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인 부산은 대구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도시입니다. 바다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으며 (제 생각엔) 대구보다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더 많은 곳입니다. 하지만 자주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여러 ‘업무’라는 핑계를 대면 수긍하실 수 있으신가요? 사실 부산에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사실 저(김인철)도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이 도시에 왜 자주 가지 않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악독하게 굴었던 군대 선임이 있는 도시도 아니고, 이곳에 사는 누군가의 돈을 떼먹은 일도 없는데(물론 다른 도시의 그 누구의 돈도 떼먹어 본 적 없습니다!) 왜 자주 오지 못했을까요? 여러 핑계의 말이 있겠지만 여기선 입을 닫고 조용히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방문하면 좋지만 쉽게 방문할 의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도시인 부산엔 무슨 이유로 가야겠다 마음먹었을까요? 바로 <BAAA: Books As Art As> 전시가 그 이유였습니다. 이 전시는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 북'에 대한 다양한 예시와 심도있는 설명을 실체적 예시를 통해 느껴볼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출판'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더 북 소사이어티’도 참여하고 있어 애정하는 마음으로 직관하러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아티스트북을 실제로 볼 수 있겠다는 기대로, 그 책들을 통해 다양한 영감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렵디 어려운 하지만 사실은 쉬운 부산행을 결심하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해운대 바로 앞에 자리한 ‘그랜드 조선 부산'은 으리으리했습니다. 얼마나 으리으리했냐면, (이후의 이야기지만) 1시간 22분의 주차로 18,000원의 주차비가 책정될 만큼 으리으리했습니다. 여태껏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주차 의리에 살짝(사실 많이) 놀랐던 ‘그랜드 조선 부산'은 놀란 만큼이나 멋진 내부를 자랑했습니다. 전시 공간은 호텔의 4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로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한 번만 타도 4층으로 갈 수 있었던 호텔 내부 구조에 조금 신기해하며, 이후 부과될 주차 요금은 예상치도 못한 채 전시장을 향했습니다. 편의점을 지나 바로 앞에 자리한 전시 공간, ‘OKNP’는 입구부터 이미 많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전시를 지키는 분께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특별히 무료 관람권이 없던 저희는 2인 총 6,000원을 지불하고 관람권을 구매하였습니다. 사실 입구 앞 공간만 봤을 땐 아 그냥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스탠딩 스크린이 하나 있구나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너머는 STAFF ONLY이고, 일반인인 내가 들어가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검은 암막 커튼을 넘고 들어가야만 이곳의 진짜 전시를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촌스럽다고 생각하며 커튼을 젖히고 들어간 그곳은 ‘와!’ 하는 촌스러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코너부터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프로젝터 영상은 <방법으로서의 출판: 아시아에서 함께하기 방식들 / 미디어버스>의 출간에 기해 만들어진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의 아티스트북 제작자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오던 이 영상에서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나 인쇄소에서 책이 ‘책'이라는 물성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과정이 교차편집되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제작/기획자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책이라는 것의 실제적인 제작 과정을 함께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구체화하여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국내외 여러 아트북페어 행사의 모습들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저희도 참가한 <언리미티드에디션 11>의 현장 모습도 볼 수 있어 반가웠고, 저때 참가한 사람들은 과연 코로나 대유행을 예상이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감염병의 걱정 없던 시절의 활기찬 국내외 아트북페어 행사를 보며, 그리고 각자의 현안과 고민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제작자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제작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고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책이라는 것을 선택해 만들고 있는 걸까? 등 스스로를 향하는 다양한 질문을 이어가며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시청하였습니다. 물론 영상을 밀도 있게 관람하는 동안에도 주차비는 밀도 있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검은 암막 커튼 이후, 프로젝터 영상 관람 이후의 세상에서는 ‘흰 장갑’에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뉴욕과 파리에서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실물 아티스트북을 전시장 직원분의 소개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도서가 있으면 도슨트분께 요청을 해 직접 펼쳐주시는 모습을 관람하고, 직접 설명해 주시는 정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껏 자유롭게 보지 못한다는 점이 감질나긴 했지만, 책의 외형이나 내지 그리고 전반적인 감상을 하는 데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혼자 봤으면 몰랐을 내용들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볼 수 있어 어쩌면 더 유용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Printed matter(뉴욕), 미디어버스(서울), Westreich Wagner(뉴욕), Three Star Books(파리)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아티스트북을 (도슨트분께는 죄송했지만) 대부분 관람하였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면,
