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봇의 결함 4
제2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집에 모이다〉로 데뷔하여 꿈과 기억,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이치은 작가 소설.
현재가 아닌 근미래,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로봇의 결함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탐정 필립 말로의 까칠함을 장착한 주인공이 로봇의 결함을 접수 받고 그들을 만나러 가면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스물다섯 가지 에피소드와 다섯 개의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욕을 하는 해안 인명 구조 로봇 조라, 잠수를 타는 교통 경찰 로봇 포그,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웃어버린 간병인 로봇 헨리, 손님들의 물건을 훔치는 호텔 청소 로봇 유춘, 야반도주하는 파씨, 전원을 끈 채 비행기의 짐칸에서 운송되는 것에 민원을 제기한 세계 최고의 수의사로봇 끼릴로프까지 여러 사연을 가진 로봇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만나는 결함을 가진 로봇들은 흥미롭게도 인간을 닮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닮았기 때문에 결함이라는 딱지가 붙은 로봇들. 인간적인, 매우 인간적인 로봇들의 이야기.
목차
1. 호텔 객실 담당 청소 로봇, 유춘
2. 복제화를 그리는 로봇, 앙소르
3. 동물원에서 일하는 로봇, 파씨
4. 웃는 로봇, 헨리
5. 국경 분쟁 지역에서 만난 로봇, 히로코
6. 네 번째 꿈 - 로봇은 혁명의 적인가?
책 속으로
내가 궁금했던 건, 유춘이라는 로봇이 무엇을 수집했냐는 것이었다. 로봇이 관심을 보일 만한 물건이 뭘까? 상상이 되질 않았다. 내가 딱히 수집하는 물건이 없어서 더 그랬다.
p.17 「호텔 객실 담당 청소 로봇, 유춘」
처음에 나는 그 체리가 두 폭 그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의심의 안경을 쓰고 꼼꼼히 뜯어봐도 체리의 색깔이나 모양, 그 위치마저 모두 똑같았다. 그림에서 톡 뜯어내 저울에 무게를 재면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똑같을 만큼.
p.35 「복제화를 그리는 로봇, 앙소르」
“파씨가 밤에 수시로 야행성 동물들을 깨우러 다닌 후론, 모든 게 순조로워졌어요. 처음에는 파씨에게 반항하는 동물들도 드물게 있었지만, 파씨의 끈질긴 수면 방해에 다들 밤에 일어나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았죠. 그런데 어느 날 CCTV를 돌려 보다가......”
p.46-47 「동물원에서 일하는 로봇, 파씨」
“그런데 할머니, 헨리라는 로봇이 어떻게 웃던가요?”
할머니는 조용히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를 나란히 두 개 허공에 그렸다. 할머니의 말이 맞다면(나는 어느새 할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기분이 되었다, 점점 맛있어지던 케이크와 차 때문이었을까?)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걸 결함 건으로 올리면 새로운 보스가 나를 반쯤 나사가 풀린 ‘또라이’로 여길 게 분명했다.
p.67 「웃는 로봇, 헨리」
그때, 푸른색 기둥과 마주쳤다. 더듬어 보니 육교였다. 반갑게도 푸른색 육교였다. 구름의 바다 위에서 만난 푸른색 등대. 나는 인도 위 푸른색 육교 아래 푸른색 기둥 근처에 서 있었다. 그때쯤 최루탄의 안개가 빠른 속도로 걷히고 있었다.
p.100 「국경 분쟁 지역에서 만난 로봇, 히로코」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가는데 집이 통째로 흔들려 계단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계단 손잡이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렸다. 탱크가 마르크스의 서재를 겨냥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p.119 「네번째꿈 - 로봇은 혁명의 적인가?」
저자 소개
이치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1998)로 제2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로 장편소설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2003), 꿈에 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다룬 『비밀 경기자』 (2009), 『노예, 틈입자, 파괴자』 (2014), 시간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키브라, 기억의 원점』 (2015), 소설집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2018) 그 후 『마루가 꺼진 은신처』 (2018)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평소 독서광인 그가 좋아하는 책들에서 주운 부스러기들로 첫 에세이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 (2020)를 발표했다.















