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
우리 시대 주목할 에세이스트 임진아가 이야기하는,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한 분투기
〉 보다 많은 예의와 배려와 존중이 스며든 세상을 그리며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은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오늘의 단어』, 『읽는 생활』 등의 에세이집을 비롯하여 『어린이라는 세계』 등에 들어가는 그림으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에세이스트이자 삽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임진아의 신작 에세이집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맑고 섬세한 눈으로 포착하여 찬찬하게 담아 온 저자는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숲으로 눈을 돌리며 한층 넓고 깊어진 시선을 보여 준다. 그 숲에서 저자는 보다 많은 예의와 배려와 존중이 스며든 세상을 그리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비롯하여 나와 세상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 두루 돌아보는 가운데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편린들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의 핵심에 바로 ‘말’이 자리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책의 제목이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이 된 이유도 그것이다.
“나와 너, 우리의 힘으로 관계의 거리를 마음껏 좁히고 넓히며 함께 웃어지는 방향으로 따로 또 같이 걸어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결국 들어 버린 말이었고, 어쩌다 해 버린 말이었습니다. 나의 말로 누군가의 하루 또한 느려졌을지도 모르고, 나 또한 내가 해 버린 말로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니 듣기 좋았던 말을 선명히 기억하며 내일을 쳐다보고 하기 싫은 말을 삼키며 나를 지키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 「에필로그」 중
목차
1부 나와 살아가기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
◆ SNS라는 공간
각자의 고유성을 찾아서
그늘진 겸손
◆ 이거 완전 별건데요
나와 일한다는 마음으로
어른의 일기
나의 외로움
2부 우리의 거리
인사
바깥 오뎅
◆ 저장 안 함
앞치마 걱정
사랑을 배울 줄 아는 사람들
비건은 비건
◆ 모두를 위한 한 줄
비반려인을 위한 에티켓
3부 괄호 속의 마음
우리의 괄호
너무 늦었다니요, 벌써 늦었어요
숲에 가는 아이들처럼
◆ 당연한 건 당연하지 않았다
◆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
요즘 옛날 사람
다시 만나고 싶은 얼굴
4부 어른으로 가는 계단
사라진 것들을 노래하다
그건 책한테 미안하잖아요
◆ 서점에서
이제 괜찮아요
◆ 아는 어른
아무 탓도 아니야
제멋대로 그린 하트도 하트
‘왜’가 필요하지 않은 일
5부 좋은 내가 되는 것
일을 사랑하는 방식
꼼꼼하게 좋아해 주기
‘이제’보다 ‘아직’
나중에 도착한 위로
결연이 종료되었습니다
좋은 어른
◆ 좋은 어른
에필로그
책 속으로
누군가의 말로 좋은 하루를 단번에 망칠 뻔한 엄마는 누군가의 하루를 단번에 꼿꼿하게 세워 줄 줄 아는 어른으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 엄마의 딸로 자란 나는 누군가는 답답하다 여길 정도로 타인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은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 나에게서 피어난 괜찮다는 기분은, 정말로 내가 속한 세상을 그렇게 만든다.(14~15쪽)
칭찬에 유독 약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겸손 커튼이 쳐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찾아야 할 단어가 또 생겼다. 타인에 더해 심지어 나 또한 존중하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도 않는 태도를 뜻하는 단어가. 겸허와 겸손,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단어. 내 멋대로 정해 보자면 ‘그늘진 겸손’이었다. 그늘진 겸손은 못생긴 그림자를 만든다.(28~29쪽)
지금도 봄에 쓴 이 짧은 주간 일기를 종종 읽어 본다. 어른이 되자는 말은 어른인 나의 좋은 점을 얼마든지 새삼스레 발견하자는 뜻으로 읽히고, 나랑 살자는 말은 나를 저버리지 말자는 말로 읽힌다. 할머니가 된 후에도 나는 나랑 살자고 일기에 적는 어른이고 싶다.(43쪽)
한 사람에게만 깃드는 고유한 외로움을, 언제부터 쌓이고 겹쳐진 줄도 모르는 낯선 그림자를, 아무리 돋보기를 들고 들여다보려고 해도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늘을 말이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따라 저 멀리 다녀온 후에야 타인의 외로움을 감히 아는 척하지 않게 되었다.(53쪽)
카페에서 일을 할 때면 내가 여기에서는 사람이 아닌 커피를 만들고 주문을 받는 기계처럼 놓여 있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어도 손님이 부르면 즉시 반응하고 달려가야 하는 기계. 손에 물이 묻어 있어도 그것을 닦을 시간도 없이 빠르게 손님 앞에 나타나야 하지만 손의 물이 줄줄 떨어지면 안 되는 기계. 반말로 주문해도 존댓말로 답해야 하는 기계. 훅 던진 카드를 짧은 손톱으로도 빠르게 잡아야 하는 기계.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빨리 벗어던지고 계산하려는 손님에게 가야 하는 기계. 그 잠깐의 시간을 사람들은 대부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70쪽)
알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사랑을 배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 모르는지, 더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아직 모르던 나를 만난다.(86쪽)
나는 되도록 많은 우리의 괄호를 챙기고 싶다. 그렇게 우리의 애도는 이어지고 이어진다. 나의 날을 살면서도 도로 슬픔을 마주해야 하는 삶은 계속되겠지만, 비어지는 괄호와 채워지는 괄호로, 남아 있는 사람의 하루는 내일로 이어진다.(110쪽)