얼마전 타계한 John Baldessari의 유작 <Nose Peak>1은 인간의 코를 책 내부에 형상화하여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할수록 그 코의 형체가 점점 더 뚜렷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걸 말하려 했는지 따라가는 과정이 사실 쉽진 않았습니다. 물론 예술이라는 것이 창작자의 의도와 별개로 수용자의 독립적인, 개별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 다양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후 이 코가 러시아 작가 ‘고골'의 코를 상징한다는 캡션과 설명을 듣고 나자, 동명의 그의 단편이 떠올랐고 이후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Maurizio Cattelan의 <Three Volume set>2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쇄된 것처럼 보이는 한 장 한 장이 사실 모두 손으로 그리고, 쓴 작업물이라는 데에 놀랐습니다. 마치 무한상사의 정과장이 생각나기도 했던 이 작업물은 ADHD 성향이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시도는 해보겠지만 절대 마무리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3권의 책이 엮여 있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사실 그림)과 문자(사실 손글씨)들이 가득했습니다. 박형진 작가의 <까마귀와 까치>3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색채표와 같아 보이는 그의 작업은 사실 하루하루 기록으로 남긴 색채 일기였습니다. 6개월간 매일 바라본 오동나무의 색을 그때의 감상을 담아 모두 기록한 이 작업은 작가가 지나온 시간과 그때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무척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Elvire Bonduelle의 <SO FAR SO GOOD>4이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독창적인 타이포를 패브릭이나 종이에 인쇄하여 자신만의 미감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다양한 사물에 디자인적으로 잘 적용될 수 있겠다 생각하며 특히 전등갓에 입혀보면 어떨까 생각하는 와중에, 캡션을 통해 전등 디자인으로 이미 출시가 되었다는 내용을 본 순간은 약간 오늘 총 두 번의 소름 모먼트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다른 하나는 주차 정산 모먼트였습니다.) 사실 Elvire Bonduelle의 작업은 전시장 입구 쪽 도서 전시/판매 공간에 설치된 스탠딩 스크린에서 먼저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온 뒤에야 해당 영상이 그녀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작품을 보고 나자, 영상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관련 영상을 보고 싶으신 분은 https://threestarbooks.com/ELVIRE-BONDUELLE-SO-FAR-SO-GOOD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미디어버스의 전시 공간5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마침맞게 좋은 날씨로 인해 한 면을 가득 채운 창을 통해 해운대 바다가 널리 보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짙은 바다색과 더불어 녹색의 전시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해수욕을 하는 사람과 전시를 보는 사람. 어쩌면 부산만이 가진 매력적인 특징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멋진 도시와 멋진 공간에 걸맞은 멋진 전시는 9월 10일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서울에 계시던, 대구에 계시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면 안 될 이 전시를 종료가 되기 전 꼭 방문해 보시라고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1. 'Nose Peak', John Baldessari

2. 'Three Volume set', Maurizio Cattelan


3. '까마귀와 까치', 박형진


4. 'SO FAR SO GOOD', Elvire Bonduelle


5. 미디어버스 섹션


***

이후 저희는 전시 공간에서 빠져나와 부산에서의 짧은 일정을 ‘샵메이커즈’ 방문으로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공간을 옮긴 샵메이커즈는 이런저런 행사를 통해 직접 만나 소통하고 있는 서점이기도 했으며, 특히나 여름에 부산에서 진행되는 ‘부산 아트북 페어’를 기획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SNS를 통해 새로 단장한 멋진 공간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고, 도착한 서점은 역시나 멋진 분위기를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독립출판물에서부터 일반 단행본 및 여러 생활 잡화와 문구류까지. 미적 감각을 갈구하며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분들께 좋은 영감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과 공간 내부의 분위기가 서점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뵌 운영자분들과도 담소를 나누며 이전을 하며 겪은 애로사항이나 다양한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덕분에 멋진 공간을 흠뻑 느끼며 좋은 책도 발견할 수 있었고, (중요)매우 맛있는 근처 맛집의 저녁 식사까지 선사해주셔서 감사함에 몸둘 바를 모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저희는 부산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좋은 경험들은 내부적으로 좋은 양분이 됩니다. 업무를 핑계로 매번 안으로만 향하선 시선을 이제 바깥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두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하며 짧지만 강했던 부산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글: 김인철
사진: 류은지
BAAA: Books As Art As
2023년 7월 29일-9월 10일 | 10:00-18:00
오케이앤피 부산 (그랜드조선부산 4층)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인 부산은 대구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도시입니다. 바다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으며 (제 생각엔) 대구보다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가 더 많은 곳입니다. 하지만 자주 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여러 ‘업무’라는 핑계를 대면 수긍하실 수 있으신가요? 사실 부산에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사실 저(김인철)도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은 이 도시에 왜 자주 가지 않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악독하게 굴었던 군대 선임이 있는 도시도 아니고, 이곳에 사는 누군가의 돈을 떼먹은 일도 없는데(물론 다른 도시의 그 누구의 돈도 떼먹어 본 적 없습니다!) 왜 자주 오지 못했을까요? 여러 핑계의 말이 있겠지만 여기선 입을 닫고 조용히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방문하면 좋지만 쉽게 방문할 의지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도시인 부산엔 무슨 이유로 가야겠다 마음먹었을까요? 바로 <BAAA: Books As Art As> 전시가 그 이유였습니다. 이 전시는 국내외 유명 ‘아티스트 북'에 대한 다양한 예시와 심도있는 설명을 실체적 예시를 통해 느껴볼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출판'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더 북 소사이어티’도 참여하고 있어 애정하는 마음으로 직관하러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 쉽게 볼 수 없던 아티스트북을 실제로 볼 수 있겠다는 기대로, 그 책들을 통해 다양한 영감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렵디 어려운 하지만 사실은 쉬운 부산행을 결심하고 시동을 걸었습니다.
