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나 아이언의 모험
“그것은 눈부신 빛이었지.”
부커상 파이널리스트,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
매혹!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파격적인 거장의 마스터피스
인터내셔널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빛나는 퀴어 페미니즘 소설 『치나 아이언의 모험』의 첫 구절은 창세기를 연상케 한다. 짐승 같은 남편 피에로에게서 벗어나 반려견 에스트레야와 함께 탈출한 여자아이 치나 아이언의 재탄생을 담았다. 연상의 영국 여성 리즈를 만나 짐마차에 올라탄 뒤 아르헨티나 팜파와 요새를 지나 파라나강으로 향한다. 팜파의 빛 아래서 이 야성적인 이야기의 모든 것은 더욱 강렬해진다. 온갖 색과 지성의 향연, 레즈비언 사랑, 프리즘 같은 시적 언어, 종간 의사소통까지. 페미니즘, 퀴어, 생태주의, 반종차별주의,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이 모든 것이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의 퀴어 유토피아를 향한 카운터 내러티브에 담겼다. 출간 즉시 단숨에 작가를 거장에 반열에 올려놓은 역작으로, 동시대의 작가와 비평가들뿐 아니라 대중까지 사로잡으며 전 세계 출판계에 즉각적인 호평을 받았다. 작가는 이 작품의 성취에 힘입어 2025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출판사 서평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영토 『치나 아이언의 모험』
스핀오프, 팜파로 떠난 여자아이의 ‘나의 해방 일지’
주인공 치나 아이언은 자기만의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여자 가우초’ 또는 소녀, 더 나아가 여성, 아내, 하녀를 뜻하는‘치나china’라는 일반 명사로 불린다. 이는 케추아어 낱말로 강한 인종적 계급적 함의를 가진다. 다시 말해 치나는 ‘중국China’이 아닌 ‘노동 계급 여성’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의 성姓인 아이언Iron은 철 혹은 쇠를 뜻하며, 스페인어로 옮기면 피에로Fierro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가우초 문학이자 국민 대서사시인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 El Gaucho Martín Fierro』(1872). 『치나 아이언의 모험』은 널리 추앙받는 고전을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관점에서 전복하는 스핀오프spin-off 소설이다.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가 근대화 과정에서 부랑자나 범죄자 취급을 받던 가우초들의 애환을 다뤘다면, 『치나 아이언의 모험』은 마르틴 피에로를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인 남편으로 재정의한다. 행방불명된 것으로 그려졌던 피에로의 아내가, 사실은 매혹적인 영국 여자와 함께 사랑과 해방을 위한 모험을 떠났다는 대담한 상상을 펼친다. 역사물이자 시대극, 로드 무비풍의 여성 서사이며, 그 자체로 독보적인 퀴어 페미니즘 성장 소설이다.
“대개 벌거벗었고 아름다웠어.”
금서! 국가 권력이 금지하려 한 역작
작가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는 아르헨티나 최고 권위의 코넥스Konex상, 메디페 필바 재단Fundacion Medife Filba 최고 소설상, 스페인어권 여성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Sor Juana Ines de la Cruz상 등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은 이미 지리적인 경계와 장르를 초월하는 문학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2024년 11월에는 일부 보수 세력, 특히 아르헨티나 부통령인 빅토리아 비야루엘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이 책을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정부 소속 중등 교육 권장 도서 목록에서 제외하고 ‘금서’로 지정하려 시도했으나, 문학계와 시민 사회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뜨거운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작가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는 현재도 활발히 창작 활동을 이어 가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확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목차
1부 사막
눈부신 빛 13
짐마차 21
티끌로 터를 삼고 25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30
모든 것이 제2의 피부처럼 나를 감싸 줬어 35
대영 제국 아래서 39
네 마리 용이 내 팜파와 한데 뒤섞여 46
카라카라의 밥이 되어 51
생각에 잠겨 똥통에 빠지고 말았어 55
