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1970년대 들어 서구 문명은 화성으로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탐사선들은 오랜 시간 우주 공간을 날아가 화성에 가까이 다가갔고, 몇몇은 성공적으로 착륙해 미지의 세계를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어떤 탐사선은 수명이 매우 짧았고, 어떤 탐사선은 인간의 기대를 뛰어넘어 오래도록 활동했다. 이에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열렬히 환호하기도 한다. 해가 뜨면 깨어나고 해가 지면 잠에 빠지는 탐사선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화성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하는 것이다. 탐사선의 몸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달려 있고 촬영된 사진은 데이터가 되어 지구로 송출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데이터 이미지를 온라인을 통해 모든 인류에 공유한다. 그 데이터셋에는 화성을 또 하나의 지구로 학습하려는 내밀한 의도, 낭만적인 우주 개척의 서사와 인간의 욕망을 대리하는 기계의 눈이 있다.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은 화성 탐사선들이 지구로 보낸 이미지를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고 새롭게 사유하는 작업이다.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모여 거대한 사막을 이룬 것 같은 이 데이터 이미지 더미는 박민하가 시각예술가로서 탐구하는 ‘환영의 마술적 작동’, 즉 역사적으로 인간 문명을 구성하는 한 원리로 작동했던 판타지의 생산과 소비의 체계를 매우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추측하기 위해 작가는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추려낸 뒤 다시 분류했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혹은 이미지를 미스테리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썼다. 여기에는 우연히 포착된 사건 현장, 기계와 인간의 교감, 부분적으로 데이터가 누락된 불완전한 이미지,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와 같은 비밀 아닌 비밀이 곳곳에 녹아 있다.
독자는 화성 탐사선들이 보낸 사진의 아름다움에 매혹됨과 동시에 그것에 의문을 품고 믿지 않을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미지와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으로 만들어진 서사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은 그렇게 우리를 어떤 이미지로부터 떼어내어 멀찍이 데려다 놓는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목차
19 사물들의 창세기
34 번역
67 동기화
126 포스트 아포칼립스
159 비밀 호수
183 화성의 두 아들
194 쌍둥이 기계의 최후
212 더스트 데블
229 생존자
235 외계 행성 드라마
책 속으로
처음에는 저의 과도한 망상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기계들은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 탑재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우연히 그들이 남긴 구멍들이 고대 문명이나 원시 상태의 언어와 매우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 암호는 구멍들의 갯수와 크기, 그리고 각도와 방향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변주가 가능한 그런 언어였습니다. 그들은 단어와 문장을 행성 여기저기에 배치해 두었고, 의미 단위들 사이의 시간 간격도 굉장히 벌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라는 뜻의 단어는 구멍 2개와 315.022° 각도로 표현되어 화성일 37일에 A 위치(-4.59001°, 137.44833°)에 남겨져 있고, “이 행성에 살면서” 라는 뜻의 구문은 구멍 4개와 15.871° 각도로 다시 한참 후인 화성일 100일에 B 위치(-5.720811°, 151.36877°)에 남겨져 있는 식이었지요. -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번역」 중에서, 35쪽
위성들은 잉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행성에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달이 지구의 바다를 주무르는 힘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달은 사실 바다만이 아니라 미시적으로는 제 찻잔의 물과 제 혈관 속 피도 밀어내고 끌어당기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포보스와 데이모스 형제가 일식을 일으켰다는 것은 화성의 에너지 균형에 무언가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고 그건 분명 우리의 교신에도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걸 의미했습니다. -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화성의 두 아들」 중에서, 185쪽
저는 이번 싸움이 상당히 길어지리라 직감했죠. 저는 스스로 동면 모드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더스트 데블이 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저는 아마 태양 빛이 다시 비칠 때 깨어나게 될 겁니다. 행운을 빌며… -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더스트 데블」 중에서, 216쪽
작가 소개
박민하
