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탄생
이유운 시인은 첫 번째 책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를 통해, 자신이 가진 사랑의 언어를 시와 산문을 엮어 충실히 보여준 바 있다. 신작 『사랑과 탄생』에서는 사랑을 시적 언어로 환원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뒤라스와 사강, 에르노와 오즈, 김연덕과 정재율 등 자신을 뒤흔든 문학 작품을 경유하여, 사랑의 연원을 밝힌다. 또한 자기 속으로 성큼 들어와 ‘차마 죽지 못할 속도의 마음’을 주는 타인이라는 세계를 탐구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세계와 세계가 부딪힌 순간들의 모음집이자, 사랑의 경험과 활자의 세계에서 기꺼이 부서진 한 인간의 적나라한 파편들이다. 그것들 사이로 새로이 ‘탄생’한 사랑의 고백이다. 그리고 이제 이 기록은 당신을 부수는 세계가 될 것이며, 새롭게 탄생한 당신은 이 세계를 ‘충실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목차
1장. 사랑과 탄생
2장. 기행(紀行)과 기행(奇行)
3장. 의무와 중지
추천사
책 속으로
나는 사랑에 최적화된, 진화한 신인류로서 이 사랑을 비유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만들어 내지 않은 이 세상에 확실히 존재하는 ‘비(非)존재’들의 이야기다. 문학. 내 앞에 펼쳐지는 또 다른 궤도들. 존재하지 않지만 그 궤도들 사이에 나를 기꺼이 던져 넣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들. 그 비존재를 더듬는다. 활자의 방법으로. (11쪽)
사랑에게서 무엇을 바라는가?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주제에 섣불리 사랑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열광, 순간적 열망, 환각에 가까운 욕망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한가? 사랑이라는 거칠고 투명한 윤곽선은 대체 어디까지 포괄해 내는가? (14쪽)
타인은 나에게 성큼 들어온다. 그는 제멋대로 나에게 계속해서 살아가거나, 차마 죽지 못할 속도의 마음들을 준다. 그가 나를 관찰한다. 나는 그의 세계에 포섭당한 채로, 내 존재가 끊임없이 점멸되는 것을 지켜본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22쪽)
사랑이란 그 시간만큼 그 상대에게 주는 거라고. 많이 사랑한다는 건, 그에게 삶을 주고 자신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랑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결국 죽음이 되므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타인과 나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투사하는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26쪽)
타인은 나와 다른 세계. 언젠가 멸종과 멸망으로 치닫는 열린 세계다. 언젠가 자전의 속도가
느려지다 못해 멈추는 지구만이 멸망을 앞둔 세계는 아니었다. 타인이라는 세계가 존재한다. 나는 그 세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나는 사랑이라는 대상으로 불쑥 다가오는 타인의 세계를 두려워하지만 사랑한다. 두려움과 사랑은 기존의 인식에서 끊임없이 탈피한다는 데서 비슷한 말일지도 모른다. (55쪽)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종이로 된 지도를 볼 수 있는 능력과 비슷한 것 같다. 종이로 된 지도에는 내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더듬어 내 위치를 찾아야 한다. 여러 기호들도 알아야 하고, 축척에 따라 알맞은 거리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게 사랑의 시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63쪽)
내 마음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너무 지나치게 사랑으로 빨리 달려가지 않도록 나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사랑으로 비유되는 모든 시를 알고 싶다. 그 시를 모두 애인에게 바치고 그의 무릎 앞에 쓰러지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 나 사이의 합당한 거리를 가늠하고 싶다. 한 뼘 반 정도. 그 사이의 간지러운 간격이 필요하다. 그걸 아는 건,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능력이다. (63쪽)
나는 잠깐 존재하고 싶다. 영원을 기록하고 싶다. 영원토록 기록되고 싶다. (69쪽)
사랑은 이상한 일이다. 병적으로 기울어져 있고 어딘가로 곧 쏟아질 것만 같은 묘한 순간의 연속이다. (81쪽)
사랑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내부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것에 진정한 힘이 있다. (85쪽)
나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의 수만큼 관찰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복수형의 영원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특정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확신이 있다. (86쪽)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좋아하는 것은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을 상상하는 순간이, 그래서 손가락 끝까지 간질간질하게 열이 타고 오르는 느낌이 좋다. 그것이 실재하는지, 내 상상만큼 아름다운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상상의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 (146쪽)
은어의 세계에서 절대 은어로 치환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 바로 타인의 존재 그 자체다. 그는 내 호명을 통해 그 존재가 다른 것으로 치환되거나 온전히 비유되지 않는다. 어떤 은어를 통해 그를 부른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존재에는 남는 부분이 있다. 암흑의, 절대 볼 수 없는, 만지는 것으로만 짐작할 수 있는 말랑한 ‘존재의 부분’. 나는 그 남는 부분이 없는, 내 시야에 모두 포착되는 연인을 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분이 너무 어두워서 가끔 나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연인이 좋다. (153쪽)
작가 소개
이유운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시산문집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를 썼다.