도깨비불은 뼈에서 나오는 빛이야 61
저를 치유해 주시는군요, 세뇨라 뗑끼우 63
있는 힘을 다해 72
스콘을 곁들여 먹고 마시기 76
영국의 과학 84
공중에 뜬 채 91
우리는 한 마리 한 마리 동물들한테 낙인을 찍었어 98
고아의 운명 105
나는 다리를 불태웠어 114
붓을 든 예언자 121
2부 요새
화려한 한 팀 129
흙먼지가 제자리에 꼼짝 않고 멈춘 것처럼 보일 수 있어 132
아아, 마이 달링, 들어와요, 들어오세요 135
색깔은 사물에서 분리돼 떠다녔어 138
나는 절정에 이르렀어 144
뒤엉킨 다리들 149
땅딸막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합스부르크 왕족들처럼 166
밧줄 채찍과 가죽 채찍 174
자기를 작가라고 믿은 그 이상한 가우초 182
펀치와 위스키 192
이 망할 치나 201
대령이여, 안녕 207
3부 내륙 깊숙한 곳
거품처럼 반짝였어 217
은하수가 리즈의 손에서 시작되거나 끝나는 것처럼 221
땅이 개골개골 울어 댔어 224
불규칙한 비행 227
대개 벌거벗었고 아름다웠어 230
아 내 인생의 치니타 248
부족한 건 무기야 269
섬에서는 빛이 두 배로 반짝여 274
나무를 관조하는 시간 280
우리를 봐야 해 288
감사 인사 293
역자의 말 295
책 속으로
그것은 눈부신 빛이었지. 강아지는 거기 남은 몇 안 되는 개들의 상처 입은 먼지투성이 발 사이로 신나게 뛰어다녔어. 가난은 균열을 부추기고, 깊이 파고들지. 가난은 제 피조물들의 피부를 휑한 바람으로 서서히 할퀴고, 말라비틀어진 가죽으로 만들고, 갈라지게 하고, 원치 않는 모양으로 망가트리기도 해. 하지만 그 강아지는 아직 괜찮았어. 강아지는 살아 있다는 기쁨을, 가난이라는 불투명한 슬픔이 채 닿지 않은 빛을 내뿜었지. 난 말이야, 가난에 대한 인식이 다른 어떤 생각보다 부족하다고 확신해. - 13p, 눈부신 빛
한낱 노새보다도 예의 없고 강아지보다 더 버릇없는 나를. 여자는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뜨거운 음료가 담긴 찻잔을 건네며 “티tea.”라고 말했어. 내가 그 단어를 모를 거라고 짐작하는 말투였는데, 그 짐작이 맞았어. 여자가 내게 ‘티’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스페인어로 “아띠a ti(너에게)”나 “빠라 띠para ti(너를 위한)”처럼 들렸지. 영어로는 일상어일 뿐인 그 말이, 어쩌면 나의 모국어일지도 모르는 언어로 여자가 건넨 첫 마디였어. - 19p, 눈부신 빛
리즈한테 기대 누운 에스트레야를 꼭 껴안았고, 갓 몸을 씻은 둘한테서 나는 꽃향기 속으로 빠져들었어. 라벤더 향이 나는 시트로 몸을 감쌌지. 그 향이 뭔지는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그날 밤에 나를 품어 준 시트의 감촉은 라벤더 향만큼 특별한 거였어. 아주 거칠게 말하면, 내 남은 평생의 모든 밤에도 그런 천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 여겼지. 그 향기로운 시트 사이에서 아릿하고도 부드러운 리즈의 숨결을 느꼈어. 그냥 거기 있으면서 그 숨결에 파묻히고 싶었지만 방법은 나도 몰랐지. 그저 향기, 이불, 개, 빨간 머리, 엽총 사이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잠을 잤어. - 34p,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그때 나는 불행도 느꼈지. 이런 옷을 입고 지내기 전 노천 생활의 고통에서 비롯된 불행 말이야. 나의 드레스들, 나의 개, 나의 친구에게 미친 사랑 같은 것을 느꼈어. 행복만큼이나 두려운 사랑이었지. 그것들이 깨질까 봐, 그것들을 잃어버릴까 봐 느끼는 두려움. 나를 벅차게 하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를 웃게 하며, 내 심장을 조이는 사랑. 그 사랑은 강아지와 그 여자와 드레스를 향한 과도한 열정으로, 엽총을 들고 밤새 지키는 그런 사랑으로 변했어. 나는 행복한 만큼 불행했고, 그건 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지. - 34p,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나는 드레스와 페티코트를 벗고 영국 남자, 그 리즈 남편의 봄바차와 셔츠를 입었어. 그의 손수건을 목에 매고는 리즈한테 가위로 내 머리를 바짝 깎아 달라고 했어. 땋은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고, 나는 어린 소년이 되었지. 굿 보이good boy, 라고 말하며 리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기 쪽으로 당기더니 입을 맞췄어. 나는 놀랐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 그럴 수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어. 안 될 게 뭐람? - 59p, 생각에 잠겨 똥통에 빠지고 말았어
점점 더 빠른 생산 속도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발명한 기계들의 섬. 그곳에선 금속이 왕관처럼 단호하게 군림하며 모든 곳에 철길을 깔지. 인간 노동의 결실이 들판과 산과 정글에서 항구로, 배로, 마침내 자국의 항구로 옮겨지도록 말이야. 그곳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크로노스의 입이지. 모든 것을 자신의 속도를 위한 연료로 바꿔 버려. 소가죽의 아직 따뜻한 털부터 다이아몬드의 차디찬 면, 탄력 있는 고무부터 스치면 부서지는 석탄까지. 영국의 힘은 군대나 은행에 있지 않아. 우리의 힘은 속도에서 나와. 시계를 앞지르고 태워 버리는 것, 공정 단축, 더 빠른 배, 연발 총알, 불과 며칠 만에 끝나는 은행 결제, 무엇보다도 제국의 공산품을 싣고 모든 항구로 뻗어 나갔다가 그 모든 땅의 전리품과 과일을 싣고 돌아오는 저 철도의 힘에서 나오지. - 73∼74p, 있는 힘을 다해