해운대 바로 앞에 자리한 ‘그랜드 조선 부산'은 으리으리했습니다. 얼마나 으리으리했냐면, (이후의 이야기지만) 1시간 22분의 주차로 18,000원의 주차비가 책정될 만큼 으리으리했습니다. 여태껏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주차 의리에 살짝(사실 많이) 놀랐던 ‘그랜드 조선 부산'은 놀란 만큼이나 멋진 내부를 자랑했습니다. 전시 공간은 호텔의 4층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로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한 번만 타도 4층으로 갈 수 있었던 호텔 내부 구조에 조금 신기해하며, 이후 부과될 주차 요금은 예상치도 못한 채 전시장을 향했습니다. 편의점을 지나 바로 앞에 자리한 전시 공간, ‘OKNP’는 입구부터 이미 많은 책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전시를 지키는 분께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특별히 무료 관람권이 없던 저희는 2인 총 6,000원을 지불하고 관람권을 구매하였습니다. 사실 입구 앞 공간만 봤을 땐 아 그냥 책들이 진열되어 있고, 스탠딩 스크린이 하나 있구나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너머는 STAFF ONLY이고, 일반인인 내가 들어가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검은 암막 커튼을 넘고 들어가야만 이곳의 진짜 전시를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촌스럽다고 생각하며 커튼을 젖히고 들어간 그곳은 ‘와!’ 하는 촌스러운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멋진 공간이었습니다.
우선 첫 번째 코너부터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프로젝터 영상은 <방법으로서의 출판: 아시아에서 함께하기 방식들 / 미디어버스>의 출간에 기해 만들어진 짧은 영상이었습니다.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의 아티스트북 제작자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오던 이 영상에서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나 인쇄소에서 책이 ‘책'이라는 물성으로 구현되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과정이 교차편집되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이 제작/기획자들이 구현하고자 하는 책이라는 것의 실제적인 제작 과정을 함께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구체화하여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국내외 여러 아트북페어 행사의 모습들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2019년 저희도 참가한 <언리미티드에디션 11>의 현장 모습도 볼 수 있어 반가웠고, 저때 참가한 사람들은 과연 코로나 대유행을 예상이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습니다. 감염병의 걱정 없던 시절의 활기찬 국내외 아트북페어 행사를 보며, 그리고 각자의 현안과 고민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제작자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제작의 근간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어떤 이야기를 담아내고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책이라는 것을 선택해 만들고 있는 걸까? 등 스스로를 향하는 다양한 질문을 이어가며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시청하였습니다. 물론 영상을 밀도 있게 관람하는 동안에도 주차비는 밀도 있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검은 암막 커튼 이후, 프로젝터 영상 관람 이후의 세상에서는 ‘흰 장갑’에 의지해야만 했습니다. 뉴욕과 파리에서 직접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실물 아티스트북을 전시장 직원분의 소개를 통해서만 관람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도서가 있으면 도슨트분께 요청을 해 직접 펼쳐주시는 모습을 관람하고, 직접 설명해 주시는 정보를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껏 자유롭게 보지 못한다는 점이 감질나긴 했지만, 책의 외형이나 내지 그리고 전반적인 감상을 하는 데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혼자 봤으면 몰랐을 내용들도 자세한 설명과 함께 볼 수 있어 어쩌면 더 유용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Printed matter(뉴욕), 미디어버스(서울), Westreich Wagner(뉴욕), Three Star Books(파리)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아티스트북을 (도슨트분께는 죄송했지만) 대부분 관람하였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면,