사랑과 탄생
이유운 시인은 첫 번째 책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를 통해, 자신이 가진 사랑의 언어를 시와 산문을 엮어 충실히 보여준 바 있다. 신작 『사랑과 탄생』에서는 사랑을 시적 언어로 환원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뒤라스와 사강, 에르노와 오즈, 김연덕과 정재율 등 자신을 뒤흔든 문학 작품을 경유하여, 사랑의 연원을 밝힌다. 또한 자기 속으로 성큼 들어와 ‘차마 죽지 못할 속도의 마음’을 주는 타인이라는 세계를 탐구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세계와 세계가 부딪힌 순간들의 모음집이자, 사랑의 경험과 활자의 세계에서 기꺼이 부서진 한 인간의 적나라한 파편들이다. 그것들 사이로 새로이 ‘탄생’한 사랑의 고백이다. 그리고 이제 이 기록은 당신을 부수는 세계가 될 것이며, 새롭게 탄생한 당신은 이 세계를 ‘충실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다.
목차
1장. 사랑과 탄생
2장. 기행(紀行)과 기행(奇行)
3장. 의무와 중지
추천사
책 속으로
나는 사랑에 최적화된, 진화한 신인류로서 이 사랑을 비유하기 위한 특별한 방법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가 만들어 내지 않은 이 세상에 확실히 존재하는 ‘비(非)존재’들의 이야기다. 문학. 내 앞에 펼쳐지는 또 다른 궤도들. 존재하지 않지만 그 궤도들 사이에 나를 기꺼이 던져 넣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들. 그 비존재를 더듬는다. 활자의 방법으로. (11쪽)
사랑에게서 무엇을 바라는가? 우리는 타인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주제에 섣불리 사랑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열광, 순간적 열망, 환각에 가까운 욕망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능한가? 사랑이라는 거칠고 투명한 윤곽선은 대체 어디까지 포괄해 내는가? (14쪽)
타인은 나에게 성큼 들어온다. 그는 제멋대로 나에게 계속해서 살아가거나, 차마 죽지 못할 속도의 마음들을 준다. 그가 나를 관찰한다. 나는 그의 세계에 포섭당한 채로, 내 존재가 끊임없이 점멸되는 것을 지켜본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22쪽)
사랑이란 그 시간만큼 그 상대에게 주는 거라고. 많이 사랑한다는 건, 그에게 삶을 주고 자신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거라고. 그리고 그 사랑을 오래 하다 보면, 내가 결국 죽음이 되므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타인과 나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투사하는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될 것이다. (26쪽)
타인은 나와 다른 세계. 언젠가 멸종과 멸망으로 치닫는 열린 세계다. 언젠가 자전의 속도가
느려지다 못해 멈추는 지구만이 멸망을 앞둔 세계는 아니었다. 타인이라는 세계가 존재한다. 나는 그 세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나는 사랑이라는 대상으로 불쑥 다가오는 타인의 세계를 두려워하지만 사랑한다. 두려움과 사랑은 기존의 인식에서 끊임없이 탈피한다는 데서 비슷한 말일지도 모른다. (55쪽)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종이로 된 지도를 볼 수 있는 능력과 비슷한 것 같다. 종이로 된 지도에는 내 위치가 나오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더듬어 내 위치를 찾아야 한다. 여러 기호들도 알아야 하고, 축척에 따라 알맞은 거리를 가늠해 보아야 한다. 그게 사랑의 시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63쪽)
내 마음이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이 너무 지나치게 사랑으로 빨리 달려가지 않도록 나를 계속해서 찾아야 한다. 사랑으로 비유되는 모든 시를 알고 싶다. 그 시를 모두 애인에게 바치고 그의 무릎 앞에 쓰러지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 나 사이의 합당한 거리를 가늠하고 싶다. 한 뼘 반 정도. 그 사이의 간지러운 간격이 필요하다. 그걸 아는 건, 아주 사소하지만 중요한 능력이다. (63쪽)
나는 잠깐 존재하고 싶다. 영원을 기록하고 싶다. 영원토록 기록되고 싶다. (69쪽)
사랑은 이상한 일이다. 병적으로 기울어져 있고 어딘가로 곧 쏟아질 것만 같은 묘한 순간의 연속이다. (81쪽)
사랑은 타인이 아니라 나의 내부를 끊임없이 파괴하는 것에 진정한 힘이 있다. (85쪽)
나에게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의 수만큼 관찰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복수형의 영원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특정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확신이 있다. (86쪽)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을 좋아하는 것은 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믿는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렇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을 상상하는 순간이, 그래서 손가락 끝까지 간질간질하게 열이 타고 오르는 느낌이 좋다. 그것이 실재하는지, 내 상상만큼 아름다운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그것이 상상의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 (146쪽)
은어의 세계에서 절대 은어로 치환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 바로 타인의 존재 그 자체다. 그는 내 호명을 통해 그 존재가 다른 것으로 치환되거나 온전히 비유되지 않는다. 어떤 은어를 통해 그를 부른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의 존재에는 남는 부분이 있다. 암흑의, 절대 볼 수 없는, 만지는 것으로만 짐작할 수 있는 말랑한 ‘존재의 부분’. 나는 그 남는 부분이 없는, 내 시야에 모두 포착되는 연인을 원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부분이 너무 어두워서 가끔 나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연인이 좋다. (153쪽)
작가 소개
이유운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시산문집 『변방의 언어로 사랑하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