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특집
임시제본소 소설집 시리즈 세 번째 『겨울특집』*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시작했지만 그 끝은 아름답지 않은 서점 이야기 「서점의 종말」, 여행지를 떠올릴 때마다 동시에 생각나는 어떤 것을 담은 「속초」와 「제주도」, 어느 날 몸에 생긴 점의 근원을 따라가 본 아득한 여정 「가운데 발가락에 점 하나가」, ‘올해의 책’이라는 말에 담긴 허무와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 「올해의 책」까지, 2020년을 이대로 보내기 아쉬워 꺼내본 이야기 다섯 편을 묶었습니다.
*2018년 여름과 가을에 출간한 『여름특집』과 『가을특집』은 절판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첫 문장 – 한남동에 100평 규모의 지상 4층짜리 건물이 세워지고 그게 몽땅 F서점이 될 거라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을 때 눈을 빛내며 “나 거기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내 주변에만 다섯 명이었다.
P.23 무슨 서점이! 중국 변검도 아니고 어째서 자고 일어나면 담당자가 바뀌어 있는 거지? 이 정도라면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고도 남은 걸 텐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만두는 사람이 이유라도 설명해주고 나가면 좋을 텐데 나갈 땐 입을 다무는 게 업계 불문율이라도 되는 걸까? 언급조차 하기 싫을 만큼 나빴던 걸까? -「서점의 종말」 中
P.57 “생각해봤는데요, 언니는 참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스 오피스가 있는 중앙 로비를 뚫고 수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응? 무슨 소리야?”
나는 걸레질을 멈추고 수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언니가 쓰는 소설 말이에요.”
수연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현실에서는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야 허겁지겁 뒷수습을 하잖아요. 근데 소설은 안 그런 것 같아서요. 언니처럼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이 세상의 창작자라면 좋겠어요.”
-「속초」 中
P.103 면접을 보러 다닐 때에는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오랫동안 운동화만 신어서인지 면접만 보러 다녔을 뿐인데 하루 종일 일하고 온 것처럼 발이 아팠고 아픈 부위에는 여지없이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에는 딱지가 졌고 딱지가 벗겨진 자리에 또 상처가 생겼다. 그 자리에 다시 딱지가 앉기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굳은살이 올라와 있을 무렵 나는 파주의 한 출판사 편집자가 되어 있었다. -「가운데 발가락에 점 하나가」 中
P.121 정목사의 설교가 네 귀에 거북하게 들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사람의 직업으로 성공의 잣대를 세우는 태도가 보일 때마다 ‘그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목사의 설교에는 ‘성공’, ‘성취’, ‘최고’, ‘일류’, ‘일급’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왔고, 다른 목사의 설교도 다 그런가 싶어서 수요 직장인 예배와 금요 심야 예배를 따로 듣기 시작했다. 고등부 생활을 하면서 가장 믿고 따라야 할 사람인데 네가 옳다고 믿었던 신념과는 너무 먼 사람인 것도 모자라 자꾸만 너를 가르치려 드는 게 싫었다. -「제주도」 中
P.133 최수빈은 유은호를 만날 때면 궁금하지도 않은 회사 소식을 전했다. 최수빈에게 유은호는 여전히 회사 동료인 걸까. 회사 안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을 비로소 마음 편히 전할 수 있게 된 상대인 걸까.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서로의 속사정을 나누던 사이였고, 그 사정이란 회사 동료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친구보다 돈독하고 깊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만 허락된 특별하고 유한한 우정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기 전까지는. -「올해의 책」 中
차례
서점의 종말 8
속초 32
가운데 발가락에 점 하나가 70
제주도 106
올해의 책 130
저자 소개
강민선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2017년부터 독립출판물을 만들었으며 『백 쪽』,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월요일 휴무』, 『시간의 주름』, 『1인칭 부재중 시점』, 『여름특집』, 『가을특집』, 『상호대차』, 『나의 비정규 노동담』, 『비행기 모드』, 『도서관의 말들』, 『외로운 재능』, 『우연의 소설』, 『자책왕』 등을 썼다.







