 제1큐레이터, 사무소(SAMUSO) 전시실장, 뉴욕 아시안아메리칸예술센터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했다. 권위를 뺀 미술비평에 관한 소설 「미술계 비련과 음모의 막장드라마」(2013)를 문화창작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발행한 신문에 연재했다. 「사회적 체계 이론의 맥락에서 본 대안공간과 예술의 사회화 연구」(2015)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3년 미국 텍사스 주 애머릴로 시에서 태어나, 1995년 스워스모어대학에서 수학하고 2004년 캘리포니아대학의 버클리캠퍼스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술노동, 감시 사진, 독립 영상물, 페미니즘 무용, 퀴어 퍼포먼스, 아마추어 공예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연구와 저작을 선보이고 있다. 현재 상파울루미술관의 겸임 큐레이터로 있으며,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근현대미술학과 교수 및 버클리예술연구센터의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미술노동자: 급진적 실천과 딜레마』(2009), 『창작 안에서의 예술: 예술가와 예술가의 재료, 작업실에서 크라우드 펀딩까지』(2016, 공저), 『보푸라기: 예술과 텍스타일의 정치』(2017)가 있으며, 기획한 전시로는 「세실리아 비쿠냐: 곧 일어날」 등이 있다.
역자 : 신현진(申鉉眞)
쌈지스페이스 제1큐레이터, 사무소(SAMUSO) 전시실장, 뉴욕 아시안아메리칸예술센터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했다. 권위를 뺀 미술비평에 관한 소설 「미술계 비련과 음모의 막장드라마」(2013)를 문화창작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발행한 신문에 연재했다. 「사회적 체계 이론의 맥락에서 본 대안공간과 예술의 사회화 연구」(2015)로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출판사서평
미술과 노동의 관계, 미술인들의 노동자적 위상에 대해서는 활발히 논의된 바가 별로 없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공간을 확장해도 비슷한데, 저자 줄리아 브라이언 윌슨은 논쟁의 기원을 베트남전쟁기 미국에서 찾는다. 스스로를 ‘미술노동자’라 부르며 창조적 노동의 정의를 확장시키고자 했던 움직임에 주목하는 『미술노동자(Art Workers)』는, 미술사와 노동이론을 연결하고, 이 시기 미국의 미술과 정치 모두에서 중요했던 미술노동을 묘사한다. 행동주의적 실천과 작품 생산을 통해 사회에 개입하려 했던 미술인들의 시도로, 구체적으로는 미니멀리즘, 과정 기반의 프로세스 아트, 페미니즘 미술비평, 개념주의 등이 그것이다.
책은 단순히 미술이 노동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설전에서 조금 비껴나, 미술과 노동을 접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다양한 층위의 논쟁으로 우리를 이끈다. 전체 역사를 아우르기보다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몇몇 미술인들의 노력을 들여다보는 사례연구 방식을 취해, 그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미술노동자 개념을 수용했는지, 또 각자의 실천이 미술노동에 대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를 살펴본다. 미술 기관에 대항해 미술인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미술노동자연합과 미술파업의 주동자이면서 동시에 전후 미국 미술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네 명의 미술인들을 각자 그리고 서로의 접점을 통해 분석한다.
베트남전쟁기 미술의 실천과 연합의 정치
베트남전쟁, 그리고 후기산업화를 둘러싼 이 시기 미술에서는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가 결정적으로 꽃피었다. 미술의 발전 양상을 역사적 사건과 겹쳐 바라보는 방식은, 예술의 생산적 가치를 두고 격렬히 논쟁할 때 미술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고 또 연대하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의 시대적 배경과 의도를 개괄하는 「들어가며」의 시작은 미술노동자와 그 연합의 탄생을 알리는데, 68혁명이 한창인 당시 ‘어느 미술노동자’라고 서명된 익명의 편지 한 통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변화의 초석을 닦아야 한다. 이 행동은 미술이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결별함을 뜻한다.”(p. 15)
1969년 뉴욕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 AWC)’과 그로부터 1년 뒤 조직된 ‘인종차별·전쟁·억압에 반대하는 뉴욕미술파업(New York Art Strike Against Racism, War, and Repression)’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폭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술인을 노동자로 재정의함으로써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미술파업과 더불어 뉴욕현대미술관, 폴라쿠퍼갤러리 같은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에서의 반전 시위는 미국의 제도비판 미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미술노동자연합이 초기에 배포했던 공청회 전단지(p. 37)에는 ‘건축가, 안무가, 작곡가, 비평가, 작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 미술관 직원, 화가, 사진가, 판화가, 조각가, 박제사 등’ 방대한 범주의 미술노동자를 포괄했는데, 미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모두 미술노동으로 바라봄으로써 미술관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모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의 행보는 미술관의 무료입장 정책을 확립했으며, 인종 및 젠더의 차별을 철폐하는 정책을 보장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나아가 미국 전역의 수많은 미술인 단체의 탄생에 기여했다.
