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일기
다섯 명의 작가가 돌아가며 적은
사랑에 관한 가장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기록!
『애정 일기』는 강우근, 김유나, 김희수, 유선혜, 황용하 5명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돌림 일기 형식으로 적은 사랑에 관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서른여섯 편의 글은 ‘애정’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자유로운 사랑 이야기를 선보인다. 연인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 나 자신에 대한 사랑, 목소리에 대한 사랑, 소설을 향한 사랑, 공원과 웃음과 훌라후프에 대한 사랑······에까지 나아가는 이 현실주의적인 일기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뿌리를 두고 자란 사랑의 민낯과 우리가 공유하고자 했던 애정의 정체를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차
─ 첫 번째 일기
1 The Definition of Love • 유선혜
2 환상이라는 이불을 덮고 있는 괴물 • 강우근
3 나의 슬픔 • 김유나
4 슬픔을 말할 수 있을 때 • 황용하
5 우리의 두 발은 함정을 좋아해 • 김희수
─ 두 번째 일기
6 신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 김유나
7 닿지 못할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는 기분 • 황용하
8 뒤편을 기르는 일 • 김희수
9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들과 지나치게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 유선혜
10 목소리의 여행 • 강우근
─ 세 번째 일기
11 가면을 쓴 사람들 • 황용하
12 투명해지는 문 • 강우근
13 야목 • 김유나
14 Don’t Be a Drag! • 유선혜
15 비명으로 사랑하기 • 김희수
16 불의 첫맛 • 김희수
─ 네 번째 일기
17 불길 • 김유나
18 하루를 백 년이라고 생각해 봐 • 강우근
19 베껴 쓸 답지가 없다는 것은 • 유선혜
20 문 • 황용하
21 샤워해도 돼요? • 김희수
─ 다섯 번째 일기
22 Nirvana • 유선혜
23 틱택토 • 황용하
24 방화수류정 • 김유나
25 사물들의 우주 • 강우근
26 제트에게 • 김희수
─ 여섯 번째 일기
27 전화 받어 • 김유나
28 샌프란시스코에 남은 이름들 • 황용하
29 침대에 누워 카드를 덮고 • 김희수
30 불가능세계 • 유선혜
31 훌라후프를 돌리는 우리를 구경하는 유령이 있다 • 강우근
─ 일곱 번째 일기
32 영원한 이미지로 남는 꿈 • 황용하
33 고름 참기 • 김희수
34 세계라는 웃음 • 강우근
35 우리 사랑 연습도 없이 • 유선혜
36 다음 사랑 • 김유나
책 속으로
나는 오늘 글자를 사랑했어. 책에 부드러운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말이야. 그 문장을 다시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며, 글자들의 세계로 날아갔어. 오늘 나는 늦잠을 사랑했고, 화분을 사랑했지. 점심시간이 지나서 몽롱하게 눈을 뜨고 풀에 물을 따라주며 사랑을 했어. 애정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긴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지. 물, 앵두, 추리소설, 샌프란시스코, 아빠, 고양이 그리고 시······ 점점 목록은 늘어나고······
어떤 날은 그 리스트에서 모든 것을 지워 버리고 싶어. 빨간 펜으로 그 목록에 아무렇게나 두 줄을 죽죽 그어 버리고 싶지. 애정은 투명하고 순식간에 형태를 바꾸니까. 마치 액체괴물처럼 말이야.
─ 유선혜, 「The Definition of Love」, p.15.
올바름에 가까운 방식을 알면서도 나는 안 그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다가가서 사랑이라는 칼날 들이밀고 협박해. 너 내 곁에 머물러. 다른 사람이랑 놀지 마. 안 그럼 찌를 거야. 분명 폭력적이지만 나는 칼을 쥐고 있어.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나를 위하는 마음이 우선인 거야. 나 포함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인 욕구에 치중하기에 상대에게 접근해서 흠집 내. 질병 아니니? 사랑하는 대상을 내 숙주로 삼고 병들게 하잖아.
─ 김희수, 「우리의 두 발은 함정을 좋아해」, p.31.
동행은 남편이었고 나는 긴 시간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를 맞이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런대로, 불가능의 방식으로 사랑하다 보니 이제는 이 사람과 물리적으로 헤어질지언정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보는데, 그건 나의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어느 정도는 나인 상태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 낭만이 아니라 절망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되면 신이 와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 된 거지.
