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개진 계절
1년 동안 주변의 초록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초록의 이미지를 담으며 계속해서 떠올린 것은 죽음이었다. 반짝이며 빛나는 것들 안에 기쁨이 있다면 그 뒷면에는 언제나 동일한 질량의 슬픔도 있다. 길을 걷다가 만난 초록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푸릇함이 주는 생명력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이 떠올랐다. 생명이 있는 곳엔 죽음이 있고, 진실이 있는 곳엔 거짓이 있고, 순간이 있는 곳엔 영원이 있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 사이에는 도무지 떼어놓을 수 없는 단단한 연결이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면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서로가 없으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포개진 계절》은 초록의 뒷면에 관한 책이다. 초록 뒤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계절과 죽음, 사라짐에 관한 이야기. 결국 이 모든 건 조화(harmony)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목차
들어가며
무덤 위에 놓인 단어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구부정한 숨을 쉬는 구부정한 사람
연기를 모으는 섬의 주인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선택
허공을 떠도는 끝과 시작의 인사
눈물에 대해 하는 전부
기도의 무게
새하얀 새 한 마리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걸 알지만
악어가 나오는 작은 연못
태어나고 또 사라지는 일
세 종류의 기다림
곳
8개의 굳은살
사이와 사이 사이의 간격
길 위에 누운 차가운 몸
햇빛 한 뼘
당신은 무엇을 봤어요?
사슴과 사탕
사바아사나
어쩔 수 없는
포개진 계절
책 속으로
p.14
나무들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보인다. 새의 고향은 동그라미다. 동그라미의 끝자락에는 갈 곳을 잃은 단어들이 수북이 포개져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들. 아직 어둠에서 나오지 못한 말들. 바스락거리는 단어들은 우리와 마주할 적당한 때를 찾는다.
p.26
시간의 틈 사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나를 간지럽히는 장면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봤던 학교 운동장, 강당에서 앞구르기를 하며 봤던 친구들의 뒤집힌 얼굴, 엄마의 무릎에 누워 바라본 반대로 된 눈. 거꾸로였던 세상을 생각하며 구부정한 숨을 쉰다. 나는 점점 구부정한 사람이 된다.
p.92
곧 떠나려는 친구를 붙잡고 삶에서 되돌려지지 않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한다. 시간을 사냥하고, 우스운 농담을 기록하는 습관. 섣부른 판단은 항상 몇 걸음 더 앞서간다. 열 개의 조각으로 작게 나눠진 케이크를 함께 나눠 먹는다. 오늘 같은 날에는 태어나고 또 사라지는 일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p.114
무거운 발자국을 옮기는 사람의 손가락은 유난히 투명하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만나는 지점에는 양손을 합쳐 모두 8개의 딱딱한 굳은살이 있다. 그는 자신의 굳은살을 만지며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나무가 된다는 건 흐르는 바람을 단단하게 만들어 품 안에 고이 접어놓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했어. 그래서 나무에서는 바람의 냄새가 난다고 했어.
p.133
한 뼘의 햇빛 안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없다. 모든 것이 맞을 수도 또 틀릴 수도 있는 네모난 공간. 그 안에 웅크려 누워 남에게 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한다.
저자 소개
임희선
일상의 순간을 글과 이미지로 기록한다. 고양이와의 눈 맞춤, 강아지가 흔드는 꼬리,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처럼 작은 몸짓이 주는 커다란 감동에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천천히, 적당히, 건강히 사는 삶을 꿈꾸며 충북 괴산에서 출판사 cucurrucucu를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cu.cu.rru.cu.cu
포개진 계절
1년 동안 주변의 초록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초록의 이미지를 담으며 계속해서 떠올린 것은 죽음이었다. 반짝이며 빛나는 것들 안에 기쁨이 있다면 그 뒷면에는 언제나 동일한 질량의 슬픔도 있다. 길을 걷다가 만난 초록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푸릇함이 주는 생명력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이 떠올랐다. 생명이 있는 곳엔 죽음이 있고, 진실이 있는 곳엔 거짓이 있고, 순간이 있는 곳엔 영원이 있다. 서로 반대되는 것들 사이에는 도무지 떼어놓을 수 없는 단단한 연결이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면에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서로가 없으면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포개진 계절》은 초록의 뒷면에 관한 책이다. 초록 뒤에 켜켜이 쌓인 수많은 계절과 죽음, 사라짐에 관한 이야기. 결국 이 모든 건 조화(harmony)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목차
들어가며
무덤 위에 놓인 단어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구부정한 숨을 쉬는 구부정한 사람
연기를 모으는 섬의 주인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선택
허공을 떠도는 끝과 시작의 인사
눈물에 대해 하는 전부
기도의 무게
새하얀 새 한 마리
변하지 않는 건 없다는 걸 알지만
악어가 나오는 작은 연못
태어나고 또 사라지는 일
세 종류의 기다림
곳
8개의 굳은살
사이와 사이 사이의 간격
길 위에 누운 차가운 몸
햇빛 한 뼘
당신은 무엇을 봤어요?
사슴과 사탕
사바아사나
어쩔 수 없는
포개진 계절
책 속으로
p.14
나무들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보인다. 새의 고향은 동그라미다. 동그라미의 끝자락에는 갈 곳을 잃은 단어들이 수북이 포개져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새들. 아직 어둠에서 나오지 못한 말들. 바스락거리는 단어들은 우리와 마주할 적당한 때를 찾는다.
p.26
시간의 틈 사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나를 간지럽히는 장면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봤던 학교 운동장, 강당에서 앞구르기를 하며 봤던 친구들의 뒤집힌 얼굴, 엄마의 무릎에 누워 바라본 반대로 된 눈. 거꾸로였던 세상을 생각하며 구부정한 숨을 쉰다. 나는 점점 구부정한 사람이 된다.
p.92
곧 떠나려는 친구를 붙잡고 삶에서 되돌려지지 않는 부분에 관해 이야기한다. 시간을 사냥하고, 우스운 농담을 기록하는 습관. 섣부른 판단은 항상 몇 걸음 더 앞서간다. 열 개의 조각으로 작게 나눠진 케이크를 함께 나눠 먹는다. 오늘 같은 날에는 태어나고 또 사라지는 일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p.114
무거운 발자국을 옮기는 사람의 손가락은 유난히 투명하다. 손가락과 손바닥이 만나는 지점에는 양손을 합쳐 모두 8개의 딱딱한 굳은살이 있다. 그는 자신의 굳은살을 만지며 생각한다. 언젠가는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나무가 된다는 건 흐르는 바람을 단단하게 만들어 품 안에 고이 접어놓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했어. 그래서 나무에서는 바람의 냄새가 난다고 했어.
p.133
한 뼘의 햇빛 안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없다. 모든 것이 맞을 수도 또 틀릴 수도 있는 네모난 공간. 그 안에 웅크려 누워 남에게 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한다.
저자 소개
임희선
일상의 순간을 글과 이미지로 기록한다. 고양이와의 눈 맞춤, 강아지가 흔드는 꼬리, 날아가는 새의 날갯짓처럼 작은 몸짓이 주는 커다란 감동에 위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천천히, 적당히, 건강히 사는 삶을 꿈꾸며 충북 괴산에서 출판사 cucurrucucu를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 @cu.cu.rru.cu.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