예술 행동주의의 실천으로서 선택된 방식에는 1966년 설립된 작가예술가저항(Writers and Artists Protest)의 〈평화의 탑(Peace Tower)〉(pp. 22?24) 혹은 1970년 백 명이 넘는 미술인들이 참여한 반전 포스터 전시 「분노의 콜라주 Ⅱ(Collage of Indignation Ⅱ)」(p. 227)처럼 합작의 형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술에의 참여 거부, 철회를 의미하는 파업이 핵심적이었다. ‘미술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일반적인 사고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미술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급진적 실천’의 형태였다. 예술과 혁명을 연결 짓는 마르쿠제의 이 용어는 행동주의와 미술을 가로지르는 실험 속 이루었던 성과와 실패 모두를 함의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미술노동자들은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의 미학과 정치를 예행연습하고 있었다.
미술노동, 그리고 네 명의 미술노동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미술노동이란 무엇일까. 미술의 노동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work’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범주(pp. 62?63)부터 추적한다. 미술 작품, 작업을 비롯해 자본주의 안에서의 노동까지 아우르는 개념을 설명하고, 계급과 젠더라는 요소를 들여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상상해 보도록 한다. 궁극적으로는 칼 안드레(Carl Andre),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한스 하케(Hans Haacke)라는, 네 명 미술인의 미술실천으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먼저, 칼 안드레에게 미술노동은 미니멀 조각으로 제시되었다. 그중에서도 ‘등가’의 가치를 지닌 재료로 만든 조각작품이 대표적인데, 제목에서부터 그 의도를 드러내는 〈등가 Ⅷ〉(p. 76)은 같은 크기의 벽돌 백이십 개를 가로 열 줄, 세로 여섯 줄, 높이 두 줄로 쌓아 놓았을 뿐이었다. 한 종류의 공산품을 늘어놓은 ‘등가(Equivalent)’ 시리즈는 재료가 가진 물성에 집중해 그 자체로 노동의 위상을 전유했으며, 벽돌공의 노동과 비교되어 ‘실제’ 노동과 미적 노동 사이 차이에 기대는 가치 평가 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또한 안드레는 미술노동자연합에서 종종 지도자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평등주의, 반엘리트주의를 실천하며 미술노동자 안에 다양한 직업군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로버트 모리스에게 미술노동이란 공사에 근간을 둔 프로세스 아트였고, 이는 육체노동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일로 이어졌다. 전시장이 하중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자재들로 된 〈무제(콘크리트, 목재, 강철)〉(pp. 138?150)처럼, 그의 작업에서 육체노동은 무엇보다 큰 부분을 차지했다. 모리스는 이를 설치 노동자들과 직접 수행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얻으려 했다. 한편, 그의 미술실천은 파업을 끌어들였는데, 전쟁과 연루되어 권력을 행사하던 미술관에 저항해 회고전을 몇 주 일찍 끝냄으로써 미술의 중지를 요구했다. 이 미학적 거부를 보여주면서 그는 뉴욕 예술 행동주의 집단에서의 최전선을 차지하게 되었다.
루시 리파드는 페미니즘 비평을 ‘집안일’로 규정하고 실천하는 것을 미술노동이라 보았다. 이는 창작보다는 비평가, 큐레이터 같은 부차적인 영역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에 주목해, 역설적으로 가사 노동의 존엄성을 비평에 선사하는 것이었다. 미술비평과 소설 쓰기, 전시기획까지 뻗어나가는 그의 활동은 여성의 노동력을 재평가하는 데 관심을 두었고, 페미니스트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그는 손뜨개질과 같은 공예를 미술의 형식으로 들여와 여성과 그의 노동을 폄하하는 미술 제도를 비판했다. 저자 역시 페미니즘에 관해, “젠더는 로버트 모리스와 같은 남성 미술노동자와 오브제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이 융성하는 동안 많은 여성 미술노동자가 미술노동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생산적으로 작동”(p. 18)했다고 말하며, 이를 다양한 종류의 작업에 대한 불균일한 평가와 성별, 인종 및 계층으로부터의 차이를 이론화하는 데 적용했다.