로봇의 결함 4
제2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집에 모이다〉로 데뷔하여 꿈과 기억,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이치은 작가 소설.
현재가 아닌 근미래,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로봇의 결함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탐정 필립 말로의 까칠함을 장착한 주인공이 로봇의 결함을 접수 받고 그들을 만나러 가면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스물다섯 가지 에피소드와 다섯 개의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욕을 하는 해안 인명 구조 로봇 조라, 잠수를 타는 교통 경찰 로봇 포그,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웃어버린 간병인 로봇 헨리, 손님들의 물건을 훔치는 호텔 청소 로봇 유춘, 야반도주하는 파씨, 전원을 끈 채 비행기의 짐칸에서 운송되는 것에 민원을 제기한 세계 최고의 수의사로봇 끼릴로프까지 여러 사연을 가진 로봇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만나는 결함을 가진 로봇들은 흥미롭게도 인간을 닮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닮았기 때문에 결함이라는 딱지가 붙은 로봇들. 인간적인, 매우 인간적인 로봇들의 이야기.
목차
1. 호텔 객실 담당 청소 로봇, 유춘
2. 복제화를 그리는 로봇, 앙소르
3. 동물원에서 일하는 로봇, 파씨
4. 웃는 로봇, 헨리
5. 국경 분쟁 지역에서 만난 로봇, 히로코
6. 네 번째 꿈 - 로봇은 혁명의 적인가?
책 속으로
내가 궁금했던 건, 유춘이라는 로봇이 무엇을 수집했냐는 것이었다. 로봇이 관심을 보일 만한 물건이 뭘까? 상상이 되질 않았다. 내가 딱히 수집하는 물건이 없어서 더 그랬다.
p.17 「호텔 객실 담당 청소 로봇, 유춘」
처음에 나는 그 체리가 두 폭 그림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아닐까 의심했는데, 의심의 안경을 쓰고 꼼꼼히 뜯어봐도 체리의 색깔이나 모양, 그 위치마저 모두 똑같았다. 그림에서 톡 뜯어내 저울에 무게를 재면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똑같을 만큼.
p.35 「복제화를 그리는 로봇, 앙소르」
“파씨가 밤에 수시로 야행성 동물들을 깨우러 다닌 후론, 모든 게 순조로워졌어요. 처음에는 파씨에게 반항하는 동물들도 드물게 있었지만, 파씨의 끈질긴 수면 방해에 다들 밤에 일어나 정상적인 리듬을 되찾았죠. 그런데 어느 날 CCTV를 돌려 보다가......”
p.46-47 「동물원에서 일하는 로봇, 파씨」
“그런데 할머니, 헨리라는 로봇이 어떻게 웃던가요?”
할머니는 조용히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를 나란히 두 개 허공에 그렸다. 할머니의 말이 맞다면(나는 어느새 할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기분이 되었다, 점점 맛있어지던 케이크와 차 때문이었을까?)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걸 결함 건으로 올리면 새로운 보스가 나를 반쯤 나사가 풀린 ‘또라이’로 여길 게 분명했다.
p.67 「웃는 로봇, 헨리」
그때, 푸른색 기둥과 마주쳤다. 더듬어 보니 육교였다. 반갑게도 푸른색 육교였다. 구름의 바다 위에서 만난 푸른색 등대. 나는 인도 위 푸른색 육교 아래 푸른색 기둥 근처에 서 있었다. 그때쯤 최루탄의 안개가 빠른 속도로 걷히고 있었다.
p.100 「국경 분쟁 지역에서 만난 로봇, 히로코」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가는데 집이 통째로 흔들려 계단 중간에 주저앉고 말았다. 계단 손잡이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버렸다. 탱크가 마르크스의 서재를 겨냥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p.119 「네번째꿈 - 로봇은 혁명의 적인가?」
저자 소개
이치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1998)로 제2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로 장편소설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2003), 꿈에 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다룬 『비밀 경기자』 (2009), 『노예, 틈입자, 파괴자』 (2014), 시간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키브라, 기억의 원점』 (2015), 소설집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2018) 그 후 『마루가 꺼진 은신처』 (2018)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평소 독서광인 그가 좋아하는 책들에서 주운 부스러기들로 첫 에세이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 (2020)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