─ 김유나, 「신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p.37.
무뚝뚝해 보이던 사물이 부드러워지면서, 말하지 않던 사물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도자기가 말을 걸어서 도예가가 되고. 검이 말을 걸어서 검술사가 되고. 철봉이 말을 걸어서 체조 선수가 된 것이 아닐까.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사물 앞에서 ‘내게 말을 걸어 줘’, ‘제발 나를 가져 줘’라고 말하기도 하겠지.
들리는 것이 들릴 때까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될 때까지 목소리의 여행은 계속될 거야.
─ 강우근, 「목소리의 여행 」, p.52.
사랑하는 것을 다루는 마음은 언제나 어설픈 것 같아. 문밖의 할아버지도 이게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 거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 멈췄어.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사람처럼. 번지점프의 줄을 꼭 붙잡은 사람처럼. 문은 열리지 않아. 언제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존재하는 걸지도 몰라.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반자성에 의해 멀어지고, 강하게 끌어안으려 할수록 힘에 겨워. 총구를 겨누는 대신 보내 주어야 할지도 몰라. 어쩌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사랑을 위한 태도 아닐까? 대신 멀찍이 같이 걷기만 하는 거야. 흐릿하면서도 천천히 오랫동안. 문을 두드리게 하는 무언가도 그만 놓아주어야겠지.
─ 황용하, 「문」, p.99.
작가 소개
강우근
1995년 강릉 출생.
202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를 쓰면서 자연과 사물과 공존하며 공동의 꿈을 꾼다.
김유나
1992년 안양 출생.
202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천추 제4번 골절로 비가 오는 날을 예측하는 초능력을 얻었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자꾸만 돌아보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김희수
2001년 포천 출생.
동국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있다.
앵두나무 아래서 시를 쓴다.
유선혜
199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맥주와 만화책을 좋아한다.
황용하
1997년 서울 출생.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화학과를 중퇴했다.
한국을 떠났다 돌아오며 공허함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애정 일기
다섯 명의 작가가 돌아가며 적은
사랑에 관한 가장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기록!
『애정 일기』는 강우근, 김유나, 김희수, 유선혜, 황용하 5명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돌림 일기 형식으로 적은 사랑에 관한 글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서른여섯 편의 글은 ‘애정’이라는 하나의 주제 아래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자유로운 사랑 이야기를 선보인다. 연인이나 가족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해 나 자신에 대한 사랑, 목소리에 대한 사랑, 소설을 향한 사랑, 공원과 웃음과 훌라후프에 대한 사랑······에까지 나아가는 이 현실주의적인 일기들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뿌리를 두고 자란 사랑의 민낯과 우리가 공유하고자 했던 애정의 정체를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목차
─ 첫 번째 일기
1 The Definition of Love • 유선혜
2 환상이라는 이불을 덮고 있는 괴물 • 강우근
3 나의 슬픔 • 김유나
4 슬픔을 말할 수 있을 때 • 황용하
5 우리의 두 발은 함정을 좋아해 • 김희수
─ 두 번째 일기
6 신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 김유나
7 닿지 못할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는 기분 • 황용하
8 뒤편을 기르는 일 • 김희수
9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들과 지나치게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 유선혜
10 목소리의 여행 • 강우근
─ 세 번째 일기
11 가면을 쓴 사람들 • 황용하
12 투명해지는 문 • 강우근
13 야목 • 김유나
14 Don’t Be a Drag! • 유선혜
15 비명으로 사랑하기 • 김희수
16 불의 첫맛 • 김희수
─ 네 번째 일기
17 불길 • 김유나
18 하루를 백 년이라고 생각해 봐 • 강우근
19 베껴 쓸 답지가 없다는 것은 • 유선혜
20 문 • 황용하
21 샤워해도 돼요? • 김희수
─ 다섯 번째 일기
22 Nirvana • 유선혜
23 틱택토 • 황용하
24 방화수류정 • 김유나
25 사물들의 우주 • 강우근
26 제트에게 • 김희수
─ 여섯 번째 일기
27 전화 받어 • 김유나
28 샌프란시스코에 남은 이름들 • 황용하
29 침대에 누워 카드를 덮고 • 김희수
30 불가능세계 • 유선혜
31 훌라후프를 돌리는 우리를 구경하는 유령이 있다 • 강우근
─ 일곱 번째 일기
32 영원한 이미지로 남는 꿈 • 황용하
33 고름 참기 • 김희수
34 세계라는 웃음 • 강우근
35 우리 사랑 연습도 없이 • 유선혜
36 다음 사랑 • 김유나
책 속으로
나는 오늘 글자를 사랑했어. 책에 부드러운 연필로 밑줄을 그으며 말이야. 그 문장을 다시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하며, 글자들의 세계로 날아갔어. 오늘 나는 늦잠을 사랑했고, 화분을 사랑했지. 점심시간이 지나서 몽롱하게 눈을 뜨고 풀에 물을 따라주며 사랑을 했어. 애정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긴 리스트를 작성할 수 있지. 물, 앵두, 추리소설, 샌프란시스코, 아빠, 고양이 그리고 시······ 점점 목록은 늘어나고······
어떤 날은 그 리스트에서 모든 것을 지워 버리고 싶어. 빨간 펜으로 그 목록에 아무렇게나 두 줄을 죽죽 그어 버리고 싶지. 애정은 투명하고 순식간에 형태를 바꾸니까. 마치 액체괴물처럼 말이야.