마지막으로 한스 하케에게 미술노동은 개념주의, 제도비판 미술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때 노동에 대한 그의 비전은 경제 발전의 양상에 발맞춰, 서비스 경제 안에서 떠오르던 정보 관리자 모델을 향했다. 그 예로, 뉴욕현대미술관 입구에서 미술관 이사회의 일원이자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의 베트남전쟁 지원에 대한 관람객 의견을 묻는 〈뉴욕현대미술관 여론조사〉(pp. 286?291)는 정보라는 매체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관객 참여를 유도한 작업이었다. 관객들은 입장료의 가격에 따라 색이 다른 투표용지를 나눠 받았고, 결과적으로 작업은 미술관 방문객의 구성과 그에 따른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하케의 이 작업은 제도비판 미술이라는 미술의 한 분과를 형성한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위에 제시된 미술노동자들의 성과만큼이나 저자는 또한 그들의 정체성과 요구에 깃든 모순, 불확실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일이란 절대 단순하지 않으며, 환상과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을 감당해야만 한다.”(p. 268) 안드레의 경우 ‘등가의’ 자재를 사용했더라도 그의 작업에서 대중성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과 그의 주장과는 달리 그가 어느 정도 근본적으로 엘리트의 입장을 가졌다는 점, 모리스의 경우 설치 노동자 사이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흔한 우두머리의 상징인 시가를 입에 물고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관리자 역할과 혼동되었던 점(p. 142)을 비판한다. 리파드에 대해서는 그가 기획했던 전시가 특정 미술의 형태와 미술인들만을 선택하는 배제의 논리로 비난받았던 사실을 짚어 보이고, 하케가 획득하고자 했던 정보 관리자의 역할 역시 미술노동자연합이 가졌던 노동자 계급에 대한 판타지만큼이나 허구적이었다고 덧붙인다. 저자의 이러한 다각도의 시각은 우리가 좀더 비판적인 독서를 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
오늘날 미술의 조직화와 남겨진 과제
치열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2006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는 〈평화의 탑〉이 재건되었다. 이후 2007년에는 1969년 미술노동자연합 설립 당시의 공청회가 재연되었다. 세월이 지나 그때만큼의 중요성을 가지진 못했지만, 두 번의 재연 행사는 1960?1970년대 예술 행동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음을 의미했고, 여전히 그 논쟁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세부 조건에서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양도와 재판매 시 미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971년에 작성된 협약 대신 오늘날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를 수용하거나 저작권을 폐기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심지어 이 책이 연구한 미술노동자들이 미술관이라는 특정한 공간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면서 일했던 것과는 대조되게, 미술 기관을 흑백의 논리로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미술이 대안 공간으로 이주해 가면서 ‘미술관’은 더 이상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의 형태 또한 세분화되어 창조적 노동, ‘예술적인’ 노동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운데 무엇이 미술노동인지 구분하는 일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술노동 개념에 대해 가졌던 그때의 불안을 되돌아보는 일은, 미술노동자들이 보여준 엄청난 양의 조직화 에너지를 전용하는 것과 같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쓴 글에서 저자는 2008년 미국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와광의경제(Working Artists and the Greater Economy, WAGE)가 예술가의 공정한 보수 확보를 위해 노력하며, 지금까지도 행동주의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12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언급하며 한국 예술가들의 현 상황에 관한 의견을 짧게 덧붙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 단체가 존재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모든 예술가가 살아가고 보험료를 지불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해결”(p. 6)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하며, 2020년 초 닥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예술가들의 상황이 더욱 위태로워졌음을 경고했다. 비록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이동해 가는 1960년대의 시도에는 어느 정도 잘못된 인식 또한 수반되었지만, 미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재조직하려던 그들의 노력은 여전히 다음, 그 다음의 진보를 위한 예술가들의 조직화를 향하고 있다. 3년이라는 미술노동자연합의 활동 기간은 짧지만 생산적이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그 공간 안에서 어떤 종류의 계급을 넘나드는 연대가 가능한지, 그때의 미술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어떤 딜레마를 갖게 되는지, 폭넓은 사유를 남겨 주었다.