겨울특집
임시제본소 소설집 시리즈 세 번째 『겨울특집』*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시작했지만 그 끝은 아름답지 않은 서점 이야기 「서점의 종말」, 여행지를 떠올릴 때마다 동시에 생각나는 어떤 것을 담은 「속초」와 「제주도」, 어느 날 몸에 생긴 점의 근원을 따라가 본 아득한 여정 「가운데 발가락에 점 하나가」, ‘올해의 책’이라는 말에 담긴 허무와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 「올해의 책」까지, 2020년을 이대로 보내기 아쉬워 꺼내본 이야기 다섯 편을 묶었습니다.
*2018년 여름과 가을에 출간한 『여름특집』과 『가을특집』은 절판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첫 문장 – 한남동에 100평 규모의 지상 4층짜리 건물이 세워지고 그게 몽땅 F서점이 될 거라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을 때 눈을 빛내며 “나 거기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 사람이 내 주변에만 다섯 명이었다.
P.23 무슨 서점이! 중국 변검도 아니고 어째서 자고 일어나면 담당자가 바뀌어 있는 거지? 이 정도라면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고도 남은 걸 텐데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만두는 사람이 이유라도 설명해주고 나가면 좋을 텐데 나갈 땐 입을 다무는 게 업계 불문율이라도 되는 걸까? 언급조차 하기 싫을 만큼 나빴던 걸까? -「서점의 종말」 中
P.57 “생각해봤는데요, 언니는 참 멋진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스 오피스가 있는 중앙 로비를 뚫고 수연의 목소리가 울렸다.
“응? 무슨 소리야?”
나는 걸레질을 멈추고 수연이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언니가 쓰는 소설 말이에요.”
수연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현실에서는 사건이 벌어진 다음에야 허겁지겁 뒷수습을 하잖아요. 근데 소설은 안 그런 것 같아서요. 언니처럼 그렇게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이 세상의 창작자라면 좋겠어요.”
-「속초」 中
P.103 면접을 보러 다닐 때에는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오랫동안 운동화만 신어서인지 면접만 보러 다녔을 뿐인데 하루 종일 일하고 온 것처럼 발이 아팠고 아픈 부위에는 여지없이 상처가 나 있었다. 상처에는 딱지가 졌고 딱지가 벗겨진 자리에 또 상처가 생겼다. 그 자리에 다시 딱지가 앉기를 반복하면서 어느새 굳은살이 올라와 있을 무렵 나는 파주의 한 출판사 편집자가 되어 있었다. -「가운데 발가락에 점 하나가」 中
P.121 정목사의 설교가 네 귀에 거북하게 들린 것도 그 무렵이었다. 사람의 직업으로 성공의 잣대를 세우는 태도가 보일 때마다 ‘그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목사의 설교에는 ‘성공’, ‘성취’, ‘최고’, ‘일류’, ‘일급’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왔고, 다른 목사의 설교도 다 그런가 싶어서 수요 직장인 예배와 금요 심야 예배를 따로 듣기 시작했다. 고등부 생활을 하면서 가장 믿고 따라야 할 사람인데 네가 옳다고 믿었던 신념과는 너무 먼 사람인 것도 모자라 자꾸만 너를 가르치려 드는 게 싫었다. -「제주도」 中
P.133 최수빈은 유은호를 만날 때면 궁금하지도 않은 회사 소식을 전했다. 최수빈에게 유은호는 여전히 회사 동료인 걸까. 회사 안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을 비로소 마음 편히 전할 수 있게 된 상대인 걸까. 함께 일하는 동안에는 서로의 속사정을 나누던 사이였고, 그 사정이란 회사 동료가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것이어서 친구보다 돈독하고 깊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만 허락된 특별하고 유한한 우정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채기 전까지는. -「올해의 책」 中
차례
서점의 종말 8
속초 32
가운데 발가락에 점 하나가 70
제주도 106
올해의 책 130
저자 소개
강민선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2017년부터 독립출판물을 만들었으며 『백 쪽』,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월요일 휴무』, 『시간의 주름』, 『1인칭 부재중 시점』, 『여름특집』, 『가을특집』, 『상호대차』, 『나의 비정규 노동담』, 『비행기 모드』, 『도서관의 말들』, 『외로운 재능』, 『우연의 소설』, 『자책왕』 등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