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결함 5
제2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집에 모이다〉로 데뷔하여 꿈과 기억,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이치은 작가 소설.
현재가 아닌 근미래,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로봇의 결함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탐정 필립 말로의 까칠함을 장착한 주인공이 로봇의 결함을 접수 받고 그들을 만나러 가면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스물다섯 가지 에피소드와 다섯 개의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욕을 하는 해안 인명 구조 로봇 조라, 잠수를 타는 교통 경찰 로봇 포그,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웃어버린 간병인 로봇 헨리, 손님들의 물건을 훔치는 호텔 청소 로봇 유춘, 야반도주하는 파씨, 전원을 끈 채 비행기의 짐칸에서 운송되는 것에 민원을 제기한 세계 최고의 수의사로봇 끼릴로프까지 여러 사연을 가진 로봇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만나는 결함을 가진 로봇들은 흥미롭게도 인간을 닮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닮았기 때문에 결함이라는 딱지가 붙은 로봇들. 인간적인, 매우 인간적인 로봇들의 이야기.
목차
1. 수소 가스 충전소에서 일하는 로봇, 아사드
2. 공원 묘지 관리인 로봇, 뒤카스
3. 음식 맛을 보는 로봇, 라블레
4. 민원을 제기하는 로봇, 끼릴로프
5. 결함을 신고하는 로봇, 끼릴로프
6. 다섯 번째 꿈 - 우주 소년 아톰과의 대화
책 속으로
본인이 직접 찍은 건 아니고 제보로 들어온 사진이었는 데 대충 봐도 확실히 풍선이더라고, UFO가 아니고. 은색 풍선이었어. ‘근데 누가 이렇게 규칙적으로 풍선을 날려보내는 걸까요?’ 내가 그 젊은 사회부 기자에게 물었었지. ‘저는 애들이 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모르긴 해도 UFO 마니아가 아닐까요?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믿고 싶은 걸 만들어 띄우는 게 아닐까요?’
p.19 「수소 가스 충전소에서 일하는 로봇, 아사드」
날개 달린 천사의 동상을 지나며 노인이 뒤카스의 결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고개를 왼편 어깨 쪽으로 비스듬히 누이고 천상을 바라보던 천사는 지상에 살고 있는 로봇의 결함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p.30 「공원 묘지 관리인 로봇, 뒤카스」
지하 11층은 거대하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곳이 건물의 내부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하늘은, 아니 천장이라 불러야 할 그 평면은 천장이라기엔 지나치게 높고 또 깜깜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한 층을 내려가는 데 만도 그리 오래 걸렸나 보다. 나는 밤하늘을 닮은 그곳에서 습관적으로 달을 찾고 있었다.
p.47 「음식 맛을 보는 로봇, 라블레」
“법률적으로 로봇이 민원을 제기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대한 규정이 어딘가 있을 거 아니에요?”
“스마트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게 또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게, 여기 쪼끔 저기 쪼끔 민원인에 대한 규정이 있긴 한데 누구도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이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가 봐요. 누구도 침팬지나 가로수나 붙박이 벽장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 그렇게 다짐하진 않았던 거겠죠.”
p.60-61 「민원을 제기하는 로봇, 끼릴로프」
흔치는 않지만 1년에 몇 차례씩은 장난 전화를 받기도 하니까. 로봇이 길거리서 자꾸 오줌을 누려 한다는 가짜 신고도 받아 봤고, 로봇이 자기에게 계속 꾸지도 않은 돈의 빚 독촉을 한다는 망상증 환자의 전화도 받아 봤었다.
p.83 「결함을 신고하는 로봇, 끼릴로프」
만(灣)의 가장자리, 곱고 하얀 모래사장이 파란색 바다와 초록색 보리밭 사이에 초승달처럼 새겨져 있었다.
p.103 「다섯 번째 꿈 - 우주 소년 아톰과의 대화」
저자 소개
이치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1998)로 제2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로 장편소설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2003), 꿈에 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다룬 『비밀 경기자』 (2009), 『노예, 틈입자, 파괴자』 (2014), 시간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키브라, 기억의 원점』 (2015), 소설집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2018) 그 후 『마루가 꺼진 은신처』 (2018)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평소 독서광인 그가 좋아하는 책들에서 주운 부스러기들로 첫 에세이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 (2020)를 발표했다.
로봇의 결함 5
제22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권태로운 자들, 소파씨의 집에 모이다〉로 데뷔하여 꿈과 기억, 시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소설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온 이치은 작가 소설.
