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
박해와 학살 이후에도 삶은 춤춘다
제노사이드 생존자 로힝야 난민 여성들이
자신을 치유하고 서로를 돌보며
한계 너머로 걸어나가는 이야기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는 수식어로만 표면적으로 알려져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에 위치한 ‘샨티카나’와 그 속의 여성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캠프로,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로힝야들이 거주하고 있고 그중 52%가량이 여성이다. 실로 거대한 캠프 숲 중 캠프14에 세워진 여성 커뮤니티 센터의 이름이 바로 ‘샨티카나’(평화의 집)이다.
샨티카나에서는 로힝야 여성들이 대학살의 생존자로서 트라우마를 치유해가고 함께 회복탄력성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캠프 안의 임시 거주지인 셸터는 가족이 몸을 눕히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너무 좁고 어둡다. 더욱이 난민 중에서도 여성에게는 보수적인 문화의 압력이 더해진다. 그래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은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다’고 말하며 샨티카나로 온다. 이곳에서는 함께 춤출 수 있고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기에.
이 책은 샨티카나에서 일상을 직조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힝야 난민 여성)와 함께, 샨티카나가 생겨난 이야기(초기 활동가), 샨티카나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현재 활동가), 샨티카나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연대하는 창작자)가 서로의 뒤를 따르는 이야기이다.
목차
서문: 이 이야기가 우리를 치유했고, 이제 당신을 만날 차례이다
1부. 샨티카나가 만든 이야기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 일지-전솔비
문해교육 관찰 기록: 글자 앞에 앉은 마음-전솔비
예술 워크숍 기록: 사바와 휠-오로민경
샨티카나의 정원: 빛과 그림자가 물결치는 순간들-오로민경
샨티카나의 공간들-전솔비
순환하는 마음-오로민경
2부. 샨티카나를 만든 이야기
샨티카나의 탄생-별빛
샨티카나의 여자들: 샨티카나를 돌보는 사람들의 일상-비바
로힝야, 토착성을 부인당한 사람들: 로힝야의 역사와 난민이 된 과정-이유경
책 속으로
언제 끝날지 모를 난민 캠프에서의 생활이지만 여성들은 이곳에서 이전보다 더 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가고 있다. 난민이 되면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쟁과 재난은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던 삶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 것이다. 시간을 반으로 접어서 미래에 도달하는 구멍을 통과하듯, 난민 캠프는 로힝야 여성들이 살던 까마득한 과거의 세계를 깨뜨렸지만 대신 새로운 변화의 기회 역시 만들어가는 중이다.
로힝야 여성들은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기에 큰 소리를 내는 행위가 금지되는데, 이를 고려하여 샨티카나에서는 박수를 칠 때 박수 몸짓으로 대신한다. 손바닥을 부딪히지 않고 스쳐지나가게 하는 동작이 그것이다. 샨티카나를 떠올릴 때면 새의 날갯짓과 같은 손 모양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우리를 환대해주던 여성들의 일렁이는 몸짓이 생각난다. 그곳에는 난민 캠프에서 마음의 집을 찾아가는 놀라운 이야기가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_17쪽, 전솔비
나는 어둠의 색이 단지 무섭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상태임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아가 그동안 샨티카나의 여성들은 피해자로서 인터뷰나 촬영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반대로 적극적으로 그들이 이 공간과 사람들을 보고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활동을 함께하며, 이를 통해 기록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나누고자 했다.