늦었다는 생각은 우리를 눕게 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자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고 싶은 무언가는 언제나 찾아온다. 시작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에 상관없는 고유한 첫머리를 만들어 낸다. 기어코 움직이게 하는, 저마다의 첫날이 있다.(115쪽)
우리가 선택한 지붕 안에서 숲에 가는 아이들처럼 맑은 눈을 하고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 같은 숲에서 서로 다른 점을 궁금해하면서, 그리로 걸어가는 서로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숲에서는 때에 따라 말을 크게 해야 잘 들리기도 하고, 낮게 해야 잘 들리기도 한다. 결국 말을 해야 그 마음을 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말로, 그에 대한 대답은 행동으로. 숲에서의 약속이다.(125쪽)
어린이 시절을 그리면 아찔해진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발에 돌멩이가 걸리는 듯한 길을 참 무사히 걸어왔구나 싶어서. 어떤 어른은 내 뒷모습을 끝내 바라보아 주지 않았을까. 내게 확실히 닿았던 다정함과 따뜻함은 공기처럼 부드럽게 스치지 않았을까.(159쪽)
내 일을 나부터 존중하려면 일을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일은 그냥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냥 하게 되기까지는 그간 내가 고르게 만들어 둔 길이 있고, 일 속에서 싹트는 투정에는 사실 일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서려 있다.(187쪽)
좋은 어른은 좋은 내가 되었을 때 반짝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잃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말을 고르지 않고, 좋은 어른으로 보이려고 애써 당당한 표정을 짓지 않고, 계속해서 나와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 낼 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215쪽)
출판사 서평
〉 좋은 어른으로 가는 길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보다 덜 피곤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에세이집을 관통하는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예의와 배려와 존중에서 그런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찾는다. 예의라고 하면 흔히 고답적인 규범이나 혹은 생활 속 소소한 에티켓 정도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이 책에서 그것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곧 배려와 존중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리 사소한 배려일지라도 이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반듯하게 세우는 일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가령 첫 번째 꼭지인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에서 아침 출근길에 타인의 과실로 접촉 사고가 났음에도 사고를 내어 당황한 상대방을 보며 “우리 그냥 가요. 우리 오늘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라는 말로 넘어간 엄마의 에피소드는 놀라우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보다는 상대방의 상황을 더 염두에 두고, 상대방을 ‘우리’라고 일컬으며 서로 갈 길을 가자고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타인의 하루는 물론 자신의 하루도 망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는 우리의 일상이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대신 쉽사리 타인을 지우거나 혹은 납작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살아가기 일쑤인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납작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은 만큼 모든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묵묵히 떠올리며 꺼내 보이는 사람을 쉽게 꼰대 취급을 해 버리는 것도, 요즘 젊은 애들은 참 무섭다며 뒷걸음질 치는 것도, 같은 지구에서 같은 단위를 사는 사람끼리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 「요즘 옛날 사람」 중
타인에 대한 이와 같은 배려와 존중의 태도는 바로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것은 내게는 당연한 것일지라도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사 염두에 두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비단 사람 간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려 다양한 존재들과의 보다 나은 관계를 그려 보기도 한다. 가령 반려견 키키와 매일매일 산책하면서 마주치는 세상 사람들의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거나 낯선 존재를 대할 때 “자신이 무엇을 잘 모르는지, 더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세월호의 슬픔을 되새기면서 얼핏 나와 무관해 보이는, 멀리 있는 타인들일지라도 그들 각자가 품고 있을 괄호 안의 마음을 최대한 헤아리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어 놓고 그런 줄도 모른 채 웃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괄호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가끔 떠올리며 살고 싶다. 사람을 잃은 사람의 일상에는 너무나 세세하고 복잡한 슬픔이 꾸준히 더해지고 섞인다. 마주해야 하는 슬픔이 있고, 가려져야 덜어지는 슬픔이 있다.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마음은 더욱이 보여야 하고, 이제는 그만할 때 됐잖아 하는 식의 태도는 드러나지 않아야 마땅하다.”
