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는 일
집사를 웃고 울리는 고양이들의 고유한 삶을 받아들이며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
사랑하는 고양이의 생애를 통해 살아가고 사랑하는 일을 고민하는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는 일》은 19살 반려 고양이와 이별한 집사의 일여 년 간의 기록으로, 모든 '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켠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글입니다. 인간에 비해 짧은 생을 지닌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직은 유난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는 슬픔의 목소리가 존중되길 바랐습니다. 상실의 경험담을 공유하여 닮은 슬픔을 가진 이들 간에 위로의 메시지가 닿을 수 있도록 진솔하게 쓰고자 하였습니다.
책 속에는 슬퍼하는 이에게 건네는 진정한 위로와 공감,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의 무게와 상실의 순간 찾아오는 그리움과 허무 속에서도 책과 고양이에게서 받은 위안의 순간을 담았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 일년후
1장 상실의 기억
프로필 사진 속 우리
그날의 기억 1
그날의 기억 2 - 이상한 문장 -
어디로 붙일지 모르는 편지
슬픈 농담
후회와 자책만이
코로나시대의 이별
2장 죽음을 말하는 책
죽음을 이야기하는책 1 - 작가에게 반박하다
남겨진 고양이
회피성 집순이
죽음을 이야기 하는 책 2 - 펫로스가 아니라
죽음을 가까이하는
죽음을 이야기 하는 책 3 - 타인의 슬픔을 엿보다
지나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
어디로 보낼지 모르는 기도 - 죽음 이후의 말들
쓰는 이유
3장 슬퍼하는 이에게
‘시간이 지나면’의 비밀
슬퍼하는 이에게 - 진정한 공감
잘 지내냐는 말의 무게
슬픔의 크기를 가늠하는 건
우리는 슬픔이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4장 그리움은 계속되고
계절의 기억
존재덩어리로
꿈에서 만나
나의 자랑
아마도 어른은
불빛 없는 밤
5장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과 공존
육아와 육묘 - 가장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진짜 사랑한다면 - ‘내‘가 아니라 ‘너‘를
습관을 바꾸는 비밀 - 똥스키
당연한 사랑
어설픈 이타심
누구나 한번쯤은 고양이가 된다
6장 다시, 계절이 돌아오면
지금, 여기로 나를 부르는
마음의 언어
잃은 것의 총량
밤이면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봄이 오면은
책 속으로
어쩌면 나는, 우리는,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려고 태어났나 봐요. 나는 이 오묘한 삶의 모양을 이해하는 것에,아마도 나의 전 생애를 소모할 것만 같습니다. _「프롤로그」
마음이 허물어질 때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을 펼쳤다. 죽음에 관한 문장들을 읽으며 나의 슬픔이 ‘반려동물과 이별한 반려인의 것’이란 사실을 잊어갔다. 나는 그저,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일 뿐이었다. _「죽음을 이야기하는 책」
울리고 웃는 날이 반복되어도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는 조금의 미동이 없었다. 좋은 점, 나쁜 점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나의 고양이의 일부이고 그들의 삶이 가진 고유함이었다. _「당연한 사랑」
잔뜩 예민해진 내 마음은 작가의 사소한 문장 하나에도 곧잘 기분이 상하곤 했다. 가령 인간과 달리 동물은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문장에는 짜증을 내며 동족을 잃고 슬퍼하는 코끼리나 인간 가족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야생동물과 싸운 강아지, 주인이 죽자 곡기를 끊은 채 생을 마감한 동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허튼 주장을 한 작가에게 반박했다. _「죽음을 이야기하는 책」
고양이들은 늘 그 자리였습니다. 집사가 예기치 못한 행운에 들떠 마음이 총총거리는 날에도, 예측하지 못한 불운에 한껏 풀이 죽을 적에도. 좋고 나쁜 것들 모두 나의 일부일 뿐 언젠가 스쳐 지나가리라는 걸 아는 듯, 동그란 눈으로 날 정성껏 담던 그 아이가 원하는 건 그저 나일뿐이었습니다. 무려 열아홉 해였어요. 그 덕에 나는 삶의 기복 속에서도 다시금 일상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먹거리를 오도독 씹어 넘기는 야무진 입을 바라보며, 뜨끈한 황금 맛동산에 오늘도 한 건을 해냈다고 치켜세우며, 어둠 속에서도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며. _「지금, 여기로 나를 부르는」
오직 그가 지닌 슬픔의 영역을 이해하는 일은 그가 아끼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과 같았습니다. 그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에는 어떠한 어설픈 위로조차 오역되지 않고 따스하게 전달되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모두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요. 그러나 서로를 모르기에 조심스럽게 헤아려보려는 진심 몇 가지로, 상처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_「슬퍼하는 이에게」