(…)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의 삶의 터전에 깊숙히 들어오게 되었다면, 최소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기다려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카메라’라는 미디어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고 싶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 때 비로소 한 공간 안의 존재를 서로 만나게 해주는 관계적인 도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자와 빛의 교환으로 카메라에 상이 담기는 것처럼,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자리를 찾아갈 때 그 상을 제대로 담고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비로소 카메라를 들고 정원을 찍는 아푸의 뒤에서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_102~103쪽, 오로민경
몸감각운동(SEW)을 하고 나서 생리통이 없어졌고 밤에 잠을 잘 잤다고 하는 로힝야 여성들의 말을 나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내가 부유한 국가인 한국에서 온 후원자이니까 나에게 좋은 말만 하는 것일까? 정말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녀들의 소극적이던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히잡을 벗고, 그저 앉아 있기만 했던 여성들이 옆자리에 앉은 여성들과 수다를 떨어서 교육 진행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교육장이 소란스러워 진행이 어려운 것이 펄쩍 뛸 만큼 기뻤다. “지방 방송을 꺼주세요”, “앞에 집중해주세요”를 외치면서 어찌나 기쁘고 신나던지, 마음속으로는 계속 ‘지방 방송’을 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건 로힝야 여성들이 한국의 트레이너들과 이 교육 공간이 익숙해져서 마음을 놓을 만큼 안전하다고 느낀 것이고, 이미 아는 내용이니까 별로 안 궁금했던 것일 테고, 또 이웃 동료와 어제 오늘 있었던 일상을 나누고 한국인들과 어쩌고저쩌고 말을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는 것이니까. 그것은 우리가 바라던 여성들 간의 지지와 연결망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_194~195쪽, 별빛
하루는 샨티카나 수용 공동체 여성에게 로힝야 사람들을 도운 이유가 같은 무슬림이어서인지 물었다. 그녀는 다른 종교였어도 도왔을 것이라 대답했다. 이번엔 왜 도왔냐고 물었다. 여성은 그냥 도왔다고 대답했다. 나는 남을 도운 이유, 목적을 물었는데 이들은 계속해서 그냥 도왔다고 대답했다. 다른 활동가가 인도네시아에서 들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부자들은 난민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었지만 나는 가진 게 없어서 그들을 바다에서 뭍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어요.”
샨티카나는 난민뿐 아니라 수용 공동체 여성들도 같이 운영하고 이용한다. 어느 날은 그룹 토론을 하다가 센터의 한 수용 공동체 여성이 로힝야 여성에게 ‘너네는 비누도, 음식도 다 매달 공짜로 배분받지 않느냐’고, 우리는 사야 한다고 따졌다. 그러자 로힝야 여성은 우리가 미얀마 집으로 돌아가면 그때 우리 집으로 와서 비누 맘껏 가져가라고 대답했다. 민감해질 법한 상황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얘길 듣고선 다들 웃어버렸다.
_236~238쪽, 비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가자 주민들에게 그러하듯, 로힝야 커뮤니티를 지독하게 봉쇄하고 자유와 존엄을 박탈해온 억압 방식이다. 그 체제하에서 로힝야 사람들은 숨죽여 살았고, 서서히 죽어나갔다. 그 체제하에서 로힝야에겐 ‘삶’이 곧 ‘슬로우 데쓰’다.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 밖을 벗어날 자유가 없으며 한 줌의 ‘외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Form 4’라는 이민성 양식을 작성해 제출해야만 45일 허가를 겨우 받을 수도, 그러나 못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양곤에서 만난 로힝야 여성 사데카는 ‘Form 4 양식을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종이 양식 하나 얻기 위해 2년을 기다렸고 10만 (kyat, 미얀마 화폐 단위)을 냈다고 했다. 분리장벽으로 둘러쳐진 가자지구가 ‘중동의 아파르트 헤이트’라면, 조잡하지만 날카로운 철조망과 검문소가 눈에 불을 켜고 선 로힝야 게토는 ‘미얀마의 아파르트 헤이트’다.
‘아파르트 헤이트’는 제노사이드의 중요한 인프라이고, 대학살의 예고편이다. 가자지구에서도, 미얀마 라카인주에서도 이는 적확하게 증명됐다.
_259~260쪽, 이유경
작가 소개
공선주(별빛)
인도적지원 활동가. 2016년 사단법인 아디를 공동 창립하고, 아시아의 분쟁 지역에서 분쟁과 여성, 인도적지원, 기억과 기록이라는 주제로 공동체 구축, 평화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로힝야 난민캠프를 방문한 인연으로 2018년 로힝야 여성들을 마음으로 만나는 사업을 시작하고, 현재까지 총괄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은 ‘그 사람의 삶에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서로에게 따뜻한 지지와 응원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세상을 함께 바꾸기 위해 지역 운동으로서 국제개발협력과 인도적지원사업을 그리며 2006년부터 아시아의 여러 현장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로민경
다원예술 창작자. 누구에게나 떨어지는 한 낮의 빛, 흔들리는 잎의 작은 떨림들을 관찰하며 더 작은 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들리지 않을 수도 있는 소리를 듣고자 노력하며 다양한 공간, 사람들을 만나 여러 위치에서 협업하고 있다.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 《폐허에서 온 사랑》,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 등의 전시, 《연약한 기록들의 춤》 등의 공연을 만들었으며, 영화 [돌들이 말할때 까지] 의 음악 작업을 하였다.