- 「우리의 괄호」 중
그러나 세상의 타인들,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보다도 먼저 앞세워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일 것이다. 프리랜서인 저자는 일을 할 때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개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즐기며, 내일 만날 또 다른 자신을 날마다 기대하며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일은 그냥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냥 하게 되기까지 분투한 지난한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끝내 저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서사를 잃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자 바로 좋은 어른으로 가는 밑거름인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른들을 떠올려 보면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 금방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대체로 자신을 알고 지내는 얼굴들이다. 〔중략〕 남을 시기하는 감정을 일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을 줄 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 갈수록 타인보다 나의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 나는 그런 어른들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만의 생기를 자신의 방에 수납한 채로 외출하는 사
람을.”
- 「좋은 어른」 중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중간중간 저자가 직접 그린 카툰도 여덟 편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본문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이 카툰들을 보고 있으면 일상의 갈피 속에 숨어 있는, 그래서 대부분 무신경하게 지나치기 마련인 것들이 동글동글한 선과 무해해 보이는 인물들 사이로 뾰족하게 얼굴을 내밀 것이다.
작가 소개
임진아
읽고 그리는 삽화가. 생활하며 쓰는 에세이스트. 만화와 닮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다. 종이 위에 표현하는 일을, 책이 되는 일을 좋아한다. 에세이 『읽는 생활』 『오늘의 단어』 『아직, 도쿄』 『빵 고르듯 살고 싶다』 등을 썼다. @IMJINA_PAPER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
우리 시대 주목할 에세이스트 임진아가 이야기하는,
더 나은 어른이 되기 위한 분투기
〉 보다 많은 예의와 배려와 존중이 스며든 세상을 그리며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은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오늘의 단어』, 『읽는 생활』 등의 에세이집을 비롯하여 『어린이라는 세계』 등에 들어가는 그림으로 우리 시대 대표적인 에세이스트이자 삽화가로 주목받고 있는 임진아의 신작 에세이집이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맑고 섬세한 눈으로 포착하여 찬찬하게 담아 온 저자는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커다란 숲으로 눈을 돌리며 한층 넓고 깊어진 시선을 보여 준다. 그 숲에서 저자는 보다 많은 예의와 배려와 존중이 스며든 세상을 그리며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비롯하여 나와 세상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까지 두루 돌아보는 가운데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편린들을 펼쳐 놓는다. 그리고 그런 관계들의 핵심에 바로 ‘말’이 자리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책의 제목이 “듣기 좋은 말 하기 싫은 말”이 된 이유도 그것이다.
“나와 너, 우리의 힘으로 관계의 거리를 마음껏 좁히고 넓히며 함께 웃어지는 방향으로 따로 또 같이 걸어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은 결국 들어 버린 말이었고, 어쩌다 해 버린 말이었습니다. 나의 말로 누군가의 하루 또한 느려졌을지도 모르고, 나 또한 내가 해 버린 말로 자꾸만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니 듣기 좋았던 말을 선명히 기억하며 내일을 쳐다보고 하기 싫은 말을 삼키며 나를 지키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 「에필로그」 중
목차
1부 나와 살아가기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
◆ SNS라는 공간
각자의 고유성을 찾아서
그늘진 겸손
◆ 이거 완전 별건데요
나와 일한다는 마음으로
어른의 일기
나의 외로움
2부 우리의 거리
인사
바깥 오뎅
◆ 저장 안 함
앞치마 걱정
사랑을 배울 줄 아는 사람들
비건은 비건
◆ 모두를 위한 한 줄
비반려인을 위한 에티켓
3부 괄호 속의 마음
우리의 괄호
너무 늦었다니요, 벌써 늦었어요
숲에 가는 아이들처럼
◆ 당연한 건 당연하지 않았다
◆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
요즘 옛날 사람
다시 만나고 싶은 얼굴
4부 어른으로 가는 계단
사라진 것들을 노래하다
그건 책한테 미안하잖아요
◆ 서점에서
이제 괜찮아요
◆ 아는 어른
아무 탓도 아니야
제멋대로 그린 하트도 하트
‘왜’가 필요하지 않은 일
5부 좋은 내가 되는 것
일을 사랑하는 방식
꼼꼼하게 좋아해 주기
‘이제’보다 ‘아직’
나중에 도착한 위로
결연이 종료되었습니다
좋은 어른
◆ 좋은 어른
에필로그
책 속으로