나를 틈틈이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오는 한없이 작고 무해한 존재들. 오늘도 낮은 숨을 쌔근거리며내게 기대어 잠든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언젠가 이 깜깜한 시절을 지나면 다시 작고 예쁜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오르락내리락 움터 오릅니다. _「지금, 여기로 나를 부르는」
나와 다른 종이라고 하여 이런 마음이 싹트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핏줄을 나누었더라도 그런 마음이 당연한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세상의 혈연으로 이어진 이들과, 닮은 유전자의 고리로 구성된 이들이 서로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는 안타까운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인간은 선택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자신이 필요한, 자신을 필요로 한 존재를 선택하여 온 마음을 쏟아 낼 수 있는 것이에요. _「슬퍼하는 이에게」
진심 어린 공감은 반드시 경험해 보아야 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깊은 위안을 준 이 중에는 반려동물을 한 번도 키워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여겨온 마음을 지켜보았어요. 그러기에 그것을 잃었을 때 나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으리라 짐작하며, 조각난 마음들을 조심스레 다루어주었습니다. ‘네게 정말 소중한 것이었잖아. 그래서 많이 아팠겠구나?’ 하고 시선을 맞추어 바라봐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_「슬퍼하는 이에게」
나는 틈틈이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관련한 책을 찾아보았다. 요즈음 반려동물을 잃고 슬픔에 빠진 사람의 상태를 일컬어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펫로스라는 단어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보통의 상실은 패밀리 로스, 프렌즈 로스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진 않으니까. _「죽음을 이야기하는 책」
슬픔은 무게는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타인의 것, 타인의 이야기보다 내가 느끼는 슬픔이 맞는 것이에요. _「슬픔의 크기를 가늠하는 건」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둘러싸여 있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노란 고양이가 나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일. 그것이 여린 집사의 영혼에 얼마나 지속적인 안정감을 주는지, 살집이 부쩍 올라 봤자 잘 익은 호박만 한 이 작은 몸에 내가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이 아이는 결코 모를 것이다. _「육아와 육묘」 중에서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혹은 타인의 슬픔을 가늠하고 비교한다. 나에게도 가만히 있다가 들려온 갑작스러운 비교의 말이 상처로 남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슬픔은, 떠안은 자와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이다. 너의 아픔이 다른 누구의 것보다 가벼울지도 모른다는 것이 누군가 슬퍼할 자격이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아마 세상 어디에도 위로받을만한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_「슬픔의 크기를 가늠하는 건」
모두가 잠든 밤, 이불속에서 조용히 그리운 얼굴을 떠올려 봐요. 그러다 다시 눈을 감아요. 그럼 또 다음날이 밝아올 테니까요. 누군가 말했대요. 살아가는 건 소낙비가 지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흠뻑 젖으면서도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요. _「시간이 지나면의 비밀」
그렇게 몇 평 안 되는 방이 우리가 나누는 세계의 전부였지만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여실히 느끼며 시절을 통과해왔다. _「계절의 기억」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면 상처를 주고받기 쉬웠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도, 심지어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고양이들은 ‘지금 여기의 나’ 이외에, 나에게 어떤 모습을 바라지 않았기에. 나도 그들에게 무언갈 바라지 않았다. _「존재 덩어리로」
만약 시간이 흘러 다시 어여쁜 아기 고양이의 집사가 될지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의 매력에 쉽게 매료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작고 호기심 가득한 털 뭉치를 보며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그의 가장 늙고 초라한 모습을 떠올릴 거다 그렇게 평생 너의 가족이 되겠다는 무거운 확신을 가지고서야 서로의 반려가 될 거다. _「육아와 육묘」
정말 사랑하면 주어는 상대가 되었다. 그래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나의 힘듦만큼 상대의 아픔을 떠올린다. 사랑한다면 ‘나’보다는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하나의 주어진 상황에 정답이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일까. 나의 아픔보다 너의 아픔을 말하던 이들이 그들이 아끼던 것을 끝내 지켜내는 걸 보게 되는 것은. _「진짜 사랑한다면」