우리는 초록 산과 비를 마셔. 여왕이 마시는 바로 그것을 마시지. 우리는 여왕을 마시고, 노동을 마시고,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찻잎을 따는 사람의 구부러진 등과 찻잎을 나르는 사람의 등을 마시는 거야. 증기 엔진 덕분에 더 이상 노 젓는 사람들의 등짝에 내리꽂히는 채찍질을 마시지는 않지만, 대신 석탄 광부들의 질식을 마시지. 그런 거야. 세상 모든 건 다른 무언가의 죽음으로 살아가지. “무無에서 생겨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라고 리즈가 나한테 설명해 줬어. 모든 것은 노동에서 나온다고. 스콘을 곁들여 먹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 79∼80p, 스콘을 곁들여 먹고 마시기
리즈는 신이 나서 여러 예를 들더니 결국 마차에서 책을 한 권 가져왔어. 『올리버 트위스트』였지. 책을 읽기 시작했어. 올리버 트위스트는 영국의 고아인데 가족을 찾으면서 운명이 바뀌었대. “흠결 없는 도덕성을 보면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게 딱 티가 나.”라고 리즈가 말했어. “나도 가족을 찾을 거야. 아니 이미 찾았는지도 몰라.” 내 말에 리즈가 맞장구를 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 97p, 공중에 뜬 채
괄호 같은 시간 속, 그 영국 남자 없는 마차 안에서 우리 넷이 영원히 살고 싶었어. 난 리즈가 남편 없이 지내길 바랐지. 원했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원했어. 리즈가 나를 사랑하기를, 나 없인 살 수 없기를, 나를 꼭 안아 주기를, 리즈의 베개 옆에 있는 것이 내 베개이기를 원했어. 나는 동물들한테 낙인을 찍는 데 사흘을 끌었어. 낮잠 시간을 늘렸고, 마차에 있던 위스키 세 통을 넉넉히 담아 모두한테 따르며 그들이 수다를 떨게 부추겼지. 두렵고도 절망스러웠어. 마차가 어린 시절의 궤짝처럼 느껴졌지. 친구들이 궤짝으로 왔고 그 궤짝에 바퀴를 단 거라면 그건 또 다른 세상, 진짜 내 세상 아닐까. 마차 말고 모든 건 위협이었어. - 101p, 우리는 한 마리 한 마리 동물들한테 낙인을 찍었어
나는 다리를 불태웠어. 떠나려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 114p, 나는 다리를 불태웠어
말하다 지친 리즈가 내게 부드럽게, 아주 살짝 입을 맞췄어. 나는 용기를 내어 천천히 혀로 리즈의 입술을 훑었고, 천천히 혀와 혀를 섞으며 불타올랐지. 런던 새벽의 불꽃 속에 있는 터너의 기관차처럼. 리즈는 다정하게 나를 살짝 밀어내더니, 수채화를 계속 그리라고 했어. “잘하네.”라면서. - 124p∼125p, 붓을 든 예언자
리즈는 우리한테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어. 리즈는 숙녀로, 나는 영국의 젊은 신사로, 로사는 제복을 입은 하인으로 보이게 말이야. 마차 안에는 그런 옷들이 있었어. 귀족과 그의 집사들, 리즈와 오스카가 머릿속에 그린 농장, 그곳 계급에 맞는 제복들을 갖춰 놨던 거지. 우리는 화려한 한 팀이었어. 나는 프록코트를, 리즈는 드레스를, 로사는 제복을 갖춰 입었지. 우리는 훗날 보게 될 그 어떤 이보다 훨씬 더 호화롭게 꾸민 채로 치망고들이 먹이를 쪼아 먹는 그곳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어.- 131p, 화려한 한 팀
“애벌레 무리에서 노동자 집단으로 변모하는 민중을 상상해 보십시오, 밀레이디milady. 고통 없이는 안 되겠지만, 아아, 우리는 연민을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가 통합을 위해 우리 모두 희생해야합니다.” 대령의 목소리는 점점 탁해졌지만, 기세만큼은 꺾이지 않았지. 이 기독교인은 점점 더 흥분해서 떠벌렸어. 에르난데스는 화산처럼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고, 눈빛도 불안하게 흔들렸지. “우리는 애벌레 같은 민중에게 문명의 음악을 주입하는 거요. 그들은 공장의 리듬에 맞춰 심장이 조화롭게 고동치는 노동자 집단이 될 겁니다. 여기서는 나팔수들이 생산 리듬을 연주하며 그들의 무정부적인 영혼을 훈련시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어. - 142p, 색깔이 사물에서 분리돼 떠다녔어
리즈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었지. 그러고는 리즈가 내 옆에 앉아 그 나른하고 푸른 눈으로 내 눈을 바라봤을 때, 리즈의 통제 아래 놓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졌어. 리즈가 나를 의자에 가두고 오랫동안 키스했을 때는 더욱더 그랬지. 몇 시간이고 계속 키스했어. 아무도 내게 그렇게 키스해 준 적이 없었지. 리즈의 혀가 젖은 채 뜨겁고 거칠게 움직이는 것도 알게 됐고, 리즈의 침이 내 입안으로 섞여드는 것도 알게 됐고, 리즈의 이빨이 내 입술을 깨무는 것도 알게 됐고, 나는 계속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어. 포도주와 네 개의 기둥이 있는 캐노피 침대와 욕조와 크리스털 잔과 목장 주인의 일까지 알게 된 그날 밤,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됐지. - 145p, 나는 절정에 이르렀어