누군가의 말로 좋은 하루를 단번에 망칠 뻔한 엄마는 누군가의 하루를 단번에 꼿꼿하게 세워 줄 줄 아는 어른으로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런 엄마의 딸로 자란 나는 누군가는 답답하다 여길 정도로 타인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은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 나에게서 피어난 괜찮다는 기분은, 정말로 내가 속한 세상을 그렇게 만든다.(14~15쪽)
칭찬에 유독 약한 사람에게 존재하는 겸손 커튼이 쳐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찾아야 할 단어가 또 생겼다. 타인에 더해 심지어 나 또한 존중하지 않고 자기를 내세우지도 않는 태도를 뜻하는 단어가. 겸허와 겸손,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단어. 내 멋대로 정해 보자면 ‘그늘진 겸손’이었다. 그늘진 겸손은 못생긴 그림자를 만든다.(28~29쪽)
지금도 봄에 쓴 이 짧은 주간 일기를 종종 읽어 본다. 어른이 되자는 말은 어른인 나의 좋은 점을 얼마든지 새삼스레 발견하자는 뜻으로 읽히고, 나랑 살자는 말은 나를 저버리지 말자는 말로 읽힌다. 할머니가 된 후에도 나는 나랑 살자고 일기에 적는 어른이고 싶다.(43쪽)
한 사람에게만 깃드는 고유한 외로움을, 언제부터 쌓이고 겹쳐진 줄도 모르는 낯선 그림자를, 아무리 돋보기를 들고 들여다보려고 해도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는 그늘을 말이다. 나는 나의 외로움을 따라 저 멀리 다녀온 후에야 타인의 외로움을 감히 아는 척하지 않게 되었다.(53쪽)
카페에서 일을 할 때면 내가 여기에서는 사람이 아닌 커피를 만들고 주문을 받는 기계처럼 놓여 있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어떤 일을 하고 있어도 손님이 부르면 즉시 반응하고 달려가야 하는 기계. 손에 물이 묻어 있어도 그것을 닦을 시간도 없이 빠르게 손님 앞에 나타나야 하지만 손의 물이 줄줄 떨어지면 안 되는 기계. 반말로 주문해도 존댓말로 답해야 하는 기계. 훅 던진 카드를 짧은 손톱으로도 빠르게 잡아야 하는 기계. 설거지를 하다가도 고무장갑을 빨리 벗어던지고 계산하려는 손님에게 가야 하는 기계. 그 잠깐의 시간을 사람들은 대부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70쪽)
알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사랑을 배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 모르는지, 더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아직 모르던 나를 만난다.(86쪽)
나는 되도록 많은 우리의 괄호를 챙기고 싶다. 그렇게 우리의 애도는 이어지고 이어진다. 나의 날을 살면서도 도로 슬픔을 마주해야 하는 삶은 계속되겠지만, 비어지는 괄호와 채워지는 괄호로, 남아 있는 사람의 하루는 내일로 이어진다.(110쪽)
늦었다는 생각은 우리를 눕게 한다. 그리고 그 생각과 자세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고 싶은 무언가는 언제나 찾아온다. 시작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에 상관없는 고유한 첫머리를 만들어 낸다. 기어코 움직이게 하는, 저마다의 첫날이 있다.(115쪽)
우리가 선택한 지붕 안에서 숲에 가는 아이들처럼 맑은 눈을 하고 함께 걸어가면 좋겠다. 같은 숲에서 서로 다른 점을 궁금해하면서, 그리로 걸어가는 서로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 숲에서는 때에 따라 말을 크게 해야 잘 들리기도 하고, 낮게 해야 잘 들리기도 한다. 결국 말을 해야 그 마음을 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말로, 그에 대한 대답은 행동으로. 숲에서의 약속이다.(125쪽)
어린이 시절을 그리면 아찔해진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발에 돌멩이가 걸리는 듯한 길을 참 무사히 걸어왔구나 싶어서. 어떤 어른은 내 뒷모습을 끝내 바라보아 주지 않았을까. 내게 확실히 닿았던 다정함과 따뜻함은 공기처럼 부드럽게 스치지 않았을까.(159쪽)
내 일을 나부터 존중하려면 일을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알아 두는 것이 필요하다. 일은 그냥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냥 하게 되기까지는 그간 내가 고르게 만들어 둔 길이 있고, 일 속에서 싹트는 투정에는 사실 일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 서려 있다.(187쪽)
좋은 어른은 좋은 내가 되었을 때 반짝일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잃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말을 고르지 않고, 좋은 어른으로 보이려고 애써 당당한 표정을 짓지 않고, 계속해서 나와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 낼 때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좋은 어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215쪽)
출판사 서평
〉 좋은 어른으로 가는 길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보다 덜 피곤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에세이집을 관통하는 이 물음에 대해 저자는 예의와 배려와 존중에서 그런 세상에 대한 가능성을 찾는다. 예의라고 하면 흔히 고답적인 규범이나 혹은 생활 속 소소한 에티켓 정도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이 책에서 그것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 곧 배려와 존중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리 사소한 배려일지라도 이는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을 반듯하게 세우는 일일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가령 첫 번째 꼭지인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에서 아침 출근길에 타인의 과실로 접촉 사고가 났음에도 사고를 내어 당황한 상대방을 보며 “우리 그냥 가요. 