이 책 『미술노동자』는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미술노동자연합의 탄생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1장과 구체적으로 네 명의 미술인을 작품과 함께 분석하는 나머지 4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저자의 밀도 높은 자료조사로, 스미스소니언협회 미국미술아카이브 등에 보관되어 있는 당시 미술노동자연합의 공청회 녹취록뿐만 아니라, 연합의 전단지를 비롯한 미술인들의 작품 103점이 수록되어 연구 배경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책끝에는 ‘미술노동’ 용어의 번역 과정과 한국의 용례를 제시하는 「옮긴이의 말」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개념 등을 정리한 찾아보기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책은 단순히 미술이 노동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설전에서 조금 비껴나, 미술과 노동을 접목시킴으로써 생겨나는 다양한 층위의 논쟁으로 우리를 이끈다. 전체 역사를 아우르기보다는 특정 시대를 대표하는 몇몇 미술인들의 노력을 들여다보는 사례연구 방식을 취해, 그들이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미술노동자 개념을 수용했는지, 또 각자의 실천이 미술노동에 대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를 살펴본다. 미술 기관에 대항해 미술인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미술노동자연합과 미술파업의 주동자이면서 동시에 전후 미국 미술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네 명의 미술인들을 각자 그리고 서로의 접점을 통해 분석한다.
베트남전쟁기 미술의 실천과 연합의 정치
베트남전쟁, 그리고 후기산업화를 둘러싼 이 시기 미술에서는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가 결정적으로 꽃피었다. 미술의 발전 양상을 역사적 사건과 겹쳐 바라보는 방식은, 예술의 생산적 가치를 두고 격렬히 논쟁할 때 미술인들이 어떻게 스스로를 인식하고 또 연대하는지를 보여준다. 연구의 시대적 배경과 의도를 개괄하는 「들어가며」의 시작은 미술노동자와 그 연합의 탄생을 알리는데, 68혁명이 한창인 당시 ‘어느 미술노동자’라고 서명된 익명의 편지 한 통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혁명을 지지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시스템을 무너뜨리고 변화의 초석을 닦아야 한다. 이 행동은 미술이 자본주의로부터 완전히 결별함을 뜻한다.”(p. 15)
1969년 뉴욕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연합(Art Workers’ Coalition, AWC)’과 그로부터 1년 뒤 조직된 ‘인종차별·전쟁·억압에 반대하는 뉴욕미술파업(New York Art Strike Against Racism, War, and Repression)’의 목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폭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술인을 노동자로 재정의함으로써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미술파업과 더불어 뉴욕현대미술관, 폴라쿠퍼갤러리 같은 뉴욕의 주요 미술관들에서의 반전 시위는 미국의 제도비판 미술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미술노동자연합이 초기에 배포했던 공청회 전단지(p. 37)에는 ‘건축가, 안무가, 작곡가, 비평가, 작가, 디자이너, 영화제작자, 미술관 직원, 화가, 사진가, 판화가, 조각가, 박제사 등’ 방대한 범주의 미술노동자를 포괄했는데, 미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을 모두 미술노동으로 바라봄으로써 미술관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모이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들의 행보는 미술관의 무료입장 정책을 확립했으며, 인종 및 젠더의 차별을 철폐하는 정책을 보장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나아가 미국 전역의 수많은 미술인 단체의 탄생에 기여했다.
예술 행동주의의 실천으로서 선택된 방식에는 1966년 설립된 작가예술가저항(Writers and Artists Protest)의 〈평화의 탑(Peace Tower)〉(pp. 22?24) 혹은 1970년 백 명이 넘는 미술인들이 참여한 반전 포스터 전시 「분노의 콜라주 Ⅱ(Collage of Indignation Ⅱ)」(p. 227)처럼 합작의 형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미술에의 참여 거부, 철회를 의미하는 파업이 핵심적이었다. ‘미술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일반적인 사고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미술로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급진적 실천’의 형태였다. 예술과 혁명을 연결 짓는 마르쿠제의 이 용어는 행동주의와 미술을 가로지르는 실험 속 이루었던 성과와 실패 모두를 함의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미술노동자들은 실천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형태의 미학과 정치를 예행연습하고 있었다.