얼마전 타계한 John Baldessari의 유작 <Nose Peak>1은 인간의 코를 책 내부에 형상화하여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할수록 그 코의 형체가 점점 더 뚜렷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는 이를 통해 어떤 걸 말하려 했는지 따라가는 과정이 사실 쉽진 않았습니다. 물론 예술이라는 것이 창작자의 의도와 별개로 수용자의 독립적인, 개별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 다양한 해석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의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후 이 코가 러시아 작가 ‘고골'의 코를 상징한다는 캡션과 설명을 듣고 나자, 동명의 그의 단편이 떠올랐고 이후 이 책이 의미하는 바를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또한 Maurizio Cattelan의 <Three Volume set>2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쇄된 것처럼 보이는 한 장 한 장이 사실 모두 손으로 그리고, 쓴 작업물이라는 데에 놀랐습니다. 마치 무한상사의 정과장이 생각나기도 했던 이 작업물은 ADHD 성향이 있는 저 같은 사람은 시도는 해보겠지만 절대 마무리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3권의 책이 엮여 있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사진(사실 그림)과 문자(사실 손글씨)들이 가득했습니다. 박형진 작가의 <까마귀와 까치>3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색채표와 같아 보이는 그의 작업은 사실 하루하루 기록으로 남긴 색채 일기였습니다. 6개월간 매일 바라본 오동나무의 색을 그때의 감상을 담아 모두 기록한 이 작업은 작가가 지나온 시간과 그때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어 무척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작업은, Elvire Bonduelle의 <SO FAR SO GOOD>4이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의 독창적인 타이포를 패브릭이나 종이에 인쇄하여 자신만의 미감을 선보이고 있었습니다. 일상의 다양한 사물에 디자인적으로 잘 적용될 수 있겠다 생각하며 특히 전등갓에 입혀보면 어떨까 생각하는 와중에, 캡션을 통해 전등 디자인으로 이미 출시가 되었다는 내용을 본 순간은 약간 오늘 총 두 번의 소름 모먼트 중 하나였습니다. (물론 다른 하나는 주차 정산 모먼트였습니다.) 사실 Elvire Bonduelle의 작업은 전시장 입구 쪽 도서 전시/판매 공간에 설치된 스탠딩 스크린에서 먼저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온 뒤에야 해당 영상이 그녀의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작품을 보고 나자, 영상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관련 영상을 보고 싶으신 분은 https://threestarbooks.com/ELVIRE-BONDUELLE-SO-FAR-SO-GOOD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미디어버스의 전시 공간5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마침맞게 좋은 날씨로 인해 한 면을 가득 채운 창을 통해 해운대 바다가 널리 보였습니다. 푸른 하늘과 짙은 바다색과 더불어 녹색의 전시 공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해수욕을 하는 사람과 전시를 보는 사람. 어쩌면 부산만이 가진 매력적인 특징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멋진 도시와 멋진 공간에 걸맞은 멋진 전시는 9월 10일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서울에 계시던, 대구에 계시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놓치면 안 될 이 전시를 종료가 되기 전 꼭 방문해 보시라고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1. 'Nose Peak', John Baldessari
2. 'Three Volume set', Maurizio Cattelan
3. '까마귀와 까치', 박형진
4. 'SO FAR SO GOOD', Elvire Bonduelle
5. 미디어버스 섹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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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저희는 전시 공간에서 빠져나와 부산에서의 짧은 일정을 ‘샵메이커즈’ 방문으로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공간을 옮긴 샵메이커즈는 이런저런 행사를 통해 직접 만나 소통하고 있는 서점이기도 했으며, 특히나 여름에 부산에서 진행되는 ‘부산 아트북 페어’를 기획하는 팀이기도 합니다. SNS를 통해 새로 단장한 멋진 공간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고, 도착한 서점은 역시나 멋진 분위기를 분출하고 있었습니다. 독립출판물에서부터 일반 단행본 및 여러 생활 잡화와 문구류까지. 미적 감각을 갈구하며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분들께 좋은 영감이 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과 공간 내부의 분위기가 서점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뵌 운영자분들과도 담소를 나누며 이전을 하며 겪은 애로사항이나 다양한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덕분에 멋진 공간을 흠뻑 느끼며 좋은 책도 발견할 수 있었고, (중요)매우 맛있는 근처 맛집의 저녁 식사까지 선사해주셔서 감사함에 몸둘 바를 모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또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저희는 부산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좋은 경험들은 내부적으로 좋은 양분이 됩니다. 업무를 핑계로 매번 안으로만 향하선 시선을 이제 바깥으로, 다양한 방향으로 두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하며 짧지만 강했던 부산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했습니다.
글: 김인철
사진: 류은지
BAAA: Books As Art As
2023년 7월 29일-9월 10일 | 10:00-18:00
오케이앤피 부산 (그랜드조선부산 4층)