리즈의 반지에 번갯불이 반사돼 암탉들을 환하게 비추고 닭들은 눈부신 달걀들을 낳을 거야. 그 달걀에서는 훗날 카우칼리트란Kaukalitran이 사랑에 빠지게 될, 윤기 흐르는 검은 깃털의 수탉들이 태어나겠지. 그 밤은 나에게, 아니 우리 둘 모두에게 비단처럼 부드럽고 찬란하며, 검고도 푸르스름했어. - 221p, 은하수가 리즈의 손에서 시작되거나 끝나는 것처럼
어떤 날 파라나강의 등허리는 거대한 정원으로 변해 있지. 간밤에 달빛이 비치는 어둠 속에서 잠들었던 우리가 아침에 깨어나면 사방이 부레옥잠으로 가득해. 초록빛 양배추 같은 식물들, 그 위에 핀 꽃들. 그 보랏빛 꽃들은 초록빛 속에서 더 강렬하게 빛나지. 그 초록은 저 멀리 영국의 들판에서나 볼 수 있는 밀밭의 녹색과 닮은, 아니, 더 짙고 풍부한 색이지. 살아 있는 초록, 수만 가지 색조들이 어우러진 초록이야. 우리는 그 초록을 부르기 위해 과라니어 낱말을 써. 새싹의 연한 초록은 아키aky, 밤이 다가올 때 나뭇잎 전체를 뒤덮는 초록은 오비hovy, 한여름 거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 짙푸른 초록은 오비우hovy’ũ. - 276∼277p, 섬에서는 빛이 두 배로 반짝여
우리를 봐야 해.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할 거야. 우리는 마치 허공으로 삼켜지듯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법을 알거든. 상상해 봐. 한 마을이 연기처럼 증발하는 모습을. 색채와 집들과 개들과 옷가지와 소들과 말들이 유령처럼 스러지며 윤곽도 빛도 희미해지다 마침내 하얀 구름 속으로 완전히 녹아드는 모습을. 그렇게 우리는 떠나. - 290p, 우리를 봐야 해
작가 소개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 Gabriela Cabezón Cámara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눈부신 성취를 거둔 인물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 환경 운동가다. 196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산 이시드로에서 태어나 거리의 자동차 보험 판매원, 일간지 『클라린』 편집자, 국립 예술 대학교 글쓰기 예술학과 강사 등 다채로운 일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는 『크리시스』, 『파히나 12』, 『안피비아』 등 일간지 및 잡지와 협업하며 창작 활동에 매진해 왔다.
스스로를 “태어날 때부터 퀴어Queer”이자 “사회 생태주의자”로 정체화하는 그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과 생명체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자본세Capitalocene 이후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또한 젠더 폭력과 여성 살해Femicide의 종식을 촉구하는 페미니즘 운동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의 공동 창안자로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이어 간다.
2009년 발표한 첫 소설 『빈민가의 성모 마리아』에서 빈민가의 성녀로 추앙받는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다루며 아르헨티나의 『롤링 스톤』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장편이자 대표작인 『치나 아이언의 모험』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가우초 문학이자 국민 서사시인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1872)를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관점에서 비튼 스핀오프spin-off 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2020년 인터내셔널 부커상과 메디치 외국 문학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며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라섰다. 이어 세 번째 장편 소설 『오렌지 밭의 소녀들』이 『우리는 녹색이고 전율해』로 번역되어 2025년 가장 권위 있는 미국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외에도 코넥스상, 메디페 필바 재단상,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상을 휩쓴 그의 문학은 이제 지리적 경계와 장르를 초월한 하나의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상징이 된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의 목소리와 서사는 현대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치나 아이언의 모험
“그것은 눈부신 빛이었지.”