이승지(비바)
인도적지원 활동가. 분쟁과 재난 속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연대하고 실천한다. 2017년도부터 NGO에서 인도적지원 업무를 시작했다. 2021년도부터는 사단법인 아디에서 PM으로서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및 수용공동체 여성 심리사회적 회복역량강화사업’를 맡아 관리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르포와 분쟁의 이면을 탐사하는 보도에 천착해 왔다. 언론의 독립성과 저널리즘이 훼손된 환경을 탐사보도 기반 정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21〉, 〈시사인〉, 〈Neues Deutschland〉에 기고하였고 〈한국일보〉 기획 [세계의 분쟁지역]에 다양한 국제분쟁 현안을 연재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로힝야 제노사이드』,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봄의 혁명 : 새로운 미얀마를 향한 담대한 행보』(공저), 『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가 있다.
전솔비
독립 기획자이자 연구자. 우연과 상상으로 현실을 작동시키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을 만날 때 전시 혹은 책을 만든다. 경계와 타자의 문제를 고민하는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동시대 소수자 운동의 현장에서 생산되는 말과 글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 『생명연습』, 『입속의 협업자』를 함께 썼으며 《녹는 땅, 고인 기억》,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 외 다수의 전시를 만들었다.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아서
박해와 학살 이후에도 삶은 춤춘다
제노사이드 생존자 로힝야 난민 여성들이
자신을 치유하고 서로를 돌보며
한계 너머로 걸어나가는 이야기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는 수식어로만 표면적으로 알려져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에 위치한 ‘샨티카나’와 그 속의 여성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 캠프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민 캠프로,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로힝야들이 거주하고 있고 그중 52%가량이 여성이다. 실로 거대한 캠프 숲 중 캠프14에 세워진 여성 커뮤니티 센터의 이름이 바로 ‘샨티카나’(평화의 집)이다.
샨티카나에서는 로힝야 여성들이 대학살의 생존자로서 트라우마를 치유해가고 함께 회복탄력성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캠프 안의 임시 거주지인 셸터는 가족이 몸을 눕히고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너무 좁고 어둡다. 더욱이 난민 중에서도 여성에게는 보수적인 문화의 압력이 더해진다. 그래서 로힝야 난민 여성들은 ‘춤추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다’고 말하며 샨티카나로 온다. 이곳에서는 함께 춤출 수 있고 기쁨도 슬픔도 나눌 수 있기에.
이 책은 샨티카나에서 일상을 직조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힝야 난민 여성)와 함께, 샨티카나가 생겨난 이야기(초기 활동가), 샨티카나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현재 활동가), 샨티카나의 이야기를 전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연대하는 창작자)가 서로의 뒤를 따르는 이야기이다.
목차
서문: 이 이야기가 우리를 치유했고, 이제 당신을 만날 차례이다
1부. 샨티카나가 만든 이야기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 캠프 일지-전솔비
문해교육 관찰 기록: 글자 앞에 앉은 마음-전솔비
예술 워크숍 기록: 사바와 휠-오로민경
샨티카나의 정원: 빛과 그림자가 물결치는 순간들-오로민경
샨티카나의 공간들-전솔비
순환하는 마음-오로민경
2부. 샨티카나를 만든 이야기
샨티카나의 탄생-별빛
샨티카나의 여자들: 샨티카나를 돌보는 사람들의 일상-비바
로힝야, 토착성을 부인당한 사람들: 로힝야의 역사와 난민이 된 과정-이유경
책 속으로
언제 끝날지 모를 난민 캠프에서의 생활이지만 여성들은 이곳에서 이전보다 더 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가고 있다. 난민이 되면서 많은 것을 잃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쟁과 재난은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던 삶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 것이다. 시간을 반으로 접어서 미래에 도달하는 구멍을 통과하듯, 난민 캠프는 로힝야 여성들이 살던 까마득한 과거의 세계를 깨뜨렸지만 대신 새로운 변화의 기회 역시 만들어가는 중이다.