미술노동, 그리고 네 명의 미술노동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미술노동이란 무엇일까. 미술의 노동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저자는 ‘work’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범주(pp. 62?63)부터 추적한다. 미술 작품, 작업을 비롯해 자본주의 안에서의 노동까지 아우르는 개념을 설명하고, 계급과 젠더라는 요소를 들여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상상해 보도록 한다. 궁극적으로는 칼 안드레(Carl Andre),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루시 리파드(Lucy Lippard), 한스 하케(Hans Haacke)라는, 네 명 미술인의 미술실천으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먼저, 칼 안드레에게 미술노동은 미니멀 조각으로 제시되었다. 그중에서도 ‘등가’의 가치를 지닌 재료로 만든 조각작품이 대표적인데, 제목에서부터 그 의도를 드러내는 〈등가 Ⅷ〉(p. 76)은 같은 크기의 벽돌 백이십 개를 가로 열 줄, 세로 여섯 줄, 높이 두 줄로 쌓아 놓았을 뿐이었다. 한 종류의 공산품을 늘어놓은 ‘등가(Equivalent)’ 시리즈는 재료가 가진 물성에 집중해 그 자체로 노동의 위상을 전유했으며, 벽돌공의 노동과 비교되어 ‘실제’ 노동과 미적 노동 사이 차이에 기대는 가치 평가 체계를 흔들어 놓았다. 또한 안드레는 미술노동자연합에서 종종 지도자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평등주의, 반엘리트주의를 실천하며 미술노동자 안에 다양한 직업군을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로버트 모리스에게 미술노동이란 공사에 근간을 둔 프로세스 아트였고, 이는 육체노동의 가치를 증명해내는 일로 이어졌다. 전시장이 하중을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자재들로 된 〈무제(콘크리트, 목재, 강철)〉(pp. 138?150)처럼, 그의 작업에서 육체노동은 무엇보다 큰 부분을 차지했다. 모리스는 이를 설치 노동자들과 직접 수행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얻으려 했다. 한편, 그의 미술실천은 파업을 끌어들였는데, 전쟁과 연루되어 권력을 행사하던 미술관에 저항해 회고전을 몇 주 일찍 끝냄으로써 미술의 중지를 요구했다. 이 미학적 거부를 보여주면서 그는 뉴욕 예술 행동주의 집단에서의 최전선을 차지하게 되었다.
루시 리파드는 페미니즘 비평을 ‘집안일’로 규정하고 실천하는 것을 미술노동이라 보았다. 이는 창작보다는 비평가, 큐레이터 같은 부차적인 영역에 종사하는 여성의 비율에 주목해, 역설적으로 가사 노동의 존엄성을 비평에 선사하는 것이었다. 미술비평과 소설 쓰기, 전시기획까지 뻗어나가는 그의 활동은 여성의 노동력을 재평가하는 데 관심을 두었고, 페미니스트 비평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특히 그는 손뜨개질과 같은 공예를 미술의 형식으로 들여와 여성과 그의 노동을 폄하하는 미술 제도를 비판했다. 저자 역시 페미니즘에 관해, “젠더는 로버트 모리스와 같은 남성 미술노동자와 오브제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에 근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이 융성하는 동안 많은 여성 미술노동자가 미술노동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생산적으로 작동”(p. 18)했다고 말하며, 이를 다양한 종류의 작업에 대한 불균일한 평가와 성별, 인종 및 계층으로부터의 차이를 이론화하는 데 적용했다.
마지막으로 한스 하케에게 미술노동은 개념주의, 제도비판 미술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때 노동에 대한 그의 비전은 경제 발전의 양상에 발맞춰, 서비스 경제 안에서 떠오르던 정보 관리자 모델을 향했다. 그 예로, 뉴욕현대미술관 입구에서 미술관 이사회의 일원이자 뉴욕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의 베트남전쟁 지원에 대한 관람객 의견을 묻는 〈뉴욕현대미술관 여론조사〉(pp. 286?291)는 정보라는 매체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관객 참여를 유도한 작업이었다. 관객들은 입장료의 가격에 따라 색이 다른 투표용지를 나눠 받았고, 결과적으로 작업은 미술관 방문객의 구성과 그에 따른 정치 성향을 드러냈다. 하케의 이 작업은 제도비판 미술이라는 미술의 한 분과를 형성한 순간으로 기록되었다.