─ 유선혜, 「The Definition of Love」, p.15.
올바름에 가까운 방식을 알면서도 나는 안 그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다가가서 사랑이라는 칼날 들이밀고 협박해. 너 내 곁에 머물러. 다른 사람이랑 놀지 마. 안 그럼 찌를 거야. 분명 폭력적이지만 나는 칼을 쥐고 있어.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나를 위하는 마음이 우선인 거야. 나 포함 대다수의 사람들은 본인 욕구에 치중하기에 상대에게 접근해서 흠집 내. 질병 아니니? 사랑하는 대상을 내 숙주로 삼고 병들게 하잖아.
─ 김희수, 「우리의 두 발은 함정을 좋아해」, p.31.
동행은 남편이었고 나는 긴 시간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 어느 순간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때를 맞이하기도 했어. 하지만 그런대로, 불가능의 방식으로 사랑하다 보니 이제는 이 사람과 물리적으로 헤어질지언정 영영 헤어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보는데, 그건 나의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어느 정도는 나인 상태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아. 낭만이 아니라 절망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되면 신이 와서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 된 거지.
─ 김유나, 「신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것」, p.37.
무뚝뚝해 보이던 사물이 부드러워지면서, 말하지 않던 사물의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사람들은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도자기가 말을 걸어서 도예가가 되고. 검이 말을 걸어서 검술사가 되고. 철봉이 말을 걸어서 체조 선수가 된 것이 아닐까.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사물 앞에서 ‘내게 말을 걸어 줘’, ‘제발 나를 가져 줘’라고 말하기도 하겠지.
들리는 것이 들릴 때까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될 때까지 목소리의 여행은 계속될 거야.
─ 강우근, 「목소리의 여행 」, p.52.
사랑하는 것을 다루는 마음은 언제나 어설픈 것 같아. 문밖의 할아버지도 이게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 거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잠시 멈췄어.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사람처럼. 번지점프의 줄을 꼭 붙잡은 사람처럼. 문은 열리지 않아. 언제나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존재하는 걸지도 몰라.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반자성에 의해 멀어지고, 강하게 끌어안으려 할수록 힘에 겨워. 총구를 겨누는 대신 보내 주어야 할지도 몰라. 어쩌면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사랑을 위한 태도 아닐까? 대신 멀찍이 같이 걷기만 하는 거야. 흐릿하면서도 천천히 오랫동안. 문을 두드리게 하는 무언가도 그만 놓아주어야겠지.
─ 황용하, 「문」, p.99.
작가 소개
강우근
1995년 강릉 출생.
202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를 쓰면서 자연과 사물과 공존하며 공동의 꿈을 꾼다.
김유나
1992년 안양 출생.
2020년 창비 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1년 천추 제4번 골절로 비가 오는 날을 예측하는 초능력을 얻었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자꾸만 돌아보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김희수
2001년 포천 출생.
동국대학교에서 문예 창작을 전공하고 있다.
앵두나무 아래서 시를 쓴다.
유선혜
1998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맥주와 만화책을 좋아한다.
황용하
1997년 서울 출생.
샌프란시스코 주립대 화학과를 중퇴했다.
한국을 떠났다 돌아오며 공허함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