로힝야 여성들은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기에 큰 소리를 내는 행위가 금지되는데, 이를 고려하여 샨티카나에서는 박수를 칠 때 박수 몸짓으로 대신한다. 손바닥을 부딪히지 않고 스쳐지나가게 하는 동작이 그것이다. 샨티카나를 떠올릴 때면 새의 날갯짓과 같은 손 모양으로 바람을 일으키며 우리를 환대해주던 여성들의 일렁이는 몸짓이 생각난다. 그곳에는 난민 캠프에서 마음의 집을 찾아가는 놀라운 이야기가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_17쪽, 전솔비
나는 어둠의 색이 단지 무섭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필요한 상태임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아가 그동안 샨티카나의 여성들은 피해자로서 인터뷰나 촬영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반대로 적극적으로 그들이 이 공간과 사람들을 보고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활동을 함께하며, 이를 통해 기록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나누고자 했다.
(…)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누군가의 삶의 터전에 깊숙히 들어오게 되었다면, 최소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기다려낼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카메라’라는 미디어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찍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고 싶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을 때 비로소 한 공간 안의 존재를 서로 만나게 해주는 관계적인 도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림자와 빛의 교환으로 카메라에 상이 담기는 것처럼, ‘우리’라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자리를 찾아갈 때 그 상을 제대로 담고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런 생각들을 하며 비로소 카메라를 들고 정원을 찍는 아푸의 뒤에서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_102~103쪽, 오로민경
몸감각운동(SEW)을 하고 나서 생리통이 없어졌고 밤에 잠을 잘 잤다고 하는 로힝야 여성들의 말을 나는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내가 부유한 국가인 한국에서 온 후원자이니까 나에게 좋은 말만 하는 것일까? 정말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녀들의 소극적이던 움직임이 점점 커지고, 히잡을 벗고, 그저 앉아 있기만 했던 여성들이 옆자리에 앉은 여성들과 수다를 떨어서 교육 진행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교육장이 소란스러워 진행이 어려운 것이 펄쩍 뛸 만큼 기뻤다. “지방 방송을 꺼주세요”, “앞에 집중해주세요”를 외치면서 어찌나 기쁘고 신나던지, 마음속으로는 계속 ‘지방 방송’을 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건 로힝야 여성들이 한국의 트레이너들과 이 교육 공간이 익숙해져서 마음을 놓을 만큼 안전하다고 느낀 것이고, 이미 아는 내용이니까 별로 안 궁금했던 것일 테고, 또 이웃 동료와 어제 오늘 있었던 일상을 나누고 한국인들과 어쩌고저쩌고 말을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는 것이니까. 그것은 우리가 바라던 여성들 간의 지지와 연결망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_194~195쪽, 별빛
하루는 샨티카나 수용 공동체 여성에게 로힝야 사람들을 도운 이유가 같은 무슬림이어서인지 물었다. 그녀는 다른 종교였어도 도왔을 것이라 대답했다. 이번엔 왜 도왔냐고 물었다. 여성은 그냥 도왔다고 대답했다. 나는 남을 도운 이유, 목적을 물었는데 이들은 계속해서 그냥 도왔다고 대답했다. 다른 활동가가 인도네시아에서 들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부자들은 난민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었지만 나는 가진 게 없어서 그들을 바다에서 뭍으로 데려오는 수밖에 없었어요.”
샨티카나는 난민뿐 아니라 수용 공동체 여성들도 같이 운영하고 이용한다. 어느 날은 그룹 토론을 하다가 센터의 한 수용 공동체 여성이 로힝야 여성에게 ‘너네는 비누도, 음식도 다 매달 공짜로 배분받지 않느냐’고, 우리는 사야 한다고 따졌다. 그러자 로힝야 여성은 우리가 미얀마 집으로 돌아가면 그때 우리 집으로 와서 비누 맘껏 가져가라고 대답했다. 민감해질 법한 상황이었지만, 놀랍게도 그 얘길 듣고선 다들 웃어버렸다.