위에 제시된 미술노동자들의 성과만큼이나 저자는 또한 그들의 정체성과 요구에 깃든 모순, 불확실성에 주의를 기울인다.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일이란 절대 단순하지 않으며, 환상과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을 감당해야만 한다.”(p. 268) 안드레의 경우 ‘등가의’ 자재를 사용했더라도 그의 작업에서 대중성을 찾기 어려웠다는 점과 그의 주장과는 달리 그가 어느 정도 근본적으로 엘리트의 입장을 가졌다는 점, 모리스의 경우 설치 노동자 사이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흔한 우두머리의 상징인 시가를 입에 물고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관리자 역할과 혼동되었던 점(p. 142)을 비판한다. 리파드에 대해서는 그가 기획했던 전시가 특정 미술의 형태와 미술인들만을 선택하는 배제의 논리로 비난받았던 사실을 짚어 보이고, 하케가 획득하고자 했던 정보 관리자의 역할 역시 미술노동자연합이 가졌던 노동자 계급에 대한 판타지만큼이나 허구적이었다고 덧붙인다. 저자의 이러한 다각도의 시각은 우리가 좀더 비판적인 독서를 하게 하는 열쇠가 된다.
오늘날 미술의 조직화와 남겨진 과제
치열했던 시기가 지나가고, 2006년 휘트니비엔날레에서는 〈평화의 탑〉이 재건되었다. 이후 2007년에는 1969년 미술노동자연합 설립 당시의 공청회가 재연되었다. 세월이 지나 그때만큼의 중요성을 가지진 못했지만, 두 번의 재연 행사는 1960?1970년대 예술 행동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활했음을 의미했고, 여전히 그 논쟁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세부 조건에서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양도와 재판매 시 미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1971년에 작성된 협약 대신 오늘날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를 수용하거나 저작권을 폐기하는 움직임이 보인다. 심지어 이 책이 연구한 미술노동자들이 미술관이라는 특정한 공간 안에서 그리고 그것에 대항하면서 일했던 것과는 대조되게, 미술 기관을 흑백의 논리로 읽어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미술이 대안 공간으로 이주해 가면서 ‘미술관’은 더 이상 막대한 힘을 가진 존재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의 형태 또한 세분화되어 창조적 노동, ‘예술적인’ 노동의 모습이 등장하는 가운데 무엇이 미술노동인지 구분하는 일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미술노동 개념에 대해 가졌던 그때의 불안을 되돌아보는 일은, 미술노동자들이 보여준 엄청난 양의 조직화 에너지를 전용하는 것과 같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쓴 글에서 저자는 2008년 미국에서 결성된 미술노동자와광의경제(Working Artists and the Greater Economy, WAGE)가 예술가의 공정한 보수 확보를 위해 노력하며, 지금까지도 행동주의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2012년 설립된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언급하며 한국 예술가들의 현 상황에 관한 의견을 짧게 덧붙이기도 했다.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식 단체가 존재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한편,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모든 예술가가 살아가고 보험료를 지불하도록 하는 실질적인 해결”(p. 6)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예측하며, 2020년 초 닥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 예술가들의 상황이 더욱 위태로워졌음을 경고했다. 비록 미술인에서 미술노동자로 이동해 가는 1960년대의 시도에는 어느 정도 잘못된 인식 또한 수반되었지만, 미술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재조직하려던 그들의 노력은 여전히 다음, 그 다음의 진보를 위한 예술가들의 조직화를 향하고 있다. 3년이라는 미술노동자연합의 활동 기간은 짧지만 생산적이었으며,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그 공간 안에서 어떤 종류의 계급을 넘나드는 연대가 가능한지, 그때의 미술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어떤 딜레마를 갖게 되는지, 폭넓은 사유를 남겨 주었다.
이 책 『미술노동자』는 총 5개의 장으로 구성되며, 미술노동자연합의 탄생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1장과 구체적으로 네 명의 미술인을 작품과 함께 분석하는 나머지 4개의 장으로 구분된다. 저자의 밀도 높은 자료조사로, 스미스소니언협회 미국미술아카이브 등에 보관되어 있는 당시 미술노동자연합의 공청회 녹취록뿐만 아니라, 연합의 전단지를 비롯한 미술인들의 작품 103점이 수록되어 연구 배경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책끝에는 ‘미술노동’ 용어의 번역 과정과 한국의 용례를 제시하는 「옮긴이의 말」 그리고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개념 등을 정리한 찾아보기를 실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