부커상 파이널리스트,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
매혹!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파격적인 거장의 마스터피스
인터내셔널 부커상 파이널리스트에 빛나는 퀴어 페미니즘 소설 『치나 아이언의 모험』의 첫 구절은 창세기를 연상케 한다. 짐승 같은 남편 피에로에게서 벗어나 반려견 에스트레야와 함께 탈출한 여자아이 치나 아이언의 재탄생을 담았다. 연상의 영국 여성 리즈를 만나 짐마차에 올라탄 뒤 아르헨티나 팜파와 요새를 지나 파라나강으로 향한다. 팜파의 빛 아래서 이 야성적인 이야기의 모든 것은 더욱 강렬해진다. 온갖 색과 지성의 향연, 레즈비언 사랑, 프리즘 같은 시적 언어, 종간 의사소통까지. 페미니즘, 퀴어, 생태주의, 반종차별주의,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이 모든 것이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의 퀴어 유토피아를 향한 카운터 내러티브에 담겼다. 출간 즉시 단숨에 작가를 거장에 반열에 올려놓은 역작으로, 동시대의 작가와 비평가들뿐 아니라 대중까지 사로잡으며 전 세계 출판계에 즉각적인 호평을 받았다. 작가는 이 작품의 성취에 힘입어 2025년 전미도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출판사 서평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영토 『치나 아이언의 모험』
스핀오프, 팜파로 떠난 여자아이의 ‘나의 해방 일지’
주인공 치나 아이언은 자기만의 이름을 갖지 못한 채 ‘여자 가우초’ 또는 소녀, 더 나아가 여성, 아내, 하녀를 뜻하는‘치나china’라는 일반 명사로 불린다. 이는 케추아어 낱말로 강한 인종적 계급적 함의를 가진다. 다시 말해 치나는 ‘중국China’이 아닌 ‘노동 계급 여성’이라는 뜻이다. 주인공의 성姓인 아이언Iron은 철 혹은 쇠를 뜻하며, 스페인어로 옮기면 피에로Fierro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가우초 문학이자 국민 대서사시인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 El Gaucho Martín Fierro』(1872). 『치나 아이언의 모험』은 널리 추앙받는 고전을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관점에서 전복하는 스핀오프spin-off 소설이다.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가 근대화 과정에서 부랑자나 범죄자 취급을 받던 가우초들의 애환을 다뤘다면, 『치나 아이언의 모험』은 마르틴 피에로를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인 남편으로 재정의한다. 행방불명된 것으로 그려졌던 피에로의 아내가, 사실은 매혹적인 영국 여자와 함께 사랑과 해방을 위한 모험을 떠났다는 대담한 상상을 펼친다. 역사물이자 시대극, 로드 무비풍의 여성 서사이며, 그 자체로 독보적인 퀴어 페미니즘 성장 소설이다.
“대개 벌거벗었고 아름다웠어.”
금서! 국가 권력이 금지하려 한 역작
작가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는 아르헨티나 최고 권위의 코넥스Konex상, 메디페 필바 재단Fundacion Medife Filba 최고 소설상, 스페인어권 여성 작가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Sor Juana Ines de la Cruz상 등을 휩쓸었다. 그의 작품은 이미 지리적인 경계와 장르를 초월하는 문학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2024년 11월에는 일부 보수 세력, 특히 아르헨티나 부통령인 빅토리아 비야루엘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 이 책을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정부 소속 중등 교육 권장 도서 목록에서 제외하고 ‘금서’로 지정하려 시도했으나, 문학계와 시민 사회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뜨거운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작가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는 현재도 활발히 창작 활동을 이어 가며,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확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목차
1부 사막
눈부신 빛 13
짐마차 21
티끌로 터를 삼고 25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30
모든 것이 제2의 피부처럼 나를 감싸 줬어 35
대영 제국 아래서 39
네 마리 용이 내 팜파와 한데 뒤섞여 46
카라카라의 밥이 되어 51
생각에 잠겨 똥통에 빠지고 말았어 55