아직 내 마음이 전부 아물지 않음을 느낀다. 시간이 지난 뒤의 마음은 다시 어디로 흐를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기에 더욱 기록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기록하지 않은 변화의 순간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며, 바뀌어지고 사라질 것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시절의 일부로 존재하였음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나의 고양이는 내일의 내가 아니라, 아끼던 온기와 하루라도 가까운 오늘의 내가 써야만 하니까. _「쓰는 이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를 사랑한다며 온통 사진을 도배하는 모든 사람을 신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예쁘고 귀여운 것에 마음을 쓰는 것과 사랑하는 일은 다른 것이니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의 행복을 나누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다. 위태로운 순간마저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고 통과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단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진정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_「진짜 사랑한다면」
작은 인기척에 더욱 좁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드는 고양이를 볼 때면, 누구나 도시 속에 살며 한 번쯤은 거리의 고양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익숙할 법하면 찾아드는 낯선 공기에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날에, 바꿀 수 없는 나의 일부로 차가운 눈빛을 받을 적에, 작은 호의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처받은 기억이 쌓여 갈 때, 반복되는 고단함의 끝이 쉬이 보이지 않을 적에. _「누구나 한번쯤은 고양이가 된다」
잃을 수 있는 건 한때 나를 구성했던 일부들이야. 혹은 이미 나의 일부처럼 간절히 원하였거나. 그러니 잃은 것들을 떠올리며 영영 주저앉지 않아도 될지 몰라. 상실로 인한 통증이 강렬할수록 그 순간을 간절히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_「잃은 것의 총량」
모두가 잠든 밤, 이제는 소리 내어 발음할 일이 없는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 봅니다. 행여나 누가 들을까 낮에는 꼭 닫아온 입 모양들을요. 괜히 민망해져 나의 코앞에 엉덩이를 들이민 노란 고양이에게 굿 나잇 인사를 건네었어요. 나의 손끝에 닿는 보드라운 온기가 없었더라면 나의 밤이 얼마나 산산이 부서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별다른 대답 없이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반복되리란 건 그리 기쁜 소식은 아니었지만,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네가 내 옆에서 잠들 거란 사실은 아주 기뻤어요. _「밤이면 들려오는 소리에」
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는 일
집사를 웃고 울리는 고양이들의 고유한 삶을 받아들이며 천천히 나아가는 이야기.
사랑하는 고양이의 생애를 통해 살아가고 사랑하는 일을 고민하는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는 일》은 19살 반려 고양이와 이별한 집사의 일여 년 간의 기록으로, 모든 '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한켠에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글입니다. 인간에 비해 짧은 생을 지닌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직은 유난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는 슬픔의 목소리가 존중되길 바랐습니다. 상실의 경험담을 공유하여 닮은 슬픔을 가진 이들 간에 위로의 메시지가 닿을 수 있도록 진솔하게 쓰고자 하였습니다.
책 속에는 슬퍼하는 이에게 건네는 진정한 위로와 공감,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의 무게와 상실의 순간 찾아오는 그리움과 허무 속에서도 책과 고양이에게서 받은 위안의 순간을 담았습니다.
목차
프롤로그 - 일년후
1장 상실의 기억
프로필 사진 속 우리
그날의 기억 1
그날의 기억 2 - 이상한 문장 -
어디로 붙일지 모르는 편지
슬픈 농담
후회와 자책만이
코로나시대의 이별
2장 죽음을 말하는 책
죽음을 이야기하는책 1 - 작가에게 반박하다
남겨진 고양이
회피성 집순이
죽음을 이야기 하는 책 2 - 펫로스가 아니라
죽음을 가까이하는
죽음을 이야기 하는 책 3 - 타인의 슬픔을 엿보다
지나 보아야 알 수 있는 것들
어디로 보낼지 모르는 기도 - 죽음 이후의 말들
쓰는 이유
3장 슬퍼하는 이에게
‘시간이 지나면’의 비밀
슬퍼하는 이에게 - 진정한 공감
잘 지내냐는 말의 무게
슬픔의 크기를 가늠하는 건
우리는 슬픔이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4장 그리움은 계속되고
계절의 기억
존재덩어리로
꿈에서 만나
나의 자랑
아마도 어른은
불빛 없는 밤
5장 길들인 것에 대한 책임과 공존
육아와 육묘 - 가장 늙고 초라한 모습으로
진짜 사랑한다면 - ‘내‘가 아니라 ‘너‘를
습관을 바꾸는 비밀 - 똥스키
당연한 사랑
어설픈 이타심
누구나 한번쯤은 고양이가 된다
6장 다시, 계절이 돌아오면
지금, 여기로 나를 부르는
마음의 언어
잃은 것의 총량
밤이면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봄이 오면은
책 속으로