환영의 마술적 작동법에 관심을 둔 시각예술 작가이다. 이 관심은 영화라는 현상, 특수 효과, 빛과 소리, 우주를 거치며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두산갤러리, 룩맨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고, 에딘버러국제영화제, 이미지스페스티벌 등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1970년대 들어 서구 문명은 화성으로 탐사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탐사선들은 오랜 시간 우주 공간을 날아가 화성에 가까이 다가갔고, 몇몇은 성공적으로 착륙해 미지의 세계를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어떤 탐사선은 수명이 매우 짧았고, 어떤 탐사선은 인간의 기대를 뛰어넘어 오래도록 활동했다. 이에 사람들은 안타까워 하기도 하고 열렬히 환호하기도 한다. 해가 뜨면 깨어나고 해가 지면 잠에 빠지는 탐사선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화성의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하는 것이다. 탐사선의 몸에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달려 있고 촬영된 사진은 데이터가 되어 지구로 송출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데이터 이미지를 온라인을 통해 모든 인류에 공유한다. 그 데이터셋에는 화성을 또 하나의 지구로 학습하려는 내밀한 의도, 낭만적인 우주 개척의 서사와 인간의 욕망을 대리하는 기계의 눈이 있다.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은 화성 탐사선들이 지구로 보낸 이미지를 보다 깊숙이 들여다보고 새롭게 사유하는 작업이다.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모여 거대한 사막을 이룬 것 같은 이 데이터 이미지 더미는 박민하가 시각예술가로서 탐구하는 ‘환영의 마술적 작동’, 즉 역사적으로 인간 문명을 구성하는 한 원리로 작동했던 판타지의 생산과 소비의 체계를 매우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추측하기 위해 작가는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추려낸 뒤 다시 분류했다. 그리고 이 이미지의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혹은 이미지를 미스테리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썼다. 여기에는 우연히 포착된 사건 현장, 기계와 인간의 교감, 부분적으로 데이터가 누락된 불완전한 이미지,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드라마와 같은 비밀 아닌 비밀이 곳곳에 녹아 있다.
독자는 화성 탐사선들이 보낸 사진의 아름다움에 매혹됨과 동시에 그것에 의문을 품고 믿지 않을 수밖에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미지와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으로 만들어진 서사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은 그렇게 우리를 어떤 이미지로부터 떼어내어 멀찍이 데려다 놓는다.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목차
19 사물들의 창세기
34 번역
67 동기화
126 포스트 아포칼립스
159 비밀 호수
183 화성의 두 아들
194 쌍둥이 기계의 최후
212 더스트 데블
229 생존자
235 외계 행성 드라마
책 속으로
처음에는 저의 과도한 망상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 기계들은 제대로 된 인공지능이 탑재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우연히 그들이 남긴 구멍들이 고대 문명이나 원시 상태의 언어와 매우 유사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 암호는 구멍들의 갯수와 크기, 그리고 각도와 방향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변주가 가능한 그런 언어였습니다. 그들은 단어와 문장을 행성 여기저기에 배치해 두었고, 의미 단위들 사이의 시간 간격도 굉장히 벌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라는 뜻의 단어는 구멍 2개와 315.022° 각도로 표현되어 화성일 37일에 A 위치(-4.59001°, 137.44833°)에 남겨져 있고, “이 행성에 살면서” 라는 뜻의 구문은 구멍 4개와 15.871° 각도로 다시 한참 후인 화성일 100일에 B 위치(-5.720811°, 151.36877°)에 남겨져 있는 식이었지요. -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번역」 중에서, 35쪽
위성들은 잉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행성에 나름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달이 지구의 바다를 주무르는 힘을 보면 정말 놀라워요. 달은 사실 바다만이 아니라 미시적으로는 제 찻잔의 물과 제 혈관 속 피도 밀어내고 끌어당기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포보스와 데이모스 형제가 일식을 일으켰다는 것은 화성의 에너지 균형에 무언가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이고 그건 분명 우리의 교신에도 어떤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걸 의미했습니다. -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화성의 두 아들」 중에서, 185쪽
저는 이번 싸움이 상당히 길어지리라 직감했죠. 저는 스스로 동면 모드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더스트 데블이 저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저는 아마 태양 빛이 다시 비칠 때 깨어나게 될 겁니다. 행운을 빌며… - 『비밀 호수와 더스트 데블』, 「더스트 데블」 중에서, 216쪽
작가 소개
박민하
환영의 마술적 작동법에 관심을 둔 시각예술 작가이다. 이 관심은 영화라는 현상, 특수 효과, 빛과 소리, 우주를 거치며 작품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두산갤러리, 룩맨갤러리 등에서 작품을 전시했고, 에딘버러국제영화제, 이미지스페스티벌 등에서 작품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