도깨비불은 뼈에서 나오는 빛이야 61
저를 치유해 주시는군요, 세뇨라 뗑끼우 63
있는 힘을 다해 72
스콘을 곁들여 먹고 마시기 76
영국의 과학 84
공중에 뜬 채 91
우리는 한 마리 한 마리 동물들한테 낙인을 찍었어 98
고아의 운명 105
나는 다리를 불태웠어 114
붓을 든 예언자 121
2부 요새
화려한 한 팀 129
흙먼지가 제자리에 꼼짝 않고 멈춘 것처럼 보일 수 있어 132
아아, 마이 달링, 들어와요, 들어오세요 135
색깔은 사물에서 분리돼 떠다녔어 138
나는 절정에 이르렀어 144
뒤엉킨 다리들 149
땅딸막하고 피부가 가무잡잡한 합스부르크 왕족들처럼 166
밧줄 채찍과 가죽 채찍 174
자기를 작가라고 믿은 그 이상한 가우초 182
펀치와 위스키 192
이 망할 치나 201
대령이여, 안녕 207
3부 내륙 깊숙한 곳
거품처럼 반짝였어 217
은하수가 리즈의 손에서 시작되거나 끝나는 것처럼 221
땅이 개골개골 울어 댔어 224
불규칙한 비행 227
대개 벌거벗었고 아름다웠어 230
아 내 인생의 치니타 248
부족한 건 무기야 269
섬에서는 빛이 두 배로 반짝여 274
나무를 관조하는 시간 280
우리를 봐야 해 288
감사 인사 293
역자의 말 295
책 속으로
그것은 눈부신 빛이었지. 강아지는 거기 남은 몇 안 되는 개들의 상처 입은 먼지투성이 발 사이로 신나게 뛰어다녔어. 가난은 균열을 부추기고, 깊이 파고들지. 가난은 제 피조물들의 피부를 휑한 바람으로 서서히 할퀴고, 말라비틀어진 가죽으로 만들고, 갈라지게 하고, 원치 않는 모양으로 망가트리기도 해. 하지만 그 강아지는 아직 괜찮았어. 강아지는 살아 있다는 기쁨을, 가난이라는 불투명한 슬픔이 채 닿지 않은 빛을 내뿜었지. 난 말이야, 가난에 대한 인식이 다른 어떤 생각보다 부족하다고 확신해. - 13p, 눈부신 빛
한낱 노새보다도 예의 없고 강아지보다 더 버릇없는 나를. 여자는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뜨거운 음료가 담긴 찻잔을 건네며 “티tea.”라고 말했어. 내가 그 단어를 모를 거라고 짐작하는 말투였는데, 그 짐작이 맞았어. 여자가 내게 ‘티’라고 했을 때, 그 말은 스페인어로 “아띠a ti(너에게)”나 “빠라 띠para ti(너를 위한)”처럼 들렸지. 영어로는 일상어일 뿐인 그 말이, 어쩌면 나의 모국어일지도 모르는 언어로 여자가 건넨 첫 마디였어. - 19p, 눈부신 빛
리즈한테 기대 누운 에스트레야를 꼭 껴안았고, 갓 몸을 씻은 둘한테서 나는 꽃향기 속으로 빠져들었어. 라벤더 향이 나는 시트로 몸을 감쌌지. 그 향이 뭔지는 훨씬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그날 밤에 나를 품어 준 시트의 감촉은 라벤더 향만큼 특별한 거였어. 아주 거칠게 말하면, 내 남은 평생의 모든 밤에도 그런 천이 나를 지켜 줄 것이라 여겼지. 그 향기로운 시트 사이에서 아릿하고도 부드러운 리즈의 숨결을 느꼈어. 그냥 거기 있으면서 그 숨결에 파묻히고 싶었지만 방법은 나도 몰랐지. 그저 향기, 이불, 개, 빨간 머리, 엽총 사이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잠을 잤어. - 34p,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그때 나는 불행도 느꼈지. 이런 옷을 입고 지내기 전 노천 생활의 고통에서 비롯된 불행 말이야. 나의 드레스들, 나의 개, 나의 친구에게 미친 사랑 같은 것을 느꼈어. 행복만큼이나 두려운 사랑이었지. 그것들이 깨질까 봐, 그것들을 잃어버릴까 봐 느끼는 두려움. 나를 벅차게 하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나를 웃게 하며, 내 심장을 조이는 사랑. 그 사랑은 강아지와 그 여자와 드레스를 향한 과도한 열정으로, 엽총을 들고 밤새 지키는 그런 사랑으로 변했어. 나는 행복한 만큼 불행했고, 그건 전에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이었지. - 34p, 치나는 이름이 아니야
나는 드레스와 페티코트를 벗고 영국 남자, 그 리즈 남편의 봄바차와 셔츠를 입었어. 그의 손수건을 목에 매고는 리즈한테 가위로 내 머리를 바짝 깎아 달라고 했어. 땋은 머리가 바닥에 툭 떨어졌고, 나는 어린 소년이 되었지. 굿 보이good boy, 라고 말하며 리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자기 쪽으로 당기더니 입을 맞췄어. 나는 놀랐고, 이해가 되지 않았지, 그럴 수 있다는 걸 몰랐으니까. 그런데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어. 안 될 게 뭐람? - 59p, 생각에 잠겨 똥통에 빠지고 말았어
점점 더 빠른 생산 속도로 전 세계를 지배하려고 발명한 기계들의 섬. 그곳에선 금속이 왕관처럼 단호하게 군림하며 모든 곳에 철길을 깔지. 인간 노동의 결실이 들판과 산과 정글에서 항구로, 배로, 마침내 자국의 항구로 옮겨지도록 말이야. 그곳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크로노스의 입이지. 모든 것을 자신의 속도를 위한 연료로 바꿔 버려. 소가죽의 아직 따뜻한 털부터 다이아몬드의 차디찬 면, 탄력 있는 고무부터 스치면 부서지는 석탄까지. 영국의 힘은 군대나 은행에 있지 않아. 우리의 힘은 속도에서 나와. 시계를 앞지르고 태워 버리는 것, 공정 단축, 더 빠른 배, 연발 총알, 불과 며칠 만에 끝나는 은행 결제, 무엇보다도 제국의 공산품을 싣고 모든 항구로 뻗어 나갔다가 그 모든 땅의 전리품과 과일을 싣고 돌아오는 저 철도의 힘에서 나오지. - 73∼74p, 있는 힘을 다해