어쩌면 나는, 우리는,사라질 것들을 사랑하려고 태어났나 봐요. 나는 이 오묘한 삶의 모양을 이해하는 것에,아마도 나의 전 생애를 소모할 것만 같습니다. _「프롤로그」
마음이 허물어질 때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을 펼쳤다. 죽음에 관한 문장들을 읽으며 나의 슬픔이 ‘반려동물과 이별한 반려인의 것’이란 사실을 잊어갔다. 나는 그저,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사람일 뿐이었다. _「죽음을 이야기하는 책」
울리고 웃는 날이 반복되어도 그들을 아끼는 마음에는 조금의 미동이 없었다. 좋은 점, 나쁜 점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나의 고양이의 일부이고 그들의 삶이 가진 고유함이었다. _「당연한 사랑」
잔뜩 예민해진 내 마음은 작가의 사소한 문장 하나에도 곧잘 기분이 상하곤 했다. 가령 인간과 달리 동물은 죽음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문장에는 짜증을 내며 동족을 잃고 슬퍼하는 코끼리나 인간 가족을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야생동물과 싸운 강아지, 주인이 죽자 곡기를 끊은 채 생을 마감한 동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허튼 주장을 한 작가에게 반박했다. _「죽음을 이야기하는 책」
고양이들은 늘 그 자리였습니다. 집사가 예기치 못한 행운에 들떠 마음이 총총거리는 날에도, 예측하지 못한 불운에 한껏 풀이 죽을 적에도. 좋고 나쁜 것들 모두 나의 일부일 뿐 언젠가 스쳐 지나가리라는 걸 아는 듯, 동그란 눈으로 날 정성껏 담던 그 아이가 원하는 건 그저 나일뿐이었습니다. 무려 열아홉 해였어요. 그 덕에 나는 삶의 기복 속에서도 다시금 일상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먹거리를 오도독 씹어 넘기는 야무진 입을 바라보며, 뜨끈한 황금 맛동산에 오늘도 한 건을 해냈다고 치켜세우며, 어둠 속에서도 나를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며. _「지금, 여기로 나를 부르는」
오직 그가 지닌 슬픔의 영역을 이해하는 일은 그가 아끼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과 같았습니다. 그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에는 어떠한 어설픈 위로조차 오역되지 않고 따스하게 전달되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모두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요. 그러나 서로를 모르기에 조심스럽게 헤아려보려는 진심 몇 가지로, 상처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_「슬퍼하는 이에게」
나를 틈틈이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오는 한없이 작고 무해한 존재들. 오늘도 낮은 숨을 쌔근거리며내게 기대어 잠든 아이를 보고 있자니, 언젠가 이 깜깜한 시절을 지나면 다시 작고 예쁜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오르락내리락 움터 오릅니다. _「지금, 여기로 나를 부르는」
나와 다른 종이라고 하여 이런 마음이 싹트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핏줄을 나누었더라도 그런 마음이 당연한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세상의 혈연으로 이어진 이들과, 닮은 유전자의 고리로 구성된 이들이 서로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는 안타까운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아야 하니까요. 인간은 선택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자신이 필요한, 자신을 필요로 한 존재를 선택하여 온 마음을 쏟아 낼 수 있는 것이에요. _「슬퍼하는 이에게」
진심 어린 공감은 반드시 경험해 보아야 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깊은 위안을 준 이 중에는 반려동물을 한 번도 키워보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오랫동안 소중하게 여겨온 마음을 지켜보았어요. 그러기에 그것을 잃었을 때 나의 마음이 산산이 부서졌으리라 짐작하며, 조각난 마음들을 조심스레 다루어주었습니다. ‘네게 정말 소중한 것이었잖아. 그래서 많이 아팠겠구나?’ 하고 시선을 맞추어 바라봐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_「슬퍼하는 이에게」
나는 틈틈이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관련한 책을 찾아보았다. 요즈음 반려동물을 잃고 슬픔에 빠진 사람의 상태를 일컬어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펫로스라는 단어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보통의 상실은 패밀리 로스, 프렌즈 로스라는 이름으로 분류되진 않으니까. _「죽음을 이야기하는 책」
슬픔은 무게는 다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타인의 것, 타인의 이야기보다 내가 느끼는 슬픔이 맞는 것이에요. _「슬픔의 크기를 가늠하는 건」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둘러싸여 있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노란 고양이가 나의 시야 안에 들어오는 일. 그것이 여린 집사의 영혼에 얼마나 지속적인 안정감을 주는지, 살집이 부쩍 올라 봤자 잘 익은 호박만 한 이 작은 몸에 내가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이 아이는 결코 모를 것이다. _「육아와 육묘」 중에서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혹은 타인의 슬픔을 가늠하고 비교한다. 나에게도 가만히 있다가 들려온 갑작스러운 비교의 말이 상처로 남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슬픔은, 떠안은 자와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이다. 너의 아픔이 다른 누구의 것보다 가벼울지도 모른다는 것이 누군가 슬퍼할 자격이 없는 이유가 될 수 있다면, 아마 세상 어디에도 위로받을만한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_「슬픔의 크기를 가늠하는 건」