_236~238쪽, 비바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가자 주민들에게 그러하듯, 로힝야 커뮤니티를 지독하게 봉쇄하고 자유와 존엄을 박탈해온 억압 방식이다. 그 체제하에서 로힝야 사람들은 숨죽여 살았고, 서서히 죽어나갔다. 그 체제하에서 로힝야에겐 ‘삶’이 곧 ‘슬로우 데쓰’다.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 밖을 벗어날 자유가 없으며 한 줌의 ‘외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Form 4’라는 이민성 양식을 작성해 제출해야만 45일 허가를 겨우 받을 수도, 그러나 못 받을 수도 있다. 내가 양곤에서 만난 로힝야 여성 사데카는 ‘Form 4 양식을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종이 양식 하나 얻기 위해 2년을 기다렸고 10만 (kyat, 미얀마 화폐 단위)을 냈다고 했다. 분리장벽으로 둘러쳐진 가자지구가 ‘중동의 아파르트 헤이트’라면, 조잡하지만 날카로운 철조망과 검문소가 눈에 불을 켜고 선 로힝야 게토는 ‘미얀마의 아파르트 헤이트’다.
‘아파르트 헤이트’는 제노사이드의 중요한 인프라이고, 대학살의 예고편이다. 가자지구에서도, 미얀마 라카인주에서도 이는 적확하게 증명됐다.
_259~260쪽, 이유경
작가 소개
공선주(별빛)
인도적지원 활동가. 2016년 사단법인 아디를 공동 창립하고, 아시아의 분쟁 지역에서 분쟁과 여성, 인도적지원, 기억과 기록이라는 주제로 공동체 구축, 평화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로힝야 난민캠프를 방문한 인연으로 2018년 로힝야 여성들을 마음으로 만나는 사업을 시작하고, 현재까지 총괄하고 있다. 우리의 활동은 ‘그 사람의 삶에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서로에게 따뜻한 지지와 응원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세상을 함께 바꾸기 위해 지역 운동으로서 국제개발협력과 인도적지원사업을 그리며 2006년부터 아시아의 여러 현장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로민경
다원예술 창작자. 누구에게나 떨어지는 한 낮의 빛, 흔들리는 잎의 작은 떨림들을 관찰하며 더 작은 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들리지 않을 수도 있는 소리를 듣고자 노력하며 다양한 공간, 사람들을 만나 여러 위치에서 협업하고 있다.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 《폐허에서 온 사랑》,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 등의 전시, 《연약한 기록들의 춤》 등의 공연을 만들었으며, 영화 [돌들이 말할때 까지] 의 음악 작업을 하였다.
이승지(비바)
인도적지원 활동가. 분쟁과 재난 속에서 문제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연대하고 실천한다. 2017년도부터 NGO에서 인도적지원 업무를 시작했다. 2021년도부터는 사단법인 아디에서 PM으로서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 및 수용공동체 여성 심리사회적 회복역량강화사업’를 맡아 관리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르포와 분쟁의 이면을 탐사하는 보도에 천착해 왔다. 언론의 독립성과 저널리즘이 훼손된 환경을 탐사보도 기반 정론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21〉, 〈시사인〉, 〈Neues Deutschland〉에 기고하였고 〈한국일보〉 기획 [세계의 분쟁지역]에 다양한 국제분쟁 현안을 연재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로힝야 제노사이드』,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봄의 혁명 : 새로운 미얀마를 향한 담대한 행보』(공저), 『누가 무장단체를 만드는가』가 있다.
전솔비
독립 기획자이자 연구자. 우연과 상상으로 현실을 작동시키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기억해야 할 이야기들을 만날 때 전시 혹은 책을 만든다. 경계와 타자의 문제를 고민하는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동시대 소수자 운동의 현장에서 생산되는 말과 글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다. 『난민, 난민화되는 삶』, 『생명연습』, 『입속의 협업자』를 함께 썼으며 《녹는 땅, 고인 기억》, 《캠프 사운드 커뮤니티》 외 다수의 전시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