우리는 초록 산과 비를 마셔. 여왕이 마시는 바로 그것을 마시지. 우리는 여왕을 마시고, 노동을 마시고,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찻잎을 따는 사람의 구부러진 등과 찻잎을 나르는 사람의 등을 마시는 거야. 증기 엔진 덕분에 더 이상 노 젓는 사람들의 등짝에 내리꽂히는 채찍질을 마시지는 않지만, 대신 석탄 광부들의 질식을 마시지. 그런 거야. 세상 모든 건 다른 무언가의 죽음으로 살아가지. “무無에서 생겨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라고 리즈가 나한테 설명해 줬어. 모든 것은 노동에서 나온다고. 스콘을 곁들여 먹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 79∼80p, 스콘을 곁들여 먹고 마시기
리즈는 신이 나서 여러 예를 들더니 결국 마차에서 책을 한 권 가져왔어. 『올리버 트위스트』였지. 책을 읽기 시작했어. 올리버 트위스트는 영국의 고아인데 가족을 찾으면서 운명이 바뀌었대. “흠결 없는 도덕성을 보면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게 딱 티가 나.”라고 리즈가 말했어. “나도 가족을 찾을 거야. 아니 이미 찾았는지도 몰라.” 내 말에 리즈가 맞장구를 치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 - 97p, 공중에 뜬 채
괄호 같은 시간 속, 그 영국 남자 없는 마차 안에서 우리 넷이 영원히 살고 싶었어. 난 리즈가 남편 없이 지내길 바랐지. 원했어.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원했어. 리즈가 나를 사랑하기를, 나 없인 살 수 없기를, 나를 꼭 안아 주기를, 리즈의 베개 옆에 있는 것이 내 베개이기를 원했어. 나는 동물들한테 낙인을 찍는 데 사흘을 끌었어. 낮잠 시간을 늘렸고, 마차에 있던 위스키 세 통을 넉넉히 담아 모두한테 따르며 그들이 수다를 떨게 부추겼지. 두렵고도 절망스러웠어. 마차가 어린 시절의 궤짝처럼 느껴졌지. 친구들이 궤짝으로 왔고 그 궤짝에 바퀴를 단 거라면 그건 또 다른 세상, 진짜 내 세상 아닐까. 마차 말고 모든 건 위협이었어. - 101p, 우리는 한 마리 한 마리 동물들한테 낙인을 찍었어
나는 다리를 불태웠어. 떠나려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 114p, 나는 다리를 불태웠어
말하다 지친 리즈가 내게 부드럽게, 아주 살짝 입을 맞췄어. 나는 용기를 내어 천천히 혀로 리즈의 입술을 훑었고, 천천히 혀와 혀를 섞으며 불타올랐지. 런던 새벽의 불꽃 속에 있는 터너의 기관차처럼. 리즈는 다정하게 나를 살짝 밀어내더니, 수채화를 계속 그리라고 했어. “잘하네.”라면서. - 124p∼125p, 붓을 든 예언자
리즈는 우리한테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어. 리즈는 숙녀로, 나는 영국의 젊은 신사로, 로사는 제복을 입은 하인으로 보이게 말이야. 마차 안에는 그런 옷들이 있었어. 귀족과 그의 집사들, 리즈와 오스카가 머릿속에 그린 농장, 그곳 계급에 맞는 제복들을 갖춰 놨던 거지. 우리는 화려한 한 팀이었어. 나는 프록코트를, 리즈는 드레스를, 로사는 제복을 갖춰 입었지. 우리는 훗날 보게 될 그 어떤 이보다 훨씬 더 호화롭게 꾸민 채로 치망고들이 먹이를 쪼아 먹는 그곳을 지나 앞으로 나아갔어.- 131p, 화려한 한 팀
“애벌레 무리에서 노동자 집단으로 변모하는 민중을 상상해 보십시오, 밀레이디milady. 고통 없이는 안 되겠지만, 아아, 우리는 연민을 희생해야만 했습니다. 아르헨티나 국가 통합을 위해 우리 모두 희생해야합니다.” 대령의 목소리는 점점 탁해졌지만, 기세만큼은 꺾이지 않았지. 이 기독교인은 점점 더 흥분해서 떠벌렸어. 에르난데스는 화산처럼 완전히 폭발 직전이었고, 눈빛도 불안하게 흔들렸지. “우리는 애벌레 같은 민중에게 문명의 음악을 주입하는 거요. 그들은 공장의 리듬에 맞춰 심장이 조화롭게 고동치는 노동자 집단이 될 겁니다. 여기서는 나팔수들이 생산 리듬을 연주하며 그들의 무정부적인 영혼을 훈련시킵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어. - 142p, 색깔이 사물에서 분리돼 떠다녔어
리즈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었지. 그러고는 리즈가 내 옆에 앉아 그 나른하고 푸른 눈으로 내 눈을 바라봤을 때, 리즈의 통제 아래 놓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어졌어. 리즈가 나를 의자에 가두고 오랫동안 키스했을 때는 더욱더 그랬지. 몇 시간이고 계속 키스했어. 아무도 내게 그렇게 키스해 준 적이 없었지. 리즈의 혀가 젖은 채 뜨겁고 거칠게 움직이는 것도 알게 됐고, 리즈의 침이 내 입안으로 섞여드는 것도 알게 됐고, 리즈의 이빨이 내 입술을 깨무는 것도 알게 됐고, 나는 계속 더 많은 것을 알게 됐어. 포도주와 네 개의 기둥이 있는 캐노피 침대와 욕조와 크리스털 잔과 목장 주인의 일까지 알게 된 그날 밤, 나는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됐지. - 145p, 나는 절정에 이르렀어