모두가 잠든 밤, 이불속에서 조용히 그리운 얼굴을 떠올려 봐요. 그러다 다시 눈을 감아요. 그럼 또 다음날이 밝아올 테니까요. 누군가 말했대요. 살아가는 건 소낙비가 지나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흠뻑 젖으면서도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요. _「시간이 지나면의 비밀」
그렇게 몇 평 안 되는 방이 우리가 나누는 세계의 전부였지만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여실히 느끼며 시절을 통과해왔다. _「계절의 기억」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가 가까워질 때면 상처를 주고받기 쉬웠다.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도, 심지어 서로를 위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고양이들은 ‘지금 여기의 나’ 이외에, 나에게 어떤 모습을 바라지 않았기에. 나도 그들에게 무언갈 바라지 않았다. _「존재 덩어리로」
만약 시간이 흘러 다시 어여쁜 아기 고양이의 집사가 될지 고민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의 매력에 쉽게 매료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세상 물정도 모르는 작고 호기심 가득한 털 뭉치를 보며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그의 가장 늙고 초라한 모습을 떠올릴 거다 그렇게 평생 너의 가족이 되겠다는 무거운 확신을 가지고서야 서로의 반려가 될 거다. _「육아와 육묘」
정말 사랑하면 주어는 상대가 되었다. 그래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 속에서도 나의 힘듦만큼 상대의 아픔을 떠올린다. 사랑한다면 ‘나’보다는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에. 하나의 주어진 상황에 정답이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일까. 나의 아픔보다 너의 아픔을 말하던 이들이 그들이 아끼던 것을 끝내 지켜내는 걸 보게 되는 것은. _「진짜 사랑한다면」
아직 내 마음이 전부 아물지 않음을 느낀다. 시간이 지난 뒤의 마음은 다시 어디로 흐를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기에 더욱 기록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기록하지 않은 변화의 순간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며, 바뀌어지고 사라질 것이라 하더라도 명백한 시절의 일부로 존재하였음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나의 고양이는 내일의 내가 아니라, 아끼던 온기와 하루라도 가까운 오늘의 내가 써야만 하니까. _「쓰는 이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를 사랑한다며 온통 사진을 도배하는 모든 사람을 신뢰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예쁘고 귀여운 것에 마음을 쓰는 것과 사랑하는 일은 다른 것이니까.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의 행복을 나누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다. 위태로운 순간마저 서로의 손을 놓치지 않고 통과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단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진정한 빛을 내기 시작한다. _「진짜 사랑한다면」
작은 인기척에 더욱 좁고 어두운 곳으로 숨어드는 고양이를 볼 때면, 누구나 도시 속에 살며 한 번쯤은 거리의 고양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익숙할 법하면 찾아드는 낯선 공기에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날에, 바꿀 수 없는 나의 일부로 차가운 눈빛을 받을 적에, 작은 호의조차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처받은 기억이 쌓여 갈 때, 반복되는 고단함의 끝이 쉬이 보이지 않을 적에. _「누구나 한번쯤은 고양이가 된다」
잃을 수 있는 건 한때 나를 구성했던 일부들이야. 혹은 이미 나의 일부처럼 간절히 원하였거나. 그러니 잃은 것들을 떠올리며 영영 주저앉지 않아도 될지 몰라. 상실로 인한 통증이 강렬할수록 그 순간을 간절히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_「잃은 것의 총량」
모두가 잠든 밤, 이제는 소리 내어 발음할 일이 없는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 봅니다. 행여나 누가 들을까 낮에는 꼭 닫아온 입 모양들을요. 괜히 민망해져 나의 코앞에 엉덩이를 들이민 노란 고양이에게 굿 나잇 인사를 건네었어요. 나의 손끝에 닿는 보드라운 온기가 없었더라면 나의 밤이 얼마나 산산이 부서졌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별다른 대답 없이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반복되리란 건 그리 기쁜 소식은 아니었지만,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네가 내 옆에서 잠들 거란 사실은 아주 기뻤어요. _「밤이면 들려오는 소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