현재가 아닌 근미래,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 로봇의 결함을 기록하는 일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탐정 필립 말로의 까칠함을 장착한 주인공이 로봇의 결함을 접수 받고 그들을 만나러 가면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스물다섯 가지 에피소드와 다섯 개의 꿈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욕을 하는 해안 인명 구조 로봇 조라, 잠수를 타는 교통 경찰 로봇 포그,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웃어버린 간병인 로봇 헨리, 손님들의 물건을 훔치는 호텔 청소 로봇 유춘, 야반도주하는 파씨, 전원을 끈 채 비행기의 짐칸에서 운송되는 것에 민원을 제기한 세계 최고의 수의사로봇 끼릴로프까지 여러 사연을 가진 로봇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만나는 결함을 가진 로봇들은 흥미롭게도 인간을 닮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닮았기 때문에 결함이라는 딱지가 붙은 로봇들. 인간적인, 매우 인간적인 로봇들의 이야기.
목차
1. 수소 가스 충전소에서 일하는 로봇, 아사드
2. 공원 묘지 관리인 로봇, 뒤카스
3. 음식 맛을 보는 로봇, 라블레
4. 민원을 제기하는 로봇, 끼릴로프
5. 결함을 신고하는 로봇, 끼릴로프
6. 다섯 번째 꿈 - 우주 소년 아톰과의 대화
책 속으로
본인이 직접 찍은 건 아니고 제보로 들어온 사진이었는 데 대충 봐도 확실히 풍선이더라고, UFO가 아니고. 은색 풍선이었어. ‘근데 누가 이렇게 규칙적으로 풍선을 날려보내는 걸까요?’ 내가 그 젊은 사회부 기자에게 물었었지. ‘저는 애들이 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모르긴 해도 UFO 마니아가 아닐까요? 자기가 보고 싶은 걸, 믿고 싶은 걸 만들어 띄우는 게 아닐까요?’
p.19 「수소 가스 충전소에서 일하는 로봇, 아사드」
날개 달린 천사의 동상을 지나며 노인이 뒤카스의 결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고개를 왼편 어깨 쪽으로 비스듬히 누이고 천상을 바라보던 천사는 지상에 살고 있는 로봇의 결함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p.30 「공원 묘지 관리인 로봇, 뒤카스」
지하 11층은 거대하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그곳이 건물의 내부라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다. 하늘은, 아니 천장이라 불러야 할 그 평면은 천장이라기엔 지나치게 높고 또 깜깜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한 층을 내려가는 데 만도 그리 오래 걸렸나 보다. 나는 밤하늘을 닮은 그곳에서 습관적으로 달을 찾고 있었다.
p.47 「음식 맛을 보는 로봇, 라블레」
“법률적으로 로봇이 민원을 제기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대한 규정이 어딘가 있을 거 아니에요?”
“스마트한 질문이긴 하지만...... 그게 또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게, 여기 쪼끔 저기 쪼끔 민원인에 대한 규정이 있긴 한데 누구도 인간이 아닌 그 무엇이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가 봐요. 누구도 침팬지나 가로수나 붙박이 벽장이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는 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 그렇게 다짐하진 않았던 거겠죠.”
p.60-61 「민원을 제기하는 로봇, 끼릴로프」
흔치는 않지만 1년에 몇 차례씩은 장난 전화를 받기도 하니까. 로봇이 길거리서 자꾸 오줌을 누려 한다는 가짜 신고도 받아 봤고, 로봇이 자기에게 계속 꾸지도 않은 돈의 빚 독촉을 한다는 망상증 환자의 전화도 받아 봤었다.
p.83 「결함을 신고하는 로봇, 끼릴로프」
만(灣)의 가장자리, 곱고 하얀 모래사장이 파란색 바다와 초록색 보리밭 사이에 초승달처럼 새겨져 있었다.
p.103 「다섯 번째 꿈 - 우주 소년 아톰과의 대화」
저자 소개
이치은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 『권태로운 자들, 소파 씨의 아파트에 모이다』 (1998)로 제2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 후로 장편소설 『유 대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사라졌는가』 (2003), 꿈에 관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다룬 『비밀 경기자』 (2009), 『노예, 틈입자, 파괴자』 (2014), 시간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 『키브라, 기억의 원점』 (2015), 소설집 『보르헤스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논쟁』 (2018) 그 후 『마루가 꺼진 은신처』 (2018)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평소 독서광인 그가 좋아하는 책들에서 주운 부스러기들로 첫 에세이 『천상에 있는 친절한 지식의 중심지』 (2020)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