리즈의 반지에 번갯불이 반사돼 암탉들을 환하게 비추고 닭들은 눈부신 달걀들을 낳을 거야. 그 달걀에서는 훗날 카우칼리트란Kaukalitran이 사랑에 빠지게 될, 윤기 흐르는 검은 깃털의 수탉들이 태어나겠지. 그 밤은 나에게, 아니 우리 둘 모두에게 비단처럼 부드럽고 찬란하며, 검고도 푸르스름했어. - 221p, 은하수가 리즈의 손에서 시작되거나 끝나는 것처럼
어떤 날 파라나강의 등허리는 거대한 정원으로 변해 있지. 간밤에 달빛이 비치는 어둠 속에서 잠들었던 우리가 아침에 깨어나면 사방이 부레옥잠으로 가득해. 초록빛 양배추 같은 식물들, 그 위에 핀 꽃들. 그 보랏빛 꽃들은 초록빛 속에서 더 강렬하게 빛나지. 그 초록은 저 멀리 영국의 들판에서나 볼 수 있는 밀밭의 녹색과 닮은, 아니, 더 짙고 풍부한 색이지. 살아 있는 초록, 수만 가지 색조들이 어우러진 초록이야. 우리는 그 초록을 부르기 위해 과라니어 낱말을 써. 새싹의 연한 초록은 아키aky, 밤이 다가올 때 나뭇잎 전체를 뒤덮는 초록은 오비hovy, 한여름 거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그 짙푸른 초록은 오비우hovy’ũ. - 276∼277p, 섬에서는 빛이 두 배로 반짝여
우리를 봐야 해.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할 거야. 우리는 마치 허공으로 삼켜지듯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법을 알거든. 상상해 봐. 한 마을이 연기처럼 증발하는 모습을. 색채와 집들과 개들과 옷가지와 소들과 말들이 유령처럼 스러지며 윤곽도 빛도 희미해지다 마침내 하얀 구름 속으로 완전히 녹아드는 모습을. 그렇게 우리는 떠나. - 290p, 우리를 봐야 해
작가 소개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 Gabriela Cabezón Cámara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눈부신 성취를 거둔 인물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페미니스트, 환경 운동가다. 196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산 이시드로에서 태어나 거리의 자동차 보험 판매원, 일간지 『클라린』 편집자, 국립 예술 대학교 글쓰기 예술학과 강사 등 다채로운 일을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는 『크리시스』, 『파히나 12』, 『안피비아』 등 일간지 및 잡지와 협업하며 창작 활동에 매진해 왔다.
스스로를 “태어날 때부터 퀴어Queer”이자 “사회 생태주의자”로 정체화하는 그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과 생명체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자본세Capitalocene 이후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또한 젠더 폭력과 여성 살해Femicide의 종식을 촉구하는 페미니즘 운동 ‘니 우나 메노스Ni una menos’의 공동 창안자로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이어 간다.
2009년 발표한 첫 소설 『빈민가의 성모 마리아』에서 빈민가의 성녀로 추앙받는 트랜스젠더 이야기를 다루며 아르헨티나의 『롤링 스톤』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번째 장편이자 대표작인 『치나 아이언의 모험』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가우초 문학이자 국민 서사시인 『가우초 마르틴 피에로』(1872)를 페미니스트와 퀴어의 관점에서 비튼 스핀오프spin-off 소설이다. 이 작품으로 2020년 인터내셔널 부커상과 메디치 외국 문학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며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올라섰다. 이어 세 번째 장편 소설 『오렌지 밭의 소녀들』이 『우리는 녹색이고 전율해』로 번역되어 2025년 가장 권위 있는 미국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 외에도 코넥스상, 메디페 필바 재단상, 소르 후아나 이네스 데 라 크루스상을 휩쓴 그의 문학은 이제 지리적 경계와 장르를 초월한 하나의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상징이 된 가브리엘라 카베손 카마라의 목소리와 서사는 현대 문학의 다양성과 깊이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