우리 오늘 좋은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중요하니까”라는 말로 넘어간 엄마의 에피소드는 놀라우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상황보다는 상대방의 상황을 더 염두에 두고, 상대방을 ‘우리’라고 일컬으며 서로 갈 길을 가자고 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타인의 하루는 물론 자신의 하루도 망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는 우리의 일상이 각자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대신 쉽사리 타인을 지우거나 혹은 납작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고 살아가기 일쑤인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납작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은 만큼 모든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묵묵히 떠올리며 꺼내 보이는 사람을 쉽게 꼰대 취급을 해 버리는 것도, 요즘 젊은 애들은 참 무섭다며 뒷걸음질 치는 것도, 같은 지구에서 같은 단위를 사는 사람끼리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 「요즘 옛날 사람」 중
타인에 대한 이와 같은 배려와 존중의 태도는 바로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것은 내게는 당연한 것일지라도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매사 염두에 두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비단 사람 간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넓은 세상으로 눈을 돌려 다양한 존재들과의 보다 나은 관계를 그려 보기도 한다. 가령 반려견 키키와 매일매일 산책하면서 마주치는 세상 사람들의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면서 우리가 잘 알지 못하거나 낯선 존재를 대할 때 “자신이 무엇을 잘 모르는지, 더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세월호의 슬픔을 되새기면서 얼핏 나와 무관해 보이는, 멀리 있는 타인들일지라도 그들 각자가 품고 있을 괄호 안의 마음을 최대한 헤아리며 살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나 또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슬프게 만들어 놓고 그런 줄도 모른 채 웃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모두의 괄호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 또한 가끔 떠올리며 살고 싶다. 사람을 잃은 사람의 일상에는 너무나 세세하고 복잡한 슬픔이 꾸준히 더해지고 섞인다. 마주해야 하는 슬픔이 있고, 가려져야 덜어지는 슬픔이 있다.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마음은 더욱이 보여야 하고, 이제는 그만할 때 됐잖아 하는 식의 태도는 드러나지 않아야 마땅하다.”
- 「우리의 괄호」 중
그러나 세상의 타인들, 그리고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보다도 먼저 앞세워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일 것이다. 프리랜서인 저자는 일을 할 때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과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러 개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을 즐기며, 내일 만날 또 다른 자신을 날마다 기대하며 살아간다고 이야기한다. 일은 그냥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냥 하게 되기까지 분투한 지난한 시간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끝내 저버리지 않으며, 자신의 서사를 잃지 않고 계속 걸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자 바로 좋은 어른으로 가는 밑거름인지도 모른다면서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어른들을 떠올려 보면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 금방 떠오르는 사람들의 얼굴은 대체로 자신을 알고 지내는 얼굴들이다. 〔중략〕 남을 시기하는 감정을 일의 원동력으로 삼지 않을 줄 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 갈수록 타인보다 나의 눈으로 나를 보는 사람. 나는 그런 어른들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만의 생기를 자신의 방에 수납한 채로 외출하는 사
람을.”
- 「좋은 어른」 중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에는 중간중간 저자가 직접 그린 카툰도 여덟 편 수록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본문과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본문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 이 카툰들을 보고 있으면 일상의 갈피 속에 숨어 있는, 그래서 대부분 무신경하게 지나치기 마련인 것들이 동글동글한 선과 무해해 보이는 인물들 사이로 뾰족하게 얼굴을 내밀 것이다.
작가 소개
임진아
읽고 그리는 삽화가. 생활하며 쓰는 에세이스트. 만화와 닮은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다. 종이 위에 표현하는 일을, 책이 되는 일을 좋아한다. 에세이 『읽는 생활』 『오늘의 단어』 『아직, 도쿄』 『빵 고르듯 살고 싶다』 등을 썼다. @IMJINA_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